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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9 FEATURE

이토록 치밀한, 랜덤 인터내셔널

  • 2019-09-17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이것을 ‘현대판 모세 체험’에 비유했고, 한 미술 평론가는 ‘예술이 된 기술’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아트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작품 ‘레인룸’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 최초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레인룸’을 선보이게 된 랜덤 인터내셔널을 만났다.



‘레인룸’은 관객이 쏟아지는 비 사이를 걸어도 젖지 않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한다. 이 작품의 시작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물을 이용해 디지털 정보를 시각화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고민을 거듭하다 특정 공간에서 액체를 방출하는 것을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레인룸’이다. 30초 만에 구상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까지 꼬박 4년 걸렸다. 2012년, 런던 바비칸 센터 커브 갤러리에서 첫선을 보였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상한 것을 현실화하기까지 과정이 어땠는가? 처음 ‘환상’에 가까운 아이디어를 구체적 경험의 산물로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며 개념을 세우고 발전시켰다. 개념이 서고 구체적 목표가 생기자 다양한 버전의 레인룸 프로토타입을 제작했다. 우리는 우리가 뭘 모르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기에 레인룸을 구체화해줄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소트프웨어 디자이너와 산업 디자이너, 구조 공학자와 자동차 기술자, 토목 기술자, 수질 전문가와 수처리 전문가 등 정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레인룸에 참여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전체가 필요한 것과 같다.
인간 행동을 연구하는 인지 과학자 필립 버나드와도 협업했다. 인지 과학자를 참여시킨 것 자체가 레인룸이라는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작품을 보는 관객의 즉각적 반응, 즉 행동 양식에 주목하고 이를 실험하는 형태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필립 버나드는 8~9년 전 우리 작업에서 인지 행동을 어떻게 접근하고 다뤄야 할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주었다. 이후 우리는 인간 행동 양식의 다양한 측면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분야의 과학자와 협력했다. 특정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즉각적 반응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작품을 통해 사람들은 특정 상황과 조건에서 직관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자신의 모습을 느끼고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비가 쏟아지는 상황과 그 속에 놓인 관람객이 상호작용하는 레인룸 같은 작업을 우린 굉장히 좋아한다. 이것이 우리가 예술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8월 15일부터 내년 1월 27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 1전시실에서 진행하는 전. 전시 작품 ‘레인룸’에는 전시실에 들어선 관객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프로그램화하는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적용했다. 여러 대의 3D 추적 카메라가 관객을 촬영해 위치 지형도를 픽셀화하면, 빗물 배출구를 제어하는 장치가 관객이 서 있는 위치에만 비를 내리지 않게 한다. 관객은 쏟아지는 비 한복판에 서서 강렬한 빗소리를 듣고도 옷이 젖지 않는 초현실적 경험을 하게 된다.

레인룸뿐 아니라 ‘Swarm Study’ 시리즈, ‘Future Self’, ‘Self and Other’도 관객의 참여가 필요한 독창적 작품이다. 랜덤 인터내셔널이 성취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무형의 것과 물리적인 것, 디지털과 실제, 기계와 인간 사이에 인터페이스, 즉 매개체로서 작품을 선보이길 좋아한다. 때론 반직관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우리 작품에서 관람객은 지극히 개인적 참여를 통해 기계와 인간, 디지털과 실제, 유형과 무형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양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랜덤 인터내셔널의 역사도 벌써 14년이 되었다. 어떻게 만들게 되었고, 랜덤 인터내셔널이란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만난 하네스 코흐와 나(플로리안 오트크라스)는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함께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작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가 예전에 했던 개별 작품을 들여다보면 장르 구분 없이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굉장히 무작위적(random)이다. 영국에 사는 독일인이라는 공통점도 있어 ‘랜덤’에 ‘인터내셔널’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개별 작업과 비교해 아트 그룹 공동 작업의 장점은 무엇인가? 뭔가 야심 찬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공동 작업이 개별 작업보다 유리한 것 같다. 함께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목적이 더 크고 뚜렷해지기도 한다. 또 어떤 아이디어가 집단 분석이라는 힘든 테스트를 거칠 때, 보다 빨리 단단해지고 정교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창의적 작업 과정에서 집단적으로 힘을 모아 에너지를 쏟을 때 아무래도 목표에 도달하기 쉽다. 그러나 수준 높은 작품이 모두 그러하듯, 예술이 험난한 과정을 거친 아티스트의 자아실현에서 비롯된다는 점은 개인 작업이나 공동 작업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현재 랜덤 인터내셔널이 주목하는 이슈나 경향은? 자율적 디지털 영역이 인간의 환경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많다. 특히 그것이 주변과 충돌해 부작용이나 불협화음을 일으킬 경우 매우 걱정된다. 인류는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보다 더 인간을 잘 알고 대응하는 것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런 현실을 직시한 우리는 급변하는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그런 고민 끝에 랜덤 인터내셔널이라는 아트 그룹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예술적 성취나 목표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요즘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인류는 어떻게 기술적 진보가 낳은 물리적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할 수 있을까?’, ‘인류가 개발한 기술적 진보가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퇴행을 초래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기술에 의한 퇴행 또한 인류의 진화 과정 중 하나로 봐야 할까?’, ‘기술과 인간, 환경 등 왜 이런 것이 지금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는가?’ 분명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다. 그럼에도 자꾸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리고 작품 활동을 통해 세상 사람에게도 묻고 싶다. 이것이 바로 랜덤 인터내셔널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목적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작품이나 프로젝트가 있는지? 레인룸을 경험한 이라면, 랜덤 인터내셔널의 또 다른 작품을 한국에서 보고 싶어 할 것 같다. 확실한 모양(shape)이나 부피(volume)가 없는 물질을 조각적 형태(sculptural forms)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양하게 실험하며 연구하고 있다. 프로젝트명은 ‘Particle Works’다.

About Random International
2005년, 영국 왕립예술학교 출신 하네스 코흐(Hannes Koch)와 플로리안 오트크라스(Florian Ortkrass)가 결성한 아트 그룹 랜덤 인터내셔널은 현재 런던과 베를린에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기술과 인간의 상호 반응을 보여주는 디지털 인터랙티브 아트를 선보인다. 산업 디자이너, 소프트웨어 디자이너, 드라마 작가와 셰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스튜디오의 아티스트로 함께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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