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바텐더, 이지은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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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29

따뜻한 바텐더, 이지은

니트(Neat) 바 오너 바텐더 이지은과 나눈 이야기.

언제나 같은 자리를 지키는 바텐더 이지은.

2001년 울산광역시. 한 소녀의 손에 <칵테일>이라는 책이 들려 있다. 소녀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휘황찬란한 칵테일이 선명히 새겨 있다. 슬라이드 필름처럼 깜빡이는 눈동자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칵테일은 미지의 세계처럼 신비롭다. 열다섯 살 소녀는 아버지에게 바텐더가 되고 싶다 했고, 아버지는 그길로 부산의 한 칵테일 아카데미에 그녀를 데려간다(조주 기능사는 맛을 보지 않고도 치를 수 있기에 미성년자도 취득 가능하다). 울산에서 부산에 있는 학원까지는 왕복 6시간 남짓. 생을 다한 듯 낡은 통일호 기차는 적어도 한 소녀에게만은 꿈을 실어 나르는 환상 열차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소녀는 부산 지역 출전자를 모두 제치고 대회에서 연이어 우수한 성적을 거뒀고, 학교에는 조주를 위한 기묘한 실습실이 들어섰다.
2020년 마포의 먹자골목. 여백 없이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로 ‘Neat’라는 가느다란 글씨가 눈에 띈다. 계단을 올라 층고 높은 다락방 같은 바에 들어서면, 시공간은 변했지만 칵테일 앞에 반짝이는 눈빛만은 여전한 바텐더와 만날 수 있다. 니트 바 오너, 바텐더 이지은이다.
“바텐더로서 바를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자주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선입견과 웃으며 맞서야 하고, 생활 패턴이 바뀌어 오랜 친구와의 편한 약속 한번 잡기 어려워지고, 술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을 끝없이 쌓아가며 매일같이 새로운 고객과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이끌어갈 마음의 체력을 길러야 하는 직업입니다.” 이지은을 만나기 전 이미 그와 대화를 나눈 듯한 기분이 든 건, 그가 어딘가에 올린 구인 광고를 읽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부치는 편지 같은 그 구인 광고를 나는 마음으로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마음의 체력’이란 말이 오랫동안 메아리로 남았다.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술’이란 뜻의 바 이름 니트(Neat)는 본질에 가장 가까운 술 이름이기도 하다. 마포 먹자골목이라는 위치 특성을 살려 캐주얼한 바를 만들려던 이지은의 계획은 이 공간의 천장을 뜯는 순간 전복됐다. 톤 다운된 목조 구조가 깔끔한 높은 층고를 보고 그는 가장 순수한 술, 니트를 떠올렸다. “이런 공간에 들어서면 어떤 칵테일을 기대하게 될까?” 일순 손님으로 빙의한 그는 공간으로부터 하나씩 갈래를 뻗어나갔다. 높은 층고의 여백을 극대화하는 조명, 따뜻한 온도의 블루스나 재즈 사운드는 그로부터 더해진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니트의 후기에는 ‘편안한 바’라는 리뷰가 자주 눈에 띈다. 바가 편안하다는 말처럼 추상적인 표현은 없다. 동시성의 원리가 그 어느 곳보다 강하게 작용하는 바(bar)라는 공간에서는 공간 구조, 바텐더, 칵테일, 조명, 음악, 하물며 손님까지도 어느 하나 도드라짐 없이 모두 합이 맞아야 비로소 ‘편안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니까.
“제 시그너처 칵테일은 마시기 편한 느낌의 칵테일이 대부분이에요. 공간 분위기에 맞게 칵테일도 부드럽고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마티니도 드라이하고 날카롭기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만들고 있어요. 이것은 최근에 완성한 마티니 트위스트 칵테일이에요.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은 스타일의 칵테일이었어요. 글렌피딕 익스페리멘탈 시리즈 중 IPA와 헨드릭스 진을 기주로 하고 릴레 와인을 조금 더했어요. 이름은 글렌티니.(웃음)”





왼쪽 글렌피딕 익스페리멘탈 시리즈에서 영감받아 만든 칵테일 글렌티니. 오른쪽 그란츠를 베이스로 한 스카치 커피 칵테일. 묵직하고 그윽하다.

