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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2

우리가 이들을 주목해야 할 이유

뮤지컬 배우 박정혁, 조각가 권현빈, 첼리스트 한재민을 기억하자.

넘치는 에너지, 박정혁
무더운 여름 쾨닉 서울 옥상에서 만난 뮤지컬 배우 박정혁은 활기가 넘쳤다. “안녕하세요!” 그에게서 남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긴장한 듯했지만, 이내 즐기듯 여러 포즈를 취한 그는 올해 뮤지컬계가 눈여겨보는 신예다. 올 초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이란 작품에서 주인공 단 역할을 소화해내 팬들과 관계자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것. 사실 박정혁은 2012년에 데뷔했다. 열일곱 살에 뮤지컬 <뮤지컬 13>에 참여하면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이후 학업과 군입대로 9년가량 공백기가 생겼다. “공백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땐 학생이었기에 작품에 참여한 것이 오히려 꿈만 같았죠. 작품을 해보니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대학 진학도 마찬가지였어요. 늘 무대에 선 제 모습을 생각했어요. 솔직히 고백하면, 당시에는 무대에 대한 갈망보다는 더욱 성장해서 단단해지는 것에 열망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공백기가 아닌 스스로 정비하는 시간이었죠.”
그래서인지 박정혁은 이 시기에 치열하게 살았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좋은’ 배우로 성장하기 위해 배움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1등을 해야 한다는 생각,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스스로에게 좀 혹독했어요. ‘인정받고 말 거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최고로 기억될 거야’ 같은 말을 끊임없이 되뇌었어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제 모습이 뻣뻣해 보였나 봐요. 어느 날 현재 소속사 대표님이 ‘배우에게 순위는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히더군요. 그때부터 조금씩 강박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열과 성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천성인 듯싶다. 8월 14일부터 10월 31일까지 광림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뮤지컬 <사랑했어요>에서 조장혁·고유진·홍경인·세븐·박규리·신고은 등 뮤지컬 배우, 가요계 선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가요계 대선배인 김현식의 곡으로 넘버를 구성한 뮤지컬에서 그가 맡은 역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윤기철이라는 인물. 요즘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랑은 진정 무엇일까?’ 고민하며 보낸다. “대본에 나오는 기철은 고생을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열정과 끼가 넘치는 캐릭터예요. 그러면서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칠 정도로 헌신하는 사람이죠. 아직 그런 사랑을 해보진 않았지만, 윤기철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무조건 주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많이 생각해봤어요. 선배님들에게도 많은 부분을 배우고 있습니다.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인데,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늘 감사해요. 몸 관리하는 노하우나 컨디션 조절하는 방법도 직간접적으로 배우고 있어요. 정말 귀한 시간이죠.”
이제 막 뮤지컬 배우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박정혁. 그의 꿈은 건강한 몸으로 여든 살까지 무대에 서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무대에서 뿜어내는 넘치는 에너지는 앞으로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고요한 손길, 권현빈
에디터가 ‘권현빈’이라는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된 건 2018년 브레가 아티스트 스페이스에서 열린 <세 번 접었다 펼친 모양>전에서였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 P21갤러리에서 열린 <서러운 빛>전과 모노하 성수에서의 개인전으로 그 이름을 아로새겼다. 몇 달 전 취재를 위해 잠시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쏟아지는 질문에 자분자분 이야기를 이어가는 목소리에서 지금까지 권현빈 작가가 선보인 작업이 스쳐 지나갔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권현빈은 목소리만큼 차분하고 진중한 모습이었다.
지금 그녀는 돌을 주재료로 한 조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는 물질에서 비롯되는 상상력에 관심이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역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인데, 돌이라는 재료는 질기게 엉겨 있다가도 쉽게 바스러지고, 단단하다가도 힘없이 쪼개지죠. 여기서 말하는 ‘상상’이란 이러한 물질적 성격을 관통하는 생각이에요. 그렇기에 역동성을 지닐 수밖에 없고요.” 작가는 작업에 대해 자신은 무에서 시작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일단 관찰하는 시간이 오래 걸려요. 물질이나 재료 혹은 풍경을 자주 바라보죠. 관찰 대상이 ‘무엇이다’라고 정의 내리며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것에서 오는 분위기나 그 상태에 좀 더 집중합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조각되기를 기다리는 돌을 바라보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녀는 “특별히 새로운 것을 해내거나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진 않아요”라며 앞서 살아온 조각가들이 작업하는 과정에서 드러내 온 조각적 제스처를 자신의 작업에 투영하는 동시에 자신이 직접 돌덩어리에 깎아낼 부분을 표시하거나 돌을 매달거나 옮기고, 뚫고, 깎고, 연마하는 등의 작업적 경험을 토대로 지금 이 순간 자신 앞에 놓인 돌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시간성인 것 같아요. 제 스스로 작업을 위해 보내는 시간이 모여 작품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돌을 갈며 시간을 보낼 때, 작은 모래시계에 들어가 있는 상상을 해요. 그렇게 지나온 시간이 다 작업에 투영되거든요.”
