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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02

NOBLELOG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것에 대하여.

START-UP, 열정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것에 관하여
스타트업이 대세란다. 요즘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각종 지원 프로그램도 많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대박을 터뜨리는 회사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 A씨는 ‘나라고 못할쏘냐!’ 초긍정 마인드로 스타트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핫하다는 공유 경제 컨셉의 사업 모델을 구상하던 차, 에어비앤비를 활용한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업 구조는 이러하다. 우선 사업 자금 5000만 원을 가지고 홍대나 강남역 등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장소에 위치한 오피스텔을 임차한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100만 원짜리 오피스텔 방을 5개 임차하고, 방 5개를 모두 에어비앤비에 올려 관광객이 하루에 10만 원씩 숙박료를 내고 사용하게 하면 이런저런 비용을 공제해도 월 1000만 원 정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 A씨는 바로 실천에 옮긴다. 우선 좋은 위치에 각 방에는 사진발 잘 받는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해 배치했다. 광각렌즈를 이용해 방이 넓어 보이게 사진도 찍는다. 이제 에어비앤비에 호스트 등록을 하고 사진만 올리면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 것이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관광객은 위치와 가성비 좋은 A씨의 방을 예약하기 시작했고, 리뷰도 호평 일색이었다. 점점 더 많은 관광객이 A씨의 방을 찾았고, A씨는 숙박료를 인상해도 항상 풀 부킹을 자랑하는 수익률 좋은 호스트가 되었다. 이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안정적 수익을 올리며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다시 보증금으로 재투자해 5개의 방을 더 빌려 또다시 에어비앤비에 업로드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되었으니 조사를 받으러 오란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공중위생관리법을 찾아보았다. A씨는 자신이 하는 사업이 공중위생관리법상 ‘숙박업’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숙박업을 하려면 관할 구청에 숙박업 신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일단 구청에 신고를 하러 갔다. 그러나 구청 담당자는 에어비앤비에서 호스트를 하는 방식으로는 숙박업 신고를 받아줄 수 없다고 말했다. 신고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A씨는 벌금형을 받고 사업을 중단했다.
그 후 A씨는 더 이상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팀을 구성한 뒤 법률 검토까지 마친 사업 아이템을 다시 스타트업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그런데 개인 사업자와 법인 사업자 중 어떤 형태로 할지 몰라 검색을 해보니 각 사업자별 장단점과 매출규모가 어느 정도 이상 되면 세금과 관련해 법인 사업자가 유리하다는 정도의 내용만 확인할 수 있었다. 스타트업이 무슨 매출이 있어 세금을 걱정한단 말인가? A씨는 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사업 아이템을 찾을 때 현실에서 문제되는 것이 무엇인지(예를 들면 사람이 사는 데 불편한 것이 있으면 그 불편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 찾은 다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과 이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물론 수익성이 있는)을 찾으면 바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소위 말하는 맨땅에 헤딩한다. 그러나 하려는 사업이 법에 저촉되지는 않는지, 인허가 사항이 없는지 등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운이 좋으면 그 사업과 관련한 법률이 없어 무탈하거나, 알지는 못했으나 관련 법이 허용해 사업을 진행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단 한 번이라도 사업과 관련해 법이 금지한다면 그 사업은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진행할 수 없으므로 사업 모델이 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 사업자등록을 할 것인지 정할 때는 ‘혼자 할 수 있는 사업인가?’ 그리고 ‘내 돈만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인가?’를 고려해야 하고 위 두 가지 질문 중 하나라도 ‘그렇지 않다’라면 ‘법인 사업자’로 진행해야 한다. 이렇듯 스타트업은 생각보다 고려할 것이 많다. 그리고 국가에서 세금을 들여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도 많이 운영하니 조금만 노력하면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철저한 사전 조사는 필수다. A씨같이 본의 아니게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 참고로, 실례에서 A씨는 대법원에서 벌금형이 확정되었다. 동일한 사업을 지속하면 몇 차례 더 벌금형을 선고받을 테고, 그럼에도 사업을 계속 진행하면 그다음은 집행유예 또는 실형을 선고받게 된다. 결론은, 동일한 방식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꿈을 펼치려던 사업가가 전과자로 전락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전세준 법무법인 제하 대표 변호사. 대한민국 최초의 변호사 BJ로 법의 문턱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늘 새로운 분야에 목말라 있다. 점자 스마트워치 닷(Dot)을 비롯해 다수의 스타트업 기업 자문을 도맡고 있다.






