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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6

겸손하되 당당할 것

우리도 모르게 해외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힘쓰는 이들이 있다. 그것도 뜻밖의 자리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거쳐 하버드 미술관에 둥지를 튼 이소영 큐레이터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이소영 큐레이터는 한국 문화의 정갈함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현대적 미학을 알리고자 우선순위 두기, 선택과 집중, 적절한 인재 활용 등 기민하고도 현실적으로 움직여왔다. 지금도 세계 아트 신의 중심 미국에서 그녀와 한국 문화의 영역은 확장 중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 Silla Korea’s Golden Kingdom >전 전경.

하버드 미술관(Harvard Art Museums) 아시아와 지중해 미술, 유럽과 아메리칸 미술, 현대와 컨템퍼러리 미술부 총괄자로 재직 중이시죠. 그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이하 메트) 아시아 미술 부서 큐레이터였고요. 이력이 매우 화려한데, 어떻게 미술에 입문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원래는 영문학에 관심이 있었는데,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졸업 요건 중 하나가 ‘예술 인문학’ 이수였고, 그 과목이 제 인생을 바꿔놓았죠. 학부를 마친 후 곧바로 미술사 석·박사과정을 밟았습니다. 뉴욕 한국문화원장을 역임한 아버지의 영향도 컸어요.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세계 주요 도시의 박물관, 미술관, 문화유산 등을 접했죠.

첫 커리어가 메트 큐레이터입니다. 미술 학도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일하고 싶어 하는 메트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중 기회가 찾아왔어요. 원래는 교수의 길을 걸으려 했지만 작품을 다루고 이론을 시각 언어로 풀어내며 저의 지식과 열정을 관람객과 공유하는 큐레이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져 메트와 함께하기로 했죠.

1915년 메트에 아시아 미술 부서가 설립될 당시 메트가 소장한 한국 미술품은 100여 점 남짓이었습니다. 그러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삼성의 후원으로 1998년 한국관을 열었고, 현재 소장품은 500여 점으로 늘었죠. 규모가 점점 커졌는데, 15년간 메트에 몸담은 큐레이터님의 공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한국관을 개관하기 전까지 메트는 한국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하진 않았어요. 컬렉션 규모로 따지면 한국 작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낮았죠. 이런 연유로 재직하면서 한국 소장품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주로 가치가 높거나 숨겨진 보물, 컬렉션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찾는 데 집중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었죠. 미국 시장에 한국 전통 미술품은 많지 않았고, 한국문화유산법에 따라 한국 거주민에게 작품을 구입하거나 기증받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상당히 도전적인 상황이었네요. 네. 많은 한국분이 한국관이 작다고 생각하지만, 그 공간을 채우고 지속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데 필요한 소장품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작품을 대여해 특별 전시를 꾸리는 게 제 주 업무가 되었죠. 국제적 규모로 작품을 대여하는 데 가장 필요한 건 폭넓은 미술계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거였어요. 그 과정에서 올바른 제 역할을 찾고 어려운 상황을 조정해나가는 방법을 배웠죠. 따스하고 배려심 가득한 동료도 많이 만났습니다. 여담이지만, 메트 한국 컬렉션의 자랑거리는 도자기입니다. 7세기경 작품 ‘금동보살반가사유상’도 숨 막히게 아름답죠.

큐레이터님의 노력 덕분에 메트에서 기획한 전시는 미국 전역에 한국 전통미를 알렸을 뿐 아니라 평단의 뜨거운 반응도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2012년에 열린 < Silla Korea’s Golden Kingdom >전은 20만여 명이 관람해 큰 화제가 되었죠. 사실 이 전시는 메트 내 중국 미술과 동아시아 불교 조각 스페셜리스트인 데니스 레이디(Denise Leidy)가 강연 차 서울과 경주를 다녀온 데서 시작됐습니다. 그가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한 직원이 가볍게 “메트에서 신라 전시를 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했대요. 그렇게 메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의 훌륭한 인재가 모여 5년 동안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리서치차 서울과 경주를 오갔고, 박물관 수장고를 방문해 예술품을 관찰하고 신라 예술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도 진행했습니다. 왜냐면 예술에 조예가 깊은 관람객이라도 한국 예술에 대한 지식은 미흡한 경우가 대다수라 메트에 신라 예술을 ‘어떻게’ 선보일지가 더더욱 중요했어요. 경이로운 나날의 연속이었죠. 물론 예상하지 못한 일도 있었어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해외 반출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당시에도 미디어의 큰 주목을 받은 일이라 상세히 말하진 않겠지만, 결과적으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뉴욕에 도착해 수십만 명의 관람객에게 큰 사랑을 받았어요. 해피 엔딩이었죠.

