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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10

Part.4 SPECIAL: Game and Art

인간이 무엇을 던지고 받는 행위, 유희를 즐기는 모든 것은 미디어 아트뿐 아니라 게임의 범주 안에도 있다. 무엇이 미디어 아트고, 게임과 어떻게 다르며, 또 반드시 구분해야 하는가? 만약 누군가 같은 의문을 던진다면 순수 회화부터 새로운 예술의 맨 앞에 선 미디어 아트 연구로 조용히 파문을 던지는 이현진에게 그 경험을 들어보자.

1 최근 작업 중인 ‘성학십도 VR’ 프로젝트 중, 서명도(10개의 그림 중 두 번째 그림) 하도 모습.

이현진 Hyunjean Lee , 모니터 앞의 오랜 목격자
인터뷰 요청을 받고 우려하진 않으셨는지. 온라인 게임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들었거든요. 그간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이력이 오래되었는데도 ‘게임을 만든다’는 오해를 종종 받나요?
저는 게임을 많이 플레이하는 사람도 아니고 가족이 게임하는 것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에요.(웃음) 작품에 RPG(Role Playing Game)를 게임을 다루지는 않아요. 단지, 학교에서 게임과 미디어 아트, 게임 디자인 등을 주제로 많이 다루긴 했지만요. 몇 년 전부터 미디어 아트 작업을 할 때마다 현대미술과 구현 기술뿐 아니라 다방면의 이론까지 압축해 알아야 했습니다. 꽤 오랫동안 그 부분을 전달하기 위해 수업도 하고 관련 논문도 써왔으니까요. 교육용 게임도 만들고요. 그래서 인터뷰를 청하셨겠지요?

일반 관객의 눈에는 미술관 전시 내용 중 미디어 아트가 있다면 일단 흥미롭게 여기곤 합니다. 미디어 아트와 게임은 참 많이 닮아 보이고요.
미디어 아트라는 게 인터랙션(상호 반응)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게임이 포용하는 부분을 많이 다루죠. 예컨대 게임이 성립하는 요소 중에는 오디언스(관객)가 있습니다. 오디언스는 작품과 플레이어의 관계뿐 아니라 그 안에서 플레이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포함합니다.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관계도 필요하고요. 아케이드 게임에서는 플레이하는 모습을 제삼자가 볼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게임 현장을 바라보는 오디언스가 모두 중요하거든요. 그런 부분을 잘 알아야 합니다. 미디어 아트와 관련이 있는 이론이죠.

먼저, 사람마다 게임에 대한 이해가 참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주사위 던지는 것도 게임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RPG만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저는 아트 게임 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제 정의 안에서는 게임은 2010년대 들어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대형 기획사와 플랫폼에서 즐기는 게임과 참여 인구가 증가하다 보니 창작자들은 ‘인디 게임’이라는 걸 내놓았고요. 여기에서 창작자는 스스로를 게임 메이커라고 하지 않아도 돼요. 창작자인 내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게임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하면 주변에 적절한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뭔가 만들기 시작하거든요. 과정과 컨셉 자체는 예술에서 보는 ‘작업(artwork)’과 다를 게 없습니다. 화가나 조각가가 작품을 만들 때 취향이나 동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런 것 있죠? 아트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향성은 비슷합니다. 그렇기에 게임 형태를 띤 미디어 아트가 어떤 장르보다 사람에게 울림도, 영향력도 큰 것 같아요. 계속 반복해봐야 느낄 수 있는 게 아니고 한번 체험해보면 바로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고, 말 그대로 꽂힐 수 있죠. 그걸 통해 또 다른 생각을 이어갈 수도 있습니다. 게임을 체험한 사람들은 소위 인터랙티브 아트라고 이름 붙인 것보다 깊이 있고 좋은 느낌을 받아요. 저는 그 과정을 모두 전할 수 있는 게임을 아트라고 생각해요.





