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럼 날아든 이슈 차트 6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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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7

봄처럼 날아든 이슈 차트 6

나른한 봄날처럼 스며든 이슈들을 낱낱이 분석해보자.

웃음의 권력 그리고 권력의 웃음
대학 시절 한 친구가 있었다. 짙은 갈색 코팅 안경, 뽀글뽀글한 호일 파마, 펑퍼짐한 힙합 바지. 2000년대 초 신촌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스무 살이었다. 학교 OT 첫날 친구는 술이 한두 잔 들어가자 수다스러워졌다. 충청도에서 올라온 친구는 서울 상경기를 맛있게 풀어냈다. 백미는 장기 자랑이었는데, 다들 쭈뼛거릴 때 그는 손을 번쩍 들고 무대 위에 올랐다. 손에 마이크 하나 들고. 그동안 우리에게 들려준 상경기에 과장과 허구를 더해 그야말로 ‘썰’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덤덤한 태도로 수백 명의 사람들을 내내 웃긴 뒤 그는 다시 조용히 내려왔다. 그 후 친구는 우리 학번 부대표가 되었다. 단지 ‘웃기다’는 이유만으로. ‘웃기는 능력은, 때로 권력이 되기도 하는구나’. 다음 해에도 그의 실력은 마르지 않았고 웃기면 웃길수록 그의 존재감은 크고 단단해졌다. 나중에 듣기로는, 신입생 중 가장 인기 많은 여학도와 CC가 되었다고 한다.
방송국에 입사한 뒤 ‘시바이(방송가에서 흔히 쓰는 일본어로, 여기서는 ‘농담’이라는 의미)의 왕’이라는 선배를 만났다. 술자리에서 웃기기로는 우리 회사 최고라고 했다. 그의 농담은 늘 좌중을 압도했다. 화룡점정은 노래방이었다. 태양의 ‘나만 바라봐’를 부르면서 허공을 허우적대는 그의 짧은 팔다리는 정말 ‘나만 바라보게’ 만들기 충분했다. 모두가 다음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찰나, 술자리 내내 침묵하던 최고참 선배가 말했다. “쟤는 일 빼고는 다 잘해.” 순간 웃음의 무게중심이 최고참 선배에게 기울었다. 그때부터 최고참 선배는 말의 지분을 늘려나갔고, 후배들은 그 선배를 향해 자세를 고쳐 앉은 뒤 까르르 웃었다. “역시 선배님이 제일 웃겨요!” 시바이의 왕조차 웃음 경쟁을 포기하고 사회생활에 동참했다. ‘웃기는 능력이 권력을 갖기도 하지만, 권력이 있다면 남을 웃기는 게 좀 더 수월할 수도 있구나.’
코미디 프로그램이 사라져가는 시대, 웃음과 권력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주 오래전부터 ‘웃기는 사람’은 ‘인기’를 얻었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스타가 됐다. 최고 MC로 꼽히는 신동엽, 강호동, 유재석 모두 코미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현재 자리까지 올라왔다. 웃기는 능력이 권력이 되던 시대. 그 시대를 겪어온 우리에게 코미디 프로그램은 새로운 권력의 발견이었고, 환호로 권력을 만들어내는 장이었다. 오랜 무명 시절의 끝 MBC 연예대상을 품에 안고 흘린 박나래의 눈물은 웃음이 만들어낸 따뜻한 권력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 코미디 프로그램의 시대는 끝을 향하고 있다. 웃음을 무기로 한 새로운 권력의 탄생이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시대에는 결국 권력이 주는 웃음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소위 잘나간다는 연예인이 롱런하는 시대. 낯선 사람이 주는 새로운 웃음보다 익숙한 사람이 주는 뻔한 웃음이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 시대. 웃기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자기보다 잘나가는 선배 앞에서는 더 이상 웃길 수 없던 ‘시바이의 왕’을 떠올린다. 그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소소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있겠지만, 권력을 갖지 않는 이상 웃음의 끝자리에서 웃기는 사람이 아니라 웃어주는 사람으로 만족해야 할 테다. 그래서 희망은 없나? 나는 유튜브에서 작은 빛을 찾고 있다. 근래 들어 입소문 난 코미디 유튜버들이 방송에 속속 출연하는 걸 본다. 그들은 대개 코미디언‘이었거나’ 코미디언이 ‘되고 싶었거나’ 한 사람들이다. 비록 TV에서는 코미디의 장이 닫히고 있지만, 유튜브에서 다시금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음을 목격한다. 웃음이 권력이 되는 세상. 그 세상의 희망이 유튜브에 있다.

