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세라 루커스를 불량 소녀라 말했나? - 노블레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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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2-02

누가 세라 루커스를 불량 소녀라 말했나?

특집에서 우리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올해 여성 작가들이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보여준 놀라운 파워에 집중했다. <아트나우>는 1996년 실물 크기 모형의 부엌 전체를 작은 구슬로 재현한 ‘Kitchen’이라는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은 라이자 루와 미디어 너머의 다차원적 세계관을 통해 글로벌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강이연 작가를 만났다. 또 미술사에서 자기 위치와 권리를 찾으려 애쓴 여성 작가들에겐 어떠한 시대적 공통점과 시선의 차이가 있었는지 분석했고, 그들의 결과물이 세상과 조우하는 순간을 소개했다. 활발하게 활동 중인 국내 여성 작가 6인의 작가 노트와 인터뷰 코멘트는 지금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누가 세라 루커스를 불량 소녀라 말했나?
yBa의 주요 일원으로, 현대 아트 신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세라 루커스. 그녀가 지난 10월 서울에서 < SARAH LUCAS: Supersensible, Works 1991-2012>전을 열었다. 아시아에서 연 첫 개인전으로, 예의 도발적이고 강렬한 설치 작품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화상을 걸었다. 전시 전후로 인터뷰를 청했다. 한국 매체와의 공식 인터뷰는 <아트나우>가 처음이다.


세라 루커스
1980년대 말 이후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한 젊은 아티스트 그룹 yBa(young British artist)의 일원으로, 데이미언 허스트가 기획한 전을 통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7년 찰스 사치(Charles Saatch)가 주최한 전을 필두로 여러 전시를 거치며 명성을 얻었다. 여성의 가슴이나 남성의 성기를 식탁, 의자 같은 가구에 배치하거나 머리가 없는 자화상 등을 통해 사회 속 고착화된 개념에 도발하는 것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왔다. 런던의 유명 갤러리 새디 콜스 HQ(Sadie Coles HQ)가 독립하며 전속 계약을 맺은 세라 루커스의 작품은 영국 테이트와 미국 MoMA, 프랑스 퐁피두 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 Self Portrait with Knickers, c-print, 120×81.5cm, 1994~2000




2 Hard Nud, cast bronze with pink patina, concrete brick plinth, 35×20×21cm, 2012




3 Chicken Knickers, c-type print, 42×42cm, 1997
4 Concrete Boots 98~99, Cast Concrete, 19.4×13.0×27.9cm, 1999

요즘은 어디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나요? 지난 11월, 중국 베이징의 레드 브릭 아트 뮤지엄(Red Brick Art Museum)에서 대형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작가 생활 30년 세월을 보여주는 회고전이었죠. 지금은 영국으로 돌아왔어요. 쉬면서 시차 적응 중이죠. 현재 저는 영국 동쪽에 위치한 서포크(Suffolk)에서 살고 있어요. 작업실은 유서 깊은 프램링엄(Framlingham)이라는 작은 동네에 있고요.

얼마 전 한국에서 아시아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한국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한국이 저를 택했습니다. 사실 갤러리가 저를 택한 거죠. 아시아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은 저에게 다소 새로운 경험입니다. 여성 관객뿐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 아주 기쁩니다.

당신 이름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yBa 일원인 점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yBa에는 골드스미스 대학교 동기인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를 비롯해 마크 퀸(Marc Quinn), 제이크 & 디노스 채프먼(Jake & Dinos Chapman) 형제 등이 속해 있죠. yBa 일원과 함께하는 것은 즐거웠고, 같이 작업하는 만큼 힘이 됐습니다.

