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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19 FEATURES

내일의 건축

  • 2019-07-02

재난, 자연재해, 환경오염…. 숨 죽인 위험으로부터 내일의 건축을 고민하는 서울의 건축가 4인의 시선.

건축가 서재원은 복합적인 모습이 뒤범벅된 서울의 모습을 ‘서울리티’로 표현했다.

서울리티 Seoulity
밤늦게 산책이라도 한답시고 아파트를 돌다 보면 가끔 마주하는 것들이 있는데, 나는 이 재활용 쓰레기라 불리는 것들만 보면 여간 슬프지 않을 때가 많다. 책상이나 책장 같은 것들이 나와 있을 때도 있지만 밥통이나 가죽 소파 같은, 바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나무 아래 놓여 있을 때면 생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내는 사형수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먹먹해질 때도 있다. 집에서 한참 사랑받고 있다가 그 쓸모가 다하니 매몰차게 바깥으로 내던져진 모습에 우리네 사람 사는 모습과 똑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 호르몬 분비가 이상해진 탓인지 이런 쓸데없는 센티멘털이 몸속 깊숙이 파고들어인지, 요즘은 동네를 걷다가도 ‘궁전메카빌라’ 같은 친구들한테도 말을 건네기도 한다. 시대의 유행에 따라 만들어진 기와지붕 파라펫이며, 십장생 대문, 이오니아 현관 기둥들을 보고 있자면 그 조잡함과 난잡함에 꼴도 보기 싫다가도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의 피와 땀이 온몸으로 스며 있는 것 같아 어느새 사랑으로 때 묻은 벽돌 하나하나를 보듬고 싶어지기도 한다. 시대의 수준이 그랬던 걸 지금 넌 왜 그러냐고 질책해봤자 결국 내 얼굴에 침 뱉는 격이 되어 금세 말을 거두게 된다.
몇 해 전 아현 고가가 철거될 때도 마지막 교각 만이라도 남겨지길 간절히 고대했는데 어느 날 지나다 보니 흔적도 없이 싸그리 사라진 걸 보고 그래도 한참 동안 우리나라 근대화에 일조한 그 친구한테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하는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며칠 전엔 신문기사를 보니 전깃줄들을 329km땅속에 묻는다고 하는데 도통 지저분한 것들은 모두 하루 빨리 숨기고 싶은 건지 오랜 세월 서울 풍경의 스크래치 하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너무 밋밋한 그림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서운함이 인다. 급속도로 근대화된 서울이기에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그리고 지저분한 것과 말끔한 것들이 산 아래 강 위에 뒤범벅돼있는 것이 서울 아니었던가? 나는 이러한 서울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말끔하게 표백되는 것이 왠지 열등감에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의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의 총체이듯 도시 또한 그러할진대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되 정작 중요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둬야 하지 않을까. 광화문 광장을 옮긴다고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사회안전망과 복지에 힘써 옆집 정신분열증 주민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으며, 맘놓고 딸아이를 바깥에 내보낼 수 있다면 건물이 못생겼든, 전깃줄이 날아다니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단지 바라는 건, 미세먼지 없는 푸르른 서울 하늘을 더 많은 날 볼 수 있다면 그 만으로도 충분히 족할 뿐이다._ 서재원(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 김대균은 알도 로시의 일 테아트로 델 몬도를 자신의 손으로 다시 한번 그리며 회상했다.

