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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8

파인다이닝은 변화 중

파인다이닝 문화도 적절한 변화가 필요한 때다. 어떤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해야 할까?

위쪽 포장 용기가 준비돼 있는 내추럴리스테의 키친.
아래쪽 단테에서 보틀에 담은 상품으로 판매하는 다양한 풍미의 네그로니 칵테일.

배달이 대세다
다섯 명 이상의 모임은 불가능하고,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일도 불편하고 불안한 현실이 되었다. 유명한 맛집이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외식하는 일상의 즐거움도 온전히 누리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많은 레스토랑에서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미 일부 호텔 레스토랑과 몇몇 유명 셰프는 3~4년 전부터 늘어난 1인 가구 등의 타깃층을 공략한 프리미엄 밀키트와 HMR로 유통 채널을 확대해왔다. 워커힐 호텔 앤 리조트 한식당 명월관의 갈비탕, 조선 호텔 앤 리조트가 개발한 유니짜장과 삼선짬뽕 등 중식 밀키트, 최현석·신동민·여경래 셰프가 함께 출시한 볶음밥과 햄버그스테이크 등의 HMR은 계속되는 코로나19의 확산세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고객은 고급 식당의 메뉴를 집에서도 편리하고 다채롭게 즐길 수 있고, 셰프나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수익을 창출하는 또 하나의 방편이 되는 셈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해부터 줄어든 업장 이용률에 대한 대안으로 포장과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는 파인다이닝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스시조와 홍연, 조선델리 등에서 도시락을 출시하고, 인기의 힘입어 배달 서비스까지 확대했다. 부티크 호텔인 레스케이프 호텔의 중식당 팔레드신도 홍콩 광둥식 요리로 구성한 단품 메뉴 26가지와 세트 메뉴 3가지 등을 드라이브스루 시스템을 이용해 더욱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했다. 업계 최초로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를 도입한 롯데 호텔 서울은 양갈비와 랍스터를 담은 ‘시그니처 박스’와 일식당 모모야마의 ‘벤또 박스’를 레스토랑 영업시간에 드라이브스루 형태로 제공하던 것에서 더 나아가 메뉴와 서비스 시간을 확장했다. 다양하게 구성한 플래터와 소믈리에가 추천하는 와인을 포함한 럭셔리한 야식 메뉴를 저녁 9시부터 익일 오전 5시까지 이용할 수 있고,, 유료 배달 서비스도 제공해 지난해 12월에는 전월 대비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왼쪽 내추럴리스테에서 선보이는 투고 메뉴.
오른쪽 내추럴리스테는 로맹 메데와 마빅 메디나 마토(Marvic Medina Matos) 셰프가 매일 신선한 제철 채소를 이용한 메뉴를 선보인다.

해외 미식 도시의 움직임
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추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스타 셰프도 수개월간 문을 닫아야 하는 절망적 상황을 겪은 후 하나둘 배달과 픽업 서비스를 도입하고 있다. 프렌치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도 이런 흐름에 일찌감치 편승했다. 지난해 4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록다운 조치를 취했을 때 로맹 메데(Romain Meder) 셰프와 함께 준비한 내추럴리스테(Naturaliste)를 런칭했다. 자연주의를 테마로 한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으로 파리 전역으로 배달이 가능하다. 지역 생산자가 직접 기른 제철 채소와 곡물, 생선 등 식자재 위주의 스타터 메뉴부터 디저트까지 10유로 내외의 적당한 가격대로 구성하고, 자연 분해 가능한 친환경 소재를 포장재로 사용한다. 또 프랑스의 젊은 스타 셰프 아크람 브날랄(Akrame Benallal)도 지난해에 런칭한 딜리버리 브랜드 아크람 홈(Akrame Home)을 통해 약 15가지 구어메이 메뉴를 제공한다. 배달은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를 이용하고, 역시 자연 분해 가능한 포장재를 사용한다. 주류를 취급하는 바 중에도 이러한 시도를 하는 곳이 있다. 2019년 런던의 주류 전문 매체 <더 드링크 비즈니스>가 선정한 ‘월드 50 베스트 어워드’에서 1위를 차지한 뉴욕 웨스트빌리지의 단테(Dante)는 미국 내 첫 록다운 시기인 지난해 3월 팬데믹 대응책으로 특별한 투고(to-go) 칵테일을 선보였다. 단순한 주류 상품이 아니라 마실 때의 즐거운 경험까지 가미한 것이다. 아티스트와 협업해 레이블을 만들거나 패키지에 꽃을 포함시키고, 칵테일을 홀짝이며 즐길 수 있도록 스포티파이(Spotify,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등 차별화를 꾀했다.





