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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3-11

이 공간, 그 장소에서, 공간 혁명

우리는 지금 공간에 있고, 어떤 장소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변화를 갈망한다. 구찌는 이 점에 주목했고, 서울의 독립 및 대안 예술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을 통해.

구찌의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 (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
2020년 4월 17일 ~ 7월 12일 대림미술관(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4길 21)


공간에 깃든 힘은 위대하다. 우리는 보통 집에 들어갈 때 엄마의 품 같은 안락함을 느끼지만, 낯선 집에 들어갈 때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맞는 최적의 공간을 찾고, 내 취향에 맞게 공간을 꾸미려 애쓴다. 때때로 공간은 변화하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사용해온 가구를 재배치한다든가 리폼을 하는 식이다. 하지만 공간은 시간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시간에 따라 공간은 낡고 초심을 잃기 마련인데, 이에 공간을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대안 공간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에서는 대안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과 인식의 변화가 생겼고, 이를 토대로 다양한 형태의 대체 공간이 생겨났다. 오는 4월, 구찌는 여기서 영감을 받아 ‘서울의 독립 및 대안 예술 공간 역사’를 주제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전을 대림미술관에서 개최한다. 헤테로토피아란 개인이 타인 혹은 주변 환경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법이다. 이를 통해 구찌는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역사적으로 독립 및 대안 예술 공간은 건물의 옥탑이나, 창고 등 제3의 장소에 위치했고, 대체로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이를 주도했다. 쉽게 말해 정치적·실험적·상업적 목표보다는 예술적 담화가 자유롭게 오가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이 1990년대 말 서울에서 포착되었고, 예술 생태계에 날카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단체나 학설이 증가했다. 이번 전시의 목표는 이런 진보적 장소를 확보하고, 자율성에 대해 성찰하며, 희망찬 미래를 상징하는 개념적 도구로서 공간의 대체성을 다시금 고찰하는 것이다. 구찌의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에서는 다양한 독립 예술 공간을 만날 수 있으며, 그곳에서 한 명 또는 여러 아티스트가 오랫동안 공들인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찌라는 이름 아래 ‘함께’한다는 점. 모든 프로젝트는 스토리와 내러티브(narrative, 실제 혹은 허구적 사건을 설명하는 기술로, 스토리와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를 확립하고, 다름을 이해하면서 소수자의 정체성과 퀴어 문화를 탐색할 수 있는 유토피아적 장소로서 대안 공간이라는 테마와 연결할 예정이다.



구찌가 개최하는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 전시의 대림미술관 전경.

