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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5

예술 재단의 선한 힘

세계적 작가들이 재단 운영을 고민하는 오늘날, 재단과 제작사 등의 법적 공방을 들여다보면 그 과정은 더욱 꼼꼼해야 할 것 같다.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Giacometti Figure(Femme de Venise VI)’(1956)를 소장 중인 로마 국립현대미술관.

2018년 5월 19일, 세계가 사랑한 팝아트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1928~2018)가 세상을 떠났다. 유족이 없는 작가의 예술적 유산을 보전하는 일은 오롯이 작가 재단인 ‘로버트 인디애나 재단’의 몫이 되었다. 고인은 생전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미술관으로 운영해줄 것을 주변 스태프에게 당부했고, 모두 합쳐 그 가치가 1000억 달러를 훌쩍 넘길 유작을 관리하는 것은 재단의 매우 중요한 임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2019년, 재단은 활동을 위한 모양새를 채 갖추기도 전에 법정 공방에 휘말리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분쟁의 당사자는 조수로서 작가의 생활 전반을 돌본 제이미 토머스(Jamie Thomas)와 작가의 작품 제작사인 모건 아트 재단(Morgan Art Foundation, MAF), 아트 딜러 마이클 매킨지(Michael McKenzie) 그리고 작가의 변호사이자 재단 대변인인 제임스 브래넌(James Brannan)이다.






스위스에서 발행한 알베르토 자코메티 기념 우표.

로버트 인디애나는 유언장을 통해 제이미 토머스를 재단 디렉터로 임명했다. 그러나 MAF 측은 토머스가 인디애나를 말년에 고립시키고 마이클 매킨지와 함께 작가의 이름으로 다수의 위작을 판매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대표적 예가 작가가 말년에 완성한 조각 작품 ‘Wine’(2018)이다. 한 출판사가 구입한 ‘Wine’은 인디애나의 시그너처이자 뉴욕의 상징인 ‘Love’(1966)에 비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조악하다는 평을 받은 작품. 물론 마이클 매킨지는 위작 혐의를 부인하며 MAF를 맞고소했다. 로버트 인디애나 재단을 대표해 제임스 브래넌도 MAF에 소송을 걸었는데, 그간 MAF 측이 작품 판매 대금과 로열티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편 제이미 토머스는 로버트 인디애나 재단에 재판 비용 23억 달러를 보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제임스 브래넌은 토머스가 인디애나의 돈과 작품을 빼돌렸다며 고소했다. 이처럼 세 사람과 하나의 회사 사이에 얽히고설킨 법정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작 대중이 기다리는 로버트 인디애나 미술관 설립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로버트 라우션버그 재단의 홈페이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로버트 인디애나 재단의 사례는 예술가가 세상을 떠난 뒤 그 재단이 맞닥뜨리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운영을 둘러싼 의견 충돌이나 이권 다툼이 불거지면서 재단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단에 주어진 임무는 작가의 예술적 성취를 널리 알리고, 그가 남긴 유·무형의 유산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작품 전시와 학술적 지원, 카탈로그 레조네 출판, 아카이브와 저작권 관리, 작품 감정과 복원 등 다양한 업무를 아울러야 한다. 보통 작가의 가족이 대표를 맡고 큐레이터나 미술사가를 디렉터로 고용하지만, 결과적으로 재단의 활동이 얼마나 활성화되느냐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결정된다.






뉴욕의 도널드 저드 재단. 이곳은 저드가 텍사스로 이주하기 전 시간을 보낸 곳이다.

특히 감정을 통한 위작 선별과 함께 진품 관리는 재단의 대표적 업무.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아내 아네트 암(Annette Arm)은 자코메티협회(현 자코메티 재단의 전신)를 설립한 뒤 시장에 범람하는 위작을 가려내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20세기 가장 악명 높은 위작 사기범 중 한 명인 존 드루(John Drewe)를 검거하는 데에도 자코메티협회의 역할이 컸다. 경매에 출품한 위작을 협회 측에서 알아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작가 재단이 점점 작품 감정을 포기하는 추세다. 법적 분쟁에 휘말리기 쉽고, 한번 휘말리면 재정적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화제가 된 소송은 애그니스 마틴의 디렉터를 포함해 다수의 전문가가 감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카탈로그 레조네 출판 기관 AMCR(Agnes Martin Catalogue Raisonne)과 메이어 갤러리(Mayor Gallery) 사이에 있었다. 메이어 갤러리가 판매한 작품들을 AMCR 측이 애그니스 마틴의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판매가 무효화됐다. 그러자 메이어 갤러리는 영업 방해 명목으로 82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8년 4월, 법원은 AMCR 측이 작가를 대변해 마땅한 의견을 제시했을 뿐이라며 소송을 기각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써야 하는 것이 현실이기에 앤디 워홀 재단, 키스 해링 재단, 콜더 재단 등 많은 재단이 더 이상 작품 감정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텍사스 마파에 위치한 도널드 저드 재단 내부.

물론 전시와 학술적 지원 또한 작가 재단의 중요한 임무로 이를 충실히 이행하는 곳도 있다. 대표적 예가 도널드 저드 재단(Donald Judd Foundation). 비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올해 3월 MoMA에서 개막한 그의 회고전이 중간부터 관람객 없는 온라인 행사로 진행되고, 가고시안과 데이비드 즈위너(David Zwirner)에서 동시에 열릴 예정이던 전시도 축소되었지만 재단은 모든 전시에 적극 협력하고 있고, 재단 건물에서 열리는 자체 전시도 준비 중이다. 작가의 스튜디오는 작가가 활동하던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고, 전시 공간으로도 대중에게 열려 있다. 그뿐 아니라 카탈로그 레조네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작가의 저술을 출판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로버트 라우션버그 재단도 작가 재단의 일반적 임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예술 기관이나 예술가를 지원하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교육기관과 협업을 진행한다. 루이즈 부르주아, 헬렌 프랑켄탈러, 사이 톰블리, 조앤 미첼 재단 역시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와 같이 최근에는 많은 작가가 살아생전에 직접 재단을 설립해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작품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을 다양한 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환원하려 하는 것. 현대미술이 인기를 끌고 생전에 상업적 성공을 거둔 작가가 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이처럼 한쪽에선 법정 공방이 끊이지 않지만 다른 한편에선 작가 재단의 선한 영향력이 점점 그 빛을 발하고 있고, 안정적 재단 운영은 아름다운 작품만큼이나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지금 진통을 겪고 있는 로버트 인디애나 미술관 설립과 그 활발한 활동 또한 작가의 바람처럼 곧 실현되길 기대해본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황진영(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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