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자 루, 구슬로 엮은 시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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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5

라이자 루, 구슬로 엮은 시

특집에서 우리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올해 여성 작가들이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보여준 놀라운 파워에 집중했다. <아트나우>는 1996년 실물 크기 모형의 부엌 전체를 작은 구슬로 재현한 ‘Kitchen’이라는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은 라이자 루와 미디어 너머의 다차원적 세계관을 통해 글로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강이연 작가를 만났다. 또 미술사에서 자기 위치와 권리를 찾으려 애쓴 여성 작가들에겐 어떠한 시대적 공통점과 시선의 차이가 있었는지 분석했고, 그들의 결과물이 세상과 조우하는 순간을 소개했다. 활발하게 활동 중인 국내 여성 작가 6인의 작가 노트와 인터뷰 코멘트는 지금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구슬로 엮은 시
라이자 루는 시각 언어로 시를 쓴다. 작가는 여성들과 모여 앉아 구슬을 꿰며 구슬 하나에 인고를, 구슬 하나에 아름다움 그리고 자매애를 담는다. 구슬이 알알이 모인 작품은 시가 되고, 전시는 한 권의 시집이 된다.

라이자 루
196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라이자 루는 현재 LA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1996년, 뉴 뮤지엄에서 구슬로 실물 크기의 부엌을 재현한 ‘Kitchen’을 공개하며 아트 신에 이름을 알렸고, 그 후로 30년간 오로지 구슬만 탐구해오고 있다. 리만머핀 뉴욕,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현대미술관, 스페인 호안미로재단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수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까르띠에재단,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구겐하임 뉴욕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1 Continuous Mile(White), Glass Beads and Cotton, 1.9×1.9 ×160.9cm(Rope), 80×195.6× 195.6cm(Installed), Edition of 2, 2006~2008

캄캄한 전시장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떠한 메시지도 감정도 없는 ‘목소리’ 그 자체다. 목소리를 따라가니 종이 위에 원을 그리는 손이 보인다. 손은 목소리를 따라 움직이며 끊임없이 원을 그린다.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무의미한 낙서를 하는 걸까, 아니면 정신 수양을 하기 위해 행위를 반복하는 걸까. 손의 주인공은 미국 출신의 작가 라이자 루(Liza Lou)로, 반복적으로 원을 그리는 영상 작업 ‘Drawing Instrument’(2018)에는 수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지난 30년간 해온 작가의 작업 여정처럼 말이다. 대표작 ‘Kitchen’ (1991~1996)은 5년에 걸쳐 작가 혼자 구슬을 하나하나 붙이며 완성했고, 2005년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콰줄루나탈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줄루족 장인과 함께 세밀한 구슬 작업에 집중했다. 수십 년에 걸쳐 작은 구슬을 붙이고 꿰기를 반복하니 정신수양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라이자 루는 정제된 시간 속에서 수행자의 자세로 앉아 노동의 의미, 예술가의 역할, 아름다움의 실체를 탐구했다. 에디터는 기나긴 그녀의 화업 인생을 여덟 페이지에 담고자 한 문장 한 문장 힘주어 눌러썼다. 마치 작가가 구슬을 하나하나 신중히 꿰듯.

그간 평면과 입체를 주로 선보여서 그럴까요? 11월 9일까지 리만머핀 서울과 송원아트센타에서 열린 한국 첫 개인전 <강과 뗏목>에서 영상 작업 ‘Drawing Instrument’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이트 큐브를 가득 채운 목소리가 마치 명상을 하듯 오묘하게 느껴졌어요. 소리로 가득한 일상을 탐구하고 싶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줄루족 구슬 장인과 함께 작업하는데, 그곳에는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게 많아요. 구슬이 굴러가는 소리, 의자 끄는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 장소에서 어우러지는데 마치 한 편의 교향곡 같았죠. 스튜디오의 일상과 작품 제작 과정은 소리로 가득 차 있는데 결과물인 작품은 조용하잖아요? 그래서 드로잉하는 평소 제 모습을 며칠에 걸쳐 촬영해봤어요. 물론 의식하지 않고요. 나중에 보니 저도 모르게 ‘아’ 하고 소리를 내고 있더군요. 무의식중에 나오는 제 목소리도 삶의 단편이니, 영상과 사운드 작품으로 발전시킨 거예요.

무의식중에 드로잉을 했는데 동그라미가 나왔네요? 당신이 30년간 작업 소재로 삼은 구슬 모양과 닮았습니다. 구슬을 염두에 두고 드로잉한 건 아니지만 그 형태가 전형적인 원이니 연상되는 건 당연하죠. 이미 말했듯 무의식중에 했기에 ‘무엇’을 표현하려던 건 아닙니다. 사실 구슬뿐 아니라 지구, 행성 등 동그란 모양새를 가진 건 다양합니다. 참 단순한 형태가 우주와 하늘 같은 거대한 개념을 품는 게 흥미롭지 않나요?

