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엔 어디로 떠나볼까?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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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3

3월엔 어디로 떠나볼까?

몸이 반응하는 전시와 주민들의 쉼터가 된 복합 커뮤니티 공간.

몸이 먼저 아는 전시
“루브르 박물관을 제대로 보려면 일주일도 부족하다”라는 말이 있듯이,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은 수만 점에 달한다. 다빈치, 루벤스, 들라크루아 등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대작이 즐비한 가운데 내 눈에 띈 건 엉뚱하게도 고야의 작품이었다. 검은 드레스를 입고 한 손에 부채를 쥔 채 수줍게 웃는 여인의 초상화. 고야의 대표작이 아닌 데다 작품 속 그녀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에 매료돼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이처럼 종종 이유 없이 시선이 가는 작품이 있다. 3월 31일까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개인전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자리였다. 탈의실과 탈의실을 연결해 거울 미로를 연상시키는 ‘탈의실’(2008)은 내가 서 있는 곳이 진짜인지, 아니면 거울 너머가 현실인지 혼돈에 빠지게 한다. 이와 달리 ‘엘리베이터 미로’(2011)는 거울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아 혼란스럽다. 그의 공간은 관람객에게 작품 의도를 살필 틈도 주지 않고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추리하게 한다. ‘잃어버린 정원’(2009)은 거울로 착시를 일으킨다. ‘잃어버린 정원’은 창밖에 정원이 있고, 그 너머로 이웃집 창이 보이는 구조의 작품이다. 한데 창 너머로 보이는 사람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다. 이성으로는 그 사람이 나 자신임을, 작가가 거울로 착시 효과를 냈음을 이해하지만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어 정말 나인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들썩거리게 된다. 신기한 경험에 휩싸여 머리와 몸이 달리 반응하는 것이다.
에를리치의 대표작 ‘수영장(1999)’에서 발전한 ‘탑의 그림자’(2019)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물이 들어 있는 두꺼운 막 위아래로 석가탑이 대칭을 이루는데, 위로 솟은 탑은 반듯하지만 아래에 자리한 것은 면이 굴곡진다. 일렁이는 물을 바라보다 보면 원래 생김새가 그런지, 굴절 효과 때문에 일그러져 보이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굴절 효과라는 일반 지식과 엘리베이터 안에 거울이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작가는 눈에 보이는 게 진짜라는 통념을 보란 듯이 비튼다.
레안드로 에를리치는 공간 변형으로 시각적 착시를 만들어 주체와 타자 간 관계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한다. 작가의 설명이 한 줄인 이유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전 작업 철학, 지향점, 미학적 관점 등 어려운 개념을 미리 알아두지 않아도 된다. 에를리치의 작품은 말이 필요 없다. 눈으로만 좇아도 소화할 수 있는 예술이다. ‘잃어버린 정원’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서 타인의 흔적을 느끼며 우리 눈이 얼마나 얄팍한지 깨달으면 그만이다.
머리에 이론을 빼곡히 채워 넣은 뒤 작품 앞에서 이 모티브는 무엇을 상징하고, 어느 미술 사조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상기하지 않아도 된다. <레안드로 에를리치: 그림자를 드리우고>전은 작가가 구성한 공간에 발을 담그고 끌리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지극히 편안한 전시다. 세상에 복잡한 것투성이인데, 예술 하나쯤은 쉬워도 되지 않을까. 가끔은 생각을 비우고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 필요하다.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예술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한다. 에디터 이효정




지역 문화시설이 채워줄 일상의 행복
“주 52시간!” 한 건축가와 대화 중 요즘 사내 화두가 무엇인지 묻는 나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단호하고 망설임 없는 대답은 다른 직원의 갈망까지 대변하는 듯했다. 그는 다들 52시간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야근과 철야를 빼고 직업의 특성을 설명할 수 없는 건축설계에서도 ‘저녁 있는 삶’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몇 년, 아니 몇십 년 동안 선배 건축가들이 눈칫밥 먹어가며 일으켜온 바람이 이제 당연한 권리가 되어 돌아왔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 찾아온 여백을 어떻게, 어디서, 무엇을 하며 채워야 할까?
평범한 주말, 쉼의 욕구를 뒤로하고 동네 근처에서 잠깐이라도 진취적인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섰다. 집에서 먼 도서관은 뒤로한 채 자릿값 대신 커피 값을 지불해야 할 카페로 향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거나 작은 업무를 처리할 공간이 과연 카페밖에 없을까? 우리에게 보장되어야 할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일상생활 가까운 곳에 문화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가 시간이 보장된 뒤에야 이렇게 깨닫는다. 그래서 ‘수락행복발전소’는 개인적으로 매우 반가운 건축물이다. 외관이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노출 콘크리트의 작은 건물이지만 지역에 필요한 공적·문화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 감탄스러웠다.
운생동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수락행복발전소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초입에 자리한 생활 밀착형 커뮤니티 공간이다. 주택과 아파트가 밀집한 주거지역에서 북 카페, 다목적 공연장, 갤러리, 지역아동센터, 집단 교육실 등 역할을 한다. 아담한 건축물이라 해서 용도가 단출하란 법은 없지만, 동네 도서관보다 작은 규모에서 여러 프로그램이 공존하는 이유는 물리적 환경을 극복하는 경계 없는 공간 구성에서 출발한다. 실별로 공간을 구분하지 않았기에 용도에 따라 공간 규모와 성격이 바뀔 수 있다. 이는 공간 사이사이에 머무는 적당한 소음을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허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구성이다. 경계 없이 열린 공간은 오면가면 주민 간 마주침을 만든다. 그리고 그 마주침은 주민 커뮤니티의 시작이 된다.
수락행복발전소의 건축적 핵심은 ‘소풍길’이라 불리는 장애인 램프에 있다.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는 건축법상 건축면적과 연면적에 산입되지 않는데, 건축가는 이를 이용해 작은 공간을 넓게 쓰는 재치 있는 해법을 냈다. 장애인 램프는 1층부터 3층까지 건물 내부를 감싸는데, 이 경사 길은 갤러리, 북 카페 또는 공연장 같은 확장 공간 역할을 한다. 장애인 램프를 내부에 사용해 한정된 공간에서 더 많은 건축면적을 얻고,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길을 공유하는 일도 꾀했다.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신창훈 소장은 설계 초기부터 지역 주민과 밀접하게 소통하며 함께 계획하는 건축 과정을 거쳤다. 덕분에 지역민이 자발적으로 운영을 고민하고, 공간을 필요에 맞게 사용하는 현명한 결과를 낳았다. 지금 이곳에서 누군가는 소풍길을 걸으며 미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또 다른 이는 문화 강좌를 들으며 새로운 취미를 찾는다. 이렇게 동네에 작지만 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는 실용적 공간이 있으면 삶의 질은 훨씬 윤택해진다. 멀리 떠나 새로운 곳에서 만드는 특별한 경험이 아닐지라도, 동네에서 편리하고 소박하게 즐기는 문화적 삶이 우리가 말하는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그래서 더더욱 이 작은 동네의 문화시설이 감사할 따름이다.
수락행복발전소를 돌아보며 한편으로는 지역 주민의 여가와 문화를 위한 이곳을 만드는 동안 건축가의 주 52시간은 지켜졌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여가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그 시간을 채워줄 동네 문화 공간이 충분해질 때까지 건축가들의 여가는 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건축 기획 스튜디오 에뜰리에 대표 이선아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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