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꼭 해야 하는 2020의 이야기들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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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2-03

지금 꼭 해야 하는 2020의 이야기들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다 큰 어른을 위로한다.

미술이면서도 문학, 미술과 문학이 만나는 지점이 ‘그림책’이다. 그래서 사실 그림책의 정의는 ‘0세에서 100세’라고 한다. 동화책과 그림책의 구분법인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그림책의 역사가 오래되었고 고전도 많아 탄탄한 반면, 우리나라는 이제야 그림책이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다. “외국 페어에서도 한국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높고,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전 어딜 가면 그림책 작가 이수지라고 해요. 10년 전에 그렇게 이야기하면 어색하게 받아들여졌어요.”
아트 북이라 정의해도 될 법한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은 어른들이 보면 더 좋을 책이다. 한국인 최초로 어린이 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에 최종 노미네이트되고 ‘보스턴 글로브 혼 북 명예상’을 수상했으며,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 선정 작가인 이수지의 반려견 이야기를 쓴 <강이>가 최근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강이>는 한 장 한 장 드로잉 회화라 해도 될 만큼 백과 먹의 조화가 정말 아름다운 책이다. 반려견을 키운다면 아마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한 가족이 유기견을 가족으로 맞아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한 아름다운 책 <강이>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게 ‘강이’는 개인적인 이야기이면서 작은 이야기입니다(그림책 판형도 작아요). 작은 이야기이다 보니 오히려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잊을 수 없는 순간과 소중한 어떤 시절(지나가버리면 다시 못 올 것들이 있어요)을 그때그때 놓치지 않도록 얼른 잡아 책으로 만들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이는 솔직하고 현재를 삽니다. 마치 아이들과 같아요. 강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현재를 충실히 살아낼 뿐이지요. 그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수지 작가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구성으로 주인공의 심리와 상상을 밀도 있게 담아낸 수작들을 출간해왔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출간되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상을 휩쓸어왔다. 서울대학교 미대를 졸업하고 영국 캠버웰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북 아트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처음으로 만든 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영국 테이트 모던의 아티스트 북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가 공부한 북 아트라는 장르는 책을 바느질하는 개념으로 만드는 게 아니고 개념 미술에 관한 북 아트였어요.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꿈속의 꿈이잖아요. 그 모티브를 이용해 책에 대한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 책이 소스가 되어 많은 것이 나왔어요. 제 책 중 <거울 속으로>는 사실 그림으로만 이뤄진 책인데, 이탈리아의 한 병원에서 거식증 치료에 쓰였다는 피드백을 받기도 했어요.”
그녀는 자주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대해 말한다. 사실 우리가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선 일들이지 않은가? <거울 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 등으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관해 만든 3부작의 그림책은 어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들이다. “만들고 보니 그 경계에 관한 생각은 제가 그림책을 만들 때면 늘 의식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책은 어린이와 어린이의 마음을 가진 어른들이 경계 없이 드나드는 독특한 장르의 매체거든요.” 아주 고요한 얼굴과 작업실의 분위기로만 보면, 그녀가 세계를 돌아다니는, 엄청 유명한 작가라는 생각을 잠깐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수상과 의미를 물었다. “<파도야 놀자> 스페인판이 출간되었을 때, 마드리드의 서점 연합회에서 주는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무로 정성스럽게 깎아 만든, 4개의 연필이 책을 받치고 있는 아름다운 상패를 받았어요. 막 그림책을 시작하던 때, 무척 지역적이면서도 의미 있는 상을 받아 기뻤거든요. 2년마다 수여되는 국제 안데르센상의 세계 여러 나라의 후보 중 최종 후보 5인에 선정된 것도 기뻤고요. 언제나, 당시의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작가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늘 즐겁고 흥미롭습니다.”




그녀의 책은 상반기에만 세 권쯤 나온다. 중국 작가 차오원쉬엔의 글에 그림을 그린 <우로마>(가제), 그리고 가수 루시드폴의 노래에 그림을 그린 <물이 되는 꿈>, 우리 옛이야기를 가지고 실험적인 책을 만드는 <프로젝트 바캉스>에서 시작된 <그늘을 산 총각>이라는 독특한 형식의 그림책이다. “올 2월 대만 도서전에 초대받아 여러 행사가 있어요. 대만의 출판사에서 대만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파도야 놀자>가 출간 예정에 있거든요. <강이>는 현재 이탈리아판이 나왔고, 뒤이어 스페인, 중국, 브라질판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그림책은 한국의 수묵화에 가까울 정도로 색도 절제되어 있는 데다 한두 마디의 문장 안에 많은 서사가 담겨 있다. “제가 생각하는 그림책의 서사는 문학에서의 서사랑 다른데, 익히 알고 있는 ‘커먼센스’에 기대어 자기가 이야길 만들어가는 거예요.”
그녀가 좋아하는 사진가는 듀에인 마이클, 그리고 그녀의 두 아이의 이름은 ‘산’과 ‘바다’. 이 두 가지만 봐도 그녀의 성향을 대략 알 수 있다. 하지만 단지 그 감성에 머물지 않고 기억해야 할 멋진 순간들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편집하는 그녀의 책 작업들은 마치 ‘세상의 작은 아름다움을 수집하는’ 일 같다. 그 아름다움은 오늘 보고 내일 볼 때 또 다른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니, 사실은 우리가 매일매일 봐야 할 이유가 있는 그녀의 ‘책’들인 셈이다.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
사진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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