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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9 ARTIST&PEOPLE

덜어내기

  • 2019-06-06

진실한 빛을 찾고자 아트 신을 유랑한 메리 코스는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녀가 그토록 찾아 헤맨 빛은 순간의 반짝임이 아닌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내면은 그녀를 이끌었고, 그녀도 그 끌림에 따라가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메리 코스는 그 성을 단단히 쌓기 위해 붓을 잡는다.

1 2017년, LA에 위치한 케인 그리핀 코르코란(Kayne Griffin Corcoran)에서 열린 < Mary Corse: Then and Now >전 전경.
2 메리 코스의 20대 시절. ‘Untitled’(1967)를 작업하고 있다.

메리 코스가 작년부터 미국, 영국, 홍콩 등 전 세계에서 개인전을 연달아 열고 있다. 그녀의 나이, 올해로 74세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한시도 쉬지 않고 전시를 열 수 있는 건 50년간 작업에 매진한 꾸준함 덕분이다. 메리 코스는 1960년부터 지금까지 ‘빛’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대 LA에서 일어난 ‘빛과 공간 미술 운동(Light and Space Movement)’과는 명확하게 차별되며, 그녀는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아트 신에 빛을 내뿜고, 그 빛을 오롯이 흡수하려는 메리 코스를 <아트나우>가 만났다.

지난 아트 바젤 홍콩 페이스 갤러리 부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들었어요. 같은 시기에 페이스 갤러리 홍콩에서 개인전도 열었습니다. 게다가 작년에는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당신의 첫 번째 미술관 개인전 < Mary Corse: A Survey in Light >를 성공적으로 끝마쳤죠. 아트 바젤 홍콩 부스와 개인전 모두 만족스러웠어요. 특히 휘트니 미술관은 1970년대 초반 리처드 벨라미(Richard Bellamy)와 함께 전시를 한 장소라 더 뜻깊었습니다(리처드 벨라미는 메리 코스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 아트 딜러다).

추상회화를 하다가 빛의 진동에 강하게 끌려 빛을 탐구하기 시작했죠? 미니멀한 화면이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작업을 막 시작했을 때는 다른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받았죠. 예를 들면, 10대 때는 한스 호프만(Hans Hoffman)과 빌럼 더 코닝(Willem De Kooning), 특히 호프만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죠. 그러다가 점차 화면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냈더니 제 페인팅이 미니멀로 나아가더군요. 결국 새하얀 화면만 남았죠. 백색 화면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레 라이트 박스로 영역을 넓혔고, 동시에 ‘관념’에 관심이 갔어요.




3 Untitled(Blue Double Arch), Glass Microspheres in Acrylic on Canvas, 137.2×167.6cm, 1998
4 Untitled(White, Black, Red), Glass Microspheres in Acrylic on Canvas, 243.8×609.6cm, 2001




5 Untitled(White Double Arch), Glass Microspheres in Acrylic on Canvas, 259.1×320×7cm, 1998
6 Octagonal White, Acrylic on Canvas, 236.2×171.5cm, 1964

작업 주제가 ‘빛’이라서 그럴까요? 사람들은 당신을 1960년대 LA에서 일어난 ‘빛과 공간 미술 운동’의 일원이라고 소개합니다. 한데, 과거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 묵묵히 작업했고, 외부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라고 말했죠. 1960년대에는 누군가의 작품에 영향을 받거나 하진 않았어요. 제가 캘리포니아 토팡가(Topanga)로 이사한 건 스스로 내린 결정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저 역시 그 당시 빛과 공간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 왜 LA로 모였는지 궁금해요. 아마 그때의 예술이 ‘이쪽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야’하며 사람들을 LA로 이끈 게 아닐까 싶습니다.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고, 그걸 이해하고 알아차린 이들이 모였다고 생각해요.

라이트 박스를 활용한 작업 외에는 화면에 조명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사례가 드물어요. 작은 유리구슬, 금속, 세라믹을 칠해 빛 반사 효과로 빛나는 화면을 만들었죠. 마치 아스팔트 도로가 반짝이는 것처럼요. 이런 점에서 빛을 전면에 내세운 ‘빛과 공간 미술 운동’과 차별성이 느껴집니다. 사실 초반에는 조명을 썼어요. 라이트 박스에서 ‘진실’을 찾으려 했죠. 당시의 저는 객관적인 진실이 있다고 믿었거든요. 또 완전히 자유롭고 가벼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조명이 딱 들어맞는 소재였죠.

라이트 박스를 만들기 위해서 물리학까지 공부했다고요? 맞아요. 좀 더 큰 라이트 박스를 만들기 위해 에드먼드 과학 회사(Edmund Scientific)의 부품이 필요했는데, 회사 측에서 제가 물리 시험을 통과해야만 그 부품을 팔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몇 가지 물리 과목을 공부했죠. 이를 계기로 현실을 바라보는 생각과 관념이 바뀌었어요.

어떻게요? 관념이 진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과 객관적인 진실은 없다는 걸 깨닫고 다시 붓을 사용하는 회화로 돌아갔습니다. 덩달아 자연스레 직접적인 빛이 아닌 간접적인 빛을 캔버스에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메리 코스의 스튜디오 전경.

10년 동안 ‘Untitled(White Light)’ 회화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대다수 미술관과 갤러리는 화이트 큐브인데, 작품의 메인 컬러인 화이트가 자칫 공간과 구분되지 않을까 우려하지는 않았나요? 크게 신경 쓰거나 깊이 고민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데 작품이 공간과 어우러지다가 갑자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때, 환경의 일부가 될 때 기분이 좋기는 해요.

