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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9 LIFESTYLE

JOURNEY TO BEER NIRVANA

  • 2019-07-05

술을 빚는 곳에서 마시는 짜릿함을 아는 순간, 술독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문베어브루잉의 모든 맥주 공정이 이루어지는 고성의 브루어리.




1 이천의 녹음이 내려다보이는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3층 테이스팅 룸.
2 맥주가 가장 맛있는 추출의 순간.
3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처음 사용한 맥주 기계를 공장 입구에 전시해놓았다.

지금 내 앞에는 차가운 맥주 한 잔이 놓여 있다. 그 뒤로는 창밖으로 녹음이 펼쳐진다. 얼마 전 다녀온 도쿄 근교에서도, 지난해 말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그 몇 달 전 바르셀로나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본 것 같다. 가볍게 취기가 오르면 누구나 조금쯤은 관대해지는 법.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이천의 풍경이 어쩐지 좀 낭만적으로 보이는 건 취기 때문일지 모르지만, 하여간 브루어리에서 마시는 술맛은 탁월하다. 이번에도 영락없이 넋을 놓은 채 감탄하고 말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여행할 때마다 스스로 열심히 하는 숙제, 바로 양조장 투어다.
얼마나 술이 좋으면 양조장까지 찾아가느냐는 핀잔 섞인 말을 종종 듣는다. 맞다. 그 정도로 나는 술을 좋아한다. 한때는 양조장 투어 이유를 낭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나, 얼마간 투어를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브루어리에서 마시는 맥주가 특별히 맛있다고 느끼는 이유가 낭만보다는 과학에 가깝다는 것. 발효 식품인 맥주는 발효를 마친 직후 다양한 요인에 의해 맛이 손상된다. 그래서 발효가 끝난 시점 아직 산화되지 않은 단계의 맛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제조 과정의 관건이다. 갓 만든 맥주가 가장 맛있다는 건 진리다(오크통에 장기 숙성하거나 병내 숙성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오죽하면 독일에는 “브루어리 굴뚝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맥주를 마시지 말라”는 말이 있다.
술을 빚는 곳에서 마시는 짜릿함에는 술맛 너머 무언가가 있다. 술이 빚어지는 지역과 공간을 둘러보고, 양조자와 만나 그들의 철학을 듣노라면 그저 벌컥벌컥 마셔온 맥주를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진다. 한 잔의 맥주에는 때로 분자 요리 못지않게 복잡미묘한 세계가 담겨 있음을, 술을 빚는 공간에서 새삼 깨우친다. 크래프트 맥주가 맥주다양한 트렌드의 선두에 있다는 사실도 양조장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다. 요즘 세계 각 도시에 자리한 소문난 브루어리에는 부지런한 힙스터들이 모인다. 양조장은 깊은 산속에도, 탁 트인 바다 앞에도 있지만 의외로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하기도 한다. 크래프트 맥주 신의 중심에 있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서 그 흥미로운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오래된 개러지를 바꾼 브루어리 주변으로 도시의 새로운 다운타운 문화가 피어난다.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가 어쩌면 21세기 젊은 예술가의 살롱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누가 그랬나. 밍밍한 라거 맥주로 대표되던 한국 맥주 신에 크래프트 맥주가 침투한 지 수년이 지났고, 이제 한국 맥주 신도 꽤 흥미로운 물결을 타고 있다. 단순하게는 고를 수 있는 맥주 수와 크래프트 맥주 양조자, 펍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물 좋은 맥주. 물맛이 곧 맥주 맛을 좌우하는 요인 중 하나이기에 선진 맥주 양조 기술을 익힌 이들은 물 좋은 산으로, 들로 떠났다. 자연스럽게 충북, 제주, 부산, 남해, 강릉 등 물 좋다는 곳에 브루어리가 터를 잡고 있다. 지역색을 입은 개성 있는 맥주도 속속 탄생했다.
브루어리가 많아졌다는 사실이 곧 투어로 둘러볼 수 있는 양조장이 많아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맥덕 사이에 여행은 곧 술 기행이요 술 기행이 곧 여행이지만, 브루어리란 기본적으로 외부인에게 폐쇄적인 공간이다. 온도와 빛, 균의 침투에 극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술이기에 관계자 외 출입을 철저히 금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중에는 사전 승인을 받은 뒤 투어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제한 구역 외에 상시 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한 곳도 있다.




4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이천 브루어리의 히든 플레이스인 셀러. 서늘한 동굴 속에서 맥주를 시음하는 기묘한 경험을 할 수 있다.
5 이천의 명물 산수유나무 뒤로 찬란한 햇살을 받은 브루어리의 모습.