동양에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뜻의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어요. 선불교에서 영감을 받곤 하지만 전혀 몰랐어요. 드디어 제 고향을 찾은 기분인데요?(웃음)

그러잖아도 전시 타이틀을 불교 경전의 한 우화에서 따왔다고 들었어요. 강을 건너기 위해 힘겹게 뗏목을 만든 남자가 맞은편 강둑에 도착하자 자신의 창작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는 내용이죠. 추구했던 일을 하기 위해 들인 공력에 대한 가치를 놓는, 즉 상실을 받아들여야 전진할 수 있음에 당신은 주목했죠. 불교 우화는 작업을 하고 난 뒤에 알았고, 제 작업과 잘 맞아서 택했어요. 왜냐하면 누구나 인생에서 뗏목의 존재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지금처럼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든 혼란한 시대에 내가 무언가를 붙잡고 놓지 않는 사람인지, 아니면 물 흐르는 대로 사는 사람인지 아는 건 중요한 일이죠. 그래야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정해지니까요. 제 자신도 마찬가지예요. 전시를 준비하며 ‘오늘날 나는 왜 예술을 하는가’, ‘이 시대에 아름다움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를 무척이나 고민했습니다.





2 편안히 누워 있는 라이자 루. 작가 옆에 걸린 작품은 ‘Sunday Morning’ (2019)이다.

원하는 해답을 찾으셨나요? 아름다움이란 반짝이고 멋스러운 게 아닌 ‘과정’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일화가 있어요. 어느 날, 콰줄루나탈 스튜디오에서 같이 일하던 줄루족 장인 중 한 분이 살해된 사건이 벌어졌어요. 스튜디오는 슬픔에 잠겼고, 전 당연히 모두가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죠. 한데, 장인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구슬 작업을 이어가시더군요. 그 풍경에서 아름다움이란 단지 반짝이고 멋스러운 게 아닌 우리가 생존하는 방식, 즉 과정이란 걸 깨달았어요. 삶의 비극을 받아들이고, 정의를 위해 행진하고, 하루하루를 따스하게 바라보고, 나의 손으로 마음을 담은 창작물을 만드는 이 모든 행위가 아름다움이죠.

이전에는 구슬을 촘촘히 올렸다면 최근 작품은 모습이 다양합니다. 구슬을 빼곡히 올린 화면을 망치로 깨거나, ‘Sunday Morning’(2019)에서는 그 위에 물감을 두껍게 올렸어요. 문학작품에서 이번에 전시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는데, 표현 방식의 차이는 작품에 각기 다른 문학을 반영해서인가요? 순서가 조금 달라요. 작업을 완성한 뒤에 문학과 연결 지었어요. 고유한 표현 방식으로 각각의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새로운 기법을 탐색하고 시도했는데, 그 결과 모두 서로 다른 외형으로 탄생했죠. 작품을 마무리 지은 뒤 우연히 독서 기록장을 봤는데, 문학과 제 작업의 연관성을 발견했습니다.





3 Kitchen, Glass Beads, Wood, Wire, Plaster and Artist’s Used Appliances, 243.8×335.3×426.7cm, 1991~1996
4 라이자 루와 줄루 구슬 장인들. 작가와 함께하는 장인들은 숙련된 기술을 지닌 구슬 전문가다.

문학과 연관이 있다고 하니 캔버스는 한 장의 종이, 구슬은 문학 구절 같아요. 좋은 은유인데요? 사실 평면으로 형태를 만드는 방법을 계속 연구하고 있었거든요. ‘Comfort Animal’(2019)을 예로 들어볼게요. 찢어진 캔버스 틈 사이로 구슬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내고 싶었어요. 구슬로 제작한 평면 회화를 자른 후 성글게 연결했더니 ‘Comfort Animal’ 화면은 더 이상 캔버스에 붙어 있는 정적인 구슬이 아니었죠. 이 작품에 대해 한마디 덧붙이자면, 캔버스를 늘어뜨려 박제된 동물 가죽이 연상되게끔 했어요. 불편함을 유발하는 동물 박제를 예술로 치환하면서 힘듦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려고 시도한 거죠. 앞서 말한 아름다움의 의미와 이어지는 이야기예요.

콰줄루나탈에 있는 당신의 스튜디오가 궁금해요. 그곳에서 함께하는 구슬 장인 대다수가 여성이라고 들었습니다. 남자가 있긴 하지만 여성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전통적으로 여성이 구슬을 다뤄와서 그런지 줄루 구슬 장인은 거의 여자죠. 그들은 굉장히 숙련된 기술자고 성격도 쾌활해요. 덩달아 스튜디오도 유쾌한 분위기죠. 한번은 제가 장인들에게 농담 삼아 “우리 스튜디오에 남자가 오면 안 되냐?”라고 물었더니 “우리가 남자 흉을 많이 봐서 안 된다”라고 장난스레 답하더군요. 개인적으로 여성과 일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에요. 여성이 연대할 때 생기는 자매애에 관심이 많아서 줄루 구슬 장인 외에 브라질, 인도 여성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말도 있잖아요. “남자 한 명을 고용하면 한 명을 먹이지만 여자 한 명을 고용하면 열 명을 먹인다.” 물론 모든 남자와 여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여자에겐 자신이 가진 걸 나누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당신과 줄루 장인과의 관계는 작가와 장인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비유할 수 있겠네요. 우선 저는 ‘안무가’예요. 작품이라는 ‘무대’ 위에서 ‘무용수’인 줄루 장인들은 손가락으로 춤을 추죠. 저는 그들의 무용 실력, 즉 바느질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재료와 역할을 부여하죠. 마치 발레에서 배역을 배당하는 것처럼요. 생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도 있지만 개의치 않아요. 저는 즉흥적인 걸 좋아하거든요.



