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가구 파워 컬렉터 손란 대표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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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6

한국 고가구 파워 컬렉터 손란 대표

한국 고가구와 소품을 수집하고 보존해온 파워 컬렉터 손란 대표가 들려주는 우리 선조의 문방구 이야기.

우리 선조는 주변 세상의 모든 만물에 대해 따뜻한 마음과 눈길을 보냈다. 북쪽 창 아래 세 벗, 즉 술·시·거문고를 의미하는 북창삼우(北窓三友), 추운 계절의 세 벗으로 어려울 때도 지조를 지키는 소나무·대나무·매화를 지칭하던 세한삼우(歲寒三友)라는 두 가지 표현만 봐도 그 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태도는 선비들이 가장 가까이하던 문방구에서도 잘 드러난다. 먼 옛날 문방구라 하면 종이·붓·먹·벼루·연적·필통·먹물통·필세·문진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특히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손에 꼽을 수 있다. 서재(글방)의 네 벗이라는 뜻으로, 붓·먹·벼루·종이를 이르는 말이다.
선비들이 머물던 서재는 주로 사랑방이었다.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방이자 손님을 접대하던 생활 공간이다. 사랑방은 안주인이 머무는 안방과 물리적 거리를 둔 곳으로, 외부 사회와 연결되며 남성의 사회생활이 이루어지던 일상 속 공간이다. 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글 읽는 서재 역할을 하던 남자만의 라운지라고 볼 수 있다. 서재는 주로 사방탁자, 서안, 방석, 보료, 병풍, 장침 등의 가구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문갑·서안·연상·지통 등 문방구가 놓이는데, 그중 문방사우 네 가지는 각각 용도가 달라 한 가지만 빠져도 서로의 기능을 다할 수 없다. 글 쓰는 도구를 글방에 늘 가까이 두고 다루는 벗이라 여겼으니, 사물을 의인화해 소중하게 대한 마음에서 따스함이 느껴진다. 각 부분에 친구에게 별명을 붙이듯 정겹게 부르던 명칭의 숨은 의미를 알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붓뚜껑은 필모, 즉 붓의 모자인 셈이다. 붓끝은 필봉으로 붓의 봉우리고, 붓놀림은 필로라 해 붓이 가는 길을 뜻한다. 벼루도 먹을 가는 평평한 부분은 연당(硯堂), 벼루 앞쪽의 물을 담는 오목한 자리는 연지(硯池: 벼루의 연못), 벼루집은 연실(硯室)이라 일컬었다. 종이는 지선생이라 부르니 홀로 학문에 정진해도 혼자가 아닌 네 명의 벗과 함께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벼루는 수명이 길어 오래도록 그 용도와 멋을 다할 수 있었다.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던 하사품 중 단연 최고 물건이었으니,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내각 관료에게 좋은 컴퓨터 모니터를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 20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벼루는 뼈·상아·기왓장 중에서도 수막새의 등을 평평하게 만든 와연, 궁전이나 사찰 바닥에 깐 네모난 기와로 만든 전연, 진흙을 물에 씻어 찌꺼기를 가라앉힌 뒤 위에 뜨는 앙금으로 만든 징니연, 나무로 만든 목연, 돌로 만든 벼루, 자기로 만든 벼루 등 종류가 다양하다.
벼룻돌은 담녹색 석재인 청석을 제일로 쳤다. 중국에서는 광둥성 지방의 단계석이 유명하고,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표적 벼룻돌인 평안북도의 위언석과 충청남도의 남포석은 중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추사 김정희가 “남포 벼루 세 개를 구멍 냈다”라고 자랑한 일화는 그의 집념 어린 노력과 열성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명필이 선택할 만큼 알아주는 벼루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다양한 모양새의 벼루와 연적 모두 손란 대표의 컬렉션을 판매하는 매장 무명씨에서 선보인다.

문방구 컬렉션의 가치
나의 앤티크 컬렉션 중에도 선비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벼루가 수십 개나 있다.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의 벼루 가운데 아주 작은 사이즈의 벼루가 눈에 띄는데,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기분마저 들었다. 작고 귀여운 모양새라 필자가 ‘애기 벼루’라고 이름 붙인 이 벼루는 선비들이 도포 자락 안에 넣어 다니던 것이다. 먹물을 갈아 통에 담은 뒤 이 애기 벼루와 함께 소맷자락 안에 쓱 집어넣어 이동성까지 갖췄으니, 어디에서나 글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을 우리 선조의 풍류와 지성적 면모를 느낄 수 있다.
비록 문방사우에 들진 못하지만, 선비들이 애정을 갖고 귀히 여기던 존재가 연적이다. 오래도록 쓰는 벼루와 달리 형태와 모양새를 더 중요한 요소로 쳤다. 벼루에 먹을 갈 때 쓸 물을 담는 그릇으로, 주로 연상 위에 올려놓고 사용한다. 삼국시대 이후 벼루와 함께 사용해 벼루와 둘도 없는 벗인 연적은 글 쓰는 정취를 중시하던 조선시대 사대부 덕에 더욱 발달했다. 다양한 모양새와 형태, 색감을 지녀 요즘은 연적을 모으는 컬렉터도 많다. 옛날에도 비교적 큰 사이즈의 연적은 문갑이나 사방탁자 위에 올려놓고 바라보는 관상용으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옛 선비들이 일상에서 늘 가까이하던 문방구의 형태, 색, 크기 등과 그에 부여한 이름을 보면 도구 이상의 철학과 사상을 담고 나누는 진정한 벗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은 작은 사물을 대할 때도 일상 속 다양한 상황에 따라 사람 이상의 친밀함을 느끼고 기꺼이 ‘벗’이라 불렀다. 따뜻한 시선과 함께 사물과의 뛰어난 공감 능력과 상상력이 스며 경이롭기까지 하다. 요즘의 글방(공부방)을 이루는 필요조건은 컴퓨터·프린터·태블릿·휴대폰 등이겠지만, 옛 시절 그랬듯이 진정으로 마음을 터놓고 정을 나누는 의미의 벗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종이에 손 글씨로 뭔가를 기록하거나 시를 읊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 옛 선조의 문방구에서 느릿하지만 따뜻하고 지혜로운 태도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손란
사진 안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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