‘Untitled(White Light)’ 이후에는 ‘Untitled(Black Earth)’ 회화 시리즈로 나아갔어요. 화이트에서 블랙으로의 화면 변화가 상당히 급격하게 느껴져요. 화면을 하얗게 칠한 건 인간이 지닌 천상의 오묘함을 담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그 작업을 10년간 지속하자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필요를 느꼈어요. 제게는 육체가 있고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있다는 사실을 계속 되새겼고, 이러한 생각을 표현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곧장 산에서 흙을 가져왔고, 흙으로 ‘Untitled(Black Earth)’를 제작했습니다. ‘Untitled(Black Earth)’로 현실에 기반을 두려는 시도는 앞선 ‘Untitled(White Light)’를 통해 비가시적인 천상의 면을 찾으려는 실험에서 비롯된 작가적 반응이었죠. 이런 점에서 두 시리즈 사이에 연관성이 있죠.

미니멀리스트라 불릴 만큼 당신의 작품은 간결합니다. 컬러 사용도 제한적이고요. 작업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추가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게 중요해 보여요. 그렇습니다. 제 회화는 추상표현주의에서 시작해 점차 무언가를 덜어내는 과정에 위치해요. 1960년대 초반까지는 덜고 줄이는 일의 연속이었죠. 심지어 플렉시글라스(plexiglass)와 목재 양식(wood forms)을 사용했을 때는 붓 흔적이 남지 않도록 사포로 매끈하게 밀기까지 했습니다. ‘더’가 아닌 ‘덜’을 원했어요. 그 당시 저는 미니멀리스트 였으니까요. 결과적으로 ‘형태’와 ‘공간’만 남게 되었죠. 그러던 어느 날 빼는 것보다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걸 불현듯 깨달았어요. 앞서 말한 진실과 관념의 관계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인데, 진실이 관념에 영향을 받는다는 걸 알고 난 뒤 다시 붓을 잡았죠. 작품은 덜 미니멀해졌고, 저는 모든 걸 수용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7 Untitled(Black Earth Series), Sixteen Fired Earth Clay Tiles, 243.8×243.8cm, 1978
8 Untitled(DNA Series), Acrylic Squares and Glass Microspheres in Acrylic on Canvas, 198.1×594.4cm, 2017



9 지난해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열린 < Mary Corse: A Survey in Light >전 전시 전경. ‘Untitled(White Inner Band)’ (2003)(왼쪽)와 ‘Untitled(White Arch Inner Band Series)’(1996) (오른쪽)가 걸려 있다.
10 Untitled(DNA Series), Acrylic Squares and Glass Microspheres in Acrylic on Canvas, 198.1×594.4cm, 2017

작품을 완성했다는 느낌은 어디서 오나요? 비교적 단조로운 작품을 하는 만큼 확실한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이 끝나면 ‘끝났다’는 걸 알게 돼요.

그렇다면 완성한 작품을 마주하는 기분은요? 당연히 작품이 마음에 들면 기분이 좋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죠. 작품이 끝나면 대개는 기분이 좋아요. 하지만 붓 터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정말 괴롭죠. 어떤 작품은 완성하고 나면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어요.

대다수 작품의 제목이 ‘Untitled’인 데다, 부제가 붙어도 캔버스에 올린 컬러 ‘white’, ‘black’이 전부죠. 제목이 무척 단순합니다. 모든 작품의 제목을 ‘무제’라 짓습니다. 만약 작품 제목이 ‘무더운 날’이라면, 그림을 보면서 계속 제목을 떠올릴 거예요. 즉 작품에 제목을 붙이면 순간, 미리 어떤 생각을 갖게 만드는 거죠. 저는 정해진 심상 없이 자유로운 접근이 좋아요.

어시스턴트를 두지 않고 거의 혼자 작업하는 만큼 고독한 예술가라는 표현이 어울려요. 혹시 당신만의 특별한 작업 과정이 있나요? 이따금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림이 나를 이끄는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철저히 혼자 있어야 하니까요.

3년 전, 자택 근처에 큰 규모의 스튜디오를 지었습니다. 바뀐 환경이 작업 활동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물론이죠. 분위기가 편안해서 그런지 더 많이 그릴 수 있게 되었어요. 스튜디오에 에어컨과 히터도 있어요. 게다가 벽도 더 넓어졌고, 작업하기에는 최고죠.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7월 28일에 열리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개인전도 소개해주세요. 스튜디오에서 그간 기회가 없어서 구현하지 못했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여는 개인전은 지난 휘트니 미술관 전시와 비슷하게 진행하지만 제 고향이라 감회가 남다르네요. 케인 그리핀 코르코란에서 9월에 열리는 전시도 중요합니다. 아, 11월에는 페이스 갤러리 뉴욕에서 전시를 열죠. 2019년도 매우 알찬 한 해가 될 거예요.

메리 코스
미니멀리스트이자 모노크롬 회화를 하는 메리 코스는 물질과 인식 세계 사이를 탐구한다. 본격적으로 작업하기 시작한 1960년대 중반, 고속도로에 사용하는 미세한 유리 조각을 페인팅에 접목한 새로운 기법을 선보이며 빛을 다루는 화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 10년 동안은 무채색 화면에 원색을 도입하며 인간의 인식과 경험을 탐구하고 있다. 디아비콘, 시애틀 미술관, 토런스 현대미술관, 베니스 비엔날레 등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현재 LA에 거주하며 작업 중이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제공 메리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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