당신의 활동 초기 모습에서 오늘날 젊은 아티스트들을 떠올렸습니다. 1993년 yBa의 작가 트레이시 에민(Tracy Emin)과 함께 ‘더 숍(The Shop)’이란 공간을 열고 직접 제작한 옷이나 소품을 팔며 생활한 적이 있죠. 젊은 아티스트에게 1970~1980년대 당시 런던의 사회적 분위기는 어땠나요?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지금과 달랐습니다. 런던뿐 아니라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내게는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던 때입니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언제 올지, 오기는 할지, 지금 기다리는 이곳이 맞는 장소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신뢰’에 의해 결정되었어요. 심지어 펍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하는 것까지도 그랬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시기였죠.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새벽녘처럼 희미한데, 기억을 더듬어보면 찰스 디킨스 책에 나올 법한 런던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물론 그 누구도 미래에 대해서는 알 수 없죠. 지금도 그렇고요. 그것이 바로 미래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미래로 여기던 시대가 오늘날일까요? 아트뿐 아니라 영화와 소설, SNS 등에서도 여성의 힘이 전과 달라진 지금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특히 당신의 작품은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도 통하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레몬으로 만든 여자 가슴이라든가 성기를 가린 생닭 등 굉장히 유머러스하면서도 섹슈얼하고, 또 때로 파괴적인 느낌을 줍니다. 처음부터 강렬한 것에 끌렸나요? 저는 특정 사물, 무생물, 옷깃,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 모습, 앉아 있는 자세와 같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그 어떠한 물체나 상황 속에서 늘 풍자적이고 도발적인 요소를 찾아냅니다. 자화상을 찍게 된 것도 우연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나나를 먹고 있다가 갖고 있던 흑백필름이 담긴 카메라를 당시 남자친구(게리 흄. 1990년대 당시 많은 작품에 등장한다)에게 건네면서 “내가 이거 먹고 있는 모습 좀 찍어봐”라고 했어요. 그게 다예요. 이처럼 저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을 좋아합니다. 집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사회와 관련된 것들이 저에게 영감을 줍니다.

예술가에게 성(性)은 일반 대중과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소재일 것 같습니다. 작가 세계에서 당신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여자라는 사실과 여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5 Great Exhibition, tights, chair, bicycle wheel, 75×44×111cm, 2006
6 Wanker, fiberglass, spring on wood, 31×16×58.5cm, 1999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위기를 겪습니다. 만약 위기가 있었다면 어떻게 극복했나요? 자화상 속 당신의 모습을 보면 항상 독특하면서도 당당해 보여서 더 궁금합니다. 위기를 겪은 적은 많습니다만, 저는 제가 그다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별로 터프 하지도 않고요. 그런 이미지는 제가 살면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나중에 제 작업에도 이를 반영한 것이겠지요. 아마 저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에게는 ‘세라 루커스라는 작가’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실제로 아는 사람만이 ‘세라 루커스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작가라면 어떤 점을 신경 써야 할까요? 작가 개개인마다 고유의 특색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작업을 통해 뭘 얻고자 하는지 스스로 파악해야 합니다.

앞으로 예술가로서 풀어보고 싶은 과제나 좋아하는 것을 말해줄 수 있나요? 좋아하는 것이 있죠. 저는 사람들을, 또 제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7 Spirit of Ewe, tights, fluff, merino sheep skull, stone, concrete blocks, 99×20×26cm, 2011

