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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9 LIFESTYLE

그의 건축이 미래다

  • 2019-12-01

고도의 기술로 구현한, 인간미가 살아 숨 쉬는 감각적 도시를 꿈꾸는 사람. 카를로 라티가 그리는 우리의 행복한 미래 도시에 대해.

카를로 라티.

미래 비전을 바탕으로 스마트 시티를 구축 중인 40대의 젊은 이탈리아 건축가 카를로 라티(Carlo Ratti). 포스트모던 건축 창시자 에토레 소차스,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렌초 피아노, 고전적 건축 소재인 벽돌의 현대적 반영을 보여주는 마리오 보타 등 비교적 친숙한 이탈리아 태생의 건축가, 또는 이탈리아에서 수학한 건축가에 비해 그는 아직 우리에게 낯설다. 하지만 현재 가장 주목받는 건축 스타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지붕 아래 펼쳐지는 사계절 정원, 한결같은 맛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로봇 바텐더, 디지털 픽셀로 만들어낸 구름, 떨어지는 물이 벽이 되는 건축물. 낯설고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영역을 그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손쉽게 현실화해 보여준다. 그가 구현한 가까운 미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왠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미래’라는 단어에 묻어나는 차갑고 계산적 이미지와 달리 그의 미래 건축에는 휴머니즘이 담겨 있다. 인간과 소통하는 건축, 감각적으로 반응하는 도시. 건축에 대한 관점이 생명체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 새로운 첨단 건축이지만, 휴머니즘이 삶과 문화 전반에 남아 있는 이탈리아적 사고가 우리가 전부터 알고 있던 이탈리아 건축과 마찬가지로 그의 프로젝트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몇 년 전 TED 강연에서 그는 모세를 조각한 뒤 “왜 말을 하지 않느냐”며 망치를 집어 던진 르네상스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일화를 얘기했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늘날 환경이 드디어 우리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라고.




1 2015년 밀라노 엑스포에서 선보인 ‘미래 식량 도시(Future Food District)’ 프로젝트. 슈퍼마켓 체인 브랜드 쿱(COOP)과 협업해 원산지 등 식자재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가 탐색할 수 있고 첨단으로 결제가 이뤄지는 슈퍼마켓을 구현했다.
2, 3 2017년 피코 이탈리 월드(Fico Eataly World)와 함께 볼로냐의 10만m2 규모의 공원에 설치한 프로젝트 ‘인간과 미래-호르투스(Man and the Future-Hortus)’. 앱을 통해 경작물의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도시형 스마트 파밍,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는 새로운 농경 사회의 비전을 제시했다.

데이터로 소통하는 스마트 시티
그가 추구하는 ‘반응하는 건축’은 실시간 감지 시스템을 통해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수집되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반영한다. 이러한 특별한 관점은 건축가이자 엔지니어인 그의 독특한 커리어에서 기인했다. 세계적 자동차 브랜드 피아트(Fiat)가 태동한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자 분쇄 커피를 최초로 진공포장해 배송하는 서비스를 고안한 프리미엄 커피 브랜드 라바짜(Lavazza)의 고향, 토리노. 기술적 진보와 창의적 아이디어가 왕실 문화, 현대미술과 공존하는 이탈리아 산업의 뿌리인 이 도시에서 태어난 그에게 기술과 예술은 분리된 영역이 아니었다. 과학에 심취해 고교 시절을 보낸 뒤 프랑스의 소수 엘리트 교육으로 유명한 그랑제콜 중 하나인 국립 교량-도로 대학교(Ecole Nationale des Ponts et Chaussees)와 이탈리아 토리노 공과대학에서 토목 공학을 전공하고,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건축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토리노의 건축 스튜디오 CRA와 함께 미국 MIT 센시블 시티 랩(Senseable City Lab)을 운영하며 교수직을 맡고 있는 카를로 라티는 건축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석학이다. “집은 사람이 살기 위한 기계다”라고 한 20세기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말은 21세기 카를로 라티의 건축물을 통해 한 차원 진화한 듯 보인다. 전 세기의 ‘기계’가 하드웨어에 머물렀다면, 21세기의 ‘기계’는 삶 속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소프트웨어의 발달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객관적으로 수집한 인간의 행동과 습관을 바탕으로 한 치의 오차 없는 효율적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더불어 도시의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환경이 말을 건넨다”라는 그의 말에는 바로 이런 통찰이 담겨 있다. 데이터를 통해 환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언어를 찾아내고 귀 기울이는 것이 건축가이자 공학자인 그에게 주어진 1차 과제다. 숫자를 통해 보면 도시 환경을 위한 건축적 과제는 더욱 선명해진다. “세계 전체 면적의 2%에 지나지 않는 도시에 50%의 인구가 과밀되어 있고, 75%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지구 이산화탄소 배출의 80%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도시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겠죠.” 계측과 예측을 바탕으로 문제를 인식한 뒤 이어지는 문제 해결에도 데이터 분석이 이뤄진다. 현재의 에너지원은 60%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야기해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을 부추기며, 2030년에는 지금보다 40%의 물을 더 필요할 테고, 2050년이면 도시가 지나치게 과밀될 것이라는 과학적 진단과 함께 그는 자신만의 해결책도 제시한다. 도시에 10%의 녹지를 확장함으로써 냉난방 에너지를 절감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것, 물 사용을 데이터화해 30%의 버려지는 물을 재활용하는 것, 건축을 프로그래밍해 다용도로 활용하는 등이다. 감탄을 일으키는 그의 프로젝트는 새로운 기술을 표면적으로 과시하거나 기계적으로 IoT 기술을 공간에 적용하는 천편일률적 스마트 시티 사업과는 결이 다르다. 건축가로서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적이고 필수적인 영역에 첨단 기술로 도전하는 것이다. 데이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을 해석해 대중에게 전달하며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말하는 그. 기술은 더 나은 삶과 환경을 위한 것이라는 태도가 그의 작품 전반에 드러난다.




