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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9 LIFESTYLE

큐레이터의 큐레이터

  • 2019-07-02

대구미술관에 새로 부임한 최은주 관장을 만났다. 올해는 그녀가 미술관에서 일한 지 만 30년이 되는 해. 최은주 관장은 오랫동안 쌓아온 미술관 운영 노하우를 대구미술관에 아낌없이 쏟을 예정이다.



9개월 동안 공석이던 대구미술관장 자리에 지원할 당시 최은주 관장은 수행 계획서에 ‘대구와 세계, 현재와 미래를 품는 대구미술관’이라는 타이틀로 미술관의 비전을 제시했다. “세계적 학자들이 21세기 현대미술의 특징에 대해 얘기한 것을 보면, 현대미술은 융합적·탈영역적이고 노매드적이며 보다 정신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술관은 도시를 넘어 세계와 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대구미술관이 현대미술의 특징을 제대로 구현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불어 현재를 있게 한 전통과 과거를 잊지 않고 조망하며, 미래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겠죠. 대구는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들이 나온 곳이고, 그간 현대미술관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근대미술을 소홀히 다루기도 했습니다. 향후 전시는 이를 보완하고 함께 모색하는 기획이 될 것입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대구미술관이 갖춰야 할 균형 감각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은주 관장은 지난 5년 동안 경기도미술관장을 역임하기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5년의 시간을 보냈다. 1989년 학예연구사로 시작해 학예연구실장, 보존관리실장, 서울관 운영부장, 덕수궁관장 등을 거치며 미술관 운영의 처음과 끝을 모두 경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4명이 지원한 대구미술관장에 그녀가 발탁된 데는 어떤 상황에서든 미술관을 잘 이끌어온 그녀의 역량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 당시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고, 개관전을 포함해 7개의 전시를 지휘했다. 이후에는 근대미술관인 덕수궁관을 10년 동안 운영하며 미술관 경력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위기 상황에도 탁월한 대처 능력을 발휘했다. “경기도미술관장에 부임할 당시,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에 미술관이 완전히 가려졌어요. 미술관 하루 방문자 수가 8명이 되지 않을 때도 있었죠. 고심 끝에 2016년 6월, 세월호 사건이 터진 지 2년이 지났을 때 <사월의 동행>전을 선보였습니다. 2년 동안, 분향소가 설치된 화랑유원지에서 유가족은 물론 온 국민의 슬픔을 목격한 경기도미술관만이 할 수 있는 전시라고 생각했어요. 갈수록 공감 능력을 상실하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동참하고 공감해주었어요. 위기를 맞은 미술관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것 같아요. 주말 하루 동안 방문자 수가 3000명이 넘어가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 2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 작가로 꼽히는 박생광의 민화, 불화, 무속화 등으로 < 박생관 > 회고전을 연 대구미술관.

이후 최은주 관장은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대구미술관으로 오게 되었다. 부임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이 시점에서 그녀는 올해 8주년을 맞은 대구미술관을 어떻게 파악했을까. “신생 미술관의 장단점이 두루 있습니다. 시설 면에서 보면 기존의 오래된 미술관이 했던 실수를 하지 않았어요. 하적장, 미술품 이동 통로, 수장고, 거대한 로비 공간을 비롯한 전시관 규모 등을 보면 매우 현대적입니다. 고전 회화부터 미디어 아트 같은 현대미술까지 미술의 거의 모든 영역을 펼쳐 보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췄어요. 해체적 작업, 퍼포먼스, 이벤트, 해프닝 등 탈장르적 미술 영역까지 도전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중요해지는 건 큐레이터의 역량입니다. 규모에 맞는 기획력과 과감한 시도가 있어야 하죠. 공간적 장점을 갖춘 반면, 신생 미술관이 지닌 한계와 문제점이 이 부분에 있습니다. 대개 큐레이터는 미술관과 함께 성장하는데, 아직 그 역량을 쌓기엔 미술관의 역사도 짧고 인력의 경력도 부족한 편입니다. 전시를 어떻게 기획할지, 소장품은 어떻게 확보하고 관리할지, 작가를 어떻게 연구하고 함께 일할지 등 대구미술관 정도의 규모라면 이러한 역량을 충분히 축적한 기획자가 있어야 합니다. 건강한 자극을 주면서 큐레이터의 역량을 키워주고 싶어요.”
최은주 관장은 큐레이터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미술관의 시스템을 더욱 단단하게 구축하고, 소장품을 확보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소장품 확보에서 전문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현재 대구미술관의 소장품은 1200점이 조금 넘는다. 최은주 관장은 미술관 소장품을 ‘미술관의 뇌’에 비유했다. 그녀의 오랜 경험상 미술관이 소장품으로 자체 전시를 할 수 있으려면 최소 3000점은 보유해야 한다. 소장품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으면 전시 주제를 잡아도 그에 맞는 작품을 선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술관의 기존 소장품에 대한 연구도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 무엇이 부족한지 파악하고,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소장품은 곧 미술관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파리 퐁피두 센터는 7만5000점, 뉴욕 현대미술관은 15만 점 이상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요. 지금은 소장품이 8000점을 넘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막 일을 시작할 때 소장품은 3000점이 안 되었어요. 우선 대구미술관의 소장품을 연구해 중장기 수집 계획을 세우는 일이 제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후에 다른 사람이 이 자리에 왔을 때, 대구미술관을 특징지을 수 있는 소장품 수집하는 일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으려면요.”
“한 분야에서 30년간 일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한 번도 같은 일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최은주 관장. 그녀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잣대가 엄격하면서도 무한한 애정을 보여준다. “큐레이터에게 ‘남들이 한 건 절대 따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생각한 기획을 인터넷으로 검색했을 때, 조금이라도 비슷한 것이 보이면 거기서 멈추라고 합니다. 독창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펼쳐 보이는 만큼 그에 따른 직업적 소명 의식도 분명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미술계, 작가, 관객이 외면했다 해서 ‘삼무(三無) 미술관’으로 통하던 경기도미술관을 본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 사월의 동행 >, < 그림이 된 벽 > 같은 독창적 전시 덕분이었습니다. 저와 같은 세대를 살고 있는 김수자, 서도호, 이배, 이불, 양혜규, 최정화 등은 지금 이우환과 백남준 이후 한국의 대표 작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으며 한국 미술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한국 미술의 본령으로 끌어오고, 작품 세계를 널리 알린 데에는 미술관과 큐레이터의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큐레이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가능성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2021년 대구미술관이 창립 10주년을 맞는 해에는 큐레이션 자체를 조명한 전시를 선보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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