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듀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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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1

찬란한 듀오

지금 가장 찬란한 듀오다. 신주협 그리고 최백규.

한여진의 하늘색 원피스 Minjukim, 링 본인 소장품.
황세희의 핑크 드레스 La Silhouette de Eugenny, 이어링 본인 소장품.

영재에서 어엿한 연주자로,
듀오피다


하피스트 황세희와 플루티스트 한여진을 마주하는 동안 손가락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세희의 손끝엔 굳은살이 박여 있었고, 여진의 손마디는 도드라져 보였다. 두 연주자의 손에는 그동안 거쳐온 인고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프 현의 장력이 강해요. 현을 튕기면 손끝에 굳은살이 박이는데, 뭉툭한 손으로 연주하면 둔탁한 소리가 나죠. 그래서 사포로 손끝을 갈아내요”라고 황세희가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한여진도 “플루티스트는 힘줄에 염증이 종종 생겨요”라며 나지막이 말한다. 아픔을 담담히 말하는 어린 연주자들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연주가 힘들지 않은지 되물었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래도 음악이 가장 좋다며 밝게 웃는다. 일곱 살 그리고 세 살. 세희와 여진이 악기를 처음 접한 나이다. 두 연주자는 USA 국제 하프 콩쿠르, 프랑스 국제 하프 콩쿠르, 이탈리아 국제 하프 콩쿠르 등과 고베 국제 플루트 콩쿠르, 베를린 라이징 스타 국제 플루트 대회 등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며 차근차근 연주자의 입지를 다졌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2019년에 ‘듀오피다’를 결성한 계기는 뭘까? “유니버설뮤직코리아의 머큐리 클래식 레이블을 통해 서로 알게 됐어요. 하프는 솔로 연주 레퍼토리가 비교적 한정적이에요. 새로운 활동을 원하던 차에 여진이의 연주 영상을 봤어요. 저와 비슷한 점이 많아 여진의 플루트와 함께하면 연주 폭을 넓힐 수 있겠다 싶었죠. 실제로 만나보니 제 예감이 적중해서 기뻤어요.” 황세희의 말이다. “플루티스트로서 꼭 연주해보고 싶은 곡이 있어요. 그중 하나가 ‘모차르트의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협주곡’이죠. 그만큼 하프와 플루트의 조합이 좋고, 둘을 위한 아름다운 곡도 많아요. 듀오를 꾸리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던 차에 마침 세희 언니를 만났어요. 가볍게 연주를 맞춰봤는데, 저희가 내는 음이 참 잘 어우러졌어요.” 한여진이 덧붙인다. 3월에 듀오피다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잠정 연기됐다. 갑자기 생긴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묻자 20대의 발랄함보다는 베테랑 연주자의 고뇌가 담긴 답변이 돌아왔다. 듀오피다 활동으로 하프와 플루트의 소리를 널리 알리는 일과 두 악기의 신선한 조합을 골똘히 고민하고 있다고. 황세희는 피아노 솔로곡을 하프로 편곡하는 레퍼토리를 꾸준히 연구 중이고, 한여진은 플루티스트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솔로 연주자의 포부도 잊지 않았다. “연기된 공연이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다시 열릴 예정이에요. 저희가 하프와 플루트를 사랑하는 만큼 많은 분께 그 매력을 알리고자 프로그램 구성에 공들였어요. 두 악기의 조합도 신선하니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체크 셔츠와 안에 입은 티셔츠 Acne Studios, 실버 링 Hot Shield 1341, 아이보리색 하이톱 컨버스 Converse, 연보라색 팬츠와 양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솔직한 배우,
신주협