2 이현진 작가는 현재 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을 비롯해 다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사전 정보 없이, 가정용 게임기 위(wii)로 영상을 비춘 곳을 향해 뭔가 던지는 시늉을 하게 했던 ‘물수제비 던지기’(2009) 같은 작품을 보면 ‘어? 게임이다!’라고 반응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그런 반응은 어색해요. 속으로는 ‘어딜 감히!’ 이럴 수도 있어요.(웃음) 제 작업 중 ‘어 비드볼 테이블’(2003)이라는, 움직이는 스크린 작품이 있었어요. 스크린을 바닥에 띄우고 천장에서 프로젝션으로 영상을 비추면 관객은 스크린을 양손으로 쟁반처럼 잡아 기울일 수 있었죠. 기우는 대로 구슬도 흘러가고 음악도 나오고. 아주 단순하죠? 다음에는 화면에 사람을 앉혀놔요. 그 상태에서 바닥을 기울이면 사람이 코너로 떨어져요. 사람을 갖고 노는 거죠. 그런데 관람객은 ‘이거 게임이네, 재밌네!’ 하고 말하는 거예요. 저는 작품을 게임으로 만든 게 아니니, 조금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는 작품에 많은 개념을 부여한 채 심각하게 작업했는데, 사람들이 단순히 재미로 받아들이는 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내가 어떻게 하면 관객도 영상 안에 개입하는가, 무엇을 바꾸는가 고민하면서 어쩌면 한 차원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만든 거였는데 말이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좋은 반응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엄밀히 말하면, 저는 게임을 만든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엄연히 게임 전문 개발자가 존재하니까요.

서양화에서 공대 박사과정을 거쳐 미디어 아트로 넘어오셨죠. 지금은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내 영상예술학을 지도하며 서로 다른 영역에서 온 사람들과 융합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20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셨는데, 미디어 아트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만약, 누군가 미디어 아트에 접근하고 싶다면 그 전에 공동 작업의 개념을 꼭 이해했으면 해요. 저처럼 파인 아트 출신은 작업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요. 작품과 자기 이름이 들어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저도 한동안 공동 작업이 익숙지 않았어요. 하지만 미디어 아트는 어떤 분야보다 공동 작업이 필요합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흐름에 맞게 여러 사람과 힘이 닿는 대로 빨리 만들어서 보여주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작품을 나 혼자 다 했다는 뿌듯함만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런 깨달음이 필요하죠. 작업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최근에는 적어도 비주얼 구현에 영상, 그래픽, 프로그래밍을 담당할 몇몇 멤버가 꼭 필요하거든요. 미디어 아트를 하는 사람 대부분은 어떤 편견을 깨기 위해 연구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부터 제가 생각한 ‘미디어 아트를 누가 하는가?’에 대한 답은 ‘하나의 매체에 정착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회화에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고, 새로운 방식을 계속 펼쳐도 끊임없이 탐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캔버스를 벗어나지 않겠죠. 그런데 자기가 공간을 드러내려는데 내게 맞는 미디어가 무엇인지, 회화와 비디오, 사진과 설치 등을 넘나들며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요. 미디어와 미디어 사이에 담긴 맥락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결국에는 떠돌다 여기까지 오는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떤 작가고 무엇을 하는지 고민하는 학생에게도 그것이 바로 정체성이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3 바다의 숨소리, Media Installation, 2014
4 물수제비 던지기 (WiiArts Project), Interactive Installation, 2009

작가님도 미디어 아트를 하게 된 계기가 비슷했나요?
저는 화가가 꿈이었어요.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면서도 움직임을 담아내는 데 관심이 많았어요. 평면인 캔버스를 벗어나고 싶었죠. 그래서 에폭시처럼 부풀어 오르는 재료로 표현하기도 했고요. 저는 개념화한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를 겹쳐보며 그 관계를 탐색한다든가, 실제로 달리는 사람과 픽토그램으로 고정된 이미지를 볼 때 생기는 감각의 차이를 고민했습니다. 평면을 고민하다 ‘내가 왜 회화에서 이걸 고민하고 있지?’ 싶었고, 자연스럽게 스크린과 영상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맺히거나 투사되어 만들어지니, 여전히 평면인 거예요. 그래서 나름대로 스크린에 집중하되 시간성에 대한 해결법으로 영상을 찾아봤고, 자연스럽게 영상이나 영상 설치를 하게 됐어요.

