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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28

보이지 않는 캔버스 VR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감상할 수 있는 퍼포먼스나 새로운 멀티미디어 아트는 스마트한 기술로 더욱 흥미롭게 확장하는 중이다.

룸톤의 ‘In the Gray’(2019).

지금 당장, ‘VR(가상현실)’을 검색창에 입력해보자. 게임과 체험에 관한 정보가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요즘은 누구나 노래방이나 당구장에 가는 것처럼 VR 게임방에 간다. 짧은 시간 가상 세계의 아찔한 고공 낙하나 스키 타기 체험 등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온 지 오래다. 이 바람을 타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얼마 전 VR에 관한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예컨대 VR은 그동안 전체 이용 가능한 등급 게임물에만 제공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연령별 등급을 받은 영화에도 서비스가 가능하다. 스마트폰을 사면 서비스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어(gear)의 한 종류이기도 할 정도이니 어쩌면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서울 아트 신에서 이 기술을 도구 삼아, 또 매체 삼아 관객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보면 VR뿐 아니라 AR(증강현실)의 활약상도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1월 초 막을 내린 ‘파라다이스 아트랩 쇼케이스 2019’ 전시 중, 조선 초기 화가 안견 ’몽유도원도’에서 영감을 얻은 권하윤의 ‘Peach Garden’ (2019)을 감상하고 있는 관람객. 이 외에도 전시 주최 측은 AR 도슨트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관람객과 교류하려 노력했다

하드웨어는 정체기, 콘텐츠는 확장기
VR을 활용하거나 전시를 기획해온 사람들은 최근 3~4년 동안 하드웨어 쪽 발전은 어느 정도 정체기라고 봤다. IT 강국을 자처해온 한국은 VR을 우리 눈앞에 갖다놓을 통신 부분에 특화되었던 것일 뿐 하드웨어에서는 디스플레이 외에는 크게 돋보이지 않았던 것. 하지만 젊은 작가들은 마치 윈도 프로그램 론칭 이후 안정기처럼 더 새롭고 확장된 시각의 작품을 선보이는 중이며, 기술 자체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상대적으로 기기 조작이 친숙한 게임 분야에서 VR을 적용하기 시작했고, 영상을 매개로 한 영화 분야까지 뻗어간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 스토리텔링에 주력하는 영역에서 먼저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관련 기술을 활용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3년째 ‘VR 시네마 in BIFF’ 프로그램에서 대중부터 전문가까지 즐길 수 있는 활동을 목표로 VR과 AR을 소재로 한 콘퍼런스와 영화를 상영해오고 있다. 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VR 영화 경쟁 부문을 신설해 올해 영화제가 끝난 지난 11월 판타스틱 오피스(시청)에 ‘비욘드 리얼리티 VR 시네마’관을 오픈하고 이곳을 방문하는 시민에게 25편의 작품을 선착순으로 제공 중이다.






지하철 6호선 공덕역 스크린 도어에 설치한 신제현 작가의 AR 작품 ‘리슨 투 더 댄스’ 일부. 2020년 2월까지 전시한다.

한편 아트 신에서는 이이남, 정화용 작가 등이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VR을 먼저 접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이나 단순히 시각적 재미를 주는 데서 벗어나 기기 자체의 특징만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이다. 컬렉티브 그룹 파트타임스위트(Part-time Suite)와 룸톤(Roomtone)이 그렇다. 전혀 다른 비주얼과 메시지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이들 그룹의 활동은 미디어 아트를 주제로 하는 곳이라면 미술관 안팎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주목받았다. 파트타임스위트는 지난 10월 열린 아르코미술관 주제 기획전 <미디어 펑크: 믿음 소망 사랑>에서 유일한 VR 작품 ‘나를 기다려, 추락하는 비행선에서’(2016)을 선보였는데, VR 헤드셋을 쓰기 위한 꽤 긴 대기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관람객의 참여도가 무척 높았다고. 360도 VR 비디오로 볼 수 있는 16분 45초짜리 이 작품은 3년 전 작업한 것이지만, 지금 360도 기술을 소개하기에는 그만이었다. 관람객들은 마치 영상을 합성하기 위한 파란색 벽처럼 칠한 자리에서 관람 순서를 기다렸다가 헤드셋을 쓰고 현실에서 가상 세계로 넘어간다. 눈앞에 펼쳐진 신도시나 재개발 현장, 어딘지 알 수 없는 낡은 화장실이나 지하, 여의도 상공 영상까지 완전히 떠 있는 듯한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작가의 내레이션을 들었다. 작품 내용을 극대화한 것은 헤드셋을 쓰는 순간 완전히 사라지는 관람객의 존재감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의 손발은 찾을 수 없고 오로지 눈으로 보이는 것만 존재하기 때문에 보고 있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VR이라는 도구 자체로 작품이 말하고자 한 사회문제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한편 김동욱, 전진경으로 구성된 아티스트 컬렉티브 그룹 룸톤은 활동 영역을 더 확대했다. 애니메이션 같은 몽환적 영상과 스토리로 영화와 게임의 경계에 서 있는 듯 보이는 작업을 하는 이들은 현대자동차가 주최한 ‘제로원 데이 페스티벌(ZER01NE DAY Festival)’과 앞서 소개한 부산국제영화제 ‘VR 시네마 in BIFF’ 프로그램에 초청받아 VR 작업 ‘In the Gray’와 ‘Depth of Circle’을 선보이기도 했다. 룸톤은 VR뿐 아니라 AR과 MR(혼합현실) 등 다양한 기술 발전으로 인해 확장 현실(eXtended Reality)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소회했다.











LG U+의 5G 갤러리에 전시된 한승민 작가의 ‘연못의 정원’(2015). AR 앱으로 보면 나뭇잎 아래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며 나온다.

보다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변화
이러한 아트 신의 도전 속에 이 새로운 도구, 아니 새로운 액자의 등장은 기존 예술가뿐 아니라 사회 공헌 영역에서 공공 예술의 한 방향으로도 나타났다. 현실적으로 지금 누구보다 VR과 AR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이들을 이어주는 통신사다. 통신은 5G를 활용한 스마트폰과 앱의 기능을 보여줄수록 돋보이는 산업이다. 국내 통신사 중 유일하게 360도 카메라 스튜디오를 자체 보유하고 있는 LG U+는 서울 지하철 6호선 공덕역 역사를 체험 전시장 삼았다. 승강장 주변에 있는 작품을 스마트폰의 구글렌즈를 통해 보면 평면이던 그림이 반응해 입체 영상으로 바뀐다. LG U+ 유저라면 그들의 스마트폰 전용 AR 앱을 활용해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림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전시를 맡은 조주리 큐레이터는 전시 자체는 기술적으로 비교적 단순해 보이지만, 작품을 외부적 장치(VR 기기)와 중간 레이어(구글렌즈, VR 앱, 휴대폰 등)를 통해 보는 시도가 지하철을 오가는 관람객에게 확장된 예술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봤다. “디지털 환경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세대에게는 시대에 맞는 하나의 작업 유형으로 자리 잡을 겁니다. 이는 결국 지금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미래의 예술을 예견하며, 여전히 그것을 신기한 볼거리가 아닌 독자적·미적 경험으로 기획하는 작가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주리 큐레이터의 말에 전진경 작가도 공감한다. “단순한 기술 구현이나 새로움만 강조하기보다 매체에 적합한 표현과 의미, 맥락과 방향성을 잘 연구하고 찾아가는 것이 중요해질 것 같아요.” 이제는 우리가 그런 작가와 작품을 구분할 차례가 아닐까?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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