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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27

해석에 관한 다양한 미적 가치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쿤 판 덴 브룩이 만들어낸 구상과 추상 그 해석의 폭을 넓힌 작품 세계.

Photo by Rhomi Martens

쿤 판 덴 브룩
1973년 벨기에 브리에서 태어난 작가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면을 만들어낸다. 2013년 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네 차례 한국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 밖에도 독일, 미국,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세계 각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리움미술관 삼성,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벨기에 안트베르펜 현대미술관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직접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을 전했다.





Silver Lining, Oil on Canvas, 80×107cm, 2021





2018년에 갤러리바톤에서 열린 전경.

갤러리바톤의 전시 제목이 ‘기억과 꿈의 사이’입니다. 저는 전시 제목의 힘을 좀 믿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전시 전반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제목으로 전시를 구성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신 건가요?
그동안 저는 여행을 자주 다니며 작업했어요.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작업 방식의 대대적 변화가 필요했죠. 전시 현장을 방문해 그곳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작업할 수 없으니 과거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진으로 이미지를 수집해왔는데, ‘세계화’에 대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인식을 알아가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또 서로 다른 국가의 문화에서 닮지 않은 점만큼이나 닮은 점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고, 건축물을 세우고, 사회를 구축한다는 점은 어디나 같으니까요. 현재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봉쇄된 상황에서 시간을 거슬러 과거에 수집한 것들을 되돌아본다는 의미가 있어요. 현시점에서 돌아보면 그때와 지금 사이 지나온 시간만큼 지리적으로나 문화적 변화도 상당하다는 게 보여요. 그래서 수집한 이미지를 토대로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방식으로 이를 재해석한 작품을 이번 전시에 가져왔어요. 제가 여행하며 직접 찍은 사진이지만 마치 다른 세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죠. 도시 봉쇄령이 내려진 지금,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거나 잔 너머 친구들과 대화하며 어울리던 시절이 꿈처럼 느껴지잖아요. 마치 아이에게 ‘옛날 옛적 세상이 이러했을 때’로 시작하는 동화를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자연과 인간의 건축물이 함께 두드러지는 것 같아요. 특히 도로표지판, 주차장, 보도 그리드, 아스팔트 같은 요소가 눈에 띄죠. 아무래도 환경이나 자연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지금,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님이 보여주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좋은 질문이네요. 작품에서 드러나는 요소는 오늘날 사회에서 우리가 실제로 체감하는 규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겁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의해 제한되죠. 이는 우리 문화에도 근본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 글과 회화에서도 이러한 통제 상황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건축적 요소부터 미학의 규칙,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가르는 기준, 옳고 그름에 관한 근거 등 제 작품을 그런 맥락으로 볼 수도 있어요. 혹자는 제 작품에서 적막하고 황폐한 장소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도 있겠죠. 저는 그 지점에서 추억과 꿈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생각을 정리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하죠. 아무것도 없는 공간은 사실 허무함과 지루함을 낳는데, 저는 그러한 상태에서 창의력이 싹튼다고 믿어요. 결국 자기 성찰에 필수적인 환경을 제 작품에서 찾을 수도 있는 거죠.

강렬한 색의 사용도 작가님의 특징인 것 같은데, 색에 대한 어떤 철학이 있나요?
제 작품에서 ‘색’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새로운 연작에는 의도적으로 색을 더 과감히 사용했어요. 스튜디오 작업실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 때보다 많아서 색에 더 집중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작업할 때 저는 미술사적 레퍼런스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저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 작가 세 명이 있어요. 앙리 마티스, 카지미르 말레비치, 피터르 몬드리안이죠. 이번에 선보인 작품은 특히 마티스에게 영감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야수파적 요소가 눈에 보이죠. 그런데 동시에 몬드리안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공부한 건축이나 공학적 면모가 두드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좀 전에 색에 대해 물으셨는데 몬드리안을 통해 설명해볼게요. 이번 전시 출품작은 아니지만 ‘Silver Lining’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지형은 몬드리안의 화폭에서 얻은 겁니다. 구름의 은빛 가장자리가 구름 너머로도 보이고 구름을 투과해서도 보입니다. 도시의 시각에서 설명하면 이러한 구름에 의해 생긴 라인을 하늘에 만들어진 어떤 균열처럼 여길 수도 있어요. 몬드리안에 의해 시작된 회화의 진화가 여기까지 이어진 거죠. 다양한 색을 활용해 구상주의적 면모도 보이고요. 화면 전체에 자연적으로 생긴 균열도 있고, 색도 자세히 보면 다 다릅니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색상 간 호흡, 즉 리듬감이 생깁니다. 분명 사진을 베이스로 작업하지만, 그와는 다른 모노크롬 회화의 느낌을 자아내는 등 원본 이미지와 거리감이 느껴지는 이유죠.