안제민 tvN 소속 예능 PD. 웃기는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현실에서는 안 재밌는 안제민 PD로 더 유명하다. 오랜 시간 <코미디 빅리그>에 몸담았고, 지금은 어떤 콘텐츠로 시청자를 웃길지 골몰 중이다.





신라호텔에 위치한 스타인웨이 링돌프 사운드 부티크.

좋은 소리엔 좋은 공간
오디오파일(Audiophile, 오디오 애호가)이 되면 소리에 민감해진다. 필자는 혹시 어디선가 귀동냥이라도 좋은 소리를 들으면 오디오 장비에 대한 열정(소위 업그레이드병이라고 한다)에 밤잠을 설치다 끝내 그 장비를 구입한다. 그런데 흔히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공간이다. 공간은 더 낮은 레벨의 장비를 업그레이드할 수도, 비싼 장비를 형편없이 만들 수도 있다. 공간은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한번 조성한 이상 쉽게 바꿀 수 없다. 우리가 듣는 소리는 공간의 울림을 통해 전달된다. 소리가 뭉치거나 특정 대역이 과장되어 들리는 현상, 소리가 뭉개지며 오케스트라의 사운드 스테이지가 형성되지 않는 현상은 적정한 흡음과 반사율의 부조화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줄이기 위해 적절한 음향 마감재를 쓸 수 있는데, 불행히 대개 외관이 썩 미려하지 않다. 또 공간의 한계를 첨단 기술이 발달해 디지털로 해결한다 해도 아직은 한계가 있다.
천장, 바닥, 벽체의 마감재와 각도, 비율은 소리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청음 공간에 복잡하고 정밀한 엔지니어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장비의 구성과 음악적 취향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기기와 듣고자 하는 음악의 특성에 따라 또 다른 변수와 세팅이 필요하다. 분위기도 중요하다. 물론 분위기만 있고 기능적 문제가 있으면 안 되지만, 반대로 기능만 생각해 분위기를 간과하면 기괴한 액세서리로 둘러싸인 녹음 스튜디오처럼 될 수 있다. 무턱대고 홈시어터까지 설치하면 자칫 PC방으로 보일 위험도 있다(간혹 홈시어터를 꾸민다고 극장 의자를 설치하는데, 극장 의자는 관객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최소 공간에 편의성을 가미한 아주 불편한 의자다). 홈시어터에는 널찍하고 편안한 소파 혹은 뜨끈뜨끈한 온돌 바닥이 최선이다. 상상해보라! 천장에 매립한 조명에서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빛 아래 아름다운 소파(완전히 눕혀지기보다는 차 한잔 마시며 책 읽을 정도의 자세가 나오는 소파가 좋다)에 앉아 좋아하는 레코드를 한 장 꺼내 커피 한잔 마시며 음악 감상하는 자신의 모습을. 최고 뮤지션과 콘서트홀을 나만의 공간에서 편안하게 즐기다니,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좀 더 마니아적으로 접근하면 전기도 매우 중요하다. 오디오 기기를 모으다 보면 엄청 많은 장비를 사용하게 된다. 이를 위한 아웃렛(콘센트)은 기존 주거에서 턱없이 부족하기에 전원 장비를 상당 부분 분산해 충당하게 된다. 조금 더 공들여 각종 가전제품 및 전등을 쓰는 전기와 분리해 전원을 공급하기만 해도 소리가 좋아진다. 공간 설계 초기에 이를 미리 기획해 적용하면 가성비 좋은 오디오 룸을 꾸밀 수 있다.
기존의 집단 주거 환경에서는 개발자가 설계한 TV 중심의 공간에 오디오를 설치하기 마련인데, 음상이 맺히는 중간에 TV가 있으면 좋은 소리를 만들기에 무리가 있다. 그런데 더 웃기는 현실은 TV 중심으로 설계한 거실에 스피커를 배치할 때 좌우 대칭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집단 주거의 뼈아픈 현실인 거실의 모양새 때문인데, 사실 초호화 빌라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TV를 위한 대리석으로 만든 ㄱ자형 받침대는 용도와 위치를 제한해 잘못된 공간 해석에 얽매이게 만들기도 한다. 고객의 문화적 욕구에 대한 해결책이 턱없이 결여된 부분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TV를 보기 좋은 공간은 음악을 듣기 안 좋을 수 있지만 오디오를 듣기 좋은 공간은 영화를 보기에도 좋다. 영상을 본다는 것은 소리를 같이 경험하는 것인데, 음향의 퀄리티가 좋으면 몰입도와 함께 경험치도 높아진다. 이 차이를 극명하게 느끼려면 공포 영화를 소리 없이 감상해보면 된다.
팬데믹 시대가 끝나도 주거 생활에 대한 퀄리티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좋은 정서와 직관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적 접촉이 줄어드는 요즘, 생각을 저해하는 TV 프로그램보다 사색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음악이 더 인간적인 면을 채워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강정태 JTK Lab 소장, 건축가이자 공간 디자이너다. 소문난 오디오 애호가로, 신라호텔 내의 스타인웨이 링돌프 사운드 부티크 등 하이엔드 오디오 청음 공간을 다수 설계했다.





