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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9 LIFESTYLE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을 걷다

  • 2019-08-29

같은 장소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 여행 작가이자 노마드 워커 이정미는 여행지에서 영화에 등장해 여운을 남긴 장소를 찾아간다. 리스본에서 보낸 한 달 동안 걸었던 곳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스쳤던 공기의 밀도가 높은 풍경들. 영화 속 주인공이 책 한 권에 이끌려 리스본을 여행했듯, 찬찬히 거닐기 좋은 리스본을 소개한다.



수년째 이어오고 있는 취미가 있다. 바로 감명 깊게 본 영화의 촬영지를 찾아다니는 일. 여행 전 미리 스틸 사진을 인화해 떠나 실제 촬영지를 배경으로 영화 속 장면을 함께 담아 온다. 3인칭 관객의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변화하는 순간의 근사한 기분은 이 취미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작년 겨울 포르투갈로 한 달 살기를 떠나면서는, 고전문헌학 교사로 일하며 무료한 삶을 살던 중년 남성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얻게 된 책 한 권에 이끌려 리스본을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촬영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가 작가 아마데우의 흔적을 좇아 리스본을 누볐듯, 나도 그레고리우스의 발자국을 따라 리스본을 걸었다.




프린시페 플라티론 부티크 : 그레고리우스가 머물렀던 호텔
그레고리우스가 머물렀던 실바 호텔 건물은 리노베이션을 거쳐 ‘프린시페 플라티론 부티크(Principe Flatiron Boutique)’라는 이름의 B&B로 운영되고 있다. 정면의 창문은 왜인지 사라져 있었지만, 꽤 커다란 차도 덜컹거리게 만드는 나선형의 돌길은 여전했다.




아우구스타 거리 195번지 : 셔츠를 구입한 양장점
의문의 여인이 남기고 간 책과 빨간 코트만 달랑 손에 들고 리스본으로 떠나온 그레고리우스가 여행 초반부 여벌의 셔츠를 구입하기 위해 들른 양장점. 아우구스타 거리 195번지에 위치해 있다. 원래 영화에서처럼 양장점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나, 문을 닫은 듯 했다. 맞은 편의 에그타르트 맛집 ‘나타 드 리스보아(Nata de Lisboa)’에 들를 때마다 예의주시 했지만 열려있는 날이 없었다. 굳게 닫힌 상점 앞에선 두 눈을 모두 잃은 거리의 악사가 매일같이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었다.




알칸타라 전망대 : 포스터 속 그곳
바이후 알투 지구의 알칸타라 전망대는 리스본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다. 그레고리우스가 벤치에 걸터앉아 책을 읽던, <리스본행 야간열차> 포스터 속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숙소가 근처에 있었던 터라 밤낮으로 전망대를 지나곤 했는데,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중년의 남성을 발견할 때마다 자연스레 그레고리우스가 떠올랐다.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 : 아마데우가 운영하던 병원이 있는 장소
바이후 알투 아래쪽 치아두 지구에 위치한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 또한 <리스본의 야간열차>에 자주 등장한다. 아마데우가 운영하던 병원 건물이 이곳에 있기 때문. 과거 백작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며, 지난 2017년 공사를 거쳐 5성급 럭셔리 호텔인 ‘베라이드 팔라씨오 드 산타 카타리나(Verride Palácio de Santa Catarina)’로 재탄생했다. 공사 당시 촬영지가 사라질까 걱정하던 영화 팬도 있었지만, 오히려 영화 속 장소에서 하룻밤 머무를 기회가 생긴 것.




산타 아폴로니아 역 : 그레고리우스와 마리아나가 작별 인사를 나누던 곳
리스본에서의 여정을 마친 그레고리우스가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기 위해 찾은 기차역. 천장의 모양부터 시계의 위치까지 변함이 없어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한 기분을 한껏 누릴 수 있다. 리스본에서의 시간은 과연 그를 얼마만큼 변화시켰을까? 그는 결국 리스본에 남았을까, 베른으로 돌아갔을까? 그레고리우스와 마리아나가 마주 보고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영화가 끝난 뒤의 이야기를 잠시 상상해보았다.

 

더 방문해 볼 만한 촬영지

프라제레스 공동묘지
아마데우가 잠든 장소.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천재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사망 후 묻혔던 곳이기도 하다. 페소아의 묘는 그의 사후 50주년 되던 해인 지난 1985년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이장되었으며, 현재 프라제레스 공동묘지에는 생전 페소아의 유일한 연인이었던 오펠리아가 잠들어 있다.

헤페또리오 두 세뇨르 아벨
아마데우의 절친 조지의 약국이 있던 곳은 현재 이탈리안 레스토랑 ‘헤페또리오 두 세뇨르 아벨(Refeitório do Senhor Abel)’로 운영되고 있다. 다른 촬영지와 달리 시내 중심에서 차로 약 20분가량 떨어져 있지만, 외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방문할 가치는 충분하다.

 



이정미 / 프리랜스 에디터 @dyomdyom_
이정미는 더 이상 회사에 다니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퇴사를 하고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떠났다. 그 후로 일 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그때의 다짐을 지켜내고 있다. 지난 한 해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등 상상해본 적조차 없던 근무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첫 책 < 제가 어떻게 살았냐면요 >에는 살아보는 여행을 하며 얻은 경험, 여행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일하며 여행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정미(여행작가) 에디터 이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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