전시를 진행하며 개인적으로 뜻깊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5번가와 메트 인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앞세운 큰 배너 광고를 걸었어요. 삼성의 후원으로 이뤄졌는데, 뉴욕 중심부에 자리한 배너를 볼 때마다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하버드 미술관 전경.

작년 9월, 하버드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이직하셨습니다. 굉장한 제안이지만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메트에서 한국 미술 전시를 맡으며 한국 문화를 알렸고, 커리어 면에서 성취한 바도 있지만 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때마침 하버드 미술관과 함께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죠. 25만여 점에 이르는 하버드 미술관의 컬렉션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드넓은 문화를 아우르는 데다, 동아시아 문화를 핵심적으로 다루죠. 또 하버드의 국제적 명성과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하버드 미술관으로 온 마사 테데치(Martha Tedeschi) 관장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하버드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서 세 부서를 관리하십니다. 주로 어떤 업무를 하나요? 우선 소장품 취득, 상설 전시실 전시 기획, 전체적인 전시 프로그램 관리·감독을 합니다. 세 부서의 큐레이터를 대변하며 멘토 역할도 하죠. 이곳에 오자마자 엄청난 프로젝트가 쏟아졌어요. 가장 먼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팀원들과 긴밀히 소통하면서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파악했죠. 제 팀에 속한 큐레이터들이 사려 깊고 창의적 인재임을 알고 난 뒤에는 그들이 실험적 시도를 하도록 격려하고, 하버드 미술관의 기준과 미션을 따르기 위해 어떻게 행동할지 비판적으로 사고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좋은 리더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막중한 역할을 맡고 계시네요. 일이 바쁘실 듯합니다. 지금은 2020년 가을에 열릴 특별전의 리드(lead)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전시에서 최근 하버드 미술관 컬렉션에 합류한 작품을 하이라이트로 선보일 예정이죠. 다양한 시대와 문화를 담아내고 컬렉션의 방향을 보여주려 합니다. 주요 프로젝트는 미술관 트레이닝 프로그램입니다. 하버드 미술관 산하 포그 미술관(Fogg Art Museum)은 큐레이터, 보존 전문가 등 차세대 미술관 리더를 양성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현재는 대학생과 대학원생, 포닥(Post-Doc)을 훈련시키고 있는데, 젊은 미술 학도를 멘토링하며 저도 배우는 바가 많습니다.

아시아와 달리 미국은 미술관에 대한 지원이 상당히 적습니다. 이 부족한 예산을 후원을 통해 메운다고 알고 있는데, 20년 가까이 현업에 계시면서 기억에 남는 후원 사례가 있을까요? 메트의 보물 ‘애스터 차이니스 가든 코트(The Astor Chinese Garden Court)’를 조성하는 데 막대한 기금을 기부한 브룩 애스터(Brooke Astor) 부인과 하버드 미술관에 400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한 그렌빌 L. 윈스럽(Grenville L. Winthrop)을 꼽고 싶습니다.

한국과 미국 아트 신에서 큐레이터님을 롤모델로 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합니다. 전문성 확보가 중요합니다. 동시에 직관력과 좋은 작품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춰야 하죠. 리서치와 관찰을 통해 꾸준히 배우고 자기 자신을 개발해야 합니다. 특히 시작하는 단계라면 안목을 키워 걸작과 졸작, 진짜와 가짜, 기쁨을 주는 예술과 그렇지 못한 예술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커리어를 추구하든 나를 지지해주는 명석하고 경험 많은 사람들을 가까이하세요. 마지막으로 겸손하되 자신감을 가지세요.




1 하버드 미술관 이소영 수석 큐레이터.
2 이소영 수석 큐레이터는 하버드 미술관 내 3개의 부서를 관리한다. 큐레이터와 소통하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다.

이소영
자카르타에서 태어난 이소영은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부터 스웨덴, 미국, 한국, 일본 등에서 자라며 다양한 문화를 자연스레 접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와 미술사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3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 미술실 큐레이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15년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재직하며 아시아 미술 부서 큐레이터 자리까지 올랐으며, 현재 하버드 미술관 내 3개 전시 기획 부서인 아시아와 지중해 미술, 유럽과 아메리칸 미술, 현대와 컨템퍼러리 미술부를 총괄하는 수석 큐레이터로서 전시 기획, 컬렉션 관리 및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박민경(미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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