캔버스를 벗어나 자유를 느꼈나요?
훨씬 자유로워지기는 했죠. 당시 제 영상 작품은 전시장 바닥부터 시간성을 가진 요소가 있었어요. 흐르는 폭포나 움직이는 버드나무가 있는 화면에 관람객을 머물게 하려 했는데, 어느 정도 마음먹은 대로 나왔어요. 그다음 단계로 관객이 반응하면 영상도 반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 인터랙티브로 넘어가게 된 계기고요. 일종의 발전적 과정의 하나인데, 겪어보니 제가 생각한 거랑 많이 달랐어요. 인터랙티브는 말 그대로 상호 반응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 엔지니어링이나 프로그래밍, 코딩, 컴퓨터 사이언스 쪽에 가까워요. 컴퓨터로 코딩하고 전선을 연결하고 LED 센서 작업을 하는 거예요. 어쩌면 기존의 미술과 멀어지면서 캔버스에서 모니터로 대체됐으니 작품 스케일은 오히려 줄어들었지요. 좋으면서도 참 힘들었어요.

목적이 있는 배움은 힘들죠. 제 눈에는 미디어 아트가 흐르는 물에 떠다니는 배 같아 보입니다.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흐름이 빠르고, 그걸 담는 하드웨어도 발전 속도가 빠른 듯해요.
맞아요. 미디어 아트뿐 아니라 현대사회는 정의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죠. 너무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이쪽에 심취하면 어느새 그 전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흘러가고, 잡으려 하면 또 다른 곳으로 뻗어가는 순간의 반복인 것 같아요. 미디어 아트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그걸 만드는 소프트웨어도 계속 변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제가 학교에서 게임 VR을 공부할 때는 파워디렉터와 링고 프로그램을 썼는데, 졸업하고 나니 프로세싱으로 바뀌었어요. 플랫폼 기반으로 계속 바뀌기 때문에 뭐 하나를 마스터한다고 해서 안도할 수 없어요. 구상한 것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파악해야 해요. 끝없는 유행 속에서 나는 무엇을 중요시하며 어떤 관점을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네요.
게임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미디어 아트 쪽에서는 자칫 기술에 함몰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게임 속 인터랙션 같은 최신 기술을 써보고 싶어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그보다 먼저 ‘왜 인터랙션이 필요한지’ 생각해야 해요. 그저 인터랙션의 행위나 기술이 새롭고 재미있어 보여 시작해야겠다는 기획 초반의 욕구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이 기술을 왜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답을 놓치고 시작한 작업은 아류로 흘러갈 수밖에 없죠.

플레이 메이커스 랩의 디렉터로도 활동 중입니다. 게임 형식을 빌린 프로젝트를 내놓고 있죠.
지금 몸담고 있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생들과 만든 팀이에요. 외부 펀딩을 받아 고정적으로 함께하며, 현재 연구원은 아홉 명입니다. 요즘은 VR 프로젝트를 장기간 진행하고 있는데, 지난 2년간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를 VR로 만들고 있어요. 동양철학 개념의 시공간화를 구현하고 있죠. 국제퇴계학회 회원을 모시고 시연회도 해봤고요. 나이아가라 폭포, 마이클 잭슨의 공연장, 유학의 경어 같은 걸 어떻게 표현할지 연구하고 있어요. 앞으로 3년, 총 5년 정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럼 요즘 관심사는 철학인가요?
수년 전 작업할 때는 후기구조주의 철학 쪽으로, 그 당시 포스트모던 철학이라 불리는 자크 데리다나 자크 라캉에게 심취하곤 했습니다. 나름 작업하면서 고민하던 개념의 간극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죠. 지금도 저는 관심사가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동양 철학까지 하고 있어요. 다만 전처럼 출품 개념이나 전시를 위한 것이 아니고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프로젝트이기에 좀 더 집중하는 점이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요 몇 년 개인 작업이나 초대전은 응하지 않고 있어요. 누구든 미디어 아트를 하다 보면 생각의 갈래가 너무나 많아질 거예요. ‘내가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고도 해요. 저는 이게 우리의 정체성이다 싶었어요. 적어도 미디어 아트는 정의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죠.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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