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렉터 플로리안 페터스-메서의 동시대 미술을 보는 눈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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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5-08

콜렉터 플로리안 페터스-메서의 동시대 미술을 보는 눈

시대를 막론한 예술의 위대함을 사랑하는 콜렉터 플로리안 페터스 - 메서

피르젠에서 부동산 사업과 컬렉션을 운영 중인 플로리안 페터스-메서. 뒤로는 토마스 히르슈호른의 ‘The Price of Suspicion’ (2009)이 보인다.





회화부터 콜라주, 영상, 퍼포먼스, 조각까지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동시대 예술의 창작과 한계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작가 데이비드 호미널(David Hominal)의 'I don’t Give a Fuck’(2017).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습니다. 컬렉터로서, 사업가로서 달라진 환경에 적응해야 했을 것 같습니다. 독일에선 지난여름 집합 제한 명령이 다소 완화됐습니다. 덕분에 갤러리와 미술관이 다시 문을 열었죠. 일반 관람객이 모이는 대규모 리셉션은 금지됐지만 소규모로 갤러리스트, 작가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많아졌습니다. 컬렉터로서 나름 긍정적 측면도 있었던 거죠. 다만 여행을 할 수 없어 활동 반경이 독일에 한정된 건 아쉽습니다. 사업가로서는 고향 피르젠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몸담은 부동산 사업은 코로나19의 영향을 심하게 받진 않았어요. 어려운 시기를 비교적 잘 보내고 있습니다.

최근 많은 미술 행사가 온라인 행사로 전환하거나 온·오프라인을 겸하는 하이브리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컬렉터로서 이런 경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몇 달간 꽤 많은 온라인 뷰잉룸(OVR)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꺼려지더군요. 주어진 정보가 지나치게 많고, 무엇보다 작품이 주는 ‘임팩트’를 제대로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간단한 리서치 차원에서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회화와 비디오 같은 2차원 작품을 살피는 데에는 꽤 효과적이에요. 하지만 설치 같은 3차원 작품의 경우 디지털 공간에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죠. 작품은 결국 실제로 봐야 합니다.

컬렉션이 위치한 피르젠이란 도시가 궁금합니다. 처음 와보는 곳이지만 뒤셀도르프, 쾰른, 뮌스터 등 과거 서독의 주요 예술 도시가 주변에 있어서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어쩌면 독일 사람도 모르는 도시일 수 있어요.(웃음) 그만큼 작은 도시죠. 피르젠은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댄 전형적인 서부 독일 도시입니다. 중부 독일의 주요 산업 지역인 루르 지방(Ruhrgebiet)에 속하는데, 과거 농장 지대로서 이 지방의 식량 공급처 역할을 했습니다. 동시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여러 도시와 네덜란드, 벨기에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죠. 주변 도시에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 오페라극장 등이 많아 문화적으로도 풍족한 편입니다.

이 도시에서 가족 사업을 이어왔다고 들었습니다. 대를 이은 사업처럼 미술품 수집도 선대부터 내려온 전통인가요? 저희 가문은 약 170년에 걸쳐 가족 사업을 운영 중입니다. 여러 사업을 거쳤는데 현재는 부동산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유서 깊은 컬렉션 가문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부친께서 오래된 유물을 수집하셨어요. 그리스 로마와 이집트의 고대 유리공예품을 좋아하셨습니다. 하지만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건 가족 중 제가 유일합니다.





컬렉션 전시 공간. 왼쪽부터 제이크 매들(Jake Madel)의 ‘Untitled’(2019), 게레온 크레버(Gereon Krebber)의 ‘Untitled’(2015), 뱌르네 멜고르의 ‘Untitled’(2006).





부친이 수집한 고대 조각 유물은 컬렉터의 프라이빗 룸에 전시되어 있다.





그리트 하흐마이스터(Grit Hachmeister)의 ‘Boxer’(2007), ‘Starkes Mädchen’(2005), ‘Untitled’(2005)가 벽에 걸려 있다. 그 앞에는 울리케 슐체(Ulrike Schulze)의 ‘The Midget’(2016)이 보인다.