조명 아래 선 신주협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감정을 가다듬는다. 이내 카메라에 맺힌 그의 얼굴에서 신인의 싱그러운 미소, 사연이 있는 듯한 무거운 표정 그리고 공허한 눈빛이 교차한다. 데뷔 3년 차인 그에겐 설렘과 여유가 공존하는 연기자의 모습이 보였다.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야 할 필요를 느끼기도 하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무엇이든 쉽게 지나치지 못해요. ‘발성을 크게 해볼걸’, ‘저런 표정은 아쉽네’ 하면서요. 그래도 요즘은 여유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신주협은 솔직한 배우다. 성실함이 몸에 밴 신주협은 쉬는 것이 낯설다.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 2017년 웹 드라마 <열일곱>으로 데뷔한 뒤 쉼 없이 달려왔고, 그 덕에 스스로 지난해를 만족스럽게 보냈다고 회상한다. 연초에는 뮤지컬 <시데레우스>로 큰 사랑을 받았고, 연말에는 그토록 바라던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토비아스 역을 맡았다. “토비아스는 신인 뮤지컬 남자 배우라면 누구나 탐내는 역할이에요. 선과 악을 고루 보여주는 배역이라 오디션에 합격했을 때 제 연기에 기본기가 있음을 인정받은 것 같았어요. 게다가 제가 존경하는 선배들이 토비아스 역을 거쳐갔기에 기쁜 마음이 더욱 컸죠.” 대작에 합류했기에 잘해내고 싶었고, 매 순간 진실한 태도로 무대에 올랐다. 결국 그 진심은 수준 높은 뮤지컬 팬에게도 와닿았다. 뮤지컬 팬들은 역할을 잘 소화한 배우에게 별명을 붙여주곤 하는데, ‘주협토비’라는 사랑스러운 칭호를 얻었으니까.
그는 요즘 MBC 수목 드라마 <그 남자의 기억법>에서 주인공의 매니저 문철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소감을 물었다. 그는 연기를 대하는 자세나 준비하는 과정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무엇이든 배우고 싶다는 열의를 드러냈다.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무대와 달리 영상은 카메라를 거치는 만큼 앵글에 담기는 모습, 발성에 따른 음성 녹음 등을 면밀히 따지고 연구하는 중이라고. “TV에 얼굴을 보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가 낯설게 느껴지실 거예요. 꾸준한 연습 끝에 카메라 앞에 섰어요. 노력과 현장 경험을 소홀히 하지 않은 배우란 걸 알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크죠. 그러기 위해서는 저를 더 알리기 위해 부단히 움직여야겠죠.”(웃음) 노력의 힘을 믿는 신주협은 백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브라운관, 무대, 스크린 앞에 앉은 대중에게 ‘배우가 배우 노릇을 잘하네’라는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 짧은 촬영에서 다채로운 표정 연기를 선사한 신주협이 자신이 바라는 배우로 성장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라운드 넥 로고 맨투맨 Acne Studios, 데님 팬츠 Club Monaco, 아이보리 레더 슈즈 Cos.

여름을 닮은 시인,
최백규


목소리를 내어 시를 읽는다. 단어 하나하나에 응축된 시인의 감정을 온전하게 느끼고 싶어서다. 낭독하다 입안에 맴도는 시를 발견하면 나만의 시 컬렉션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최백규의 시 <열대야>도 그렇게 만났다.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행복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울겠지. 지난 주말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외지의 동물원으로 소풍을 갔다. 가만히 쓰러진 기린을 구경했다.” 최백규는 스물두 살에 등단한 젊은 시인이다. 2014년 문예지 <문학사상>에서 신인문학상을 받았고, 시집 <도넛시티>와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에 참여했다. 이른 나이에 시인이 된 터라, 어릴 적부터 장래 희망란에 시인을 적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도 가수를 꿈꿨다. 음악을 사랑한 최백규는 공부는 뒤로한 채 노래 연습에 매진했다. 세상은 예술가의 순탄한 삶을 용납하지 않은 듯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성대결절로 실용음악과에 진학하지 못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무 살 무렵 아버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부모님께 뭔가 보여드리려는 마음에 등단을 결심했어요. 대구에서 시 강의를 하시던 장하빈 선생님을 찾아가 1년 안에 시인이 돼야 한다고 애원했죠. 제 간절함이 닿았는지 선생님이 시를 가르쳐주셨고, 그때부터 하루에 2시간만 자면서 시를 공부했어요. 준비 기간이 짧은 만큼 시를 쓰는 물리적 시간을 늘리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잠까지 줄여가며 독하게 준비했지만 돌아오는 건 계속되는 낙방이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날 무렵, ‘이제 끝이다’라는 마음으로 응모한 <문학사상> 공모전에서 꿈에 그리던 등단 연락을 받았다. “9월 15일! 그날의 모든 것이 또렷이 기억날 정도로 여전히 행복해요. 돌이켜보면 시를 쓰는 데 음악의 도움이 컸어요. 좋아하는 모든 가사를 필사했거든요. 지금도 또래 친구들이 하는 힙합이나 록, 아이돌 노래에서 영향을 받곤 해요. 제 시적 영감의 95%는 음악에서 오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인지 최백규의 시에는 사랑의 열병을 앓고 뜨거운 여름처럼 거리를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이 녹아 있다. 자신이 겪은 일, 하고픈 이야기, 길에서 마주치는 청춘의 장면을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구절로 써 내려간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은 건 독자들 덕분이다. “종종 제 시를 읽고 에너지를 얻었다는 인사를 받아요. 참 감사하죠. 그분들 덕분에 저도 펜을 놓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가 음악에서 삶의 안식처를 찾았듯, 자신의 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시대 청춘이 길을 잃었을 때 찾게 되는 시를 쓰려 한다. 위로를 건네고 웃음을 주는 그런 시 말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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