권현빈에게 전시는 작업하는 시간의 일부다. 작품의 엔딩, 즉 완성의 순간을 정해두지 않는다는 작가는 전시에 출품한 작품을 다시 작업실로 가져와 이어서 작업하기도 한다. 돌 작업을 두고 설명하면, 사실 인간이 지구상에 살기 전부터 존재하던 재료가 아닌가. 자연과 땅의 일부인 돌이 조각가 권현빈의 손을 거쳐 잠시 조각이 된다. 사람은 사라져도 돌은 어떠한 형태로도 존재할 테니, 굳이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미완’이 아닌 ‘열린 결말’로 작업을 열어둔다. 이런 방식을 통해 시간의 흐름 속 권현빈의 생각이 깊어지는 만큼 작품의 깊이 역시 무르익는다.
“사람들이 제 작업을 볼 때, 그 순간 흐르는 시간이 좋았다고 느끼면 그걸로 충분해요. 어떤 물체든 물성과 존재의 시간을 갖죠. 저는 그런 것을 다루는 사람이니 그 자연스러운 흐름을 함께 즐기면 좋겠어요.” 그녀는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요즘은 내가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작업한다고. 긍정적 시간의 흐름을 돌에 오롯이 새기는 권현빈의 작품에서 고요하지만 천진무구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무르익어가는 선율, 한재민
지난 5월 클래식 음악계는 열여섯 살 첼리스트 한재민의 ‘제오르제 에네스쿠 국제 콩쿠르’ 우승 소식으로 뜨거웠다. 동유럽권에서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제오르제 에네스쿠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마련한 이 국제 콩쿠르 참가자는 대부분 성인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진 이곳에서 앳된 모습의 소년이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콩쿠르에 참가한 이유는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지금 잘 안 되더라도 앞으로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니 조금 편해졌어요.” 그렇게 참가한 성인 콩쿠르에서 단번에 우승을 거머쥐고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함께 조명받았지만, 그는 의연하다. “다섯 살 때 첼로에서 나는 소리에 처음 매력을 느꼈어요. 첼리스트로 걸어온 길이 길진 않지만, 이런 타이틀은 그냥 제 할 일을 하다 보니 주어진 부상 같아요. 저를 규정하는 주어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여덟 살에 원주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고, 열한 살에는 더 하우스 콘서트 연말 갈라 콘서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인상적인 행보지만, 한재민은 ‘최연소’라는 타이틀에 대해 ‘이 연주자는 어리니까 기성 연주자보다 음악을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할 거야’ 같은 대중의 편견을 경계한다. “물론 아직 어린 만큼 좀 더 다듬어 제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마음가짐은 성인 연주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연주할 때마다 도달하고자 하는 기준이 높죠. 타이틀에 신경 쓰진 않지만, 그에 따른 편견은 제가 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콩쿠르에서 스스로 고무적이라고 느낀 부분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바로 연습의 중요성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세미 파이널과 파이널만 루마니아 현지에서 진행했다. 1·2차는 모두 한국에서 영상으로 대신했다. “처음 목표는 파이널 진출이었어요. 그래서 세미 파이널 때는 너무 떨었죠. 그러다 진짜 파이널에 진출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욕심도 생기고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음악은 한 번 연주하면 지울 수 없잖아요. 틀리더라도 그냥 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죠. 그렇기에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정말 ‘연습한 만큼 연주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파이널 연주에 자신 있었어요.” 이렇듯 한재민은 또 한번 자기 확신의 시간을 가졌다.
첼로와 연주에 대해 거침없이 말하는 한재민은 때론 나이에 맞는 천진함과 패기 그리고 진중함을 동시에 보여주며 진심을 드러냈다. “지금 또래 친구들은 다 학생이잖아요. 다른 친구보다 조금 더 빨리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한 만큼 평범한 삶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어요. 아직은 첼로가 너무 재미있고, 이루고 싶은 목표가 뚜렷해서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아요.” 그는 앞으로도 즐기면서 연주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슈퍼스타를 꿈꾸지 않아요.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첼리스트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관객이 제 연주를 듣고 ‘음악을 진심으로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기억해준다면요. 마음을 움직이고 위로하는 연주는 제가 연주할 때마다 진심을 담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벌써 주니어라는 꼬리표를 떼고 당당히 연주자로 기억되기 시작한 한재민. 그가 앞으로 들려줄 첼로 선율이 자못 기대된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
장소 협조 쾨닉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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