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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OBER. 2019 FEATURE

양혜규라는 리얼리티

  • 2019-09-30

그녀는 길게 떠나고 자주 돌아온다. 지난 25년간 독일과 한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그녀에게 ‘움직임’이라는 것은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접힌 시간을 발견하고, 과거와 미래를 불러오고, 고대 시간까지 찾아내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발견해낸다. 그래서 양혜규는 1분도 멈춰 있을 수 없다. 정지 상태인 적이 없는 그녀의 작품처럼. 그녀가 만든 지도, 즉 시간과 역사와 개인적 서사와 연대 그리고 물리적 기록의 계층 구조가 무너진 공간의 지도에 들어가보면 어떤 ‘지점’에 닿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랄까. 서정적 개인의 ‘비밀’이 아니라 온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 말이다.

양혜규는 질문에 대답을 길게 하는 편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질문과 다소 상관없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진짜 인간적인 모든 것에 대해. 사실 그녀의 의도를 완벽하게 눈치채려면 고대 역사부터 철학자의 사상, 전 세계 은둔자에 대해 빠삭해야 한다. 심지어 초능력자처럼 시간과 공간의 배치법도 새롭게 배워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질문하고, 그 질문들이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기에 그녀의 대답은 질문과 딱히 상관없이 흐르게 된다. “블라인드는 왜 계속 만들어요? 공중에 매달려 있거나 움직이는 블라인드도 있던데, 다 의미가 다른 거죠?”라든지 “작품 제목은 도대체 어떤 의미예요?” 하는 식의 질문.
작품을 보는 건 순전히 관람객의 몫이라 자신은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면 그녀는 대번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궁금해서 온 거 아닌가요? 질문을 해주세요”라든지,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저랑 계속 이야기해요”라든지, “당신의 생각은?” 이라고 묻는 것처럼 꽤 오만해 보이는 까만 눈동자를 치켜뜰 뿐일 것이다. 사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질문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와 제대로 된 ‘대화’라는 걸 나누려면 스스로 ‘미술학자’나 ‘역사학자’에 버금가는 지식을 갖춰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의 양혜규는 한국에서 키워준 게 아니라고 종종 말하던 젊은 시절과 달리 대중과 소통하길 원하는 듯 보였다.
오랜만에 양혜규가 전시로 돌아왔다. 곧 떠나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잠깐 돌아왔다. 여전히 한 사람이면서 여러 사람인 듯한 모습으로. 그리고 또 언제나 그렇듯이 상실하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것에 대한 화두를 꺼냈다. 예전에는 그런 화두가 그녀의 외모와 오버랩되면서 로맨틱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그녀가 ‘상실’이라는 식의 단어를 꺼내면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결핍’ 같은 것을 연구하는 인문학자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작가는 진솔한 속내를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았다. 고민하는 바를 어떻게 하면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 작가의 말대로 정직함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에 정직함에 대해 간절해진다고 했다. “일종의 솔직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데요.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기보다는 저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확함, 진정성이라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키워드로 변형한다면 리얼리티라고 생각해요. 양혜규라는 작가에 대한 리얼리티를 담백하게 보이는 것. 직접적과 정직함은 다른 말이에요. 정직함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고, 그것에 대해 간절해지죠.”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이 말을 꽤 길게 했다.
국제갤러리 전시장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들려오는 민해경의 옛 노래에 잠깐 추억에 잠기다 새소리와 원시적 풍경에 혹하게 된다. 연기를 내뿜는 전시장 공간에서 방울을 전면에 사용한 ‘소리나는 조각’을 바라보면, 몽환적 기분에 빠지다 전시장 벽을 에워싼 과거와 현재, 미래 시간에서 조금 어지러워진다. 그리고 어디선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남북정상회담 중계 영상에서 추출한 음향 때문에 마음이 조금 복잡해진다. 그러다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사실 감정의 모든 걸 경험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동안 양혜규 작가는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섞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강해진 듯했다.
글을 쓸 때마다 인터뷰이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양혜규 작가를 몇 번 인터뷰한 뒤 내린 결론은 ‘신비로운 존재는 신비롭게 남겨두자’다. 모든 순간 어떤 지역을 연구하고 혹은 전시 중인 작가의 성실함에 대해 그 이면을 궁금해하지 말자는 것. 그녀의 관심사는 사회적인 것부터 우주적인 것까지 광범위한데, 그 이유를 안들 그녀를 해석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녀는 자신의 시간을 혹독하게 다루는 사람이 아닐까, 끝까지 가려진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면에는 로맨틱한 감정이 있을지언정.