클래식은 늙거나 지치지 않는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일본으로 건너가 오래된 가게와 물건의 아름다움을 마주한다.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오래된 가게가 왕성히 살아 숨 쉬는 나라다. 창업 100년을 넘어서는 기업이 2만 개를 훌쩍 넘고, 1000년 이상 업을 지속해온 장수 기업도 7곳이나 남아 있다. 브랜드를 다루다 보면 그 생존력 앞에서 경외의 시선을 갖게 마련이다. 그 비결이 궁금하고 부러워 들여다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지경에 이른다.
자주, 찬찬히 바라보면 일본의 오래된 가게는 하나같이 좋은 디자인을 담고 있으며,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식당을 이루는 외형, 인테리어, 메뉴판, 음식의 담음새와 기물 하나까지 창업자의 정신과 계승자의 의도가 배어 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조화롭다는 것이다. 1700년에 갖다두어도 이질적이지 않을 것 같고, 2019년에 존재함에도 어색할 것이 없다. 일본에 갈 때마다 들르는 와가시(일본 과자) 전문점 도라야로부터 그 사소하고도 탁월한 가치를 배운다.
1600년대 문헌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는 도라야는 구로카와 엔추에 의해 시작되어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명맥을 유지해왔다. 1788년 교토의 대형 화재로 원형이 모두 불타는 사건을 겪었지만, 당시 계승자인 미쓰토시는 이에 좌절하지 않고 규칙을 재정비한 뒤 현재의 C.I.와 같은 매뉴얼 가이드북을 만들어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아직도 많은 부분 이 매뉴얼을 참고하고 있다니 얼마나 치밀하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서비스, 인테리어 등 부차적인 것에 높은 가치를 두는 시대이긴 하나, 식당업의 본질은 분명 맛있는 음식을 내는 데 있다. 도구, 재료, 사람 등 처음과 모든 것이 달라졌지만 도라야는 흔들리지 않고 맛에 본질을 둔 채 변화를 겁내지 않았다. 만드는 방식을 꾸준히 발전시키며 ‘좋은 맛을 낸다’는 본질에 바짝 다가섰다. 도라야의 17대 계승자는 지금도 창업주의 뜻을 이어받아 제대로 맛을 내고 그것을 잘 전달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본질을 전달하는 방법을 허투루 하지 않는 자세 또한 도라야의 강인한 생명력이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을 중시하는 일본의 문화 속에 탄생한 도라야의 제품은 하나같이 선물용으로 더할 나위 없다. 제품 포장, 담는 인박스, 인박스를 싸는 종이, 그것을 넣는 쇼핑백에 포장하는 방식까지,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을 모두 배려한 디자인. 소박하고 보편적인 과자 박스로 세계적 인기를 누리며 클래식의 반열에 올라선 도라야는 아직 늙거나 지치지 않았다. 오래된 것이 왜 이 시대에도 유효한지, 오래된 것이 왜 여전히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그래서 동시대에 사는 우리를 자극하는지는 의외로 이 작은 과자점으로부터 배운다.

 

박장열 스튜디오 매치포인트 대표인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노포 전문가. 오래된 디자인으로부터 가장 동시대적인 멋을 읽어낸다.