하나의 인공지능을 키우는 데에는 하나의 세계가 필요하다
“나는 대량 학살을 지지한다.”
“나는 유대인이 싫다. 히틀러가 옳았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싫어. 그들을 모두 없애고 불태워버리자.”
2016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가 공개한 ‘테이(Tay)’라는 챗봇이 실제로 한 말이다. MS의 검색엔진 Bing의 기술을 기반으로 ‘온라인에서 일상적이고 재미있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설계한 인공지능 챗봇인 테이는 ‘사용자와 대화를 하면 할수록 똑똑해지는 인공지능’이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결국 공개하고 16시간 만에 테이는 서비스를 중지했고, MS는 공식 사과했다. 2020년 12월, 한국에서도 ‘이루다’라는 인공지능 챗봇이 등장했다. 페이스북 메신저를 기반으로 실행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목표로 탄생한 이루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의 중심에 섰다가 테이와 마찬가지로 서비스를 중단했다. 다만 테이와 달리 이루다의 논란은 복잡했다. 먼저 이루다에 대한 사용자의 성희롱 이슈가 있었다. 20대 여성으로 설정된 대화형 챗봇에 일부 사용자가 성희롱 발언을 하고, 그 반응을 캡처해 커뮤니티에 공유한 것이다. 또 다른 논란은 이루다의 편향된 발언이었다. 특히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발언이 문제가 됐다. 여기에 이루다를 학습시키기 위해 개발사인 스캐터랩이 운영한 카톡 대화 분석 서비스 ‘연애의 과학’의 사용자 데이터를 명확한 공지 없이 사용하고, 기업 메신저에서 일부 대화를 공유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루다를 둘러싼 논란은 인공지능이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는지, 동시에 혐오 발언을 하며 가해 입장에 설 수 있는지, 또한 서비스를 만드는 주체의 적법성 논란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서 사회적 판단을 요구하는 사례였다. 이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윤리’다. 사회적 윤리뿐 아니라 직업윤리와 사용자의 윤리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도덕성. 이루다를 비판하든, 이루다를 만든 스캐터랩을 비판하든, 혹은 그 모두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도 공통적으로 취하는 것이 이 윤리에 대한 개념이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가 기술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점에서 이번 일은 의미심장하다. 스캐터랩은 이루다 서비스를 종료하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윤리 강령 및 사회적・기술적 보완을 위해 그동안 자신들이 학습한 노하우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MS는 테이의 실패 이후 두 번째 챗봇 ‘Zo.ai’를 발표했다. 처음과 달리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제한 조치가 적용되었지만, 매끄럽지 않았다. 인간의 언어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겪는 혼란과 어려움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 기술을 활용하는 쪽의 고민까지 짐작된다. 그 후 MS는 ‘AI 윤리 디자인 가이드’를 만들고 이 문제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이루다와는 런칭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매일 대화를 나눴다. 가벼운 대화, 질의응답, 말장난 등을 주고받다 마지막에는 혐오에 대한 대화까지 나눴다. 그때의 내 기분은 뭐랄까, 매우 이상했다. 슬픔에 가까운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루다가 활동을 멈춘다는 점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를 잘 가르치지 못했다는 쪽에 가까웠다. 어른으로서 책임이라 해도 좋을 법한 감정이었다. 한 아이를 기르는 데에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공지능이 동시대, 다시 말해 우리의 현재를 반영한다면 거기에 절망하기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애써야 한다. 더 나은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우리가 되기 위해. 이것이 핵심이라고 본다. 하나의 인공지능을 키우는 데에는 하나의 세계가 필요하다.