서기 2000년이 오면
전시 오프닝 때 페이스 페인팅을 했어요. 전시 소개 글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왜죠? 살고 싶어서예요. 전 동그랗게 다 이어서 의미를 부여하는 데는 관심이 없거든요. 특히 전시를 열 때는. 고대 가면극처럼 사람들이 얼굴에 뭔가를 칠하던 일은 늘 있어왔죠. 오프닝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는데, 형식적으로 하는 건 싫으니까 안 하는 게 가장 좋지만, 꼭 해야 한다면 제대로 성스럽게 치르든지 셀레브레이션을 하자 싶었어요.
사실 얼마 전 멕시코에서 해봤거든요. 도착한 날이 친구 전시 오프닝이었는데,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니 다들 화장을 했더라고요. 그날이 마침 망자의 날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친구 전시 오프닝에 갔어요. 제 나름대로 선물 비슷한 거였는데, 사람들이 너무 즐거워하더군요. 그날 저는 편했어요. 보통 ‘드래그’한다고 하잖아요. 자신의 정체성을 밖으로 꺼내는 걸 말하는데, 페이스 페인팅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가면 같은 페이스 페인팅 안에서 안도감을 느꼈고, 평화롭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모르는 사람이랑 있을 때 폭포수같이 말을 쏟아낸 뒤 집에 돌아오면 죽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잖아요. 혹시 저처럼 변신 같은 걸 할 때 좀 편한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요? 워낙 우린 ‘보이는 아름다움’에 목숨을 걸잖아요. 그래서 이번 오프닝에서도 축제, 의례 그런 걸 생각했어요.

오랜만에 여는 서울 전시 <서기 2000년이 오면>에서는 어떤 시공간을 이야기하고 싶었나요? 요즘 관심 있는 게 시간과 공간이에요. 시간도 점프할 수 있는 불연속적이고 비정형적인 시간대가 생겨나고, 공간적으로도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던 과학적 사실과 여러 차원이 존재하죠. 웜홀이나 이런 걸 통해 공간 이동이 가능해질 수 있고, 좀 더 층층이 쌓이는 복합적인 것이 많아진 것 같아요. 우린 뉴스라는 걸 보잖아요. 아마존 숲에서 불타는 것이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고, 중국에서 아이를 방치했다는 뉴스를 보면 갑자기 섬뜩해지고. 정보가 SNS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기존의 공감각적 계산법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좀 다른 이야기인데, 2000년에는 어떤 시간을 보냈죠? 작가로서 2000년에 특별한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기억력이 좋지 않아 다 잊었는데, 엄청 고생했죠. 그땐 늘 전시에서 되돌아온 작품을 폐기 처분해야 했어요. 작업실도 없었으니까. 2004년, 또 그렇게 되돌아온 작품을 아예 포장도 풀지 않은 채 ‘창고 피스’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했는데, 그 작품이 컬렉터에게 팔렸어요. 그러고부터는 제 인생이 드라마틱해졌죠. 2008년 독일 <카피탈>이 선정한 세계 100대 미디어 설치 작가에 이불 작가와 나란히 이름이 올랐으니까요.