이천과 고성의 새로운 브루어리 물결
올여름, 여행자들을 기꺼이 맞을 채비를 하고 있는 두 곳의 브루어리에 다녀왔다. 첫 번째 목적지는 지난 5월에 준공한 따끈따끈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새 공장. 오크통이 줄지어 늘어선 외관이 마치 부르고뉴 지방의 와이너리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쌀의 고장, 이천이다. 3년 전 성수동에서 시작해 빠른 속도로 성장해온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이천에 터를 잡은 건 좋은 물을 찾아서다. 일찍이 오비 맥주 공장과 하이트 진로 공장이 부지를 선점할 정도로 물 좋기로 소문난 이천은 쌀 외에도 산수유, 복숭아 등 과일 산지로 유명하다. 낮은 산을 깎고 새롭게 낸 길을 따라 구불구불 올라가면 이국적인 철제 외관의 공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번 브루어리를 준비하면서 최고 자부심은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로는 한국 최초로 독일 ‘크로네스(Krones)’사의 기계를 들여놓았다는 것이다(크로네스는 맥주 기계로는 최고 설비 회사로 꼽힌다). 맥주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도 크래프트 맥주 특유의 개성 있고 섬세한 맛을 일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까닭이다. 양적으로 성장하는 한편, 성수동에서 시작한 크래프트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놀라운 맥주’라 적힌 공장 입구 옆에 설치 작품처럼 놓은 낡은 기계는 그들이 성수동에서 처음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던 설비다. 대량생산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한발 다가가는 한편, 한 달에 한 종류 이상은 반드시 독특하고 희귀한 스타일의 맥주를 만들어 마니아의 구미도 끊임없이 자극한다. 최근에는 이천의 명물인 산수유를 이용한 맥주를 만들었고, 쌀과 복숭아를 활용한 맥주도 계획 중이다.
오는 7월부터 정식으로 시작될 브루어리 투어는 크게 세 단계로 이어질 예정이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철학을 공유하고 양조 과정을 하나하나 함께 체험하며 맥주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확인한 뒤, 마지막으로 브루어리에서 갓 만든 신선한 맥주를 마신다. 투어에 참가하지 않아도 2층 바에 앉아 1층의 제조 현장을 보며 맥주를 마실 수 있고, 3층 테이스팅룸에서는 파노라마 뷰로 펼쳐진 이천의 녹음을 안주삼아 신선한 맥주를 최상의 온도로 음미할 수 있다. 이곳에 상주하는 공장장은 3층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석양의 모습이 특히 아름답다고 귀띔한다.




6 맥주 맛을 결정하는 몰트를 이송하는 공정.
7 문베어브루잉의 헤드 브루어 롭 티틀리가 맥주 향을 맡고 있다.
8 산을 컨셉으로 세 가지 맥주를 선보이고 있는 문베어브루잉.

설악산과 동해 바다를 품은 강원도 고성에도 흥미로운 브루어리가 문을 열었다. 황태 말리는 공장을 새롭게 바꾼 문베어브루잉이 주인공이다. 그들 역시 좋은 물을 찾아 고성을 찾았다. 한데, 머릿속에 한 가지 물음표가 생긴다. 과연 ‘좋은 물’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라거 타입 맥주를 만들 땐 미네랄이 적은 연수가 잘 맞고, 에일을 만들 땐 미네랄이 많은 경수가 잘 맞습니다. 물에 미네랄을 추가하는 것보다 미네랄을 제거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미네랄이 적은 물이 다양한 맥주를 만드는 데 용이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고성의 지하 200m로부터 끌어올린 천연 암반수는 미네랄이 별로 없어 맥주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미네랄을 첨가할 수 있지요.” 캐나다 출신 헤드 브루어 롭 티틀리(Rob Titley)는 고성 근처에 터를 잡고 상주하며 양조에 몰두한다. 산을 컨셉으로 맥주 시리즈를 만들어온 그의 스타일을 살려 금강산 골든에일, 한라산 위트에일, 백두산 IPA를 만들었다. 산 높이에 따라 알코올 도수를 정한 위트가 돋보인다. 고성은 얼마 전 큰 산불을 겪으면서 주변 지역이 크게 불탔지만, 지역과 상생을 통해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부흥시키려는 문베어브루잉에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다. 강원도 지역의 커피와 메밀 등 특산물을 이용한 맥주 개발을 계획하고 있으며, 브루어리 근처 바닷가에 맥주 팝업 레스토랑을 준비하는 등 로컬 문화를 바탕으로 함께 성장하겠다는 포부로 가득하다. 문베어브루잉이 올여름 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인 투어 프로그램은 크래프트 비어에 대한 전반적 이해와 흥미를 높이는 데 집중한다. 맥주가 생산되는 과정을 전문가와 함께 보면서 늘 마시던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스타일의 맥주가 존재하는지 가능한 한 쉬운 용어로 풀어나갈 예정이다. 물론 투어 마지막에 들이켤 가장 신선한 맥주만큼 쉽고 명쾌한 용어는 없을 테지만.

AND OTHER BREWERIES
그 밖에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전국의 브루어리.

9 강릉, 버드나무   10 서산, 칠홉스 브루잉코   11 부산, 갈매기 브루잉   12 대전, 더 랜치 브루잉

강릉, 버드나무
강릉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을 고치고 다듬어 탄생한 버드나무 브루어리. 솔잎과 댓잎, 국화와 창포, 매실과 모과 등 전통주에 사용하던 한국 고유의 재료를 활용해 맥주를 만든다. 사전 약속 후 투어 가능하다.

서산, 칠홉스 브루잉코
호주 출신, 뉴질랜드 출신 브루어가 합심해 만든 브루어리이자 브루펍. 최근 맥덕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양조장으로, 서산으로 향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서산에서 난 생강을 넣은 진저크러시 맥주가 별미다.

부산, 갈매기 브루잉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브루어리이자 펍으로, 부산 내에만 본점인 광안리를 비롯해 해운대, 서면, 남포 등지에 가맹 펍을 두었다. 2018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크래프트 에일 부문 대상을 거머쥐었다.

대전, 더 랜치 브루잉
대전 지역을 대표하는 브루어리로, 프랑스 출신 브루어가 양조한다. 강렬한 홉 향을 매력적으로 살린 맥주가 인기다. 주말마다 양조장에 있는 탭룸을 운영하고 있고, 브루어리 투어는 비정기적으로 진행 중이다.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김잔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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