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선이 모여 만든 울림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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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23

수많은 선이 모여 만든 울림

노블레스 컬렉션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적 가치를 제안하고 소장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개념의 아트 플랫폼입니다. 3월 6일부터 4월 17일까지 열리는 지근욱의 전에서 차근차근 변화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목도하시기 바랍니다.



Curving Paths_016, Colored Pencil on Canvas, 110×110cm, 2020

그동안 주로 직선을 사용했기 때문일까요? 신작인 ‘Curving Paths’에서는 곡선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직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어요. 저는 시리즈로 작업을 이어갑니다. 직선을 방사형으로 펼친 ‘Actual Dynamics’로 시작해 실크스크린으로 레이어를 더한 ‘Cohesive Sphere’로 나아갔죠. 지금은 곡선을 주 매체로 한 ‘Curving Paths’ 연작을 진행 중인데, 초기의 방사형을 차츰 줄이고 있습니다.

평면의 운동성을 탐구하기도 했습니다. 조형적으로 보면 곡선은 직선보다 역동적입니다. 곡선을 쓴 이유가 화면의 움직임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였을까요? 제게 직선과 곡선은 모두 동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요소입니다. 정확하게는 작업의 변화를 보여주려고 곡선을 택했죠. 소립자 운동 같은 물리학에 관심이 많거든요. 특히 정지된 화면은 없다는 것과 모든 현상은 지속적인 흐름 안에 존재한다는 철학에 공감했고, 이를 작업으로 끌고 와 잔잔하지만 분명한 움직임이 느껴지는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정적이면서 동적인 화면을 고민하던 중 선에서 해답을 찾았고요. 작은 픽셀이 모여 무빙 이미지를 만드는 TV처럼 선을 쌓고 쌓으면 무언가 굴러간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싶었어요. 한데, 최근에는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전시 타이틀을 ‘조율된 선’이라는 뜻의 ‘Tuned Stroke’로 정한 것도 그 때문일까요? 조율은 한 대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의미하니까요. 네, 과학에서 가져온 레퍼런스 ‘선’은 유지하되 내용적으로는 ‘나 자신’에게 포커스를 두고 있어요. 초기에는 소립자 운동 같은 보이지 않는 움직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작업할수록 ‘왜 나는 화면을 칸칸이 채워야 직성이 풀릴까’, ‘강박이 있는 걸까’ 등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겼죠. 요즘은 심리적 요인에 더 눈길이 가요. 자신을 돌아본다고 해야 할까요. 한 연작에서 다음 연작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과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캔버스에 그은 선은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걸까요? 조형 법칙과 규칙을 고려합니다. 색을 예로 들어볼게요. 같은 빨강이라도 그 안에는 여러 넘버가 있어요. 조합이 좋은 컬러 넘버 10개를 골라 순서를 정한 뒤, 그것을 반복해 사용하죠. 제 의도는 여기까지 작용해요. 완벽을 지향하지만 어느 정도 우연성도 함께 가져가죠. 이를테면,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계산하지 않아요. 색연필이 지닌 예측 불가능한 점도 살리고요. 같은 방식으로 젯소 칠을 한다 해도 캔버스마다 질감이 다르기에 색연필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죠. 또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선이 어긋나면 지우곤 했는데, 요즘은 그대로 남겨둡니다. 그래서 화면에 치밀함과 불안정함이 공존해요.

점점 채움과 비움이 어우러져 균형을 이룬 듯합니다. 힘을 덜어내려 노력했는데, 잘 안 된 것 같아요.(웃음) 화면을 빈틈없이 채우려다 선을 5개만 더하기로 마음을 바꾸고, 그러다 다시 5개는 적지 않을까 걱정하는 등 생각이 많았죠. 디스플레이 직전까지 캔버스를 얼마나 채워야 할지 고민했어요. 아직 채움과 비움의 정도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지금은 ‘채워보자’는 마음에 가깝습니다.






Curving Paths_018, Colored Pencil on Canvas, 110×110cm, 2020

선을 그리는 도구 중 색연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지개 색연필로 판화 에디션을 적고 사인을 해본 것이 시작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쓰는 연필 대신 색연필로 사인을 하면 재미있겠다 싶어 시도했는데, 독특해서 마음에 들었죠. 런던에서도 종종 사용했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이 색연필 부분을 가리키며 “이 부분만 확대하면 어떨까”라고 피드백을 주셨어요. 순간 제 안의 뭔가가 폭발하는 것 같더군요. 곧장 집으로 돌아가 캔버스를 펼쳐놓고 색색의 색연필로 화면을 순차적으로 채워나갔습니다. 완성한 뒤 벽에 세워놓으니 색연필로 완성도 높은 화면을, 이야기가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것을 느꼈어요. 색연필을 쓰는 작가는 여럿이지만, 저만의 아이덴티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색연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석사과정을 통해 지금의 작업 스타일을 구체화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아트 앤 사이언스를 전공하며 전통 매체인 회화를 택한 것이 조금 의아합니다. 예술과 과학이 만난 작품은 보통 하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니까요. 저는 되레 전공을 통해 하이 테크놀로지가 필수가 아닌 선택이란 걸 깨달았어요. 물리학을 좋아해서 석사 전공을 아트 앤 사이언스로 정했는데, 막상 가보니 사이언스의 범주가 굉장히 넓더군요. 과학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부터 수학, 통계학, 사회과학까지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었죠. 다양한 분야를 접한 덕에 주제는 과학적, 매체는 핸드 드로잉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손을 써야만 작가다’라는 신념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제 작업에 한해 손으로 그리는 걸 선호할 뿐이죠.




왼쪽부터_ Curving Paths_022, Curving Paths_023, Colored Pencil on Canvas, 각 180×180cm, 2020

전시장 한쪽에 자기 부상 작품인 ‘Levitation Curve’를 설치했습니다.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엿보이는 동시에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작가가 추구하는 고요한 움직임과 많이 닮았습니다. 개인전에서는 작은 설치 작품을 함께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운동성을 평면으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꼈거든요. 전시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평면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입체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단계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 앞으로 작업 방향이 궁금합니다. 2~3년간은 곡선을 써보려 해요. 사실 제 작업은 상당히 반복적이에요. 일어나서 선 몇 개 긋고 식사 후 다시 선을 긋는 일상의 루틴이죠. 일일이 손으로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래서 작업에 천천히 변화를 주려 하는데, 이 템포가 제게 맞는 것 같아요. 지근욱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제 템포에 맞춰 발전시켜나가지 않을까 합니다.




지근욱 선을 그으며 예술의 조형성과 자신을 탐구하는 작가. 홍익대학교 판화과 학사,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아트 앤 사이언스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현재 홍익대학교 회화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학고재 디자인, 스페이스 XX, 63 아트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서울·부산·런던에서 다수의 단체전과 아트 페어에 참가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2년 연속으로 크리스티 홍콩이 선정한 한국 대표 작가에 이름을 올렸다.




왼쪽부터_ Curving Paths_026, Curving Paths_027, Curving Paths_028, Colored Pencil on Canvas, 각 64×64cm, 2020




Actual Dynamics_2420, Colored Pencil on Canvas, 165×260cm, 2020




Curving Paths_024, Colored Pencil on Canvas, 105×156cm, 2020




Curving Paths_025, Colored Pencil on Canvas, 105×156cm, 2020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진행 노블레스 컬렉션팀
사진 김잔듸(인물), 이시우(작품,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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