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미지를 담는 것에 3초면 충분하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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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5

좋은 이미지를 담는 것에 3초면 충분하다

숱한 이미지 사이에서 김승곤 사진평론가는 3초 안에 좋은 이미지를 찾아낸다.

한국 1세대 사진평론가 김승곤 선생이 일본 니혼 대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하던 당시, 국내에서 사진 장르가 차지한 위상은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다. 예술보다 기술,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했던 우리나라의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산업 근대화와 경제 발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때로 예술, 그중에서도 특히 사진이 차지하는 무게감이나 사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 등이 부족했다. 1964년 서라벌예술대학에 국내 최초로 사진학과가 설립된 것도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할 때 이미 20~30년이나 뒤처졌을 뿐 아니라 대학에서 가르치는 커리큘럼 또한 학문적 내용보다는 사진촬영이나 현상 기법 같은 기술적이고 실용적인 과목에 치중된 것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직업적으로도 영업 사진관 사진사나 언론사 사진기자 같은 직업 사진가는 있었으나 사진가, 사진작가로 부르는 전업 사진가는 ‘사진쟁이’처럼 경멸적이고 자조적인 이름으로 불린 것 또한 사실이다.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신문사에서 취재 기자로 일하며 사진의 매력을 경험한 그가 니혼 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해 사진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더구나 1960년대 중반 한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정식으로 일본 유학의 길이 열리자 그는 지체 없이 국가시험을 치른 뒤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최고 예술 학부 중 한 곳인 니혼 대학교 예술학부 사진학과는 베를린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돌아온 가나마루 시게네(Shigene Kanamaru)가 1939년에 설립한 학과다. 전부터 그곳을 눈여겨보던 김승곤 선생은 가나마루 시게네를 사사하며 사진의 기본과 응용을 배웠다.
스승의 권유로 쓰쿠바 대학교 조형예술 대학원에서 시각 전달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사실 그가 국내 대학에서 전공한 건 국어국문학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어린이 잡지를 한 권 사주셨는데, 그 속에 실린 동화 ‘플란다스의 개’를 읽고 울던 기억이 나요. 감정이 섬세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부터는 시를 쓰기 시작했고, 고등학생 때는 교지 활동을 했습니다. 막연히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학도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김동리 작가가 교수로 있던 서라벌예술대학이나 서정주 작가가 있던 동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성적에 맞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고대에는 조지훈 작가가 있었지만, 학과명처럼 문학보다는 국어 교육에 초점을 맞춘 커리큘럼이 대부분이었다. 고대 교지 <고대문화>에 시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문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문학을 더 공부하지 않고 사진을 배우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문학계에 등단하려면 월간지 <현대문학>이나 <자유문학>에 투고해 입선해야 하는데, 전 그게 싫었어요. 제도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작품집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 졸업 후 한 신문사에 입사해 취재를 하면서 카메라를 처음 접했는데, 정밀한 작은 기계가 만들어내는 흑백사진이 정말 신비롭더군요. 무엇보다 사진 현상 과정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마침 일본 유학길이 열렸고, 제겐 둘도 없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제가 밀선을 타지 않고 정식으로 유학한 전후 1세대일 겁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지만, 사진학과 동기들이 학계에 활발히 진출한 것과 달리 그는 사진계에 새로운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1984년, 아내인 사진가 임향자와 함께 사진 공방 겸 워크숍 공간 성격을 띤 ‘타임스페이스’를 오픈했다. 특히 젊은 사진가들이 자유롭고 색다른 사진을 발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에 걸쳐 일본에서 ‘Independent Photography’라는 중요한 운동이 일어났어요. 독립영화처럼 제도에 속하지 않고 상업적인 것에서 자유로운, 각자 독립 활동을 권장하는 사진 공간이 늘어난 거죠. 대안 공간처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진가들이 모여 워크숍을 열고, 각자 시각을 공유하고 발표하는 거예요. 저도 한국에서 그걸 꿈꿨어요. 그래서 젊은 작가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워크숍을 시작했습니다.”
