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리면 더 매력적인 서울 - 노블레스닷컴

Latest News

    FEATURE
  • 2021-05-05

봄비 내리면 더 매력적인 서울

봄비 내리는 서울에서 10명의 창작자와 다섯 명의 사진가에게 안부를 물었다.

PHOTO 김성용

한강, 수영장 그리고 나
예술계에 종사하는(혹은 그렇게 스스로를 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보편과 달리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한다. 비 오는 서울을 바라보는 것은 내게 언제나 조금의 통증을 유발한다. 알람을 듣고 일어나면 평소와 똑같은 시간인데 유달리 사위가 어둡고, 피곤하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면 침대 옆에 높인 습도계는 어김없이 50%가 넘어가 있고, 평소에는 지나치게 건조해 사각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던 내 이불이 몸을 무겁게 짓누른다. 창문엔 빗방울이 점점이 묻어난다. 나는 (미룰 수 있는) 미팅이나 약속, 수업을 모두 다른 날짜로 옮긴다. 침대에서 30분 넘게 꾸물대다 (잠옷 대용으로 입는) 속옷 차림으로 부엌에 나온다. 그리고 간신히, 정말이지 간신히 커피를 내려 마신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한참 동안 밀린 원고를 쓰고, 업무 메일을 보내다 보면 꼬리뼈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든다. 허리 디스크가 악화된 것인지,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인지 알 수는 없지만 책상 옆에 아무렇게나 벗어둔 반바지를 입는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린 많은 나일론 윈드브레이커 중 하나를 꺼내 입는다. 오늘은 아디다스. 어디선가 사은품으로 받은, 지팡이처럼 생긴 장우산을 집어 든다. 현관에 어지럽게 늘어놓은 신발 중 무엇을 신을지 고민한다. 비가 오면 신발이 젖는다. 신발이 젖으면 냄새가 나고 나 자신에게 냄새가 나는 건 남에게서 풍기는 냄새보다 최악이다. 젖은 신발을 빠는 것보다는 발을 씻는 게 편하니까 크록스 샌들을 신고 밖으로 나선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한강 공원으로 향한다.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한강 공원이지만, 비 오는 날은 평소에 비해 비교적 한적하다. 15분쯤 비에 젖어드는 한강을 바라보며 걷다, 괜히 고단한 기분이 들어 우산을 쓰고 벤치에 앉는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었지만, 상관없다. 우산조차 쓰지 않고 조깅하는 사람들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조깅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짧고 딱 붙은 옷을 입고 있으며, 근육의 질감이 손으로 만져질 것만 같다. 옛날 애인은 우울증과 공황장애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뒤 급격히 살이 찐 내 모습을 보며 힘들다고 했다. 힘들어. 네 숨소리가 점점 커지고, 내가 원치 않는 모습이 되는 게. 뚱뚱하다고 차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당장 조깅이라도 할 것처럼 커다란 장우산을 접는다. 그리고 안개처럼 촉촉이 젖어드는 비를 온몸으로 맞기 시작한다. 빗물에 젖은 나는 비로소 도시를 커다란 수영장으로 이해한다. 딱딱하게 굳은 어깨며 나를 둘러싼 무거운 공기가 깨끗이 정화되는 것 같은 다소 과잉된 감상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그것대로 좋다. 나는 장우산을 지팡이처럼 짚으며 계속 한강 변을 걷는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_ 박상영(소설가)

아이들과 함께 목적지 없이
비가 내리면 차에 오른다. 특별한 목적지가 있다기보다는 비 내리는 서울 곳곳을 누비는 게 좋다. 우산을 쓰고 이동하는 행렬이나 빗속에 어슴푸레 점멸하는 가로등, 낙화하는 꽃잎까지 잠시 한눈을 팔면 놓칠 수 있는 것이 이맘때면 수두룩하다. 그러다 허기가 지면 벼르던 인근 맛집을 찾는다. 여의도 만둣국집과 종로의 낙지볶음집, 그리고 왕십리의 해장국집을 찾아 아주 천천히 밥을 먹는다. 주로 혼자지만, 요샌 아이들이 커서 가끔 따라나선다. 비가 내리는 차 안에서는 목적지가 없기에, 시간이 아주 많기에, 또 비가 내려서 평소 하지 못하던 말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밥 먹는 것을 오래오래 지켜본다. _ 임치빈(이종격투기 선수)





