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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9 SPECIAL

Art Players

  • 2019-09-11

한 편의 완벽한 게임을 아트로 완성하는 데는 확실한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기획 단계부터 마무리 효과까지 각각의 포지션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또 어떤 역사를 남겼는지 그들의 기록을 따라가봤다.

1 고전 게임의 시각디자인은 별도의 직군보다는 총괄 디렉터에 의해 이루어졌다. 왼쪽부터 ‘팩맨’, ‘테트리스’, ‘슈퍼 마리오’.

초창기 게임의 멀티플레이어
오늘날에야 화려한 그래픽이라는 수식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디지털 게임이지만, 초창기 게임의 시각 이미지는 단순한 기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컴퓨팅 기술이 지금 같지 않았던 시대의 게임에선 표현이 제한적이다 보니 관련 디자이너의 전문화도 이뤄지지 않았다. ‘팩맨’(1980)의 공식 크레디트에는 디자이너, 사운드 담당, 프로그래머만 이름이 올라와 있다. 디자이너 이와타니 도루(Toru Iwatani)는 단지 그래픽만이 아니라 게임의 컨셉, 규칙, 조건 등 전반을 다뤄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보다는 멀티롤에 가까웠다. 공전의 히트작 ‘테트리스’(1984)는 미디어 아트라고 해석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시각적 인터랙티브를 제공하지만 기획, 디자인, 프로그래밍 모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Alexey Leonidovich Pajitnov) 한 사람의 결과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슈퍼 마리오’(1985)도 미야모토 시게루(Shigeru Miyamoto)가 그래픽디자이너가 아닌 총괄 디렉터로서 캐릭터 디자인에 공헌했다. 게임의 중심이 비주얼이 아닌 규칙에 있기에 초창기 게임에서는 심지어 그래픽 대신 아스키 문자 텍스트를 기호로 사용한 형식도 인기를 얻곤 했다.





2 ‘호라이즌 제로 던’의 대형 기계 괴수 ’썬더죠’의 컨셉 아트(왼쪽)와 실제 구현한 게임 속 장면(오른쪽).

대규모 작업으로 완성되는 디지털 게임의 아트 비주얼
단순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게임 그래픽은 놀라운 시각 효과로 가득 차 있다. 이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게 분화한 제작 단계와 인력 투입을 거친다. 살아 움직이는 기계 괴수들의 세계를 강렬하게 표현해 찬사를 받은 SF 액션 게임 ‘호라이즌 제로 던’(2017)은 광활한 자연부터 인공 기계 괴수에 이르는 다채로운 환경을 섬세하게 구현하는 방대한 작업 끝에 탄생했다. 최초 기획 단계에서의 컨셉 아트가 플레이어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작동하는 가상의 공간이 되기까지는 근 80명의 아티스트와 엔지니어의 긴밀한 협업이 필요했다. 원화 작가는 전체적인 게임 컨셉과 세계관을 포괄하는 컨셉 아트 일러스트레이션을 작성해 게임 속 시각디자인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을 수행한다. 컨셉 디자인팀은 컨셉 아트를 기준으로 각각 게임 캐릭터, 적과 야수들, 건축물과 자연 배경 등을 좀 더 디테일한 아트워크로 만들어낸다. 여기까지가 2D 기반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이라면, 본격적으로 게임 속 이미지 작업은 3D 그래픽 환경 안에서 수행된다. 모델러는 주어진 원화를 기초로 3차원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작업은 단순히 외형을 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구체 관절 인형처럼 각 캐릭터가 프로그램에 의해 일정한 동작을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있도록 작동 범위와 관절을 구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테크니션과 아티스트의 경계를 아우르는 애니메이터는 완성된 모델에 걷기, 달리기, 웅크리기 등의 기본 동작을 추가해 모델에 동적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들판의 나무, 달려가는 주인공까지 완성된 여러 모델을 적절히 배치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연출팀이 하는 일이다. 이렇게 구성된 3차원의 게임 세계는 최종적으로 화면에 뿌려지면서 다시 한번 아티스트의 손을 거친다. 렌더링된 화면에 ‘때깔’을 입히는 것은 조명 디자이너의 업무다. 자연광과 인공 광원을 적절히 배치하고 전체적인 색감과 채도를 조절하면서 게임의 톤을 만들어낸다. 조명과 함께 후처리(after-effect)팀 이펙터의 손길이 마무리 작업에 포함된다. 일렁이는 물결, 반사되는 빛, 빠르게 움직이는 오브젝트의 잔상 구현 등이 이펙터가 처리해야 할 몫이다. 대형 게임 한 편이 보여주는 화려한 그래픽은 적지 않은 인력이 협업해야 완성할 수 있는 길고 지루한 과정을 거친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질감과 동작을 모든 시점에서 그려내야 하는 디지털 게임의 그래픽은 고정된 카메라와 정의된 움직임만을 담는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작업일 수밖에 없다.



3 게임 ‘스타크래프트’로 유명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미국 본사 사무실. ‘오버워치’ 개발팀이 세부 디자인을 하고 있다.

게임의 예술적 시도, 인디 게임과 비주얼 아트 게임
창의적이고 놀라운 성과는 인디 게임에서 두드러진다. 상업성과 예술성 모두 인정받은 ‘모뉴먼트 밸리’(2013)는 메인 디렉터이자 아티스트인 켄 웅(Ken Wong)의 구상에서 시작된 퍼즐 게임으로, 20세기 네덜란드 그래픽 아티스트 M. C. 에스허르(M.C. Escher)의 스타일과 미니멀리즘 양식에 퍼즐이라는 동적 해석을 가미하면서 게임 그래픽아트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년 GOTY(Game Of The Year) 최고의 비주얼 아트 부문 수상에 빛나는 어드벤처 게임 ‘저니’(2012)도 게임 속 시각 이미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저니’는 문자나 음성 같은 언어적 요소나 최소한의 인터페이스도 없이 오로지 시각 이미지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언어의 틀 밖에 만드는 서사의 사례로 꼽히는 ‘저니’는 게임사에 한 획을 긋는 미술적 성취로 거론되곤 한다. 현대의 많은 게임이 기술 발전과 대규모 자본에 힘입어 과거와는 사뭇 다른 수준의 시각 이미지를 게임 안에 구현하면서 디지털 게임 세계는 좀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공간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발전은 마치 회화가 사진으로 넘어오면서 재현력은 좋아졌지만 한편으로는 창작과 변용의 폭을 좁게 만드는 것 같은 역효과도 없지 않다. 오히려 소자본으로 만든 인디 게임에서 더 기발하고 놀라운 발상과 실천이 나오는 것이 한 예일 것이다. 기술 의존도가 높은 미디어 아트인 디지털 게임에서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말은 언뜻 듣기에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픽 기술업체가 늘 ‘좀 더 현실 같은’ 이미지 구현 기법을 소개하는 시장 환경 밖에서는 주어진 기술로 오히려 기존에 눈으로 보지 못한 새로운 이미지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음은 뜻깊다. 수용자의 의도와 행동에 따라 변화하고 반응하는 디지털 게임 방식은 규칙과 결합하는 새로운 공감각적 매체로 기능하며, 시각 이미지라는 개념을 보다 넓게 잡을 것을 권고한다. 게임 ‘GTA’(1997)가 그려낸 도시는 게임의 스크린샷 한 장이나 유튜브의 플레이 영상 한 토막으로 읽어낼 수 없는 공간성을 지닌다. 플레이가 아니면 경험해볼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의 비주얼 아트인 것이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이경혁(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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