위쪽 레스케이프 호텔 중식당 팔레드신의 투고 메뉴.
아래쪽 롯데 호텔 서울은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이용 가능한 심야 전용 홈 다이닝 메뉴 ‘더 나잇 플렉스’를 올 연말까지 선보인다.

파인다이닝 문화의 미래
높은 퀄리티의 식자재, 맛과 위생을 모두 충족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메뉴를 집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된 건 분명 다행스럽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운영하거나 규모가 큰 레스토랑이 아니고서는 메뉴를 상품화하거나 포장재 및 배달 수수료 등의 비용적 측면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고 한다. 고객의 입장에서도 외식이 주는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파인다이닝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가 퇴색 또는 퇴보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11월 비대면 미식 축제의 일환으로 서울시에서 주최한 제1회 서울미식주간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서울 레스토랑@홈’을 통해서도 행사 기간인 5일간 고급 레스토랑 셰프의 메뉴를 딜리버리와 드라이브스루 형태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셰프들은 아직 단기적 시도일 뿐, 배달이나 밀키트만으로는 미식에 대한 욕구를 온전히 충족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 행사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선보인 한식공간의 조희숙 셰프도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파인다이닝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인다이닝 측면에선 테이크아웃이나 배달은 모순일 수 있어요. 진정한 파인다이닝은 맛뿐 아니라 요리와 그릇의 온도와 어울림, 분위기, 서비스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까지 모두 최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죠.”
일찌감치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밀키트를 출시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은 슈밍화미코의 신동민 셰프도 보다 질 좋은 메뉴의 상품화에 대해 끊임없는 연구를 이어왔지만, “HMR은 셰프가 만든 요리의 70% 정도만 맛과 품질을 구현해도 성공”이라고 말한다. “상품화된 메뉴나 배달 서비스를 소비하는 고객은 가성비를 따질 수밖에 없어요. 파인다이닝이 추구하는 지향점과는 다르죠. 온도가 중요치 않은 음식과 디저트 등의 테이크아웃 메뉴나 HMR 제품을 통해 품질과 가성비를 두루 만족시키는 ‘미식 상품’을 선보이는 한편, 오감으로 느끼는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슈밍화미코는 앞으로 단골 고객 중심의 소규모 카운터 테이블로 운영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비대면 일상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는 지금, 파인다이닝도 진지한 고민과 다양한 시도를 통해 적절한 균형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레스토랑에서는 시간별 인원수 제한을 도입해 정착시킨다거나, 배달 및 포장 서비스에 최적화한 메뉴와 차별화된 비대면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연구·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과연 1년 후엔 서울의 파인다이닝 문화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위쪽 워커힐 호텔 앤 리조트에서 선보이는 대표 PB 상품, 소시지 세트.
아래 왼쪽 웨스틴 조선 서울의 일식 레스토랑 스시조에서 선보이는 테이크아웃용 도시락. 스시, 사시미, 튀김 등 다양하게 선택 가능하다.
아래 오른쪽 웨스틴 조선 서울 중식당 홍연의 불도장 메뉴를 테이크아웃용으로 준비했다.

 

 

에디터 이정주(jjlee@noblesse.com)
사진 제공 롯데 호텔 서울, 조선 호텔 앤 리조트, 워커힐 호텔 앤 리조트, 단테, 내추럴리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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