기억하는 건축, 내일의 건축을 위한 역설적 가치
지금은 끊임없는 과거이며 지속적인 미래다. 지금 짓는 건축은 과거에서 배턴을 이어받아 최소 30년 이상 지속되며,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 지금 짓는 건축은 어떻게 내일의 건축이 될 수 있을까?
어릴 때 살던 동네를 재개발해 집과 주변 거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살던 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릴 적 전학을 가거나 이사하던 경험을 생각해보자. 정든 집과 동네 분식집, 매일 만나던 친구를 떠나 생경한 곳에 있으면 세상에 홀로 남은 듯 외로워진다. 이를 회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과거 기억과 경험이 유사하게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기억과 관계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불안한 존재지만, 좋은 관계와 기억은 나라는 존재를 굳건하게 해준다. 앞으로 다가올 일 또한 이런 굳건한 바탕이 있어야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도시와 건축, 기억이라는 주제로 유명한 건축가 알도 로시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 건축가로, 1990년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알도 로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시가 변화하고 남아 있는 것, 그리고 도시에 대한 사람들의 집단 기억 등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중 베니스의 일 테아트로 델 몬도(Il Teatro Del Mondo, 1979) 극장은 ‘베니스’ 하면 떠오르는 기억을 바탕으로 고딕양식의 극장을 배 위에 지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해 베니스 비엔날레가 끝날 무렵 그 극장을 불살랐다는 점이다. 배 위에 있는 건축이기에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고, 그것이 투어를 한다면 더 이상 베니스의 기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살하는 건축으로 사라졌지만 역설적으로 그 극장은 베니스의 영원한 기억이 되었다.
얼마 전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에 타 큰 이슈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화재지만 SNS에는 그곳의 추억을 상기하는 사진이 많이 올라왔다. 빠른 시간에 어마어마한 기부금이 모인 것도 놀랍지만, 전통적 건축물에 국제 건축 설계 공모전을 열어 새로운 미래의 첨탑을 만든다는 것에 더 놀랐다. 전통은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잇는 것이며, 현재와 괴리된 전통은 생명력을 이어갈 수 없다. 건축은 변하거나 사라질 수 있어도 장소의 존재와 기억은 전통이 되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 같다.
도시는 축적된 삶과 기억의 총체다. 건축물은 개인의 소유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다. 즉 건축은 개인적 결과물임과 동시에 사회적 결과물이며,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방향을 건축물은 담는다. 경쟁적이고 이기적인 건축은 이기적인 사회를 만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회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대화와 관계를 축소시켜 결과적으로 생활은 있지만 삶이 없는 도시에 살아가게 된다. 미래 건축의 바탕은 지금에 있다. 신기술과 빅데이터가 새로운 생활을 이끌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장소가 연결되고 기억되는 건축물의 바탕 위에 필요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과거 기억이 현재에 남아 있지 않은 도시와 건축물에는 미래도 없다._ 김대균(착착 스튜디오 소장)








건축가 서승모는 기존 작업들을 콜라주해 서울의 내일을 상상했다.

모호하게 혼재되어 순환하는 도시
자연재해의 유무는 인간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무슨 일 있겠어?” 한국인의 무사안일은 그동안 비교적 큰 자연재해가 없어 가능했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는 수많은 인재(人災)를 양산했고, 급변하는 지구 환경에 한반도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겨울이었다. 3・11 동일본 대지진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생생한 절기였다. 간만에 일본에서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낸 친구들과 도쿄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건축가 서승모는 교토에서 태어나고 한국의 경원대학교를 졸업한 뒤 도쿄 예술대학 건축학과에서 미술학 석사를 취득했다_에디터 주). 한 친구가 “할 수 없지 않나! 삶을 지속할 수밖에” 하고 말하고는 건배를 외쳤다. 그는 나의 20년 지기 친구이자 건축가다. 아내와 어린 딸을 고향으로 보내고 홀로 도쿄에 남아 일을 하다 2주 후 다시 그들을 도쿄로 불러들였다. 기본 삶의 바탕은 도쿄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앞으로 온몸으로 맞이할 음식, 물, 환경이 그전 같지 않음을, 구태여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자연재해는 삶의 연속이며, 비일상적 일상이다. 그리고 자연은 인력을 넘어서는 경이로운 것으로 인식한다. 반복되는 자연재해 속에 경이로운 자연과 삶의 허무한 종말을 번갈아 보면서 그들 나름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계기가 된다.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그들이 보여준 모습(위급 상황에서도 편의점 안에서 질서 정연하게 줄 서는 모습이나, 타 지역 전문가들이 피해 지역 복구를 위해 적극 뛰어드는 모습 등)은 자연과 삶이 일체화된 일본인 고유의 것이다. 그들 나름의 질서로 각자 할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자연을 대하는 일본인의 태도와 삶이다.
산재한 문제를 끝없이 파고들어 대화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개선’이라고 한다. 자동차 생산 기업 토요타에서는 개선을 위해 블루와 화이트를 구분하지 않고 공장 생산자부터 디자이너, 딜러, 기업 관계자가 함께 끝장 토론을 펼친다. 개선은 말로만 하는 개혁이나 구호와는 다르다. 결과는 과정의 연속이어야 하며, 이원화된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개선이 반영된 결과가 축적되어 어느 임계점을 지나면 혁신과 개혁으로 이어진다. 결과를 위해서는 가장 ‘보통’의 묵묵하고 보잘것없는 노고가 필요하다. 과정과 결과는 순환적이며 연속적인 것이고, 자연과 인간의 삶이 순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 이유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서촌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서촌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해방 후 그리고 고도성장기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곳이다. 혼재된 시대적 배경과 함께 현재와 과거 삶이 동시대적으로 함께한다. 궁궐과 시장, 마트가 함께 숨 쉬고, 떡볶이집과 세련된 이탤리언 레스토랑, 동네 빵집과 유학파 베이커리가 경계 없이 어울린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이토록 한데 어우러진 동네가 세계 어느 도시에 또 있을까. 단절되어 맥락 없고 다소 뜬금없는 일상이 하나하나 모여 형식화될 때, 이는 비로소 한국 고유 미학으로 다가올 것이다. 말하자면 현재와 조선시대의 콜라주다. 한국의 민간 정원 중 최고라는 칭송을 받는 담양 소쇄원에서 나는 자연과 건축의 모호함, 그리고 서촌이 지닌 과거와 미래의 혼재를 통해 새로운 서울의 이미지를 그린다. 맥락 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푸른빛의 공중보도 서울로가 불쑥불쑥 등장할 수 있는 서울은 가능성이 충만한 도시다. 때로는 엉망진창으로, 그리고 가끔은 무척 세련된 서울을 상상하며 오늘도 광화문에서 창덕궁을 지나 서촌을 향해 걷는다. _ 서승모(사무소효자동 소장)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쓰무라 고스케가 디자인한 ‘Final Home’. 평소엔 아우터로 입지만 재난 상황이 되면 각종 연료, 양식, 도구, 보온을 위한 종이나 섬유 등을 넣어 생존성을 극대화한다.