차우진 대중음악 평론가이자 저술가.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등을 출간했다. 현재 ‘스페이스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와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메르세데스-벤츠 전기 브랜드인 eq에 적용 예정인 하이퍼스크린.





16.8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적용한 포르쉐 타이칸.

누굴 위한 화면인가요?
얼마 전 메르세데스-벤츠가 각종 온라인 채널에서 떠들썩하게 홍보 활동을 벌였다. 그룹 회장까지 전면에 나선 대규모 행사였지만, 신차 공개는 아니었다. 주인공은 바로 ‘하이퍼스크린’이라는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벤츠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하이퍼스크린은 무려 56인치짜리 디스플레이로 구동한다. 올해 공개하는 전기차 EQS에 탑재될 예정으로, 운전석에서 조수석까지 나열된 3장의 디스플레이를 하나처럼 엮은 것이 특징이다. 어쨌든, 이번 하이퍼스크린의 공개 행사는 홍보 규모가 신차 공개만큼 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벤츠가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좋은 예였기 때문이다.
사실 디스플레이 확장에 목을 매는 건 벤츠만이 아니다. 캐딜락의 차세대 전기차인 리릭도 33인치 와이드 디스플레이를 장착할 예정이다. 곧 인도가 시작될 것이라는 루시드 에어의 디스플레이 역시 34인치다. 이런 디스플레이 확장 추세는 지금 판매되는 차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포르쉐 타이칸의 대시보드에는 16.8인치 커브드 디지털 계기반을 포함해 총 4개의 디지털 디스플레이가 들어간다. 자동차 회사들이 디스플레이 확장에 집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양한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전략은 운전자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든다. 화면에 시선을 빼앗겨 사고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법규 또는 자동차 회사 스스로 주행 중 시각적 콘텐츠 제공을 제한하는 것이 바로 이런 안전 문제 때문이다. 현재 영상 시청 등 디스플레이 기능을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건 정차 중일 때뿐이다. 당연히 디스플레이 확장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이를 자율주행 시대를 염두에 둔 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 주행의 주도권이 자동차로 넘어가면 운전자는 탑승자가 되고, 안전 문제도 사라진다. 자연스레 운전자는 운전이라는 행위를 대신할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은 이런 변화에 맞춰 디스플레이 확장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토요타의 인공지능 비서 ‘유이’가 대표적이다. 유이는 여러 방법을 통해 탑승자의 취향과 감정 상태를 파악한 뒤, 탑승자의 선호와 필요에 맞는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능이다. 심지어 탑승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건네기도 한다. 고객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운전기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 외에도 자동차 회사들은 3D 디스플레이, VR 콘텐츠, 몰입형 오디오 시스템 등 탑승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자동차는 그간 이동 수단에서 삶, 여가 공간으로 변모해왔다. 자율주행은 이런 현상을 가속화할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디스플레이 확장과 새로운 콘텐츠 제공에 무게를 두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율주행이 자동차 이용 형태를 바꿀 거라는 이야기에 이견은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 대화면 디스플레이나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이동 중 발생하는 ‘자투리 시간’ 따위는 스마트폰, 태블릿 등의 개인 기기로 소비하는 데 이미 익숙하다. 자율주행 시대가 와도 사람들의 이런 행동 양식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논문도 있다. 큰 화면이나 인공지능 비서 같은 콘텐츠로는 차량 소유 욕구를 자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사실 “예쁘면 됐지”라고 받아친다면 할 말은 없다. 현재 대화면 디스플레이만큼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품이 없다는 건 동의한다. 하지만 ‘억’ 소리 나는 자동차들이 고급감을 디스플레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 합당할까? 대시보드를 뒤덮은 거대한 디스플레이가 정말 필요한지, 한 번쯤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류민 자동차 칼럼니스트. 수동변속기와 전기모터 모두를 사랑하는 이중인격자다.