Tribute to Hopper, Oil on Canvas, 135×90cm, 2020





Korean Friendship Bell Playground, Oil on Canvas, 210×157.5cm, 2020

건축을 전공한 이력 때문인지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구상화이면서도 추상화 같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작품 세계 전반에서도 그렇지만, 하나의 회화에서도 그런 알쏭달쏭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결국 어떤 작품이든 작가님의 생각 혹은 개념이 투영되는 거겠죠?
좋은 작품은 필히 개념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념적이란 작품에 어떤 생각이 투영됐다는 거고, 그걸 만든 이유를 비롯해 결국 한 작품에 어떤 콘텐츠가 담긴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당연히 미술사를 비롯해 보편적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오늘날 우리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늘 생각해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달했고, 무엇이든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죠.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현재 사회에서 일종의 균형점을 찾아가고 있어요. 평형성의 기제도 생각하고요. 제 작업 역시 그처럼 과거 레퍼런스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요즘엔 ‘레트로’라 해서 과거의 것을 지키려는 보수적 움직임이 예전보다 도드라집니다. 이렇게 과거에 대한 향수가 트렌드로 떠오른 건 미래보다, 지금보다 과거가 더 좋았다는 과거지향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읽을 수도 있어요. 예술을 통해 과거를 비추고 이음매를 만드는 것은 역사에 대한 해석이자 지금 우리의 현실에 대한 해석으로, 전 세계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제 작업으로 말씀드리면 LA와 서울을 잇는 ‘벨기에의 미술’이자 개념적 예술 활동이 되는 거죠.

우리는 늘 회화의 전통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많은 매체가 생겼고, 앞으로도 생길 테죠.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 속 회화의 위치는 어디쯤일까요?
회화는 다루기 힘든 매체예요. 지금 ‘회화는 죽었다’라는 말이 다시 대두되고 있기도 하지만 제가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1999~2000년에 이는 예술계의 주요 이슈였죠. 당시 ‘페인터(painter)’라는 호칭에는 지적인 예술가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특히 유럽에선 말이에요. 별다른 생각 없이 단순히 이미지를 그리는 사람과는 다른 의미였죠. 뤼크 튀망이나 게르하르트 리히터 같은 거장을 통해 회화는 절대 전통적이기만 한 하찮은 매체가 아님을 확인하며 우리도 ‘개념’을 가지고 작업하는 작가라는 점을 증명할 수 있었어요. 또 다행히 저는 대학에서 공학과 건축학을 공부한 덕에 매체에 대한 ‘분석’도 어느 정도 가능했고요. 결론적으로 매체는 아이디어와 개념을 전달하는 수단이고, 그걸 통해 할 이야기가 없으면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줄거리 없이 책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미술을 공부할 때에는 저만의 개념으로 작업을 방어할 수 있어야 했고, 이미 그린 작품을 통해 제 생각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주변에서 자주 날카로운 질문을 접하다 보면 무엇을 하든 그 이유를 고민하게 됩니다. 어쩌면 젊은 예술가에게 주어진 행운은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일지도 몰라요. 다만 한 가지 경고를 하자면, 그 자유를 믿고 작품의 깊이를 더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회화 작가들이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Bird #20, Oil on Canvas, 200×250cm, 2013





Walkway, Oil on Canvas, 120×179.5cm, 2020





<기억과 꿈의 사이> 전시 전경.

코로나19 시국이 장기화되고 있어요. 이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미쳤죠. 작업 방식은 물론 생각하는 방법도 바이러스나 팬데믹 상황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조심스럽지만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발현된 긍정적 변화도 있을까요?
팬데믹으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게 된 데에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팬데믹 이전에는 아트 페어를 비롯해 대규모 전시가 강세를 보였죠. 작가의 작품에 대한 적절한 감상이나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이제 작품만으로 작가를 평가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거죠. 다시 말해 어떤 작품을 보고 콘텐츠와 작품의 수준, 작가가 그걸 만든 이유 등을 알아가며 그가 정말 좋은 작가인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긍정적이에요. 또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전 세계를 잇는 대규모 전시나 페어가 온라인 행사로 대체되거나 취소됐다는 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지금은 ‘과잉’ 대신 ‘고요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기간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예술의 근본 가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죠. 우리의 정신(영혼) 세계에서 예술이 왜 중요한지, 작가의 활동이 어떤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또 사회에 어떤 보탬이 될 수 있는지 같은 고민 말이죠. 제가 이해하는 예술의 ‘기능’은 어떤 오브제를 깊이 있게 또 능동적으로 분석할 때 발현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오늘날 작가들은 자신의 내면을 혹은 대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일 수 있지만 빈 캔버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글을 쓰다 보니 가끔 워드의 빈 페이지를 보면 불안과 부담감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끼기도 하거든요. 작가님은 빈 캔버스 앞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문득 궁금해졌어요.
백지 상태의 캔버스라…. 웃고 싶지만 웃을 수 없네요. 너무 공감이 되는 말이라. 그건 글을 쓰는 작가나 작곡하는 음악가, 영화 제작자 등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 같아요. 절대 익숙해지지도 않겠죠. 저도 지난 세월 계속해서 작업을 해왔지만, 새로운 작품을 앞에 두고 느끼는 무게감은 처음과 똑같습니다. 아무래도 작품에 대한 저 자신의 기대와 타인의 시선 또는 평가 때문이겠죠. 그러니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때 고민과 주저함이 있을 수밖에요. 긍정적으로 보면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하고 또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파장을 일으켜 널리 퍼지고, 다시 또 제가 넘어야 하는 높은 장애물로 되돌아오니까요.

예술은 만국 공용어이면서 치유의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하잖아요. 지금 코로나19로 모두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작가로서 한국 관람객 혹은 작가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제가 평소 동료 작가들에게 하는 조언으로 갈음할게요. 지금 우리가 처한 사회적 상황에서 자신의 예술 활동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히거나 이용당하지 않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길 바랍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제공 갤러리바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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