토마스 히르슈호른의 작품. 오른쪽 위아래에 각각 ‘Untitled’(1999)와 ‘Untitled’(1999), 왼쪽에 ‘Untitled’(2004)가 걸려 있다.





프라이빗 룸에 마련한 개인 서가. 다양한 장르의 책은 물론, 오래된 조각이 컬렉터의 깊은 사유를 보여준다.

유물을 모으는 것과 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건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미술 컬렉션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미술품을 수집하게 된 데에는 가족의 영향이 컸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 문화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으셨어요. 어릴 적부터 함께 미술관 전시를 보러 다니고 카셀 도쿠멘타, 아트 쾰른, 아트 바젤, 베니스 비엔날레 등 대규모 미술 행사를 풍부하게 경험한 것이 오늘날 컬렉션을 운영하는 데 밑바탕이 됐습니다.

현대미술 컬렉션을 운영하지만, 고전미술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베니스 회화를 좋아해요.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의 작품에 빠져 당대 작품을 몇 년간 공부하기도 했죠.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도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고요. 다만 이 시기의 작품을 컬렉션에 포함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경제적 제약도 있고, 무엇보다 미술 시장에서 ‘진짜 명작’을 구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거든요. 그에 비하면 현대미술 작품은 접근이 쉬운 편입니다. 물론 현대미술은 그만의 매력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사회적 이슈나 사안을 색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주죠. 이것이 제가 현대미술 작품을 수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대미술 중에서도 선호하는 작품 스타일이 따로 있나요? 저는 전통을 중시하는 집안에서 자랐고, 지금 제가 몸담은 사업 환경 역시 보수적인 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오히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유독 관심이 갑니다. 그중 몇몇은 너무 비판적이고 직접적이라 이해할 수 없고, 심지어 두렵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이런 작품에 끌리는 이유는 명확해요. 제 머릿속이 무뎌지지 않게 해주고 사고를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컬렉션 전반에서도 확고한 취향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 컬렉션을 구분하는 카테고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크게 사회・정치・심리・건축, 네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합니다. 최근 이 기준에서 동떨어진 작품을 정리하고 있고, 동시에 컬렉션의 카테고리 자체도 재정비 중입니다.

장르가 아닌 주제로 컬렉션 작품을 분류하는 게 새롭게 느껴집니다. 컬렉션을 대표하는 작가나 소장품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토마스 히르슈호른(Thomas Hirschhorn)과 에릭 판리스하우트(Erik van Lieshout)를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날카롭게 파고들어 현재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가죠. 토마스 히르슈호른의 경우 전쟁에 대한 견해를 드러낸 작품이 인상적입니다. 제국주의가 어떻게 전쟁을 유발했고, 전쟁이 대중을 어떤 방식으로 속여왔는지, 전쟁이란 과연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에릭 판리스하우트의 ‘Rotterdam-Rostock’는 작가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독일 로스토크까지 자전거로 횡단하며 만난 시골 우파 정치인과 노숙인 등 다양한 사람을 기록한 영상 설치 작품입니다. 네덜란드 출신 작가가 독일 사회를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는 점이 독특하고 흥미롭죠. 이 밖에 강렬한 색채로 심리적 문제를 그려내는 뱌르네 멜고르(Bjarne Melgaard), 일상의 모습을 섬세한 서사로 풀어가는 소피 칼(Sophie Calle), 미국 사회의 동성애 배척에 대항해 목소리를 내는 데이비드 보이나로비치(David Wojnarowicz) 등이 컬렉션을 대표합니다.

컬렉터로서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하는 편인가요? 특별히 정해진 루틴은 없습니다. 매년 베를린에서 열리는 ‘갤러리 위크엔드(Gallery Weekend Berlin)’와 ‘아트 위크(Berlin Art Week)’를 방문하고, 독일의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를 부지런히 둘러보죠. 함께 일하는 미국, 영국 그리고 스페인의 갤러리에서 보내는 이메일도 꼼꼼히 챙겨 보는 편입니다.