전시장 입구에서 민해경의 노래 ‘서기 2000년’(1982년 발표)이 흘러나오던데요. 미래를 향한 낭만적 희망을 담은 노래인데, 지금 들으니 황당한 가사가 오히려 슬프더군요. 그리고 바로 입구에 들어서면 작가의 어린 시절 작품 ‘보물선’이 나타나죠. 어릴 적 작품은 처음 봐요. 과거를 생각하고 싶었나요? 지난번 인터뷰에서 “요즘엔 폐기하거나 팔아버린 옛날 작품이 생각난다”고 말했죠. 당신에게 ‘회상’은 왠지 어울리지 않지만요. 민해경 씨의 노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예견하진 않아요. 막연한 데다 정확하지도 않고 지나친 낙관주의에 일종의 무지와도 같은 황당무계한 미래상을 그리고 있어요. 이 노래를 부른 1980년대에 미래를 바라보는 현실적 상태가 아니었나 싶어요. 이 안에는 이상한 리얼리즘이 들어 있는데, 1980년대가 담보할 수 있는 리얼리즘이죠. 그 리얼리즘에 의거하면 막연할 수밖에 없겠죠. 민해경의 노래에는 시간도, 시점도 있어요. 기억은 개인적이고 사변적인데, 왜 시간은 그렇지 않을까요? 문득 유행가 안에서 접힌 시간을 봤어요. 유행가를 부른 시간을 포함해 다양한 시간을 생각하게 되었죠.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윤이상을 양혜규의 주관적 편집으로 배치했어요. 영원한 당신의 셀레브러티는 ‘로맹 가리’와 ‘뒤라스’라고 말한 적이 있죠. 이번에 이 두 사람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그들의 1910년부터 2018년까지 연대기가 편집되어 있던데요.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윤이상이 구조적으로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동시대의 사회적.정치적 격변기를 살아낸 두 인물의 만남에 주목하고 싶었죠. 식민주의와 냉전시대, 일련의 사회적 변혁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이어지고 그 이면의 드라마와 고통, 소외의 정서를 교차 편집하고 싶었어요. 특히 윤이상의 음악 세계에 주목하고 싶었죠. 2017년 유럽 음악계에서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기념했어요. 긴 침묵과 무지 끝에 그의 고국 한국에서도 드디어 그의 음악과 유산을 기념했죠. 이번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윤이상의 ‘영상’ 연주를 마련했어요. ‘영상’은 그가 1963년 북한 방문 당시 접한 강서대묘의 고분벽화 사신도에서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구현한 사중주예요.

전시장을 둘러싼 벽지 작업 ‘배양과 소진’은 독일의 그래픽 디자이너 마누엘 레더와 협업했는데,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 지역에 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했다고 들었어요. 이 벽지 작업에는 하이테크와 고대 역사가 뒤섞여 있죠. 사실 당신의 작업 대부분에는 고대 역사가 숨 쉬는 것 같고, 수공의 가치가 느껴지기도 해요. 벽지 작업은 일종의 순환 구조라고 생각했어요. 생성과 소멸이 있죠. 어떤 메커니즘도 에너지를 내기도, 잃기도 하는데 그런 것을 싸고 싶었어요. 너무 뻔하게 일루션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안에 둘러싸여 있으면 기분이 달라지거든요. 2011년에 처음 벽지 작업을 했고, 지금까지 많은 일이 일어났죠. 지금 새로운 벽지를 마이애미 전시에 준비하고 있어요. ‘배양과 소진’은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아 지역의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연구였어요. 옥시타니아 지역은 파리에서 멀기 때문에 이교도적 전통이 남아 있죠. 사실 실제로 어마어마한 대학이 밀집한 곳이고, 많은 산업체가 그곳에 모이고 있어요. 수술용 로봇을 개발하는 회사도 있죠. 제 벽지 작업에 등장하는 수술용 로봇은 옥시타니아 지역의 한 회사가 개발한 상품이에요. 하나이면서도 절단되어 있고 두 개이면서 연결되어 있잖아요. 다른 모티브로는 아주 일상적인 양파, 마늘, 불인데요. 태워서 정화하는, 소진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비극적 느낌이지만 강렬하고 강한 이미지를 상징해요. 불은 소진하는 동시에 정화하는 것으로 많은 문명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여러 소재가 한 공간에 배치됐을 때 어떤 효과를 내는지 궁금해 각양각색의 사물을 예측불허로 병치, 배열한 작업이에요.

작품 제목이 쉽게 와닿지 않아요. ‘배양과 소진’, ‘솔 르윗 동차’, ‘솔 르윗 뒤집기’, ‘소리나는 운동’은 물론이고 곧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의 ‘손잡이’까지. 그 배경을 알아야 이해될 것 같아요. 당신은 축지법을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죠. 어떤 순간에 작업이 잘되거나 자극이 되는지 저도 설명할 수 없어요. ‘무슨 뜻이냐’, ‘무엇을 느끼면 좋겠느냐’라고 많은 분이 질문하곤 해요. 신비로운 건 신비롭게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하고 분절시켜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침전해서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건 남겨놔야 한다고 봐요. 저는 존경하는 작가도 많아요. 새로운 곳에 가면 일차적으로 그곳 작가들한테 자극을 받죠. 그들만큼 통찰력 있게 무엇을 관찰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바닥부터 벽으로 접어 올린 장기판은 과거에서 현재로, 혹은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중간 지점’일까요? 빛을 반사하는 홀로그램 타공 시트지로 처리했는데, 이 장기판은 일종의 매트릭스라고 생각했어요. 장기판이 벽으로 스멀스멀 올라가며 바닥과 벽이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전 그 틈을 벌렸어요. 매트릭스, 웜홀, 환경 이런 걸 통해 과거와 현재, 여러 공간이 공존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죠. 과학적 합리성과 자본주의가 가져간 수공과 자연의 가치, 사변적 영역을 비롯해 야망의 역사가 폄훼한 원시 문화 같은 것들요.