4, 5 2018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두오모 광장에 설치한 ‘리빙 네이처(Living Nature)’ 전시장. 건축물 내부 환경을 조절해 인공적으로 사계절을 구현할 수 있는 정원을 조성했다.
6 2014년 럭셔리 크루즈 퀀텀 오브 더 시즈에 세계 최초의 로봇 바텐더를 설치한 바이오닉 바를 선보인 이후 최근 메이커 셰이커(Makr Shakr) 로봇 바텐더를 설치한 루프톱 바가 런던 바비칸에 이어 밀라노 두오모 광장 앞에 등장했다.

사람이 행복한 환경을 위한 순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건축의 역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일반적 건축가의 범주를 벗어난 영역까지 그의 참여를 이끌었다. 건축을 단순히 ‘주(住)’ 영역으로 한정 짓기보다 의식주로 확장해 접근하는 것. 특히 식(食) 영역에서 미래 사회와 먹거리에 대한 신선한 비전을 제시한다. 도시에서 앱(app)을 이용한 스마트 파밍, 원산지 등 세부 정보를 철저히 분석하는 첨단 슈퍼마켓, 앞서 말한 세계 최초의 로봇 바텐더, 음식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3D 프린팅 오븐에 대한 그의 아이디어는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식문화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단순히 음식 섭취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다. 시애틀에 버려지는 3000여 개의 쓰레기봉투에 추적기를 달아 쓰레기 운반의 효율성을 분석하거나, 2020년 완공 예정으로 두바이에 짓고 있는 이탈리아 파빌리온에 버려진 오렌지 껍질과 분쇄 커피,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건축 소재로 활용하는 등 환경 순환의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우리가 버리는 물건은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지구 어딘가로 이동해 머물러 있게 됩니다.” 환경문제는 인간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가장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를 시각화해 보여주며 반응을 유도한다. 데이터 분석과 예측에 통달한 듯한 카를로 라티지만, 사용자의 반응이 예측을 빗나갈 때도 있다. 기계가 아닌 인간의 행동은 자유로우며 그 안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건축에서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미래 건축가라 불리며 많은 세계 무대에 연사로 초청되는 그는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예상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자신 있게 미래 도시가 어떻게 변할지 예견할 수 없어요. 다만 지금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해야 할지 고민할 뿐이죠.”

그의 프로젝트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데 비해 토리노에 위치한 스튜디오는 평온하고 자연적이기까지 하다. 자유로운 사고를 펼치면서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적당한 규모로 야외에는 도심 속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녹지를 조성했다. 그의 스튜디오를 보면, 건축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고도로 효율화된 기계적이고 차가운 도시는 그가 꿈꾸는 미래가 아니며, 인간의 삶에 스마트한 기술이 스며든 휴머니즘적 도시를 지향한다고. 스마트 시티란 인간과 기술이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인간이 더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해주는 환경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기술은 현대 문명의 새로운 문제점을 야기한 독이면서도,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해준 약이기도 하다. 이 양면성에서 순기능을 강화해 뜻밖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치밀해진 과학 기술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건축가뿐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 모두의 과제일 터. 1990년대만 해도 요원한 첨단 미래 사회로 생각했던 2020년이 바로 우리 눈앞에 있다. 2020년을 목전에 두고 카를로 라티는 스마트한 미래 사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일깨운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마술 같은 신기술의 표면만 볼 것이 아니라, 이 기술을 바탕으로 당면한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눈을 돌리는 것이 미래지향적 사고라는 사실을 말이다.




7, 8 2020년 완공 예정으로 두바이에 짓고 있는 이탈리아 파빌리온. 버려진 오렌지 껍질과 분쇄 커피,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건축 소재로 활용해 자원의 선순환의 모범 사례를 만들고 있다.
9 2016년 비트라(Vitra)를 통해 선보인 리프트-비트(Lift-bit) 퍼니처. 하나의 셀처럼 모듈을 각각 위아래로 움직여 용도에 맞는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기술을 이용해 공간과 환경을 다각도로 활용해 인구 집중, 도시 과밀,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제시하는 카를로 라티의 대표적 프로젝트.
10 녹지와 오피스 공간이 어우러진 토리노의 CRA 스튜디오. 직원들이 편안하게 실내·외를 오가며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에디터 이재연(jyeon@noblesse.com)
여미영(D3 대표, 연세대학교 국제대학 문화디자인경영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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