컬렉션 작품 수가 상당한데, 보관과 유지에 어려운 점은 없나요? 현재 300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피르젠과 베를린 두 곳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어요. 컬렉션 작품을 미술 기관 전시에 빌려주기도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업무는 대체로 혼자 처리하는 편입니다. 잠시 제 품을 떠난 작품이 돌아오면 잊고 있던 보물을 다시 찾은 기분이 들어요. 컬렉터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랄까요. 마냥 어려운 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제이크 매들의 회화 작품 ’Untitled’(2019)와 펠릭스 슈람(Felix Schramm)의 조각 작품 ‘Los 28’(2002).





정면에 페피 보트로프(Peppi Bottrop)의 페인팅 ‘Weißfäule’(2017), 오른쪽 벽면에 얀 알버스(Jan Albers)의 ‘curAcAo’(2017)가 보인다.





컬렉션 전시 공간을 벗어나 복도를 따라 걸으면 프라이빗 룸이 나타난다. 헤닝 슈트라스부르거 (Henning Strassburger)의 작품 ‘Daydreams for Loosers’ (2015)와 ‘Coke-glowing Venus-girl’ (2015)이 좌우 벽면에 걸려 있다.





소피 칼의 ‘La Amnesia(Les Autobiographies)’ (1992).

그 정도 규모의 컬렉션이 소도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피르젠 주민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요? 작가, 작품과 마찬가지로 관람객도 중요한 요소잖아요. 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입니다.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요.(웃음) 하지만 그들도 점차 적응하는 것 같더라고요. 피르젠에서 미술 컬렉터는 제가 유일한데, 그런 점에서 제 컬렉션이 이국적이고 섹시하다고 생각해요. 피르젠 사람들은 대체로 제가 수집하는 특이한 것을 좋아합니다.

독일에는 유난히 지역 기반 컬렉션이 많습니다. 컬렉션을 상업적 개념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보는 풍습이 내심 부럽습니다. 독일적인 문화이자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독일의 역사를 살필 필요가 있어요. 독일에는 바바리안(Bavarian), 작센(Sachsen), 노르트라인(Nordrhein) 등 고유의 영토와 전통을 지닌 지역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독일제국(Deutsches Reich)이 들어서면서 겨우 중앙집권화를 시도했죠. 하지만 오늘날까지 지역 중심 연방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독일 기업은 모두 그들이 기반을 둔 지역과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고, 지역의 문화 기관에 투자합니다. 그래서 지역마다 문화 환경이 다른 거고요. 컬렉션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뒤셀도르프, 쾰른 등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요 도시가 아트 페어, 요제프 보이스 탄생 100주년 전시 등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통일 직후인 1990년대에는 독일 각지의 갤러리와 작가들이 베를린으로 활동 무대를 옮기고 싶어 했습니다. 여기에는 베를린이 문화 수도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죠. 하지만 최근 베를린 아트 신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각 지역으로 흩어지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독일 특유의 ‘로컬 히어로십(local heroship)’이 다시금 빛을 발하는 거죠. 덕분에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컬렉터와 컬렉션도 다시 주목받는 상황입니다. 뒤셀도르프나 쾰른뿐 아니라 뮌헨, 라이프치히, 프랑크푸르트 등에도 강력한 아트 신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 간 이동을 통제하고, 사람 사이의 만남도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과 컬렉터의 역할에 관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예술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사회의 모든 그룹과 구성원 개개인이 융통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열린 사고를 자극하거든요. 컬렉터의 역할은, 사실 남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결정해야 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문화 예술을 사람들과 좀 더 공유하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컬렉션의 미래 모습이 궁금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컬렉션의 카테고리를 재정비 중입니다. 그리고 5년 혹은 10년 안에 소장품을 여러 미술관에 기부하는 게 목표입니다. 작품을 수집하는 즐거움이 크지만, 예술은 많은 사람에게 선보일 때 더 의미 있으니까요. 훗날 제 컬렉션이 좋은 컨디션으로 미술관에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에디터 황재웅(jewoong@noblesse.com)
이정훈(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최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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