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test News

    LIFESTYLE
  • 2020-05-20

광활한 예술의 성지, 디아 비컨 미술관

목가적인 풍경의 비컨시에서 만나는 현대 미술의 성지는 생경한 모습만큼이나 그 감동도 상상 그 이상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기차를 타고 허드슨 라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수직의 선이 지배하는 맨해튼에 길들여 있던 시야가 허드슨 강이 그리는 수평선을 만나니 이내 선선한 편안함을 되찾는다. 한 시간을 넘게 달리다 보니 목가적인 비컨(Beacon)시가 넉넉한 풍경으로 반긴다. 100년은 족히 되었을 미국식 목조 주택들과 푸르름이 일렁이는 숲, 사람들의 느릿한 움직임마저 맨해튼과는 동떨어진 시공간이 펼쳐진다. 이런 곳에서 현대미술의 성지를 만난다는 건 생경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일이다.






2003년 5월 오픈한 디아 비컨(DIA:Beacon) 미술관은 1920년대 과자 회사의 박스를 만들던 공장을 개조해 세워졌다. 공장 건물이었다기엔 너무도 우아한 사각의 벽돌 건물이 고전주의의 뉘앙스를 풍기는 디아 비컨은 7000여 평의 넓은 규모와 자연 채광도 압도적이지만, 무엇보다 이곳의 비범함은 그 놀라운 컬렉션, 작품을 전시하는 방법에 있다. 1974년 미니멀리즘과 설치미술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비영리 기관 디아 예술재단의 후예답게,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아티스트들의 작품, 특히 미니멀리즘과 대지미술처럼 작품을 몸으로 직접 경험해야 하는 시간적이며 장소 특정적인 작품들을 집중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월터 드 마리아, 마이클 하이저, 도널드 저드, 리차드 세라, 댄 플래빈, 칼 안드레의 작업들처럼 관객이 작품을 경험적 차원으로 몰입하게 되는 컬렉션들이 넓은 갤러리를 압도하며 전시되어 있다. 프랑수아 모렐레의 푸른 네온 작업 < No end neon >이 지하층 전체에 고요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가 하면, 리차드 세라의 거대한 강철 커브들이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묵직하게 세워져 있다. 마이클 하이저의 기념비적인 작품 <북, 동, 남, 서>는 전시실 한가운데에 네 개의 거대한 구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바닥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는, 아득한 깊이는 자연 그 자체의 힘과 스케일이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들어와 더욱 놀랍고 드라마틱한 감각을 뿜어낸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크고 작은 조각들로 가득한 2층 전시장 끝에는 생명력으로 꿈틀거리는 그녀의 조각 <거미>가 마치 육중한 벽돌을 뚫고 나올 기세다. 최근 디아 비컨 미술관에 이우환 작가의 인스톨레이션 작품들이 새로이 설치되어 우리를 반갑게 한다. ‘모노하’ 시절 그의 초기작 관계항(각1969,1971,1974년 작) 세 점을 소장하며 사물과 관객, 공간과의 조우를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작가의 빛나는 예술세계가 다시 한번 새로운 맥락 안에 놓이게 된 것. 각각의 공간에 독립적으로 놓인 작품의 물성은 작가와 관객의 경험에 몰입감과 다이내믹을 선사한다. 디아 비컨 미술관이 규모의 문제와 규범을 벗어난 진정하고 자유로운 현대미술의 성지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관람 중 우연히 마주친 디아 비컨 미술관의 큐레이터 알렉시스 코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넓은 의미에서 미니멀리즘이나 포스트 미니멀리즘과 관계가 있고, 작품을 몸으로 직접 경험해야 하는 작가의 작품들을 위주로 컬렉팅하고 있다. 공간적이고, 장소 특정적이고, 경험하기 위해서 일정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품들이 해당된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가끔은 작품이 매우 클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우리에게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을 보는데 어떤 종류의 시간이 걸리는지, 그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어떻게 참여시키느냐(공간과의 관계)이다.”






1960-70년대를 관통한 미국 현대미술의 큰 반향은 미국이라는 광활한 대지가 갖는 스케일과 물성, 그 사이를 떠도는 인간의 감각 사이의 긴장과 대결을 축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그 한때의 예술가들의 빛나는 탐구는 여전히 동시대 현대미술의 한 페이지에서도 숨 쉬고 있다. 맨해튼 한복판의 밀도의 시점이 100km 떨어진 비컨의 평지 위에서 광활하고 창조적인 풍경으로 옮겨질 때, 우리는 더 풍성하고 예술적인 뉴욕의 단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글, 사진 박선영
에디터 이태영(taeyi07@noblesse.com)
디자인 장슬기

관련 기사

페이지 처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