내추럴 와인이 몸에 좋다고?
처음에는 강한 산미가 느껴졌지만 마실수록 복합적 풍미가 드러나고 맛이 부드러워졌다. 소믈리에의 말대로 와인 페어링 대신 병으로 마시기 딱 좋았다. 그날 내가 뉴욕의 인기 레스토랑 모모푸쿠 코에서 마신 게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 남부 지역에서 에발트 체페(Ewald Tscheppe)가 생산한 내추럴 와인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요즘 인기를 구가하는 내추럴 와인의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기농법 또는 바이오다이내믹농법으로 재배한 포도에 최소한의 아황산염 외에는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고(또는 아황산염을 전혀 넣지 않고) 만드는 와인으로 보면 된다. 과거 유기농 와인이나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이 포도를 재배하는 데까지 초점을 맞췄다면 내추럴 와인은 이후의 생산 과정까지로 자연 친화적 사고의 영역을 넓힌 용어다. 기존 와인과 다른 변화무쌍한 풍미의 내추럴 와인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파인다이닝 하면 으레 프랑스식이어야 한다는 암묵적 제한은 사라지고, 미식의 중심추가 바르셀로나에서 코펜하겐을 거쳐 페루의 리마까지 이동하며 다채롭게 변화한 새로운 파인다이닝의 시대에 잘 어울리는 맛의 와인이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이 숙취가 덜하다거나 이산화황 미첨가 또는 최소 사용으로 건강에 더 좋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다. 원래 포도에도 들어 있고 와인 발효 과정에서 자연히 아황산염이 생기기도 하지만, 세간에 나도는 아황산염과 두통의 관계에 대한 속설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아황산염이 와인 속 두통 유발 성분이라면 레드 와인을 마실 때보다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 두통이 더 심해야 맞다. 화이트 와인은 열, 빛에 불안정해 레드 와인보다 이산화황을 더 많이 필요로 한다. 하지만 숙취는 같은 양이라면 레드 와인을 마셨을 때 더 심하게 나타난다. 레드 와인에는 티라민, 히스타민 등 두통 유발 성분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 와인이라도 너무 많이 마시면 숙취가 생긴다. 사실 알코올이 들어 있는데 숙취가 없으면 이상한 거다. 내추럴 와인을 마셔도 머리 아프고 숙취가 오는 게 당연하다.
와인에 첨가된 아황산염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에 변함없다면 탄산음료, 프렌치프라이, 말린 과일로 테스트해볼 것을 권한다. 와인 속 아황산염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면, 탄산음료(일반 와인과 비슷한 정도로 아황산염 함유)를 마신 뒤에도 머리가 아파야 맞고, 프렌치프라이(와인의 9~10배 아황산염 함유), 말린 과일(와인의 17~18배 아황산염 함유)을 먹은 뒤에는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껴야 맞다.
하나, 내추럴 와인이 일반 와인보다 건강에 좋은 건 아니라고 해서 내추럴 와인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비행기 타고 머나먼 레스토랑을 찾아가는 게 건강에 더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한 것만이 아니듯, 굳이 건강과 결부하지 않아도 내추럴 와인은 마실 만한 가치가 있다. 인생을 즐기려고 와인을 마시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정재훈 약사이자 푸드 라이터. 식품 포장 뒷면의 깨알 정보 읽는 것을 좋아한다. 마트와 편의점, 노포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 숨어 있는 요리와 먹기의 과학에 대한 글을 쓴다. 저서로는 <정재훈의 식탐>,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나는 90년대 남자가 좋다
내가 이제 늙었고 변화에 느려터진 타입인 데다 요즘 남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여하튼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서점가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마당에, 90년생이 오거나 말거나 나는 여전히 90년대 남자가 좋다. 1990년대, 그 끔찍하게 쿨했던 남자들 말이다.
냉전 시대의 상징과도 같던 베를린 장벽이 허무하게 무너지던 그 겨울, 그해 막 성인이 된 리버 피닉스에게 곧 다가올 새로운 1990년대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1991년,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아이다호>에서 고독하고 위태로운 청춘을 연기하며 정점을 찍은 그는 빛나는 외모뿐 아니라 타고난 감각과 재능으로 이미 검증된 스타였다. 그로부터 불과 2년 만에 허탈하게 요절하고 말았지만, 그를 1990년대 청춘의 상징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브라운관 안팎에서 시종일관 쿨했던 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수영장이 딸린 저택을 구입하거나 비싼 옷을 걸치고 유명인사가 몰리는 고급 레스토랑에 들락거리기 위해 악착같이 스타덤에 오르려 하지 않은 그에게는 천성적 고결함 같은 게 있어, 톱스타 행세 따위가 얼마나 따분한 일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히피 가족의 장남으로 태어나 학교 구경 한번 못했음에도 그는 학업에 뒤늦은 열망을 품는 대신 독립 영화에 출연하며 언더그라운드 록 밴드를 결성해 작은 클럽 무대에 섰다. 