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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9 SPECIAL

한국 예술이 ‘게임한’ 이야기

  • 2019-09-11

국내 미술계에서 게임의 문법을 차용한 전시는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정답, ‘예술이 아닐지도 모르는 증후군’과 싸워 고전하다가 ‘내러티브’와 ‘상호 소통성’이라는 필살기를 사용해 승리했다.

1 313아트프로젝트의 < borderless >전 전경.

내 10대의 8할은 게임이었다. 동네 형들과 했던 보드게임부터 친구들과 했던 오락실 게임, 명절에 친척 누나들과 했던 카드 게임까지 ‘대체 커서 뭐가 되려는 걸까?’라고 자문했을 정도로 나의 10대는 게임으로 시작해 게임으로 끝났다. 당연히 등짝도 많이 맞았다. 오락실에서 등골이 서늘하다 싶으면 늘 엄마가 내 뒤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언제고 쉽게 굴복하진 않았다. 귓불을 잡혀 밖으로 끌려나가는 마당에도 ‘인간이 지닌 미덕과 욕망이 혼연일체가 된 가장 매력적인 예술이 게임’임을 설파하며 구한말 우리 예술을 지킨 민족 투사처럼 온몸으로 신음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각, 이 글을 쓰는 나는 몹시 심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니, 게임이 현대미술이라니! 사실 현대미술의 확장적 측면에서 볼 때 게임이 예술의 한 범주를 차지하게 된 건 놀랄 일도 아니다. 애들이나 보던 만화가 예술가들의 예술 담론을 위한 ‘텍스트’로 바뀐 걸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해외에선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비디오게임과 보드게임, 카드 게임, 퍼즐, 스도쿠같이 ‘규칙이 필수’인 놀이가 조각과 페인팅, 설치 작품 등으로 변신해왔다. 이 경향은 2011년 미국의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NEA)이 2012년 예술 프로젝트 보조금 분야에 비디오게임 (PC 게임과 콘솔 게임을 아우르는 개념으로서)을 포함하며 두드러졌고, 2013년 3월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 The Art of Video Games >전을 열어 80여 개의 비디오게임을 소개한 걸 기점으로 눈에 띄게 늘었다.





2,3 안성석 작가의 ‘Open Path-관할 아닌 관할’(스틸 컷).

게임을 예술로 바라보기 시작하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도 게임을 예술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것은 과거 박현웅이나 권재홍 같은 지역 작가들이 퍼즐과 보드게임의 단순한 놀이적 측면을 작품화한 것과 달랐다. 게임이 지닌 내러티브와 상호 소통성의 관계를 더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전시가 등장한 것이다. 시작은 2012년 1월 313아트프로젝트와 넥슨이 함께 기획한 전시< borderless >였다. 아니, 그런데 넥슨이라고? 그렇다. 국내 미술계에서 게임을 본격적인 전시 주제로 들여온 건 의외로 비디오게임 개발자들이었다. 는 넥슨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이은석과 김호용, 한아름, 김범 등 6인이 작가로 분해 참여한 전시다. 이들은 게임 ‘마비노기’의 캐릭터와 배경, 세계관을 개발하며 느낀 문제의식을 20여 점의 작품으로 소개했다. 전시장엔 캐릭터를 픽셀 아트로 표현한 충분히 ‘짐작 가능한’ 작품도 있었지만 순수미술 방식인 페인팅이나 조각 작품도 있었다. 당시 한아름 작가는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후 이 전시를 준비하며 거의 처음으로 유화를 다뤘다고 고백했다. 한데 지금 생각해도 그 이유가 재미있다. “게이머들조차 게임을 하위문화라고 생각하는데, 순수미술 매체를 통해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이런 코멘트는 참 곰살궂다. ‘게임=예술’이라는 이전에 없던 등식을 다시 한번 들춰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시의 비평문을 쓴 현시원 큐레이터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담대했다. “기존의 구획된 예술 장르로 참여 작가들의 예술을 포섭하는 건 흥미롭지 않다”며 이들을 “동시대 대중문화 최전선에서 내일의 시각 문화를 만들어내는 프로젝트 생산자이자 경계의 작가들”이라고 평했으니 말이다. 미안하지만 이는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이때부터 세상이, 미술 신이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강정석 작가의 <게임Ⅰ>전 전경.

