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화백의 진정한 자아 찾기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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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1-21

김근태 화백의 진정한 자아 찾기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자기 자신의 내면을 계속해서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근태 화백.

그동안 단색화를 통해 한국의 미학을 많이 논한 것 같아요. 선생님도 ‘단색화가’ 중 한 명으로 종종 소개되죠. 이런 사조의 구축과 명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동안 세간에서 저를 단색화 작가라고 지칭해왔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보이는 화면이 그들과 궤를 함께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단어를 사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를 수식하는 단어로는 더더욱. 미술사에서 이러한 사조를 만들어냄으로써 수직적 계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렇게 하나의 비슷한 존재로 묶이는 걸 좋아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분명 누가 더 잘하는지, 좋은지 그 속에서 따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저는 수평적 사고를 지향합니다. 남과 여, 노인과 젊은이가 모두 동등한 평행선 위에 있다고 보는 거죠.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제 작품을 ‘김근태의 작품’으로 봐주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수평적으로 바라보신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저와 에디터님을 예로 들어보죠. 사실 우리 사이에는 시간의 간극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그 간극을 일일이 세어보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다 걷어버리면 어떨까요? 저도 언제든 당신이 될 수 있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역지사지와 같아요. 그렇다면 제가 에디터님께 함부로 할 수 없게 되는 거죠. 이런 생각을 모두에게 적용하는 것이 수평적 바라보기의 첫걸음입니다. 이를 발전시키면, 이미지를 포착해 그리는 화가로서 저는 ‘본다’는 행위와 그 의미 역시 수평적으로 찾아보고자 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본다’라는 의미와 선생님의 철학이 작품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궁금합니다. 이미지를 본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는 죽은 다음에도 볼까요? ‘육신’의 눈은 있지만, 죽지 않았음에도 보지 못하는 예도 있고, 반대로 보지 않아도 심적으로 보는 상(象)이 있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진짜로 보게 하는 ‘눈’이란 무엇일까요? 이런 질문이 계속 제게 되돌아와요. 사실 그건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이 지금까지 제가 탐구하는 주제로 이어져요. 우리가 정말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보고 판단하는 건 또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눈에 비치는 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와 기억을 조합해 이를 바탕으로 인지하고, 보고 또 판단하죠. 그렇기에 우린 지극히 수동적이며 수용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술의 범주에서는 우리가 작품을 마주했을 때 보는 화면에서 직관적으로 무엇인가를 느끼겠지만 결국 이를 보게 만드는 힘, 볼 수 있는 창구는 무엇인지 항상 고민해야 하는 겁니다.

외부 요인 없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하지만 과연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혹은 선생님이 하시는 최선은 무엇일까요? 외부 요인을 무시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하지만 사회적 결속과 규칙 속에서도 진정으로 내가 어떤 걸 ‘본다’, ‘판단한다’고 느낄 수 있도록 서로 자극을 줄 수는 있겠죠. ‘자성(自省)’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어요. 우리 사이에 시간과 공간 또는 여러 환경적 요인의 겹을 벗기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모르기에 답을 찾기 위해 사유하려 노력하죠. 그러므로 자성이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질문하기’가 포함되어 있어요. 제 작업은 질문의 연속이라고 보면 됩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Discussion_2018-144, Mixed Media, 62.5×34.3cm, 2018





Discussion_2020-50, Oil on Canvas, 181×227cm, 2020




Discussion_2020-44, Oil on Canvas, 91×72cm, 2020

화가로서 선생님의 노력은 작품에 어떻게 투영되고, 보는 이와는 또 어떻게 소통하는 걸까요? 제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래도 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일 아닐까요? 그동안 제가 선보인 작품과 전시 제목이랑 이어지는데요. ‘담론(discussion)’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함께 이러한 것에 대해 논의해보자는 겁니다. 많은 사람이 제 작품에서 무엇을 읽기란 쉽지 않을 거예요. 말마따나 화면에 담기는 건 제가 보고 사유한 이미지인데, 그게 사람들이 알아차릴 수 있는 형상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도 저는 획 하나에 제 숨과 붓의 결을 담아요. 그런데 과연 그것만 전부일까요? 그 획을 긋는 시간 동안 스쳐 지나가는,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고민했던 존재론적 의문에 대한 제 사유가 그 물감과 붓질에 묻어날 수밖에요.(웃음) 얘기가 좀 어렵죠? 저는 지난 30~40년간 나름대로 고민해온 문제인데, 한 번 들어서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들려준 이야기가 제 작업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맞아요. 조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지금까지 보는 행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컨대 ‘나는 원래 없는 것’이라는 거죠. 채워야 할 것도 없고, 비워야 할 것도 없는 존재. 수평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결국 내가 당신이 될 수 있고 당신이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존재란 무엇인가, 진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게 됐어요.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언어와 의미, 진리에 대한 것이 계속 바뀌었음을 강조했어요. 저는 그 말에 동의해요. 그런데 자연은 어떨까요? 그들은 확고하잖아요. 그래서 구름, 하늘, 바위, 산, 파도 등 자연적 요소에 대한 작품을 최근 많이 하고 있는데 자연의 진리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이를 통해 던져보고 있습니다.

이번 노블레스 컬렉션 제목이 ‘선리선경(禪理禪境)’입니다. 어떤 작품으로 채우실지, 또 어떤 담론을 끌어내실지 궁금합니다. 전시 제목인 선리선경은 ‘신선의 이치, 경치를 본다’라는 의미예요. 이번에 자연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바로 직전 데이트갤러리의 <숨, 결>전에서 석분을 이용한 작품을 통해 ‘숨’에 대한 이야기와 살아 있는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본연의 모습을 담은 존재로서 자연을 화폭에 담고자 했습니다. 내 사유가 침해당하지 않는 상태가 바로 자연 상태가 아닐까요.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진정한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한층 발전시켜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할지도, 그래서 자연을 통해 존재의 본질을 느꼈으면 합니다.






Discussion_2020-47, Oil on Canvas, 181×227cm, 2020





Discussion_1997-1998, Oil on Canvas, 36×36cm, 1997-1998

 





김근태 1953년생으로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회화학과를 졸업한 뒤 추상화에 천착해왔다.
1988년 청년미술관 개인전을 시작으로 사비나갤러리, 성곡미술관, 파리의 메종 드 메탈로, 대우갤러리,
조선일보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초이앤라거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이현정(인물), 송현주(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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