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구설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FEATURE
  • 2021-05-10

학폭, 구설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과거의 일,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방송사 피디 A씨는 요즘 연일 비상대기 중이다.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조마조마해. 오후 7시 넘어 전화벨이 울리면 심장이 다 내려앉는다니까.” 엄살을 보탰지만 요새 분위기가 살얼음판 같다는 것엔 업계 다수가 동의한다. 최근 방송사들은 출연진 잔혹사를 겪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연예인 스캔들이 터져서다. 최근 예능은 물론 교양, 문화, 심지어 시사 프로그램까지 게스트가 떼로 나오는 포맷이 주를 이뤄 곳곳에 지뢰가 깔려 있다. 대상도 배우, 가수, 스포츠 스타, 예능인 가리지 않고 성별이나 연령도 마찬가지다. 불특정 다수가 구설수에 오르니 대책이 없다. “매니저들한테 일일이 뭐 터질 거 없느냐 묻지도 못하고 예측(?)할 수도 없으니 그냥 기도만 하는 거지. 그래서 촬영 때 가능하면 오디오가 물리지 않도록 찍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A씨와 제작진은 단체 메시지 방에서 수시로 관련 뉴스 뜬 것이 있는지 정보를 교환한다. 녹화 전이라면 사람이라도 교체하지, 방영을 앞둔 시점이라면 전쟁이 시작된다. A씨는 지난달 제작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스캔들에 휘말리자 밤새 편집실에서 그의 흔적을 지웠다. 분명 화면에는 보이지만 코멘트가 없다거나 어정쩡하게 잘린 몸만 나오는 통편집은 이래서 탄생한다. 그래도 A씨는 운이 좋았다. 게스트가 떼로 나왔기에 가능했지, 단 몇 명이 끌고 가는 프로그램이라면 폐방까지 각오해야 한다. 물론 통편집을 하더라도 완벽히 그 흔적을 지울 수는 없다. 그래도 해야 한다. 어설프고 누더기가 될지라도 성의가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에 따라 시청자의 항의 강도가 달라진다. 최근 한 종합편성채널 프로그램 게시판엔 항의가 빗발쳤다. 주요 출연진 중 한 명의 사생활이 논란인데도 프로그램을 온전히 내보냈다는 것이 이유다. “채널 안 보기 운동 하겠다”, “이 프로그램에 광고하는 기업 제품은 불매하겠다”까지 살벌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시청률과 광고 유치에 예민한 방송사는 당연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회 차별로 게스트를 교체하는 TV 프로그램은 좀 낫다. 드라마나 영화 출연 배우가 스캔들에 휘말리면 난감하다. 새로 찍거나 아예 프로젝트가 엎어진다. 연기자 B씨는 최근 이전 배우가 스캔들로 하차하면서 대타로 합류했다. 다행히(?) 아직 방송 전이라 출연 분량을 전부 새로 찍을 수 있었다. B씨는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아무리 좋은 역이라도 민망하고 싫지. 원래 배우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감독 부탁이 아니면 아마 거절했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터지면 승자가 없다. 촬영 분량이 늘어 제작 일정이 늘어지고 비용도 올라간다. 작품을 선보이기도 전에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다. 그래도 이쪽 역시 광고에 비하면 좀 낫다. 광고는 정말 답이 없다. 광고의 목적은 연예인의 특정 이미지(좋은 쪽)를 기업이나 제품 홍보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억을 지불한다. 성추행, 폭력, 인성 논란에 휩싸인 연예인은 상품으로서 가치가 없다. 아니, 오히려 해가 된다. 그래서 TV나 영화보다 계약 조건이 세다. 사생활 문제로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경우 물어야 하는 위약금이 자세히 명시돼 있다. 최근 학교폭력 문제로 활동을 중단한 젊은 연기자 C씨는 상당한 금액의 소송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된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받은 출연료 선금을 토해내야 하는 것은 물론, 추가 제작비에 대한 손해배상 그리고 광고 모델 비용 회수와 위약금까지 수십억의 이야기가 오간다. 이미 모두 잘못을 인정하고 작품에서 하차했기에 선처를 구하는 것 말곤 대응 방안이 없다. 그래서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쪽도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이자 연기자인 D씨는 SNS발 학교폭력 사태에 휘말렸다. 피해자가 신분을 밝혔고 정황도 꽤 구체적이라 여론은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편. 그런데 현실적 문제가 터졌다. D씨의 스캔들로 그(그녀)가 출연한 드라마의 편성이 연기됐다. 제작비만 100억 원에 달하는 이 작품의 방영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그 손해를 D씨가 온전히 물어야 할 상황인 것이다. 자숙하며 두문불출하던 D씨는 태도를 바꿨다. 