이틀 전 완성했다는 글렌티니가 데뷔 무대에 섰다. 연노랑 액체에 살짝 비튼 레몬 껍질을 가니시한 단아한 자태의 간결한 칵테일. “칵테일을 만들 때 가장 중요시하는 건 기주예요. 그 술다움을 이끌어내는 거죠. 기주를 맛본 첫인상으로부터 영감을 뻗어나가려고 해요. 자칫 본연의 맛을 해칠 수 있으니까요. 익스페리멘탈 시리즈의 IPA를 처음 맛보았을 때 시트러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이었어요. 니트로 마시기보다는 온더록스나 칵테일로 편하게 마시면 좋겠다 싶었죠.” 자칫 섬세한 향을 덮거나 왜곡할까 고민한 흔적은 이 한 잔에 조용히 잠자고 있었다. 향을 마음껏 느끼고 한 모금 머금은 뒤 준비한 질문 몇 가지는 술과 함께 삼켰다. 은은한 맛에 속아 더 취기가 오르기 전에 시그너처 중 하나인 스카치 커피 칵테일을 주문했다. 그란츠를 기주로 에스프레소를 더한 칵테일 위에 올라간 카카오 닙스가 제 몸을 활활 태우며 그윽한 향을 뿜어냈다. 이 쓰디쓴 칵테일이 다른 의미로 참 달게 느껴졌다.
니트에 왔다면 유명한 술, 잘 팔리는 술을 묻기 전에 자신의 취향을 털어놓을 것을 권한다. 그게 입맛이든, 오늘의 날씨든, 순간의 기분이든 상관없다. 사려 깊은 바텐더가 깊은 고민을 담아 한 잔의 술을 권할 테니까.
“니트를 열기 전 스코틀랜드 증류소 투어를 하고 4주 동안 유러피안 바텐딩 스쿨 과정을 수료하면서느낀 게 있어요. 모든 술을 다 갖춘 바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보다는 저만의 시선으로 셀렉션해야겠다 싶었어요. 21년산 이상의 몰트는 취급하지 않는 이유예요. 몰트를 처음 접하는 분에겐 글렌피딕을 먼저 마시길 권하는 편이에요. 가장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싱글 몰트고, 싱글 몰트라는 카테고리를 연 것도 글렌피딕이니까요. 12년, 15년, 18년이 같은 술을 단지 더 오래 숙성한 게 아니라 각기 다른 스타일과 방식으로 만든 것도 흥미롭죠.”
칵테일을 알고 살아온 시간이 모르고 살던 시간을 막 추월한 지금, 이제는 좀처럼 칵테일에서 감동을 느낄 일이 없다고 말하는 이지은이 여전히 공부를 멈추지 않는 건, 좋은 바 그리고 좋은 바텐더가 되고 싶다는 바람만큼은 퇴색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피티한 향의 싱글 몰트를 넣어 직접 만들었다는 젤라토를 오물거리는 대화 말미, 한 중년 남성이 등장했다. 달려나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 바텐더의 모습에서 상대가 19년 전 딸 손을 잡고 칵테일 아카데미로 향하던 소녀의 아버지란 걸 감지했다.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방문에 더없이 순수한 미소를 띄는 바텐더의 얼굴을 보면서, 니트 바의 단골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Neat’s Promotion
10월 한 달 동안 니트에서 글렌피딕 익스페리멘탈 시리즈를 주문하면 프로모션 가격에 세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다. 기나긴 스코틀랜드 증류소 투어와 오랫동안 바에서 경험을 쌓은 이지은 바텐더가 풀어나가는 달콤한 위스키 이야기에 <노블레스> 독자를 초대한다.
ADD 서울시 마포구 도화길 18, 2층
INQUIRY 02-706-4124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이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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