2013년 11월 서울 종로의 프로젝트 공간 ‘워크온워크 오피스’에선 안성석 작가의 < Open Path-관할 아닌 관할 >전이 열렸다. 안성석은 국내 미술계에서 현역 작가로는 처음으로 비디오게임 문법을 작품에 사용했다. 당시 전시에 소개한 작품 ‘Open Path-관할 아닌 관할’에 관한 복잡한 내용을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설치된 ‘접속 터미널(PC)’을 통해 작가가 만든 가상 세계에 발을 들인다. 실제로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 속 가상 세계엔 해저 공간부터 송신탑, 미국 대사관 같은 장소가 등장한다. 관람객은 게임 속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찰로 변신한 작가의 수많은 분신과 마주한다. 흥미로운 건 이 부분. 관람객은 여느 PC게임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은 작가의 세계에서 어느 순간 주체가 아닌 객체로 작용한다. ‘슈퍼 마리오’로 치면 주인공 ‘마리오’가 아닌 악당인 ‘버섯’이 되는 것. 쉽게 말해 작가의 분신인 경찰이 주인공이 되고, 관람객은 NPC(Non-Player Character: 게임에서 프로그램이 조작하는 자동화된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우리의 자아가 주객으로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되는 이 전시는 미술에 비디오게임 시스템을 적극 활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안성석 작가는 비디오게임의 기술과 체계로 작업한 이유에 대해 “다른 매체와 달리 프로그램을 통해 전지적 시점에서 모든 걸 컨트롤할 수 있고, 그 덕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시에 “미술계가 워낙 보수적이기에 처음엔 ‘웬 게임’이냐는 비아냥도 많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가 지금도 게임을 소재로 작업하냐고? 당연한 소리. 그는 가상현실과 게임의 픽션 구조를 작품에 적극 활용해 여전히 나와 우리, 세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원론에 충실한 생각의 확장
물론 게임의 문법으로 작업한다고 그 재료가 비디오게임에만 국한한 건 아니었다. 2016년 5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앤드앤갤러리에선 퍼즐 게임 큐브와 스도쿠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지희 작가의 < Puzzle People Play>전이 열렸다. 전시엔 외형은 일부 변형시켰지만 색과 면의 움직임은 두 게임의 규칙을 따른 인터랙션 미디어 아트 ‘Octa’와 ‘Chromagic’ 등이 소개되었다. 작품은 30초 이상 관람객의 명령이 없으면 작품을 감싸고 있는 LED가 작동해 빛의 향연을 만들었다. 작가는 당시 퍼즐을 만들고 푸는 관람객을 위해 작품을 조종할 수 있는 태블릿 앱까지 개발했다. 이는 작가가 얼마나 관람객을 ‘플레이어’로서 집중할 수 있게 신경 썼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지희 작가는 작가 노트에도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네덜란드 철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의 말을 인용해 “놀이하는 사람(Homo Ludens)을 기다린다”고 썼다. 같은 해 7월 백남준아트센터에선 비디오게임을 전면에 내건 대규모 그룹전 < 뉴 게임플레이 >가 열렸다. 이 전시는 비디오게임을 소재로 한 작업과 작가들이 개발한 게임까지 소개했다. 빌 비올라(Bill Viola)와 제프리 쇼(Jeffrey Shaw), 조디(Jodi), 펑멍보(Feng Mengbo), 앨런 콴(Alan Kwan) 등 34인(팀)의 작가가 참여해 45점의 작품을 발표했으니 규모부터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독일 ZKM의 베른하르트 제렉세(Bernhard Serexhe), 슈테판 슈빙겔러(Stephan Schwingeler)와 함께 전시를 기획한 박혜진 큐레이터는 유독 한 섹션에 대해 선명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6개의 섹션이 있었지만 정치적 이슈를 다룬 ‘게임과 사회’에 관람객이 많이 몰렸어요. 사회의 무거운 이슈를 게임으로도 다룰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거죠. 어떤 게임은 관람객이 일상에서 정치적 구조와 그 중요성을 보다 잘 인식할 수 있게 보조 역할을 하기도 했거든요.” 박혜진 큐레이터가 언급한 게임은 독일의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비디오게임 프로그래머 옌스 스토버(Jens Stober)가 만든 ‘1378km’다. 이 게임에서 관람객은 1976년 동독과 서독의 다양한 경계 지역으로 이동해 동독 국경 경비 또는 동독 난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독일 접경 지역 내부를 재현한 시나리오 속에서 일인칭 슈팅 게임 형식으로 그곳의 상황을 경험하는 것. 단, 게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상식을 뒤엎는다. 절대로 총을 쏘지 않는 거다. 만약 국경 경비의 역할을 맡아 난민에게 총을 쏘면 관람객은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져야 한다. 관람객이 직접 분기하는 서사를 겪으며 사회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는 게 이 게임의 목적이다.





5 백남준아트센터의 <뉴 게임플레이> 전에는 34인(팀)의 작가가 45점의 작품을 소개했다.