사진에 관한 읽을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는 1998년 계간지 <사진 비평>도 창간했다. 광고 없는 잡지, 판매 부수로 승부하는 잡지를 표방한 탓에 경영이 어려워져 14호까지만 발행하고 폐간됐지만, <사진 비평>은 그때도 지금도 유일한 사진 비평지였다. 이듬해인 1999년에는 사진 이론 및 창작 분야에서 역량 있는 신인을 발굴, 지원하는 사진비평상을 제정해 사진 이론 분야가 침체된 한국 사진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자신 또한 서울문화예술 평론상, 대한사진문화상 학술평론 부문, 이명동사진상, 일본사진협회 국제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과 함께 사진비평상 심사위원장, 동강사진축제 운영위원장, 서울사진대전 운영위원장 그리고 국립순천대학교 인문예술학부 사진예술학과 석좌교수를 역임하며 무수한 사진을 찍고, 보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평론을 구축했지만, 사실 평론이라는 것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가들은 비판적 평가를 들으면 상처를 받거나 상대를 원망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작가들이 평론가나 대중의 ‘평가’를 작품의 ‘최종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는 사진을 배우는 학생이든 전문 사진가든 “실패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의 정석입니다. 더 나아지려면 지금의 잘못을 정확히 파악해 그것을 바꿔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다들 칭찬만 받고 싶어 하죠. 악평을 두려워하는 대신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사진은 어떤 것일까? “우선 제 눈을 3초 이상 사로잡는 사진이어야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시선을 붙잡는 사진은 대개 읽어내야 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죠.”
우리는 무수한 이미지 속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TV 화면에서, 잡지에서, 전시장에서 오늘도 수백, 수천 장의 사진을 눈앞에서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잡지를 넘기며 사진 한 장을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심리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할 때 0.3초라고 한다. 광고주들은 그 0.3초를 1초 이상으로 만들기 위해 종이를 두껍게 하고, 요철을 넣고, 향기를 더한다. “사실 잡지를 넘기며 보는 사진은 ‘본다’기보다 ‘흘러간다’, ‘스쳐 지나간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사진처럼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사람의 시선을 붙잡으려면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야겠죠. 흔히 ‘사진이 말을 건다’고 하잖아요.”
매일 단 음식을 먹다 보면 단맛에 익숙해져 점점 강한 자극을 원하는 것처럼 사진도 마찬가지다. 저녁노을 같은 풍경 사진은, 조금 과장하면 김승곤 평론가에겐 거의 매일 보는 사진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새롭고 자극적인 사진에 점수를 준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비평가 롤랑 바르트가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에서 ‘푼크텀(punctum)’을 이야기하죠. 작품을 감상할 때 관람객이 자신의 경험에 비춰 받아들이는데, 순간 사진에서 뭔가 툭 튀어나와 내 마음에 파고드는 거예요. 그런 사진을 좋아합니다.” 그가 좋아하는 사진가는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와 외젠 아제(Euge‵ne Atget). 미국의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작품을 전시한 첫 사진가로 주로 성 소수자, 장애인, 기형인 사람들을 찍는다. ‘카메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외젠 아제는 파리의 오래된 풍경을 촬영하며 대상을 냉철하게 포착하려는 즉물적 표현 수업으로 현대사진 예술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김승곤 사진평론가는 구태의연한 사진이 아닌, 남과 다른 사진을 찍고 싶다면 복안적(複眼的) 시각을 갖추라고 조언한다. “현대미술, 자본시장, 사회와 인문, 철학, 디자인, 영상 미디어, 화상공학 등 사진이 관여하는 영역은 믿을 수 없는 속도와 규모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조차 사진학과라는 명칭이 사라지는 걸 보세요. 국내외를 막론하고 사진을 매체로 ‘잘나가는’ 아티스트의 대부분은 사진 비전공자죠. 요즘 융합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사진가들도 종합적 인간으로서 사고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사진 기술만 배워서는 남과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현재 그는 한국사진예술원(seoulphotoclub.com)에서 주임교수를 맡고 있다. 사진 교육과 출판 관련 비즈니스로, 그중에서도 최고경영자를 위한 사진 예술 교육과정 ‘SPC사진클럽’이 대표적 활동이다. 로열 소사이어티를 표방하는 이 프로그램은 건전한 취미와 스포츠로서 사진 활동을 통해 사회적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 몇 달 전 김승곤 사진평론가가 발간한 <읽는 사진>은 SCP사진 클럽에서 활동하는 오피니언 리더의 사진 작품에 일일이 글을 쓴 것이다. 책에 실린 아마추어 사진가의 작품도 하나같이 훌륭하지만, 사진을 읽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탐구하고 사진의 어떤 점에 포인트를 두고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정보를 제공해 사진가에게도, 사진을 감상하는 독자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그는 사진 클럽에서 활동하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아마추어 사진가에게 늘 당부한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꼭 프린트하라는 것. “스마트폰은 이제 눈과 뇌 같은 신체 기관의 일부가 되었고, 누구나 그것으로 손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죠. 스마트폰으로 인해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서 하루에 수십억 개의 이미지가 찍히고 캡처됩니다. 디지털 데이터의 문제점은 사람들이 사진을 SNS에 올린 뒤 쉽게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CEO에게 ‘마음에 드는 사진은 꼭 프린트해 남겨두라’고 권합니다.”
모든 사람을 아마추어 사진가라 해도 무방한 요즘,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이든, 꽃이든, 석양이든, 구름이든 모든 사진은 대상과 단 한 번 만난 징표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어요.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세요. 많이 찍고, 찍는 것을 즐기세요. 파울 클레의 말처럼 예술(의 역할)은 눈에 보이는 것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니까요.”