Interview with Curator Myriam Ben Salah

큐레이터이자 작가, 매거진의 에디터까지 활동 반경이 매우 넓습니다. 다행히도 큐레이팅, 저술, 편집 일은 모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대 예술가들과 함께 일하면서 관람객이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읽고, 체험할 수 있게 합니다. 전시의 기획 과정은 읽기와 쓰기 작업을 수반하고, 관련 아이디어를 편집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면 여러 시간대를 동시에 넘나들면서 일하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지금도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거의 24시간 내내 대기 중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이 일의 맥락을 익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구찌 하우스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2018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상하이에서 구찌와 함께 <아티스트는 존재한다(The Artist is Present)>전을 개최했는데, 그때 카텔란과 협업하면서 구찌 팀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들은 제가 편집자로 있는 <칼레이도스코프 (Kaleidoscope)>지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파리에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만났고, 그의 비전과 창작에 대한 시각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켈레와 제 인생 여정에서 여러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펑크적 시인이고, 예술가처럼 사고방식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패션업계에 신선한 존재입니다. 구찌 팀은 다양한 지역과 분야를 넘나드는 제 큐레이팅 경력에 매력을 느꼈고, 이 프로젝트를 서울에서 함께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전은 다양성을 모색하는 서울의 독립 및 대안 예술 공간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한 이유와 서울의 대안 예술 공간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서울을 처음 방문하기 전, 누구를 만나고 어디에 가야 할지 지인과 동료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술가나 큐레이터가 운영하는 기관과 시장이 주도하는 독립 예술 공간이 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공간은 역사적으로 상점 앞이나 다락, 창고 같은 곳에 둥지를 튼, 대개 주류에서 벗어난 지하조직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정치적 성향이 강하고, 실험적이며, 상업적 측면보다는 예술적 논쟁에 초점을 맞춘 작업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스페이스원 디렉터이자 예술가인 여인영 작가를 만났는데, 이 프로젝트의 큐레이션 자문으로서 제가 서울의 예술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녀와 함께하면서 대안 공간에 대한 한층 폭넓은 정의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다소 어두운 시대에는 이를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공간을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전시의 총괄 큐레이터 미리암 벤 살라.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아티스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기준으로 독립 예술 공간과 아티스트를 선정했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번 전시는 서로 긴밀하게 엮인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우선 여인영 작가와 이 프로젝트의 부큐레이터인 루크레치아 칼라브로 비스콘티와 함께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다양한 독립 예술 공간을 선별했습니다. 새롭게 떠오르는 형태, 예술적 논의, 지역의 사상 공동체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는 곳을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공간(헤테로토피아)’이라는 주제에 맞게 다름에 대한 이해,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 새로운 정치적·미적 관계에 대한 상상을 이야기하고, 이에 걸맞은 예술가들을 선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보안여관(Boan1942)은 신자유주의와 한국의 토착성 간 관계에 이의를 제기하는 류성실 작가의 멀티미디어 설치물을 전시합니다. 탈영역우정국 (Post Territory Ujeongguk)은 강우혁 작가의 설치 작품 ‘달나라 부동산’을 선보이는데, 유토피아적 사회에서 가능성을 위해 땅 투기를 하는 양면적 모순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내용만 들어도 흥미롭지 않습니까? 이 외에도 해외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5명을 초청해 같은 주제로 제작한 설치 작품을 선보입니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모로코 출신 작가 메리앙 베나니(Meriem Bennani)는 불법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난민과 이민자들이 억류되어 있는 대서양 한복판의 섬 캡스에서의 생활을 담은 영상 작품 ‘캡스에서의 파티(Party on the Caps)’를 상영합니다.

이번 전시는 예술적 담화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상업적 프로젝트이기도 합니다. 대안 공간이라는 실험적 주제에 구찌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상업적 측면의 압박은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구찌 팀은 제 선택을 지지하고, 믿어주었습니다. 특히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장르나 성별에 따른 윤리적·미적 가치와 자기표현 방식에 관심이 많은데, 이번 전시의 주제인 대안 공간은 그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습니다. 미켈레를 비롯해 그의 팀과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를 보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의 주제 역시 다양성이라는 큰 주제에 부합합니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나 주제가 있나요? 다양성은 예술적 맥락에서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그리고 관람객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그 두 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저는 특히 관람객의 다양성에 관심이 많습니다. 더 많은 대중에게 관념을 전파해야 실질적 변화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전위성과 주류, 실험적 대안과 대중문화 사이의 마찰 지점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패션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고민한, ‘전형적인 예술계 관람객이 아닌 그들의 관객, 일명 고객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도 그런 맥락의 일부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큐레이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큐레이터는 예술가와 관람객의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합니다. 즉 둘 사이의 중재자입니다. 예술가에게는 동반자이자 발전적 논쟁을 벌이는 대화 상대로, 예술사적 관점 또는 사조의 흐름에서 작품의 맥락이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또 큐레이터는 예술 작품과 관람객을 중재하기도 합니다. 관람객이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예술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서울의 독립 및 대안 예술 공간 역사’를 주제로한 구찌의 전시 <이 공간, 그 장소: 헤테로토피아(No Space, Just a Place. Eterotopia)>의 포스터

구찌의 팬은 물론 많은 이들이 이번 전시 소식에 기뻐할 것 같습니다. 전시장을 찾은 이들이 어떤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길 원합니까? 서울에 있는 독립 예술 공간에서 진행 중인 작업의 중요성을 진심으로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공간들은 실험적 예술가들의 지원 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이는 공적 후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활동입니다.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항상 다양한 일에 도전하는 당신의 계획은 왠지 특별할 것 같습니다. 지금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는 올 6월에 로스앤젤레스 해머 미술관(Hammer Museum) 에서 열리는 ‘Made in LA’ 비엔날레입니다. 사우스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공동 큐레이터인 로런 매클러(Lauren Mackler)와 함께 준비 중인데, 놀라운 예술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하루빨리 소개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정순영(jsy@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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