PHOTO 김성용

덕수궁에서 경복궁까지, 그리고 그리스 와인
덕수궁미술관 앞 수양벚나무가 비바람에 일렁인다. 꽃종(鐘)이랄까 꽃구름이랄까, 만개한 벚꽃이 신비한 소리를 내는 것 같다.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를 둘러보고 나오다 또 한 번 탄성을 지른다. 미술관에 들어갈 때 말쑥한 석조전을 배경으로 서 있는 벚나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또 처음 본 듯 경이로운 모습이다. 동행한 화가 최 선생은 눈앞의 풍광에 한 번 놀라고 내 비명에 또 한 번 놀란다. 두 사람이 입을 벌리고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정말 씩씩한 꽃나무다. 비가 들이쳐도 꽃송이는 그대로 매달려 허공에서 주렴처럼 싸르락거린다. 비는 오얏나무꽃 흰 등을 두드리거나 이제 막 벌어진 진달래 여린 꽃잎을 톡톡 건드린다. 둘 다 말없이 덕수궁 담벼락을 왼쪽 허리에 끼고 세종로를 걸어간다. 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빗물 감기는 소리가 마치 파도소리 같다. 소요 속 고요를 누리며 서울 한복판의 세종로를 걷다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북악산의 비뚤어진 이마가 보인다. 이곳은 한국의 피돌기가 시작되는 심장이기도 해서 비의 파닥거림은 더욱 싱싱하다. 경복궁 사거리의 동십자각 사모지붕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홀린 듯 당도하는 곳은 ‘더 그릭’이라는 그리스 와인 바. 경복궁 동쪽 정원이 보이고 멀리 인왕산 스카이라인이 보이는 통유리창 집, 그리스 여행을 하지 않은 사람도 그곳에서 추억이 있기라도 한 듯 마음이 설렌다. 눈부신 화이트의 산토리니 가옥이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리스 노래 ‘기차는 여덟 시에 떠나네’가 풍경에 덧입히면서, 아그네스 발차의 걸쭉한 목소리가 빗소리를 지운다. 한국의 옛 궁궐을 바라보면서 그리스 노래를 듣다니! 큼지막한 유리창엔 수백 겹의 빗방울이 흘러내린다. 씻고 또 섞는 복잡한 시간. 여기서는 시간과 공간이 무의미해진다. 빗물은 동십자각 사모지붕을 적시고 보도블록을 적신다. 붉고 푸른 신호등 불빛이 빗물에 어리어 보도블록에 긴 불기둥을 세운다. 보랏빛 와인잔을 기울이며 인왕산의 희미한 형체를 꿈처럼 바라본다. 빗줄기만 남고 일상은 저만치 뒤로 물러앉는다. _ 천수호(시인)





PHOTO 조혜진

반려견과 한강 변에서
이 도시에 비가 오면 마로니에공원의 젖은 풍경과 혜화로터리를 지나는 버스가 생각난다. 극단에 있을 땐 비가 내리는 날은 임시 공휴일 같았다. 관객이 적어 공연을 일찍 마치고 천막이나 슬레이트로 둘러친 술집에 모여 단원과 술을 마셨다. 에너지로 가득 찬 사람들이지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엔 왠지 다들 말수가 줄었다. 막연한 미래와 눈앞으로 밀려드는 현실, 그리고 청춘 같은 것이 입에 걸려 서걱거렸다. 그런 날은 대개 자리를 일찍 파했다. 뭔가를 털어내려고 모인 자리인데, 흩어질 땐 모두한 짐 가득 지고 사라졌다. 한번은 마로니에 공연장부터 성북동 언덕길까지 귀에 이어폰을 꽂고 걸었다. 온몸이 젖었지만 기분이 상쾌했다. 지금의 내 일상은 촬영이 없을 땐 거의 뚜루몽과 함께한다. 그는 나와 함께 거주하는 반려견들로 하뚜(여자)와 하루(남자), 하몽(남자) 세 마리를 묶어 부르는 나만의 애칭이다. 이 아이들은 유독 비 오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비가 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밖으로 나가자며 보챈다. 그래서 이젠 비 오는 서울을 뚜루몽과 함께 걷는다. 사선으로 쏟아지는 빗줄기와 젖은 아스팔트 풍경, 그리고 비 젖은 풀 냄새가 전처럼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뚜루몽이 가장 좋아하는 건 비 오는 한강 변에 텐트를 쳐놓고 비 내리는 면을 함께 바라보는 일이다. 비가 내리는 날 텐트를 친다는 게 꽤 수고스럽지만, 무릎과 양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_ 이성우(배우)





