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박용택의 새로운 시작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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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22

레전드 박용택의 새로운 시작

LG 트윈스의 박용택은 한국 야구 역사에 굵직한 이정표를 남기고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

촬영장에서 박용택을 만나고 두 번 놀랐다. 가장 먼저 점잖은 카디건에 초록색 컨버스 스니커즈를 매치한 패션 센스에 놀랐고, 선수 때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표정과 말투에 또 한번 놀랐다. 물론 서글서글한 성격의 그가 항상 팬들을 예의 바르게 대하는 선수인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후배 선수를 이끄는 리더십이나 타석에서 상대 투수를 긴장시키는 오라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법이다. 그 카리스마가 어디 가겠느냐마는, 배트를 휘두를 때 필요한 날카로운 감각을 내려놓은 듯 한층 유해진 느낌이다.
야구 팬이 아니어도 ‘박용택’이란 이름 석 자는 들어봤을 것이다. KBO 리그 개인 통산 최다 안타와 최다 출장 기록의 소유자, LG 트윈스에서만 19년을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다. 2020 시즌을 끝으로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그는 현재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는 조금 의외의 선택으로 비쳐졌다. 긴 선수 생활 동안 사생활 문제로 구설에 오른 적 없는 ‘모범생’ 박용택을 타격 코치 등으로 야구 현장에서도 찾았을 테니 말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야구 연수를 받을 생각도 있었어요. 코로나19로 자연스럽게 무산됐지만요. 하지만 무엇보다 현장에 바로 투입되는 건 싫었어요. 야구를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만 보고 살았는데, 곧장 다시 유니폼을 입으라뇨!(웃음) 대신 야구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해설위원 일은 즐겁게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가 중계석에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시점은 3월 말 시범 경기부터다. “캐스터와 합을 맞춰보고 있어요. 억양은 어떤지, 발음이 새지는 않는지 점검도 하고요. 또 선수의 개인 기록을 살펴보며 해설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할 일이 제법 많지만 새롭게 느껴져서 힘들진 않아요. 아, 해설하다 저도 모르게 LG 트윈스를 응원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선수 생활을 조금 더 이어가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박용택 살아 있네”라는 말이 나올 만큼 마지막 시즌에도 충분히 존재감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딱 잘라 은퇴의 아쉬움은 없다고 말했다. “2018년 여름 양준혁 선배가 세운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하고 나서 심적으로 많이 지친 걸 깨달았어요. 마침 FA 계약도 다가오고 해서 그대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힘들어도 잘 참아낼 수 있는 기간이 얼마일지 생각했고, 그게 2년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정말 열심히 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딱히 흠잡을 데 없는 박용택의 커리어에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바로 우승. 그는 2002년 데뷔 시즌 한국 시리즈 무대를 밟고 플레이오프 MVP에도 선정됐지만, 이후 팀이 긴 암흑기에 들어가며 우승과 인연이 없는 듯 보였다. 몇 년 사이 LG 트윈스는 다시 가을 야구를 하는 강팀으로 거듭났지만, 2020 포스트시즌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마지막까지 한국 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했다. “팬들이 많이 아쉬워했어요. 1년 정도 더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도 나왔고요. 하지만 야구가 한두 명이 하는 운동도 아니고, 제 것이 아니었던 거죠. 깔끔한 마무리였고, 후련합니다.”





박용택은 2020 시즌을 끝으로 프로 야구 선수로서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사진은 박용택이 마지막 경기를 마친 후 이병규 타격 코치와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지난 일에 후회 한 번 안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30년 세월을 야구에 ‘올인’한 박용택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초등학생 때 야구부에 입단하면서부터 그는 언제나 야구에 진심을 다했다. “실업 농구팀 선수였던 아버지는 제가 야구 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운동선수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셨으니까요. 한번 해본다는 생각으로 하면 안 된다고, 야구로 반드시 성공해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일러주셨어요.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서인지 저는 한 번도 야구를 재미있게 한 적이 없어요. 오직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달렸습니다.” 남다른 각오, 그리고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야구 명문인 휘문중학교, 휘문고등학교, 고려대학교에서 실력을 쌓으며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그는 가장 원하던 구단인 LG 트윈스에 입단했다.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 팬이었어요. 서울 연고 팀이기도 하고 이름에 용 용(龍) 자가 들어가 더더욱 끌렸죠. 운명처럼 느껴졌달까요. 그런 팀에서 제가 꿈꾸던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팀을 옮길 기회도 있었지만, 은퇴 후 되돌아볼 때 어떨지 생각해보니 답은 정해져 있더라고요.”
선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사람을 꼽아달라고 하자, 박용택은 LG 트윈스의 또 다른 레전드 이병규 타격 코치를 언급했다. “제가 입단할 때부터 슈퍼스타였어요. 존경하는 선배이자 넘어서고 싶은 대상이었죠. 선배도 저를 애 취급하지 않고 ‘얘보다 못하면 안 되지’ 하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마흔 살에 타격왕에 올랐으니 말 다했죠. 이런 부분이 좋은 자극이 됐어요.” KBO 리그에서 각종 기록을 경신한 박용택이지만, 그가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건 최다 출장 기록이다. 그가 ‘꾸준택’으로 불리며 사랑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도 주전 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오랜 기간 ‘클라스’를 유지한 비결은 무엇일까. “나이나 역할을 떠나 항상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했어요. 스스로 한계를 두는 순간 끝이에요. 어떻게 하면 잘 칠지, 어떻게 하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지 고민하고 상황에 맞춰 계속 변화를 준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팬들의 기대에 한결같은 경기력으로 보답한 그에게 야구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한참을 생각한 그는 “선생님”이라고 답했다. “저는 기록만 보면 되게 심심한 선수예요. 하지만 그 안에는 정말 많은 스토리가 담겨 있어요. 야구로 쓴맛, 단맛 다 보면서 인생을 배웠습니다. 이걸 토대로 앞으로 나아가야죠.”
해설위원으로 새롭게 출발하지만, 박용택 앞에는 여러 갈래 길이 펼쳐져 있다. 방송가의 러브콜에 응답하는 것도, 훗날 다시 야구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도 옵션이 될 수 있다. 과거 야구부 입단 때와 같이 제2의 인생을 구상해야 할 시기인 만큼 어느 쪽으로 향할지 고민이 많으리라. “사실, 요즘 고민이 없는 게 고민이에요.(웃음) 제 야구 이야기를 담은 책을 준비 중이고, 기획 중인 재미난 일도 몇 가지 있어요. 얼마 전만 해도 야구는 무조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네요. 뭐든지 새롭게 시작하는 때잖아요. 우선 들이대보고 안 되면 ‘내 길이 아닌가 보다’ 하면 됩니다. 아직 갈 길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겠지만요.” 그렇다면 그의 목표는 분명하다. 후회 없이 선수 생활을 했으니, 이제 후회 없이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는 것.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한 가지 걱정이 앞섰다. 뭐든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박용택이기에 새로운 길이 정해지면 즐길 새도 없이 또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보셨네요!(웃음) 지금은 스트레스 없이 지내는 짧은 기간일지도 몰라요. 다만 야구라는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었으니, 이번 여정은 조금 다를 겁니다.”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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