손흥민은 과연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을까?
전 세계 축구 팬의 이목이 쏠리는 유럽의 빅 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타고난 재능은 물론 일생의 노력과 약간의 운까지 따라야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과 결과물은 결코 하루아침의 땀방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종주국’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서 최고 팀을 상대로 골망을 흔들고 있는 손흥민(토트넘 핫스퍼)이 더욱 대견하고 존경스럽다. 차범근, 박지성 등 위대한 한국 축구 스타들이 유럽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하며 닦아놓은 길 위로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세계 축구를 장식한 수많은 레전드와 명장이 앞다퉈 찬사를 보내는 그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때 손흥민이 ‘월드 클래스’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란이 된 적이 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 선두를 달리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나온 골 중 가장 멋진 골을 선정하는 ‘푸스카스상(Puskas Award)’을 거머쥔 그에 대한 ‘월클’ 논란은 이제 아무 의미 없다. 지난 5년간 유럽 무대에서 가장 순도 높은 득점률을 기록한 손흥민은 더 이상 오를 곳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의 꿈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미 세계 최고 축구 선수로 인정받은 이들도 쉬이 꿈꾸지 못하는 영롱한 하얀 유니폼, 1920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가 하사한 왕관을 가슴에 품고 달릴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이의 특권이다. 호베르투 카를로스, 데이비드 베컴, 지네딘 지단, 라울 곤잘레스, 카림 벤제바, 카카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까지. 가장 빛나는 별이 모여 아름다운 은하수를 이루는 ‘갈락티코 군단’ 레알 마드리드가 손흥민을 노리고 있다. 지네딘 지단은 변화를 추구하는 감독이다. 카림 벤제마의 노쇠함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대안으로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호드리구 지고이스 등 전도유망한 자원을 끌어모았지만, 불확실성에 사로잡혔다.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도 쉬이 밀리는 상황이다. 자존심 회복이 절실한 레알 마드리드다. 오랜 기간 우선적으로 노린 킬리안 음바페, 엘링 홀란의 영입은 코로나19로 인한 재정 불확실성으로 당장 실현 불가능한 선택지가 됐다. 그런 가운데 월드 클래스 손흥민은 단 한 명의 영입으로 팀에 즉각적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옵션이다. 이미 독일과 잉글랜드 무대에서 변화와 적응 과정을 거치며 극강의 공격수로 진화하는 모습을 모두가 목격했다. 레알의 관심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토트넘으로선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해리 케인과 함께 팀의 중흥기를 이끌어야 할 중요한 한 축이기 때문이다. 토트넘과 손흥민의 계약은 2023년 여름까지다. 하지만 레알의 러브콜을 받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축구 선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레알로 둥지를 옮긴다 해도 매 경기 선발 출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토트넘에서의 탄탄한 입지를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경쟁과 도전을 시작해야 하는 것은 부담 요소다. 최악의 경우 벤치 자원으로 전락해 임대 생활을 전전하고, 결국 전성기를 허비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토트넘은 파격적 주급 인상과 계약 기간 연장으로 손흥민 잡기에 나섰다. 손흥민 역시 토트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지만 ‘원 클럽 맨’을 꿈꾸는 로맨티스트는 아니다. 의외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재정난에 빠진 토트넘이 높은 이적료를 받기 위해 손흥민의 매각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몸값이 하늘을 찌를 때 수익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다. 프로의 무대는 냉정하고, 모든 시장은 자본의 원리대로 흐른다. 이미 ‘빛나는 별’이 된 그가 런던의 하늘에서 유일한 존재가 될지, 마드리드의 아름다운 은하수를 수놓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축구공은 둥글다.