5 Comfort Animal, Oil Paint on Woven Glass Beads and Thread on Canvas, 145.1×108.9×5.1cm 2019

한데 일각에는 당신과 줄루 장인의 관계를 협업이 아닌 자선(charity)으로 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줄루족 장인들은 최고의 구슬 기술을 지닌 사람이자 사회와 가정의 리더예요. 그들과 함께 일할 뿐 결코 자선은 아닙니다. 저는 지난 30년간 구슬을 다뤄왔어요. 그만큼 구슬을 잘 알기에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들과 협업하는 게 중요했고, 그 실력을 식별할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다 실력이 뛰어난 장인을 만났고 제 작품의 일부를 의뢰하게 됐죠. 자선 활동에 대해선 ‘아니다’라고 확실히 답할 수 있지만 사회 참여적 요소가 없다고 하긴 어려워요. 제 프로젝트가 줄루족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고 장인들과 협업하는 스튜디오가 어떤 의미로든 위험하지 않길 원했어요. 안전에 신경 쓰고 줄루어 전문가를 모시는 등 많은 노력을 했죠. 또 백인 여성이 식민의 역사가 있는 나라에서 활동하는 만큼 모든 행동에 신중을 기하고 있어요.

30년간 구슬 하나로 작업해온 당신에게 ‘수공예’에 대해 질문하려 합니다. 주디 시카고의 ‘Dinner Party’(1979)를 필두로 여성과 예술을 말할 때 수공예는 중요한 논의거리입니다. 당신의 작업 방식인 ‘구슬 꿰기와 붙이기’도 수공예에 가까운데, 여성과 예술이라는 큰 맥락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을까요? 예술가란 일반적으로 멋들어진 서구식 그림을 그리는 유럽 또는 미국 출신의 남성을 일컫는 말이었죠. 여성과 수공예, 레이스 등 소위 말하는 여성의 전유물이 소외되는 건 당연했고요. 그러다 주디 시카고 같은 페미니즘 작가들의 활동으로 이 모든 게 전면에 부각됐고, 이제 수공예는 여성만의 마이너 장르가 아닌 주류가 되었습니다. 작업에 수공예를 활용한다는 이유로 경시하지 않는 세상이죠. 이제 남성 작가를 기준 삼아 평가하지 않아도, 남성 작가처럼 그리지 않아도 될 만큼 예술이 개방됐습니다. 주류와 비주류를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죠.



6 Color Field, Glass Beads, Stainless Steel and Perspex, 609.6×792.5cm (Dimensions Variable), 2010~2013

당신의 말처럼 점점 다양해지는 예술계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여성 작가는 ‘여성 작가(women artist), 남성 작가는 그냥 ‘작가(artist)’라고 부릅니다. 당신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명칭보다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래, 나 여성 작가다. 그래서? 뭐?”라는 당당한 태도 말이죠. 여담이지만, 저는 여성 권익 신장(women’s empowerment)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건 그 사람이 힘이 없다는 걸 의미하니까요. 여성은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데 말이죠. 물론 여전히 세상은 여성에게 불리하지만 과거 작가들이 더 나은 현재를 만들었듯이 우리도 더 긍정적인 미래를 위해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7 Nightsong, Oil Paint on Woven Glass Beads and Thread on Canvas, 71.8×71.4×3.8cm, 2019
8 리만머핀 서울과 송원아트센타에서 열린 라이자 루의 첫 개인전 <강과 뗏목> 전경.

 

한국에서도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셨죠? 리만머핀 서울과 송원아트센타에서 개인전 <강과 뗏목>을 동시에 개최했고, 키아프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해 한국 관람객도 만났습니다. 한국 관람객을 처음 만나는 만큼 제 모든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소개하고픈 작품이 점점 늘어났는데, 전시장 두 곳을 사용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아티스트 토크도 마찬가지예요. 전시에는 신작만 소개해 예전 작품을 보여줄 수 없었어요. 키아프 아티스트 토크에 초청받았을 때도 제 30년 작업 세계를 알릴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죠. 결국 작가는 작품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다양한 루트로 관람객에게 제 이야기를 알리게 됐어요. 좋은 일이 한꺼번에 찾아와 무척 기뻤습니다.

LA로 돌아가면 푹 쉴 수 있겠네요. 휘트니 미술관으로 향할 거예요. 2021년 1월까지 열리는 전에서 휘트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Kitchen’을 전시하거든요. 굉장히 오랜만이라 저도 기대가 커요.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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