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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1

도예가 가족을 만나본 적 있나요?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도예가 가족. 무엇이 그들의 관계와 작품을 이토록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걸까?

2018 백악미술관 전시장에서 아버지 김시영과 김자인(왼쪽), 김경인(오른쪽) 작가.

김시영은 오는 6월 영국 스코틀랜드 전시를 앞두고 흑요와 자연석의 가치를 발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김자인은 설치미술에 이어 실용 공예에 새롭게 도전 중이다.

김시영(아버지)
김자인은 미술을 통해 세상과 공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스스로 여러 나라의 전시에 참여해 세상과 소통했기 때문에 저보다 안목도 넓어요. 제게는 외국의 동시대 미술에 대한 정보를 들려주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게 돼요. 작가는 평생에 걸쳐 고유한 작품성을 지켜야 하고, 그것은 평생에 걸친 인연이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행여 그것을 간과한 채 상품적·기술적·아이디어적으로만 작품을 구상해 아쉬움을 느끼지는 않을까 걱정합니다.

김자인(딸)
아버지는 늘 따뜻하고 폭넓은 조언을 해주시는 분이에요. 35년째 흔들림 없이 수도자와 같은 끈기로 작업에 임하시는 모습은 제게 더할 나위 없는 자극이 됩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 정부에서 ‘화관문화훈장’을 수훈하셨는데, 딸인 동시에 제자, 후배이기도 한 제게는 굉장히 큰 영광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만 세대 차에서 오는, 작품과 작가 노출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어요. 요즘 저는 아버지의 흑요 조각으로 ‘르 느와’라는 소품을 제작하고 있는데, 인스타그램에 몇몇 작품과 함께 찍어 올리면 화들짝 놀라시곤 해요. 제게 도예는 운명이고, ‘흑자의 저변 확대’는 숙명이라 더 매진할 생각이에요.




강경연, Daydream “beyond the horizon”- 판도라의 방, 2018
이재준, Water, 2008, 도곡동 두산 아트스퀘어 세라믹 파사드

요즘 이재준은 건축 도예 작가이자 사업가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고, 강경연은 1m보다 작은 인체 군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재준(남편)
도예는 어떤 예술 장르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 중 하나죠. 그 때문에 둘 이상이 도움을 주거나 협업해야 하는 공정이 있습니다. 전공이 같아 언제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부부라는 관계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대학 동기로 만나 결혼하게 되었을 때 책 정리를 하면서 ‘이렇게 같이 살 줄 알았으면 비싼 외국 원서나 도록은 하나만 사는 건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제 더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겠네요.

강경연(아내)
이재준 작가는 10여 년 전부터 건축물을 덮는 세라믹 아트 월을 제작하고 있어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많은 변수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스태프들 사이에서 사안을 조율하고 결정하는 추진력이 대단하다 싶어요. 항상 목표가 생기면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 그대로 밀고 나가는 저와는 무척 다르죠. 서로 달라서 그만큼 좋은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고희숙, White line cylinder set 19, 2019
이정석, Fragile, 2019

고희숙은 30여 년째 백토를 매만지며 늘 즐겁게, 하지만 긴장한 채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 이정석은 언젠가 오래된 유물처럼 시간을 머금은 형태와 텍스처를 빚는 작가가 되길 고대한다.

고희숙(아내)
막연하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정말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직관적 조언이 장점일 수 있습니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주저하지 않고 작업에 도입하는 이정석 작가의 즉흥성과 추진력을 내 것으로 가져오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흙을 대하는 태도도 저와 달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느낌을 살려나가는데, 그런 성향이 작품에도 묻어납니다.

이정석(남편)
도예 장르에 함께 속해 있어 새로운 영감의 표현이나 영역의 확장 면에서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고희숙 작가의 작품에 대해 조언할 때는 항상 긴장합니다. 그래서 즉흥적 표현보다는 이성적으로 적합한 단어를 찾아 말하려 합니다. 아마 제가 아직 훌륭한 작가가 되지 못한 것은 아내의 냉철한 직언을 실행하지 못해서일 겁니다. 한 방향을 오랫동안 추구해온 고 작가의 깊이를 배우고 싶습니다. 상상은 많이 하되, 행동은 절제해야 하는 요즘입니다.




1970년대 신정희·신경균 가족의 모습. 사진작가 구와바라 시세이가 찍었다.

신경균은 전통의 구현에 매진하며 새로운 작품 구상에 골몰하고 있다. 신현민(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도예 작가의 길을 가려 한다.

신경균(아버지)
도예는 시나브로 젖어드는 일입니다. 저도 중학교 2학년 때쯤인가, 어느 날 문득 철들어보니 도예를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인 고(故) 신정희 작가는 완전한 자유인이셨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일을 가르칠 때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아들에게는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느낄지는 모르겠어요. 지금도 아버지가 만들던 작품은 제가 제일 잘 구현할 수 있겠지만 저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만의 세계가 있고, 아들도 만약 도예가로 성장하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게 한 것과 항상 최고의 재료와 사람들을 느끼게 한 것이 유산이라면 유산이겠지요.

신현민(아들)
온 식구가 처음으로 정면을 보고 가족사진을 찍은 것이 가마 앞일 만큼, 학교 갈 때를 제외하면 거의 작업장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도예를 하라고 권한 적은 없어요.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돕게 됐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제가 제1조수가 되었습니다. 대학을 두 번 휴학했는데, 모두 아버지의 특별전을 준비할 때였어요. 이론으로 도예를 배워보니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남들이 할 수 없는 경험을 쌓아오셨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요즘도 매일 새벽 2시면 아버지가 제 방에 와서 생각나는 것을 말씀해주세요. 흙이며 잿물이며…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에 대해. 그래서 제가 감히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가늠도 안 됩니다. 다만 앞으로는 도예를 사람들이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일에 제가 도움이 됐으면 해요.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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