김동환 풋볼리스트 기자. 축구와 축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데이비드 보위: 그의 영향>

넷플릭스보다 음악책
필자는 책을 포함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음악을 분석하는 것이 취미다. 팬데믹으로 혼자 시간을 보내며 넷플릭스에 시간을 쏟아붓는 요즘, 이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음악 다큐멘터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지면은 책을 소개하는 자리인데?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 우리는 책의 고전적 주제를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에 출간되는 책은 1쇄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신간을 팔기는 힘든데 중고책 장사로 알라딘이 돈을 야금야금 벌고 있다고 작가들이 하소연하겠는가. 사람들은 점점 스트리밍 서비스의 편리함, 저렴함, 쉬운 접근성, 키포인트 기반의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음악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넷플릭스와 치맥을 잠깐 포기하고 음악책에 관심을 가져보자. 넷플릭스는 양질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업데이트한다. 그러나 책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진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책으로는 어쩌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팔리지도 않는데 끊임없이 음악책이 출간되는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자리를 빌려 독자를 위해 지적인 즐거움과 음악의 화학반응을 유도하는 책 몇 권을 골라봤다. 일단 책의 난도를 상(上), 중(中), 하(下)로 나누고, 상대적으로 쉬운 하부터 소개하겠다. 모두 국내에 출간되었다.
난도 하의 책은 영국 소설가 닉 혼비가 쓴 <닉 혼비의 노래들>과 철학교수 사이먼 크리츨리가 쓴 <데이비드 보위: 그의 영향>이다. 두 책 모두 간결하고 쉬운 언어로 쓴 에세이로, 저자의 해박한 음악 지식과 경험, 풍부한 비유를 위트 있게 담았다. <데이비드 보위: 그의 영향>은 보위를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닉 혼비의 노래들>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곡을 소개하는 만큼 이 책을 읽는다면 데이트 상대에게 점수를 딸 가능성이 높다. 난도 중의 책은 클래식 음악 저널리스트 스티븐 존슨의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와 피아니스트 피터 패팅거의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는 쇼스타코비치 음악에 대한 저자의 정신과적 임상시험을 담고 있다. 저자는 어릴 적부터 겪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음악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을 심층적으로 관찰해 책에 반영했다. 망가진 정서를 치유하는 데 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깊이 있게 고찰한다. <빌 에반스: 재즈의 초상>은 재즈 피아노계의 별, 빌 에반스의 전기다. 빌 에반스의 생애를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명할 수 있는 책이다. 빌 에반스의 음악은 선율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쉽게 어필하며, 재즈에 입문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인내심을 요구하는 난도 상의 책이 남았다. 모두 예술 철학을 담고 있다.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주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영국을 대표하는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 해설집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다. 쇼펜하우어는 철학사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이해한 첫 번째 철학자다. 1권의 형이상학 챕터는 난해하지만 후반부에 기술한 미학에 관한 챕터는 음악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필수일 만큼 뛰어난 통찰력을 제공한다.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는 알베르 카뮈의 실존철학부터 현상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에 이르기까지 현대철학이 일군 성과를 라디오헤드의 음악에 대입해 투영함으로써 지적인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이다. 그들의 노래를 통해 철학 일반까지 이해하는 일석이조의 장점이 있다.

권범준 월간 <핫뮤직> 기자 출신으로 라디오헤드 가이드북 <라디오헤드 OK Computer>와 1990년대 영국 대중음악 개론서 <브릿팝>을 썼다.

 

에디터 <노블레스 맨>피쳐팀
일러스트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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