피해자에 따르면 D씨 측은 폭로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손해배상 비용을 언급하며 그만 멈추라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특정인에게 반대되는 거짓 증언을 청탁했다는 내용까지 추가 폭로했다. 아직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대응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것은 코끼리의 왼쪽 발가락 정도다. 2017년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투(#MeToo-나도_당했다) 캠페인으로 시작된 유명인의 과거사 폭로 스캔들은 현재까지 광범위하게 진행 중이다. 지금 이 업계는 과거와 싸우고 있다. 달라진 건 성추문에서 학교폭력이나 빚투까지 전선을 확대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중의 요구가 더욱 명확하고 거세졌다. 바로 현재 유명세로 누리고 있는 특권을 내려놓으라는 것. 과거 연예인들은 음주운전이나 성추문 같은 스캔들에 휘말리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쉬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보는 것만으로 오글거리는 자선이나 봉사 활동을 이어가다 토크쇼나 인터뷰를 통해 쓱 고개를 내밀고 차차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영화 <내부자들>의 백윤식(이강희 役) 대사 중 “대중은 쉽게 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때는 그게 통했다. 그러나 현재는 아니다. 한국 대중은 쉽게 잊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이다. 거대한 아카이브인 이곳에선 20년 전 싸이월드에 올린 댓글 하나도 이슈가 된다. 심지어 잊을 만하면 다시 과거를 끄집어내 낚시질을 하는 가십 언론도 천지다. 과거 만행(?)이 진실이라고 대중적 합의가 이뤄졌다면 복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숙 정도가 아니라 은퇴를 해야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폭로 사태에 대한 여러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반응이 과하다는 것. 주로 학교폭력에 해당하는데, 철없던 시절 벌인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질타는 필요하지만 한창 성장할 루키의 싹을 자르는 건 너무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 촉법소년제도처럼 일정 부분 핸디캡을 주자는 거다. 일부 수긍이 가긴 하지만 반대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번 폭로 사태의 피해자(피해자라 주장하는) 대부분은 가해자(피해자가 가해자라고 지목한 연예인)에게 받은 상처로 평생 힘들었다고 한다. 그때 그에게 당한 폭력과 모욕, 욕설 등으로 성인이 된 지금도 대인기피나 악몽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그런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피해자가 TV나 스크린에서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가해자를 보는 건 분명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거다. 피해자 대부분이 그러한 이유로 말문을 열었다. 최근에 클럽하우스에서 놀다 흥미로운 얘길 들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모저모를 이야기하는 방이었는데, 꽤 이름 있는 스피커가 작금의 사태를 두고 ‘휴먼 리스크’라 표현한 것이다. 그 역시 가해자로 지목된 연예인들을 두둔한 건 아니지만 그 표현은 인간 본능의 어쩔 수 없는, 제어할 수 없는 실수 같은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혈기왕성한 시절 말 몇 마디 실수로 밥그릇을 빼앗기는 게 정상이라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지금 폭로되ㅍ고 있는 그들의 과거 언행이나 폭력은 질이 안 좋다. 말로 전하기 뭐할 정도로 수준 이하며 저질이다. 그런 폭로가 사실이라면 그에 대한 응당한 조치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어느 정도 치유되고 사회적으로 어떤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 물론 대중도 섣부른 판단을 하면 안 된다. 주로 피해자의 진술이 증거의 대부분이라 억울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몰릴 수도 있다. 물론 그들과 신밖에 모르는 영역(?)이라 CCTV 화면처럼 명확히 시시비비를 가릴 순 없겠지만 사회적 판단이나 타협이 단지 몇몇 스피커의 주장을 통해 이뤄져선 안 된다. 과거엔 가능했던 일, 다들 했던 일, 그럴 수도 있는 일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모두 기억하자. 과거는 어떤 식으로든 되돌아오고, 복수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일러스트 최익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