재난, 그리고 일상
어떤 대상에 대한 생각의 출발점은 일단 그 대상의 다양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장애인’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장애인 심벌, 즉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만 떠올리는 것은 곤란하다. 운동 장애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장애의 하나일 뿐이다. 시각 장애에도 알고 보면 세부 등급이 있다. 점자 블록의 고시인성 도색이 필요한 이유다. 따지고 보면 완벽한 정상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노화 또한 장애의 일부이며 왼손잡이인 나도 아마 상대적 장애인일 것이다. 지하철 카드 리더기가 오른쪽에만 있는 것이 불편할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환경은 좀 더 포용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무장애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 등 개념이 원래 장애인을 위해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진화 중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재난 또한 마찬가지다. 재난의 종류와 등급 양상은 천차만별이다. 도시 지역의 건축물 화재와 농어촌 지역의 수해 대책은 같을 수 없다. 지진으로 한 지역이 파괴되거나 산사태로 마을이 고립되는 것 역시 또 다른 성격의 문제다. 재난에 대한 대비란 범사회적 제도에서 시작해 개인별 대책에 이르기까지 실로 방대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과연 이를 위해 일상과 구별되는 별도의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을까? 아마도 이런 접근보다는 일상적 요소를 재난 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나아가 역으로 일상 자체를 재난이라는 관점에서 조직해야 할 필요도 있다. 서울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지하철 역사를 방공호나 비상 대피소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이런 이유다. 실제로 유사한 제안을 해본 경험이 있다. 한반도에 비상사태가 발생해 대규모 난민이 유입되는 시나리오에 대한 것이었다. 무언가를 새로 만들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전국의 많은 예비군 훈련장이 그러한 공간적 배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각종 시설 기준은 이미 경험 많은 유엔에서 만들어놓은 것이 있었다. 시설물과 가구, 집기 또한 대한민국의 건설 및 대여 산업 인프라가 보유한 방대한 물자를 활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상황이 종료되면 각종 장소와 물건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난민이 일상으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재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 우리 일상 또한 이로부터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비유하자면 크고 작은 재난은 이미 일상의 일부이며, 그에 대한 대비와 해결책도 일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재난이라는 특별한 상황을 일상이라는 관점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성숙한 인간이 삶에서 죽음을 생각하듯 성숙한 사회는 일상을 통해 재난에 대비한다. 즉 이것은 한 사회의 문화다. _ 황두진(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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