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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14

이야기가 쌓이는 공간 만드는 방법

시류를 제대로 관통하는 판지 스튜디오 양재윤 대표를 만났다.

판지 스튜디오의 시작이 궁금하다. 조형예술을 전공하면서 아르바이트나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공간을 이야기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면서 대중적 공간을 다루는 것 역시 현대미술 개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를 계기로 2005년 판지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오픈 이후 어려운 고비도 겪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우리가 그리는 멋있는 작업만 할 순 없었다. 판지 스튜디오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다른 일을 의뢰받기도 했고. 어느 시점에는 일을 오래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만큼 피로도가 쌓이더라. 그때부터 과감하게 일을 끊기로 했다. 그러면서 고생도 많이 했다. 하지만 노력과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줬다.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의 작업이라 이야기할 만한 일을 할 수 있었고, 판지 스튜디오가 더 많이 알려졌으니까.
거절과 조율은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인가? 훗날에 대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이 일을 사랑할 뿐이다. 재미있게,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일하고 싶었다. 덕분에 큰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우리다운, 우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아카이브를 쌓을 수 있었다.





판지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라이프스타일 스토어 나이스 웨더 전경.





양재윤 대표의 최근 가장 큰 관심사이자 취미인 자전거가 놓인 공간.





양재윤 대표가 평소 즐겨 사용하는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영등포 청기와타운과 압구정 도산분식 등 상업 공간에서 ‘뉴트로’ 컨셉을 접목한 시작점에 판지 스튜디오가 있다. 600년이 넘은 도시임에도, 서울에서 레이어가 쌓인 도시의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고민한 것 같다. 판지 스튜디오의 작업 공간은 문래동에 자리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여전히 재미있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 많은 곳이다. 도심에서 접하기 어려운 건축 구조, 좁은 골목의 정취가 있달까. 문래동에서 서울과 도시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양한 공간 디자인 중에서도 상업 공간이 주를 이루는 까닭은? 상업 공간을 의뢰하는 고객은 대개 다방면으로 경험이 많은 편이다. 물론 사업을 처음 시작한 사람도 있지만, 보통 그 업계에서 경력을 갖춘 사람이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 그 까닭에 원하는 것 역시 명쾌하고. 우리는 그저 그들의 아이디어를 정리해 소비가 잘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해주는 것이다.
늘 창의성이 발현되어야 하는 일이다. 창의란 무엇일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표현하고 이야기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들이 안 해본 것을 저지르는 용기도 필요할 테고. 그것이 바로 크리에이티브가 아닌가 싶다. 머릿속에 맴도는 조각의 편린을 맞춰 원하는 형태로 만들려면 주변에서부터 노력해보는 거다. 양발에 신발을 다르게 신거나 장갑을 짝짝이로 끼어보는 용기. 그러면서 새로운 개념과 이미지가 만들어지곤 하니까.
어른과 아이의 물건이 조화로운 집 안 풍경이 근사하다. 레고는 아이들과 나의 공통 관심사다. 내가 만든 것을 아이들이 갖고 놀기도 하고, 다시 해체해서 새롭게 조합하기도 한다. 아이가 완성한 형태나 색의 조합을 보면 창의성에 놀랄 때가 많다. 집 안에는 아이들 키에 맞는 작은 가구나 푹신한 스툴처럼 아이를 배려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이들과 함께 쓴다. 장식장에는 우리 부부의 물건과 아이들의 책, 장난감이 진열돼 있다. 아이들은 넓고 푹신한 소파를 마루 삼아 곳곳을 누빈다.
좋은 가구가 집 안의 중심을 잡아주는 듯하다. 우리 부부는 물건을 사는 데 신중한 편이다. 비용이 좀 들더라도 오랫동안 함께 늙어갈 수 있는 물건을 선택한다. 금세 질려서 바꾸는 것보다 이 가죽 의자에 남은 아이들의 손자국처럼 오랫동안 함께 사용한 가족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것이 좋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그런 가구를 물려받고 소유하며 살아갈 때 느낌은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어른과 아이가 공존하는 배려의 공간. 가족 모두가 사용하는가구와 아기자기한 소품이 자유분방하면서도 단정하게 놓여 있다.

요즘은 사람들이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이 많다. 팁을 준다면? 집 안 구조는 최대한 중성적이어야 한다. 갤러리의 화이트 큐브처럼 베이스를 만들어야 하고, 그 안에 취향을 드러내는 물건을 과하지 않게 채워 넣으라고 권하고 싶다. A 작가와 B 작가의 전시가 같은 공간에서 다른 느낌을 전하듯, 집도 마찬가지다. 내가 큐레이터가 되어, 비싼 물건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소중한 물건을 정리해놓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유행만을 좇아 벽 장식이나 화려한 벽지 등으로 벽면에 힘을 주는 것은 피했으면 좋겠다.
혼자만의 시간이나 휴식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데, 미팅하러 갈 때도 웬만하면 자전거를 이용한다. 주말엔 자전거를 타고 투어링이나 캠핑을 나선다. 브롬튼이 그 시작인데 접이식 자전거라 자동차나 버스, 기차에 싣고 국내 여행을 많이 했다. 땀 흘릴 때의 희열감이 있더라. 열심히 페달링을 하다 보면 몸과 정신이 하나 된 듯한 무아지경이 찾아오는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복잡한 것이 정리되기도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자연 속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전거 투어링을 위한 근사한 리어 백이나 콤팩트한 사이즈의 화로, 코펠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은 자연과 자전거 백패킹을 좋아하는 마니아와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를 하나쯤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에디터 정유민(ymjeong@noblesse.com)
사진 안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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