인터뷰를 마치고 내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세라 루커스일 뿐 기존 사회의 잣대를 들이대며 여성 작가로 구분되는 것을 거부했다. 어쩌면 더 구체적인 답변을 바라는 기자의 ‘우문’에 작가는 모호한 ‘현답’을 던졌으리라.
이쯤에서 더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를 만나 대화하고 관찰해온 새디 콜스(Sadie Coles) 갤러리와 제이슨함 갤러리 등 아트 신 사람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그녀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에 대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먼저, 수많은 포털의 정보는 세라 루커스를 yBa 일원 중 트레이시 에민과 함께 ‘2명의 불량 소녀’라고 지칭한다. 두 작가의 성별이 여성이고 또 다소 도발적인 작업을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존하는 세라 루커스는 적어도 불량 소녀가 아니다. 1962년생인 그녀는 지금도 지인들에게 수줍은 소녀에 가깝다는 말을 듣는다.
평소 세라 루커스는 국적이나 세대와 상관없이 우정을 나눈 친구들을 작품에 참여시키고 오마주하길 즐긴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I Scream Daddio’에는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먼트를 책임지고 있는 새디 콜스의 몸을 직접 본떠 쓰기도 했다. 그녀는 인적이 드문 곳에 살면서 철학서와 역사서를 읽는 데 매진한다. 독서와 단어에 대한 인식을 통해 끊임없이 단어의 이중성을 이용한 농담(words play)을 즐긴다. 그녀는 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세 글자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해 ‘dog’와 ‘mom’ 등 세 글자로 이루어진 수많은 단어를 언제든 랩처럼 바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줄줄 외고 있다. 작품 이름과 주제도 그런 중의적 의미로 짓는다. 그녀가 즐겨 쓰는 소재인 여성의 가슴이 그렇다. 가슴을 뜻하는 영어 단어 bust는 ‘완전히 망해버렸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사진가, 조각가, 설치미술가 등 어떤 것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세라 루커스의 작품은 언뜻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오브제를 사용하기에 작업하기 쉬워 보이지만, 각 작품은 치밀한 계산 아래 탄생한다. 예를 들어 자전거 휠과 스타킹을 연결한 ‘Great Exhibition’(2006) 같은 작품을 전시할 때는 반드시 영국 마트에서 직접 구입한 스타킹을 여분으로 보내준다고 한다. 마치 반드시 그것이어야만 한다는 듯이!




8 The Old in Out, cast polyurethane resin, 41.9×50.8×36.8cm, 1998

세라 루커스의 작품은 일상 속 어떤 소재를 쓰더라도 그녀만의 언어와 배치 방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세라 루커스와 그녀의 작품을 우리의 시각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여성의 가슴과 남성의 성기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고 해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여성으로서 강한 주장을 펼쳤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최근 수년간 세라 루커스는 여성과 신체를 쉽게 대상화하는 세상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구체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소수자의 평등에 관심이 높은 현시대 사람들이 그녀에게 더 각별한 관심을 표명하며 드라마틱한 메시지를 전해주길 기대하고 있지만 그녀는 이번 인터뷰처럼 좀처럼 답하지 않는다. 1970년대에 10대를 보낸 ‘여성’이기에, 일찌감치 담배를 피웠다는 고백과 남자처럼 청바지에 워커를 신었다는 사실만으로 대중이 그녀를 섣불리 ‘불량 소녀’로 정의해버린 건 아닐까? 예컨대 지금도 구글을 비롯한 위키 미디어, 여느 아트 애호가의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그녀에 대한 설명에는 담배를 끊었다고 나온다. 그럼, 그것만이라도 진실일까? 적어도 지난 11월 열린 베이징 전시에서는 영국인답게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자신의 팬에게 직접 말아 주고 같이 피웠다고 한 관계자가 말해주기도 했다. 이처럼 작가의 작은 습관조차 우리는 확실한 사실을 알기가 힘들다.




9 지난 10월, 서울 제이슨 함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풍경. 왼쪽부터 ‘Five Lists’(1991), ‘Get off Your Horse and Drink Your Milk’(1994), ‘Untitled’(2000)가 보인다.
10 Loungers #2, tights, fluff, plastic bucket, plastic lounger, 199×62.5×55.5cm, 2011

세라 루커스는 바로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세상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마음대로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는 것을. 지금껏 그래왔듯이 시대에 필요한 근거를 들이대며 그녀의 작품을 해석할 것이다. 세라 루커스는 매일 숨 쉬듯 유머를 즐기고, 대중의 추측과 평가에 무심한 사람이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개인 수장고를 비롯해 유수의 박물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 활동을 통해 먹고살 수 있게 된 것이 신기하다고 지인들에게 말하는 순수한 면이 있다. 이런 의연한 태도야말로 그녀가 당대 현대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로 불리는 이유가 아닐는지. 그 뜻을 받들어 우리 역시 작품에 대한 깊은 설명을 부탁하지 않기로 했다. 세라 루커스는 세라 루커스일 뿐이고,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작품을 정의하면 된다. 그녀가 세상에 대해 풀려는 오해가 바로 이 지점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제공 제이슨함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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