PHOTO 최민석

봄비 산책
지금은 웹툰 작가가 업이지만, 2년 전까진 대학에서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일했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몸을 움직일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도 나는 하루에 1000보도 채 걷지 않은 날이 비일비재하다. 재택근무가 기본인 삶에 코로나19까지 더해지며 식사마저 배달 음식으로 해결하다 보니 운동은커녕 움직일 건수 자체가 없다. 그래도 연구원으로 일하던 당시엔 하루 2000~3000보는 걸었는데, 이유는 다름 아닌 식당과 주차장이 연구실에서 멀었기 때문이다. 박사과정을 밟던 서울대학교는 여의도 면적의 약 3분의 2 수준이다. 입학 전에는 이런 말을 이야기를 들어도 캠퍼스 넓이가 쉽게 체감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입생 때 건물 위치에 대한 확인 없이 수강 신청을 했다가 하루에 서너 번씩 개처럼 뛰어다니며 그 넓이를 뼈저리게 알았다. 넓은 캠퍼스 덕분에 10개가 넘는 식당이 있음에도 연구실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편도 10분은 됐다. 이 시간이 곱절로 늘어날 때가 있는데, 바로 비가 내리는 날이다. 특히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걸음은 더욱 더뎌졌다. 봄비는 참 사랑스러운 존재다. 작은 우산 하나로 충분할 만큼 가늘게 내리고, 신발이 젖을 정도로 모여 흐르지 않는다. 하늘을 뿌옇게 덮은 황사도 봄비가 씻어주고 순간순간 코끝으로 흙 냄새와 푸른 잎, 꽃향기가 스친다. 흐드러지게 핀 꽃도 봄비를 만나면 교태를 부린다. 바람 따라 허공을 떠다니던 꽃잎이 자동차를 가득 덮었다. 그 빼곡히 껴안은 모습이 처음부터 저곳에 피어난 듯하다. 조금 더 걷다 보면 금세 날이 갠다. 봄비가 모여 머물던 자리엔 송화의 금빛 고리가 남는다. 숲의 녹색이 차고 구름이 희다. 봄이다. _ 닥터베르(웹툰 작가)

생생한 빗소리에 취할 수 있는 장소

마감이란 살벌한 전장이다. 그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보상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특별히 거한 행위가 있는 건 아니다. 주머니가 넉넉지 않던 신인 때부터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이면 됐다. 그런데 봄비까지 내린다면? 어김없이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 화실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다지 수고스럽지 않다. 석화 한 접시와 소주 한 병을 앞에 놓고 특유의 시장 냄새와 시원한 비바람이 더해지면 5성급 호텔에서 마시는 고급 와인이나 위스키보다 곱절은 만족스럽다. 투박한 삶의 형태와 사람 냄새, 그곳의 분위기는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특히 포장마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어떤 ASMR보다 감미롭고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그렇게 혼자 술잔을 비우다 보면 그동안의 이런저런 기억이 떠오른다. 빗소리에 취하는 건지, 소주에 취하는 건지 알 수 없이 빠져드는 그 분위기는 단연 최고다. 비 내리는 저녁의 포장마차라 춥지 않느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싸늘해진 공기는 따뜻한 홍합탕 온기에 녹이고 냉기 도는 몸은 소주로 데우면 된다. 한겨울이라도 전혀 춥지 않다. 넉넉한 인심도 이곳의 매력 포인트다. 안주가 떨어질 때면 냉면 육수나 설탕을 올린 토마토, 달걀부침, 번데기 같은 안주가 두서없이 나온다. 그런 걸 구경하며 맛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서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지만, 이곳 한편은 남겨두었으면 한다. _ 김성모(만화가)





PHOTO 김선익

광화문 유랑의 추억
광화문을 좋아한다. 그곳은 기분 내키는 대로 부근 시내 어디로든 걸어갈 수 있다. 여유로운 날엔 광화문역에 내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우뚝 솟은 빌딩 숲 사이 광장을 걷는 사람과 함께 하늘을 겹쳐 보는 풍경이 좋았다. 한참 걷다 어둑해지고 비가 올 때면 친구를 꾀어 인사동 골목으로 막걸리를 마시러 갔다. 한잔 술이 들어가면 친구는 기타를 퉁겼다. 시선이 모이면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해 언제나 한 곡으로 마치곤 했다. 어느 날엔 친구들과 서울 여행을 나섰다. 동네 친구인 우리는 가벼운 짐을 채운 85리터 배낭을 메고 삼청동도 가고 신문로도 걸으며 익숙한 거리를 낯설게 느끼자 했다. 40일간의 배낭여행을 앞둔 적응 훈련이 명분이지만, 당시엔 이상하게도 늘 재미있는 것을 찾아 다녔다. 의기양양하게 시작한 서울 여행은 반나절이 지난 후부터 내리는 비에 지고 말았다. 레인 커버를 씌운 거대한 배낭을 메고 걷다가, 이름 모를 가게 앞에서 비를 피하다 열정이 식어 어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 청년은 이제 멀리 가버렸다. 그러나 발끝을 적시던 비와 더위가 한풀 꺾인 광화문의 공기는 아직도 선명하다. 가능하다면, 그 시절의 계절로 돌아가고 싶다. _ 김태윤(가수)