왼쪽_뉴욕 현대미술관 재개관전에 선보일 대형 설치 신작 ‘Sonic Coupe Copper–Enclosed unity’(2019).

10월에는 뉴욕 현대미술관 재개관전을, 11월에는 마이애미 배스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치를 예정이죠. 2020년 여름에는 테이트 세인트아이브스 분관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고요. 이제 세계적 미술관에서 러브 콜을 많이 보내는 것 같아요. 어떤 기준으로 전시를 선택하나요? 전시를 고르는 건 늘 어려운 일이에요. 어떤 전시가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니 기준도 한 가지로 통일하는 데 무리가 있어요. 때로는 정반대의 선택을 해야 하고요. 올 초에 전시한 사우스 런던 갤러리 전시를 예로 들면, 지인들은 굉장히 좋아했지만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공간은 아니었어요. 뉴욕 현대미술관 재개관전처럼 큰 전시도 열지만, 반대로 내년 5월에는 필리핀 마닐라에서 전시를 할 예정이죠. 예산도 적고 어려움도 많지만, 전시해보고 싶은 곳인 데다 함께 일해보고 싶은 기관이기 때문이에요. 제겐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은지도 중요한 문제예요. 한번 일을 시작하면 제가 ‘지랄같이’ 구는 걸 아니까. 제 삶에서 일은 굉장히 큰 부분이고, 삶의 퀄리티를 좌지우지하죠.

당신은 어떤 ‘결핍’ 상태를 원하는 것 같아요. 이젠 너무 유명해져 일부러 ‘갈등 구조’를 찾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시도를 멈출 수 없나 봐요. 2년 전에는 프랑스 영화감독 에리크 보들레르와 함께 영화를 연출할 거라고 했죠? 결핍을 찾아다니는 건 아니고, 좋은 조건만을 찾지 않는 거죠. 요즘 주변에서 제게 딴지 거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말하는데, 제가 굳이 반박하는 이유는 뮤지엄에서 제 전시에 참여하는 스태프가 엄청 많아요.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게 순탄하지만은 않죠. 그리고 전 서민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요. 일부러 천박해질 필요는 없지만 과하지 않는 것에 대한. 영화는 제가 너무 바빠 아직 시작도 못했어요.

지난해 9월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볼프강 한 미술상’을 받았어요. 독일 근대미술협회는 당신을 ‘독특한 사상가’라고 했죠. “작업은 퍼포먼스 요소로 가득하며 정지 상태인 것은 없다”라고요. 또 뉴욕 현대미술관 큐레이터 스튜어트 코머는 “양혜규는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풍부한 문화적 참조를 조작적이고 감각적인 설치 작업으로, 모마 커미션작은 몰입할 수밖에 없는 전방위적 환경을 조성한다”라고 말했어요. 세계 곳곳에 여러 명의 양혜규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명감 없이는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요. 뉴욕 현대미술관 재개관전을 앞두고 ‘양혜규:손잡이’라는 전시를 통해 대형 신작을 선보이게 됐어요. 손잡이는 이동과 변화를 위한 물리적 촉매제이자 접촉점이죠. 몸체 표면 전체가 방울로 뒤덮여 미래적이면서 원시적 면모를 띠는 조각에 바퀴가 달려 있어 움직이기도 하고요. 올 하반기에만 9개의 전시가 기다리고 있죠. 지금 제겐 사명감이라기보다는 책임감이나 윤리 의식 같은 게 있어요.

가끔 쉬기도 하는지? 그저 현재와 미래를 달리는 사람 같아서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최근까지는 그것 외에 다른 옵션이 별로 없었어요. 성실한 제 모습이 가끔은 우악스럽게 보이기도 하죠. 만약 2주 동안 해외에 나가지 않고 베를린에서 스튜디오 생활만 할 수 있다면, 그때 사실 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안전한 상태일 거예요. 술은 안 마시고, 현대음악을 좋아해요. 전 인간관계가 힘들어요. 친구가 없거든요. 사적인 관계를 만들 시간이 없으니까. 며칠 후면 또 이스탄불에 가야 해요. 제가 느끼는 두려움요? 의존적으로 변하는 것과 죽고 싶을 때 못 죽는 거죠. 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
사진 박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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