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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26

영상의 품격

국내 미술관이 평가하는 영상 예술의 지금.

임흥순, 위로공단, HD비디오(싱글채널 95분), 잉크젯 프린트(사진 41x100cm), 2014

회화와 조각으로 대표되는 전통 매체의 시대를 지나 사진, 영상, 기계, 증강현실,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점점 기술이 발전하며 그 창의성을 담아내는 그릇의 종류 역시 다양해졌다. 자연스럽게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영상 작품. 이들은 미술계에서 또 하나의 주요 장르로 꼽힐 정도로 지대한 영향력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전시에서 마주하는 영상 작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동안 회화나 조각처럼 물성을 지닌 작품에 대해 미술 수업이나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해왔다면, 영상은 비교적 ‘젊은’ 장르로 소장, 복원, 작품의 진위성 등 이와 관련해 아직 논의 중인 사안이 많다.
기술과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속성을 지닌 영상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품’으로 본격 유입되기 시작한 건 불과 2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21세기 들어서야 비로소 미술관에서 에디션이 있는 작품을 ‘미술관 소장품의 일환’으로 소장하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미술관에서 작품은 소장하지만, 배급권은 갖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미술관에서 소장하지 않은 작품을 전시에 소개하고 싶은 경우 배급권을 가진 플랫폼이나 작가 소속 갤러리, 혹은 작가 스튜디오와 따로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백남준을 예로 들어보면, 미국의 비영리단체 EAI(Electronic Arts Intermix)가 물성이 없는 영상 매체, 즉 단채널 . 멀티채널 무빙 이미지의 전체 배급권을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백남준아트센터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기관에서 백남준 작가의 영상 작품을 출품하고 싶은 경우에는 꼭 EAI에 문의해야 한다. 헷갈릴 수 있지만, 백남준 작가의 다른 오브제나 TV 등 물성이 포함된 비디오 조각이나 인스톨레이션 같은 작품은 EAI에 따로 문의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작품은 소장처와 협의하면 그만이다.



1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1984,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2 백남준, 글로벌 그루브, 1973,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3 백남준, 모음곡 212, 1975(1977),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4 백남준, 비디오 코뮨, 1970, 백남준아트센터 비디오 아카이브 소장

미술관으로 들어오는 영상 작품은 왜 이렇게 독특한 공생 구조를 갖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로 대중성이 곧 상업적 가치를 드러내는 영화 같은 영상 장르와는 다르게 예술로서 영상은 ‘현존성’과 ‘유일성’을 인정받아야 비로소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원래 디지털 매체는 다원적이고 복제가 무한정 가능하다. 반면 발터 베냐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예술은 원본성, 현존성이 주는 오라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상 작품은 이런 맥락을 벗어난 장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술관의 학예사와 아키비스트는 베냐민의 주장을 가장 근접하게 해석하며 이 매체를 ‘예술 작품’으로 미술관에 소장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소장하는 영상 작품에는 에디션을 매겨 ‘특별성(exclusivity)’를 부여하고, 전시 형태를 제한하는 등 제한적 상황을 연출해 선보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작가 역시 영상이 ‘작품’이 되는 과정에서 여러 속성이 충돌하는 걸 인지하고 몇 채널 비디오로 구사할 것인지, 또 모니터 크기와 사양, 브랜드, 음향 시스템 전반 설치 기준을 규정한 ‘테크니컬 라이더’를 통해 제어함으로써 유일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작고한 작가가 적다는 점도 한몫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작권’의 개념이 강조되면서 작가 사후 70년 동안 보호되는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에, 이러한 배급권 혹은 저작권은 작가나 재단 또는 스튜디오에 종속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제 작품이 미술관에 소장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기관마다 조금씩 매뉴얼이 다르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작품의 에디션을 외장 하드 형식으로 구입하고, 거기에 작가의 사인을 받아 진본성을 증명한다. 그리고 수장고 한쪽에 보관하는데, 전시에는 따로 ‘전시본’ 혹은 ‘복사본’의 형태로 만들어 출품한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백남준의 영상 작품들과 달리, 국립현대미술관은 사전에 저작권이용허락서를 통해 작가로부터 작품 사용 전반에 대한 동의를 받는다. 전시에 출품할 때, 도록에 실을 때, 혹은 다른 기관에 대여할 때 모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자체적으로 진행이 가능하다.
소장 작품이 아닌 전시를 위해 작품을 대여하는 경우엔 정식으로 배급권을 가진 사람(혹은 재단, 스튜디오)과 미술관 사이 신뢰가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간혹 전시가 끝나면 파일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작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전시 종료 후 삭제하거나 폐기해달라는 작가의 요구대로 미술관 관계자가 직접 처리하기 때문이다.



이이남, 박연폭포(디테일),
LED TV, 7분 55초, 대구미술관 소장

한편 전통적 작품을 ‘소장’할 때는 항온 . 항습이 유지되고, 작품의 물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는 ‘장소’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방형 수장고로 설계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듯이 회화는 회화대로, 조각은 조각대로 매체에 따라 작품을 품기 위해 미술관은 특별한 공간을 마련해왔는데, 영상 작품은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백남준 작가의 경우 그가 지나온 시대를 대변하듯 레이저디스크, VHS, DVD까지 다양한 기록 매체에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이후 2010년대에 급격한 기술 발달로 이러한 영상 기록 매체는 0과 1, 즉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디지털 파일로 거의 대체되었다. 원론적으로 그의 작품을 전시에서 선보이기 위해선 거대한 부피의 레이저디스크 플레이어, VHS 플레이어, DVD 플레이어까지 모두 갖춰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아직은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아 중고로라도 플레이어를 구할 수 있지만, 이후에는 어찌 될지 모르는 법. 백남준아트센터의 박상애 아키비스트는 이러한 영상 작품에 관한 연구와 그 필요성, 보존 . 복원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 전부터 아트센터는 이미 이를 꾸준히 디지털 매체로 변환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아트센터에선 백남준이 남긴 2285개의 비디오 아카이브를 원본 형태로 보존하고 있으며, 이 원본의 디지털 신호를 옮겨 담은 보존용 데이터인 디지털 베타 테이프 각각 두 벌, 그리고 전시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디지털 파일 총 세 가지 포맷으로 작품들을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관리하고 있다.
지금도 작품의 형태는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작품의 소장, 기술(記述), 보존 및 복원에 관한 매뉴얼을 두고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한 백남준 작가의 작품 ‘다다익선’이 이러한 매체의 보존 . 복원 연구에 불을 지폈다고 할 수 있다. 영상 작품에 현대미술의 한 매체라는 지위를 부여할 때, 아직은 함께 확립해나가야 할 여러 사안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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