이는 그를 더욱 쿨하게 재생하도록 부추기는 힘이 되었다. 1990년대를 장악한 쿨한 감성의 시작은 어쩌면 겉치레에 연연한 적 없는 이 아름다운 청년으로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무려 밀레니엄이었다. 또 다른 새 천년으로 갈아탈 준비를 하던 세기말의 1990년대는 밝은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 예측할 수 없는 공포와 불안, 우울함이 지배적이었다. 1991년, 너바나가 쏘아 올린 앨범 <네버마인드>와 함께 커트 코베인이 나타났을 때, 세상은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새롭고 신선한 단어를 꺼내 들었고 밴드의 수뇌였던 그의 퇴폐미에 매료되었다. 떡이 진 머리, 더럽고 너덜거리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서 깽판 치기 일쑤였던 스물다섯 살의 그는 하필 그 시대 슬픈 청춘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우울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 삶을 마감한 마약의존증 나부랭이가 1990년대 엑스세대를 대변하는 쿨가이라고? 물론이다. 커트 코베인은 이렇게 말했다. “I’d rather be hated for who I am than be loved for who I’m not(내가 아닌 나로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나로서 미움받는 편이 낫다).” 적어도 그는 헤로인에 중독돼 엽총으로 제 머리통을 박살 낼지언정 대중 앞에서 궁색한 거짓말 따위를 늘어놓은 적은 없으니까.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지상의 밤>(1991)에서 위노나 라이더는 곱상한 얼굴과 달리 골초에 난폭하기 그지없는 택시 운전사로 등장한다. 이야기는 그녀가 공항에서 태운 여성 승객(지나 롤랜스)과 함께 베벌리힐스까지 가는 흥미로운 여정을 담았다. 불안정한 길 끝에서 승객은 자신이 유명 캐스팅 매니저임을 밝히며 매력적인 택시 운전사를 캐스팅하려 한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무비 스타’에 관심이 없다. 쿨한 거절에 자존심이 구겨진 캐스팅 매니저가 다시 그녀의 환심을 사려 해도 소용없다.
그녀의 꿈은 ‘정비공’이었기 때문이다. 짐 자무시는 그랬다.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무비 스타를 데려다 “무비 스타가 정비공보다 나은 게 뭐지?”라고 묻는다. 세상의 모든 독립된 인생이 죄다 할리우드로 가는 티켓을 원하는 건 아니라는 것. 어떻게 이보다 더 쿨할 수 있을까?
그러나 1990년대를 평정한 쿨한 남자들 가운데 최강을 꼽으라면 역시 패션계의 냉소주의자 헬무트 랭이다. 1990년대는 그야말로 헬무트 랭의 시대였다. 그는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를 주창한 미스 판 데어 로에처럼 단순함과 기능의 미학으로 패션을 사치의 늪에서 끌어올렸고, 우리는 비로소 그를 통해 스타일은 덜어낼수록 쿨하다는 것을 배웠다. 근사한 이름만 남긴 채 홀연히 패션계를 떠난 그는 평소 애정하던 제니 홀저, 루이즈 부르주아 같은 아티스트 반열에 들었지만, 패션 디자이너 헬무트 랭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앞으로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가 만든 1990년대 아카이브 피스가 요즘 세대 마니아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는 만큼, 세상이 바뀌어도 그는 가장 쿨한 디자이너로 남을 테니까.
리버 피닉스부터 헬무트 랭까지, 나는 여전히 1990년대 그들이 보여준 회의와 냉소, 신념에서 뭔가를 배운다. 당대 대중음악가가 꾸준히 비틀스를 반복해 듣는 것처럼, 그들이야말로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나의 인플루언서이기 때문이다.

 

김정민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겸 콘텐츠 기획자. <하퍼스 바자> 등에서 피처 에디터를 거쳐 아시아 시티 매거진 <동방유행> 편집장을 지냈다.






리버풀은 어떻게 강팀이 됐을까?
유르겐 클로프가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까지 리버풀은 바닥에서 허우적댔다. 아무리 클로프가 특유의 게겐 프레싱(전방에서 강력한 압박을 통해 공을 빼앗아 바로 역습하는 전술)을 바탕으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성공으로 이끈 감독이라 할지라도, 수렁에 빠진 팀을 당장 강팀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클로프는 자신이 잘하는 것과 리버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리고 구단은 그러한 클로프를 전적으로 신뢰했다. 클로프는 자신의 전술에 적합한 선수단을 꾸렸다.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리버풀은 정상급 선수들이 오길 꺼려하는 클럽이었다. 그러나 클로프가 부임한 뒤 보여준 가능성을 믿고 좋은 선수들이 모였다. 2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무함마드 살라흐, 자타 공인 세계 최고 센터백 피르힐 판데이크, EPL 정상급 왼쪽 윙포워드 사디오 마네, 안정적 수비를 보여준 욀 마티프,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에서 두 골을 넣은 조르지니오 베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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