게임으로 사회현상을 잡아채다
그해 11월, 두산갤러리에서도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다. 강정석 작가의 개인전 <게임 Ⅰ>이다. 전시는 작가가 인터넷을 뒤져 찾거나 직접 만든 영상과 사진 등을 다뤘다. 전시장엔 ‘게임 Ⅰ’이라는 가상의 비디오게임을 ‘스피드런(한 게임을 최단 시간 안에 처음부터 끝까지 주파하는 개인 최고 기록)’ 방식으로 클리어하는 영상이 상영됐다. 하지만 이는 관람객이 직접 조작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를 ‘실제 게임’으로 명명했다. 키보드나 마우스의 ‘조작’으로 진행한 옛 게임 방식이 점점 인터넷 게임 방송을 ‘보는’ 것으로 전환되고 있는 현상을 다뤘기 때문이다. 강정석 작가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기술의 발전 덕에 과거 모니터 안쪽에만 있다고 믿었던 가상 세계가 점점 현실과 ‘병행’되거나 ‘포섭’하게 됐고, 이 상황에서 발생한 존재론적 변화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는 게임이란 소재를 작품 전면에 드러낸다. 오늘날 기술의 발전을 대중과 가늠하기에 게임을 매개체나 형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알고 싶을 땐 비디오게임을 이루는 기술이나 게임의 형식, 널리 알려진 플레이의 양상을 들여다보면 미술가로서 재미있는 지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요.” 2017년 6월엔 제주도 탑동의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1에서도 볼만한 전시가 있었다. 사회적 이슈에 가상현실 요소를 섞어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구축해온 김웅현 작가의 <헬보바인과 포니>전이었다. 전시장엔 각각 소와 유니콘을 설치 작품으로 형상화한 ‘헬보바인’과 ‘헬포니’가 소개됐다. ‘헬보바인’은 1998년 정주영 회장이 소 500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던 실제 사건을 참고했다. ‘소’라는 이미지가 방북 외교라는 역사와 오늘날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뒤섞여 현재 어떠한 모습으로 상징되는지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헬포니’는 2011년 북한이 고구려 동명왕이 승천할 때 탔다는 전승 설화 속 동물 기린마(麒麟馬)가 살았다고 전해지던 굴과 동명왕이 밟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조천석(朝天石)을 표시한 돌을 발굴했다는 보도가 해외 매체에 ‘유니콘’으로 오역되어 기사화되며 웃음거리가 된 사건에 바탕을 두었다. 이는 엄연히 말하면 게임을 전면에 내건 전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글에 소개한 건 ‘헬보바인’이 그 유명한 게임 ‘디아블로’ 속 학살의 대상인 소를 중첩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점점 어려워지는 오늘날의 세계는 이처럼 작품이 게임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지, 게임이 작품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건지 알아내는 일도 쉽지 않다.





6 김웅현 작가의 ‘헬포니’.
7 디아블로 게임 속 학살의 대상인 소 이미지를 차용한 김웅현 작가의 ‘헬보바인’.

상호 소통의 아이콘으로 발전 중인 우리의 게임
나는 ‘예술’을 정의하는 많은 말 중 ‘감각과 감정을 자극하는 일련의 의도된 과정’이란 표현을 좋아한다. 이를 쉽게 풀면 ‘잘하기 위해 센스를 발휘하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을 이용하면 모든 분야가 ‘예술’이 된다. 결코 특정 분야가 선점할 수 있는 고정된 가치가 아니란 얘기다. 아무도 이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데, 게임은 실제로 ‘이미지, 새로운 경험, 몰입’이라는 예술의 필수 요소까지 갖추고 있다. 그간 국내에서 개최한 게임과 관련한 주요 전시도 이러한 예술의 필수 요소를 탑재한 채 이어져왔다. 초기엔 많은 전시가 ‘예술이 아닐지도 모르는 증후군’에 노출되었으나, 시간이 흘러 내러티브, 상호 소통성이라는 게임에 내재된 주요 속성을 드러내며 관람객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그럼 이쯤에서 당신은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을 거다. “앞으로 게임은 미술계에서 어떤 지점을 차지하게 될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단, 소싯적 오락실에서 지키려 한 어떤 신념에 의해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질수록, 인간이 할 수 있는 예술의 모든 형식과 표현이 모여 이루어진 게임이라는 결정체는 앞으로 더 진화할 거라고. 미디어 아티스트 사이먼 페니(Simon Penny)가 지적한 “영화가 20세기를 규정한 것처럼 게임이 곧 21세기를 규정할 것이며, 우리는 언젠가 ‘모바일 게임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릴 작가를 만날 것”이란 말을 나는 확신한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이영균(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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