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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2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학과 저널리즘, 엔지니어링, 리서치, 물리학, 테크놀로지 등 언뜻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분야가 ‘예술’이란 톱니바퀴에 맞물려 돌아간다.

1 2019년 9월 12일부터 2020년 2월 24일까지 프라다 재단에서 열린 <Kate Crawford | Trevor Paglen: Training Humans>전 전경.

주로 회화와 조각으로 양분되던 예술 장르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과 함께 그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로 예술은 다시 한번 진화의 갈림길 앞에 섰다. 예술과 기술이 접점을 찾아가고, 순수한 ‘미적 생산물’이 아닌 작품이나 “이게 정말 예술이야?”라고 반문할 만한 작품까지 모두 예술의 범주에 속한다. 순수하게 ‘예술’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예술가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단상을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사람들 역시 예술가임을 부정할 수 없다. 후자와 같이 과학, 기술, 사회, 정치, 경제에 정통한 이들이 예술로 눈을 돌리면 작품이 지닌 힘은 배가된다. 빈틈없는 리서치와 연구를 통해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시각화하기 때문. 이렇듯 다양한 관심사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향해 냉철한 질문을 던지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 가장 먼저 소개할 작가는 트레버 패글렌이다. 2018년 ‘백남준아트센터예술상’을 수상한 그는 소문난 지리학 박사다. 기술과 저널리즘,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깊이 파고들고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며 협업한다. 자신의 작품을 ‘전통적 풍경화(landscape)’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그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배우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나의 풍경(장면)을 콕 집어 그만의 방법으로 묘사하고 이미지화한다. 엔지니어링, 사회,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아 영상, 사진, 설치미술 등으로 발현되는 그의 작업에서 하나의 맥락을 찾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제 작업을 연결하는 건 다름 아닌 ‘조사(investigation)’입니다. 우리 주변의 세계를 우리가 만드는 이미지에 어떻게 귀속시킬 수 있을지 살피는 거죠.”




2 2006년 4월 6일 할리트 요즈가트 (Halit Yozgat) 살인 사건이 일어난 인터넷 카페를 포렌식 아키텍처는 물리적 가상 공간으로 재현해냈다.

패글렌이 생각하는 21세기 예술가의 역할은 단순하다. 작가 자신이 보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제대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단순한 일이면서 동시에 복잡한 일이에요. 물리적 시선으로 보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숙지한 후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이해하는 그 모든 프로세스를 지칭해요. 이제는 미디어 환경을 통해 기술이 삶의 일부가 된 만큼 그 부분도 간과할 수 없겠죠.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궁극적 역할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검토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눈에 띄는 행보를 보여주는 또 다른 작가 컬렉티브는 포렌식 아키텍처. 2018년 세계적 권위의 예술상인 터너상 후보로 이름을 올리며 ‘시각예술 작가’로 그 위용을 뽐낸 포렌식 아키텍처는 2010년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의 에얄 와이즈먼 박사가 만들었다. 건축가, 예술가, 영화 제작자, 저널리스트, 소프트웨어 기술자, 법률가 등 다양한 필드의 전문가가 모인, 말 그대로 집단 지성을 표방하는 컬렉티브다.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차용한 단어 포렌식(법의학)과 아키텍처(건축)는 이 그룹의 특성과 규율을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먼저 ‘아키텍처’의 경우 법의학적 관심을 빌딩과 디테일, 도시, 풍경 등에 맞추고 조사 ‘방법’을 얘기하는 단어로 사용했다면, ‘포렌식’은 데이터와 미디어를 바탕으로 한 조사 ‘행위(실행)’에 초점을 맞춘 단어다. 말 그대로 의도와 이를 실행하는 방법 및 행위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괴리감을 상호 보완하고 이들의 사회적 역할을 견고히 하는 데 안성맞춤인 이름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분쟁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다. 대부분 우리 주변, 도시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희생자는 다름 아닌 ‘우리’다. 포렌식 아키텍처는 이러한 분쟁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인권유린 현장을 직접 고발한다. 이들 역시 패글렌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텍스트, 3D 모델링, 필름 애니메이션 등으로 시각화한다. 주제 자체가 워낙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안이다 보니 인권 단체나 액티비스트, 미디어 매체와 긴밀히 소통하고 협업한다. 최종적으로 선보이는 결과물은 법정 증거자료로 채택되어 분쟁에 휘말린 피해자를 돕는 데 활용하기도 할 정도로 탄탄한 기반 위에 쌓인다.




3 New Management, Installation View of <View Portikus>, Frankfurt am Main, 2014

데이터가 이를 가진 이에게 경제적 부와 권력을 선사하는 시대다. 삼성에 관한 작품 ‘뉴 매니지먼트’로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사이먼 데니는 이러한 데이터와 기술에서 받은 영감을 대규모 설치 작품이나 영상으로 풀어낸다. 최근 10여 년 동안 리서치 주제는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기술’과 우리가 살아온 ‘현실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최근 그를 대표하는 작업의 주제는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그가 처음 가상 화폐와 알고리즘에 빠진 건 2015년 서펜타인 갤러리의 개인전을 준비하면서다. 머지않아 ‘돈’에 관한 일에선 은행원이 필요 없고 오직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만 남을 거라는 세간의 주장에 그는 ‘정말 은행원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더 믿을 만한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블록체인이 이룬 ‘새로운 형태의 삶’보다는, 완전히 다른 삶의 가치를 찾게 해줄 시스템의 ‘혁명성’과 ‘잠재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지난해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 <불온한 데이터>에서 영상 작품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를 선보인 그는 기업의 홍보 영상 형태를 차용해 블록체인 기술이 ‘데이터와 관련한 오류와 편견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대안’임을 강조했다. 이 작업을 통해 탈중앙화 사회를 그려보고, 이 사회에서 우리가 실제로 데이터를 공급받을 수 있는 루트와 더불어 그 데이터의 신뢰성은 어떻게 보장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자신이 생각하는 기술적 유토피아의 단상을 전했다. 예술과 기술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에 그 어원이 맞닿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그 유구한 역사를 통해 예술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이란 사실을 상기해야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삶의 한 부분을 깊이 파고들던 이들이 예술로 고개를 돌리거나, 반대로 예술가로서 정도를 걷던 작가가 이러한 이슈에 온 정신을 쏟는 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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