잠깐은 괜찮아
키보드 위 내 왼손가락은 배우의 표정과 움직임을 캐치하기 바쁘다. 모니터 속 시청자에게 전달하고픈 감정을 집중해 고르느라 나의 뇌세포는 현란한 잔치를 벌인다. “어머 선배님, 비가 와요.” 내 작업실 너머에서 보조 녀석이 외친다. 나는 서둘러 오늘 촬영 스케줄을 체크해본다. 이런, 모두 야외 촬영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급히 편집실 창밖을 내다본다. 어느 팀일까? 상암동 도로를 무대 삼아 레커차 신을 찍던 스태프들이 장비를 챙겨 서둘러 비를 피하는 모습이 보인다. 빗나간 일기예보라니, 우리 촬영팀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찰나. “선배님,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아서 촬영 철수한답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린다. 예기치 못한 봄비에 작업의 맥이 잠시 멈춘 상태. 막간을 틈타 팀원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 나선다. 안개처럼 뽀얀 봄비가 도로를 적시며 연둣빛 순이 작은 빗방울에 살랑댄다. “와, 벌써 싹이 많이 났네요. 예쁘다.” 우산 너머로 보이는 가로수 새싹을 보며 소녀같이 미소 짓는 팀원들이 보인다. 이런 날은 빌딩 안 상가보다 옹기종기 정겹게 모인 음식 골목이 제격이다. 곰장어집 한구석엔 낯익은 얼굴이 보이고, 치킨집 테이블에선 이미 맥주잔을 기울이며 오늘 어긋난 스케줄을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팀도 채소가 듬뿍 담긴 양념곱창구이에 볶음밥을 시킨다. 내일 몰아칠 일은 잠시 잊고 아침부터 모니터와 씨름한 팀원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한다. 어제인지 그제인지, 밤인지 낮인지, 늘 밀려 있는 작업 탓에 계절 변화 또한 모니터로 먼저 알아챌 때가 많다. 빗소리를 음악 삼아 이 순간만큼은 수다쟁이 친구처럼 뜻밖의 보너스 타임을 맘껏 누린다. _ 김유미(편집 PD)





PHOTO 이수강

비 오는 서울의 아지트
서울의 풍경 사진을 본 외국의 젊은이들이 환상적이라고 말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궁금해서 봤더니, 한밤중의 유흥가 사진이었다.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한 장면처럼 보여서일까? 빗물로 뽀얗게 블러 처리한 간판의 네온 불빛이 이국적이고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현지에 사는 내게도 비가 오는 서울의 밤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밴드를 하는 친구를 홍대 한구석의 맥줏집으로 부르면어느새 인원이 하나둘 늘어난다(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바로 ‘무대륙’. 지금은 유명하지만, 아직 작은 공간일 때 인디 뮤지션과 햇병아리 아티스트가 모이던 우리의 아지트였다. 늘 전시가 있었고, 언제나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만남이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비가 내렸고, 우리는 밤새 떠들고 웃고 음악을 듣고 누군가를 위로하며 밤을 보냈다. 그 시절이 그립다 이야기해도 공감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 대부분이 유명해졌고, 누군가는 결혼을 했으며, 모두 어른이 됐으니 말이다. 그래도 서울의 밤이 아름다웠던 것은 가난하던 우리가 함께했기 때문이 아닐까. 외국의 그들이 보는 피상적 간판의 조명이나 골목의 깊은 풍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옛이야기나 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가졌던 어떤 소박한 아름다움을 성공과 함께 지켜나간다는 건, 글쎄 불가능하진 않지만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하던 비 오는 밤의 그곳, 가로등 불빛이 따듯한, 조금은 허름한 아지트가 서울을 아름답게 만든 것이다. _ 이상은(가수)

당신의 거실에서 차 한잔을
서울에 비가 내리면 어머니의 화초 가득한 거실로 가고 싶다. 당신은 폐점한 상가에 버려진 행운목과 풍란, 관음죽을 이고 오셔서 열 살 아이의 키만큼 키워냈다. 내 사무실에 가져오면 몇 달을 못 넘기고 시들기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손길이 닿으면 줄기를 뻗었다. 그 푸르른 거실에서, 나는 어머니가 앓고 있는 당뇨에 좋다는 꾸지뽕차를 당신과 함께 마실 것이다. 실은 어제 저녁 인터넷으로 차를 주문해두었다. 어쩌면 이 작은 소비가, 당신의 오랜 병을 낫게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 실은 아니다. 그저 듣기 좋은 말이다. 사실 서울의 비 오는 날 대낮에 어머니와 우산을 벗어던지고 광화문 광장을, 고궁을, 그리고 청계천을 맨발로 걷고 싶다. 뜨거운 술 한잔의 건배를 시작으로 폭풍우 속에서 건강한 어머니, 당신과 취해 달리고 싶다. _ 박석영(영화감독)

 

에디터 <노블레스 맨>피쳐팀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