송영숙 사진가의 ‘무제’(1981).

김승곤 사진평론가와 전시장을 거닐다
지금 이곳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2021 서울사진축제’ 전시장입니다. <한국여성사진사 1부: 1980년대 여성사진운동>(~8.22)에서는 여성 사진사, 여성사진운동을 짚어보며 주요 사진 작품을 전시하는데, 우리의 사진 역사에서 ‘여성 사진사’를 따로 기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기획전은 1980년대 ‘여성 사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경제 발전이 절정을 이룬 1980년대 중 . 후반 한국은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모든 면에서 자신감에 넘쳤어요. 이 무렵을 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의 점유율도 급속도로 증가합니다. 사진도 그 전까지는 남성 영역으로 분류해왔는데, 이즈음 전국 30여 개의 대학 사진학과에서 남녀 학생의 성비가 역전되기 시작한 거죠. 서울사진축제는 전문교육을 받은 여성 사진가들이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한 이 시기를 조망하고, 그 사진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시도로 보입니다.
남성 사진사라고 따로 분류하지 않는 것처럼, 여성 사진사라는 구분도 대중에겐 낯설게 다가올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는 여성의 권리와 정치사회적 지위 향상, 여성이 지닌 굴레로부터 해방, 젠더에 대한 관심, 성 소수자 등을 복합적으로 아우르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갖췄기에 사실 이 시대 ‘여성 사진’을 괄호 안에 하나로 묶어 정형화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여성 사진가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죠.
이번 전시에는 김동희·류기성·박영숙·송영숙·임향자·정영자 등 1980년대 전시·출판·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한 여성 사진가의 실천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시대 남성 사진가 중 저희가 기억해야 할 사진가는 누가 있을까요? 저는 사진의 가장 큰 덕목이 ‘시각적 이미지의 기록’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이 사진을 찍는데, 대상이 대부분 ‘사람’이라는 점은 사진의 본질을 생각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꼭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윤주영 선생의 이름을 대겠습니다. 40여 년간 스물여덟 권의 사진집을 펴냈고, 인간의 삶에 초점을 맞춰 렌즈를 겨눈 휴먼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감동적 작품에는 결정적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얻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요? 사진가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그 질문과 맞닥뜨릴 겁니다. 사진가는 감각을 날카롭게 연마해 언제라도 그 ‘순간’에 반응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앙리 브레송의 사진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결정적 순간’은 상황의 본질을 잡아내는 관찰과 화면 구도를 짜고 셔터를 누르는 타이밍이 탐색(시지각)과 직관(무의식)이 일치할 때 실현됩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
장소 협조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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