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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MBER. 2019 FEATURE

우리가 입었던 드라마

  • 2019-12-02

지난 10월 18일 저녁, 중국 상하이 MIFA1862에 세계 40여 개국 기자단과 셀레브러티가 모여 로로피아나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캐시미어-비밀의 기원>을 감상했다. 뤼크 자케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브랜드에 대한 섣부른 정의 없이, 먹먹한 몽골의 풍경 속에 더 깊고 풍성한 울림이 되어 우리를 따뜻하게 휘감았다.

염소들은 거친 사막의 혹한과 큰 일교차 속에서 성장한다.

로로피아나가 만든 첫 영화 시사회. 초청장 속 <캐시미어-비밀의 기원(Cashmere - The Origin of a Secret)>에 관한 정보는 짤막했다. 오스카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감독 뤼크 자케(Luc Jacquet)의 이름을 보고 ‘아름다운 장면을 마주하게 되리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감독은 <펭귄, 위대한 모험 2>(2015)에서 순백의 남극 위에 벌어지는 생명의 사투를 차분히 다뤄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그런 뤼크 자케가 하이엔드 패션의 상징인 로로피아나와 손잡고 내몽골을 배경으로 캐시미어의 기원을 찾는 다큐멘터리를 찍었다니. 그동안 열악한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에 지쳐 화려한 패션 필름을 찍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잠깐 생각했다.
섣부른 짐작은 기분 좋게 틀렸다.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Pier Luigi Loro Piana) 부회장의 인사말이 끝나자 어두운 무대 위로 상하이 필하모니 어소시에이션 오케스트라가 등장했다. 그들 뒤의 스크린에 영상이 나타나자 객석에서 나지막한 탄성이 쏟아졌다.
시릴 오포르(Cyrille Aufort)가 작곡한 배경음악이 라이브 연주로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선율이 사막을 비추는 카메라와 같은 속도로 질주했고 등장인물의 대사도, 자막도 없는 영상이 20분간 펼쳐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의 배경은 내몽골 지역. 헬렌산맥 한가운데, 고비사막 가까이 위치한 아라산(Alashan)이다. 큰 일교차와 겨울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극한의 환경 속에 대를 이어 세계 최고 원료를 공급하는 목동이 살고 있다. 최고급 캐시미어는 날씨가 따뜻한 4월부터 6월까지, 그리고 겨울 털갈이를 하기 직전까지 자란 카프라 히르커스 염소의 속털에서 나온다. 염소를 품에 안고 하나하나 빗질했을 때 손에 쥐는 속털은 400g 남짓. 그중 더 귀한 베이비 캐시미어는 살아 있는 아기 염소에게서 30g쯤 채취할 수 있다.




1, 2 몽골과 중국의 캐시미어 생산자들은 자연 주기에 맞춰 캐시미어를 채취한다.
3, 4 카프라 히르커스 염소들.




촬영 중인 자크 뤼케 감독과 스태프들.

로로피아나는 패션 브랜드이기 전에 단일 미세 양모를 가장 많이 구매하고 빚어내는 원단 제작사다. 이탈리아의 많은 명품 하우스가 그랬듯이 이름을 걸고 가업을 키웠다. 캐시미어와 비쿠나처럼, 양모 중 가장 가볍고 귀한 소재로 원사를 짜고, 여기에서 나온 원단을 극소수의 하이엔드 브랜드에 공급한다. 그들은 여전히 당대 최고 원단 제작사라는 초기 임무에 충실하고자 지속적으로 보호해야 할 자연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여느 명품 브랜드와 달리 디자인 디렉터를 제작 책임자라 부를 만큼, 90년 전 시작한 ‘제작사’ 로로피아나의 기원에 충실하려는 고집이다. 그래서 환경과 인간 생명의 선순환에 집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최고 소재는 자연에서 나오고, 자연을 보호해야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기 때문. 최근 세계적으로 늘어난 캐시미어의 인기는 오로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사육 방식을 유행시켰고, 일시적으로 개체수가 늘어난 대신 주변 생태계가 변했다. 2009년부터는 로로피아나만의 방식으로 생산지를 보호하고, 생산 국가에 정책적으로 호소하며 해당 지역 대학 연구소 등에 기술을 지원하고 있다. 즉 섬유의 섬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공급처 수익까지 늘이는 방법을 꾀한다. 그 과정을 뤼크 자케와 함께 3년에 걸쳐 3부작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줄고 있는 페루의 비쿠냐 울 그리고 로로피아나에만 있는 특별한 소재 ‘왕의 선물® (Gift of Kings® )’을 주제로 한 두 작품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날 마지막 무대는 최고 목동에게 수여하는 ‘로로피아나 어워즈-올해의 캐시미어’ 시상식이었다. 실제로 로로피아나가 자주 만나는 생산자는 그들과 30년 이상 거래해온 내몽골 사람들. 낯선 나라에서 온 이방인 앞에서 몽골 전통 의상을 입은 목동 부부가 뤼크 자케와 나란히 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상 받는 모습은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다음 날, 기자간담회에서 뤼크 자케가 밝힌 소회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하이엔드 제작자의 철학과도 같았다. 패션이든 영화든 무언가 만드는 영역이라면 굳이 구분할 필요 없는 이야기였다. 한국 매체 단독으로 소개하는 제작 현장 스틸 컷과 감독의 멘트를 읽어보시길. 어쩌면 우리는 캐시미어라는 고가의 옷감 대신 한 편의 드라마를 입고 있는지도 모른다.




1 행사가 열린 상하이 MIFA1862.
2 인사말 중인 뤼크 자케 감독.
3, 4 시사회에는 일본 모델 아이 도미나가, 한국 배우 한지민 등이 참석했다.
5 올해의 로로피아나 캐시미어 어워드는 소재의 섬도와 길이, 품질을 기준으로 시상한다. 장밍주와 리유메이 그리고 수얄타라와 부렌키키게 목동 부부가 수상했다. 영화의 풀 버전은 로로피아나 홈페이지(www.loropiana.com)와 SNS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더불어 12월 한 달 간 사운즈한남 오르페오에서 무료 상영회를 연다.




뤼크 자케(Luc Jacquet)는 장중하고 선 굵은 화면의 영화를 만드는 프랑스 출신 영화감독이자 생태학자다. 5년에 걸쳐 제작한 첫 다큐멘터리 <펭귄, 위대한 모험>(2005)으로 2006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다. 이후 케이트 윈즐릿이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여우와 아이>(2007), 열대우림의 역사를 다룬 <원스 어폰 어 포레스트>(2013), 칸 국제영화제에 소개한 <빙하와 하늘>(2016) 등을 제작하며 극한의 환경에서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 밖에도 친환경 관련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수행하는 비영리단체 와일드 터치를 설립해 활동 중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제공 로로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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