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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9 CITY NOW

바우하우스의 흔적을 좇아

  • 2019-06-04

현재 독일 전역에서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와 행사가 열리고 있다. 바우하우스의 영향력이 유독 강했던 베를린과 바이마르, 데사우를 중심으로 그들의 흔적을 좇았다.

바우하우스-뮤지엄 바이마르의 저녁 풍경.

베를린과 데사우, 바이마르는 파란만장했던 바우하우스(Bauhaus) 역사의 실제 배경이다. 또 태동부터 전성기 그리고 해체되기까지 흔적을 보관하고 있는 여러 재단과 박물관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이에 기념비적 해를 맞이한 세 도시는 대형 전시와 함께 특별한 변화를 공개하며 ‘바우하우스 100주년’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있다.

바우하우스의 태동, 바이마르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바이마르공화국 출범이라는 혼란스러운 정국이 펼쳐진 1919년. 독일의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는 독일 중부의 소도시 바이마르에 공예 학교와 조형예술 학교를 합친 ‘바이마르 국립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 in Weimar)’를 설립했다. 새로운 정치적 배경과 영국의 산업혁명 여파로 산업화와 기계화가 번지던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들은 디자인, 건축, 공예, 사진 등 흩어진 예술 매체를 통합했다. 그리고 실용성과 심미성의 조화를 추구하는 실천적 미학을 이끌며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바우하우스의 창시자 발터 그로피우스.

바우하우스 태동기의 실험 정신과 이에 따른 기대감을 고스란히 간직한 바이마르에선 지난 4월 6일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맞아 ‘바우하우스-뮤지엄 바이마르(Bauhaus-Museum Weimar)’를 새롭게 개관했다. 네모반듯한 외관의 이 미술관을 설계한 이는 독일 건축가 하이케 하나다(Heike Hanada). 그는 공모를 통해 미술관 설계자로 선정됐고, 회색빛 건물 안팎에 LED를 설치해 절제된 미감을 보여주었다. 개관일인 6일과 7일에는 퍼포먼스와 콘서트 등 행사가 열려 도시 전역을 축제로 물들게 했다.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우하우스 컬렉션을 기초로 이 미술관에서 새롭게 선보인 상설전 <바이마르에서 온 바우하우스(Das Bauhaus kommt aus Weimar)>는 앞으로 바우하우스 초기의 전개 양상과 예술 통합에 관한 고민 등을 대거 공개해 ‘시작점’으로서 바이마르의 중요성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데사우에 자리한 바우하우스 빌딩.

바우하우스의 전성기, 데사우
지역 정서가 보수적임에도 바우하우스는 바이마르에서 자리를 잡는 듯했다. 하지만 1924년 바우하우스를 지원하던 사회민주당(SPD)이 선거에서 패배하며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 결국 학교는 문을 닫고, 당시 공업 도시로 부상한 데사우로 무대를 옮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발터 그로피우스는 현대건축의 정수라 불리는 알펠트 안 데어 라이네에 세운 파구스 공장에 이어 1926년 바우하우스 정신이 깃든 캠퍼스 건물 ‘바우하우스 빌딩(Bauhausgebaude)’을 데사우에 1년 만에 선보이며 새로운 터전을 성공적으로 일궜다. 이어서 스위스 출신 건축가 하네스 마이어(Hannes Meyer)가 교장을 맡아 바우하우스 디자인과 산업의 연계를 강화하고, 사회적 기능성을 함유하며 데사우에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처럼 바우하우스가 꽃피운 시기로 꼽히는 데사우 시절에 걸맞게 오는 9월 8일 데사우 바우하우스 재단은 4만9000여 점의 대형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새롭게 확장한 ‘바우하우스 뮤지엄 데사우(Bauhaus Museum Dessau)’를 신축 개관한다. 바우하우스 빌딩이 있는 시 외곽보다 중심지로 들어오는 이 미술관은 바이마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바우하우스 컬렉션의 상설 전시와 특별전 그리고 워크숍과 아티스트 토크 등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예술과 공예에서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단결!>전 전경.

바우하우스의 끝과 새로운 시작, 베를린
바우하우스의 전성기는 1930년 극우 정당 나치가 집권하며 시들었다. 전위적 가치와 모더니즘을 추구하던 바우하우스의 성격과 당시 교장이던 하네스 마이어의 사회주의 정치 성향은 나치의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932년 바우하우스는 결국 데사우 시대를 접고, 새로운 교장이자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와 함께 베를린으로 옮겨왔다. 어려운 시대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데도 나치의 권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바우하우스는 결국 1933년 역사를 뒤로한 채 모습을 감춘다. 바우하우스를 이끌던 건축가와 예술가, 디자이너 등 핵심 멤버도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바우하우스의 아버지라 불리는 발터 그로피우스는 1937년 미국 하버드 대학교 건축과 교수, 미스 반 데어 로에는 1938년 일리노이 공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제자들과 함께 바우하우스의 전통을 미국에 이식했다.
이처럼 바우하우스 역사의 종점이자 새 역사의 시작이 함께 놓인 평행 공간이 바로 베를린이다. 특히 1964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베를린에 설계한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박물관(Bauhaus Archiv Museum fur Gestaltung)’에선 이들의 지난 흔적을 총망라해 살필 수 있다. 현재는 아쉽게도 보수·신축 공사로 문을 닫은 상태. 하지만 이들의 방대한 자료는 9월 6일부터 베를리니셰 갤러리(Berlinische Galerie)에서 선보이는 전시 <오리지널 바우하우스(Original Bauhaus)>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베를린의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박물관에 전시한 ‘바퀴가 달린 독신자의 옷장’과 바우하우스 아카이브 박물관 외관.

더불어 샤를로텐부르크성 맞은편에 자리한 브뢰한 박물관(Brohan Museum)에선 바우하우스와 유럽의 다양한 디자인 사조의 관계를 조망하는 전시 <예술과 공예에서 바우하우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단결!(Von Arts and Crafts zum Bauhaus. Kunst und Design: eine neue Einheit!)>을 지난 1월 24일부터 5월 5일까지 선보여 통사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또 바우하우스의 새로운 시작에서 비롯한 확장의 범위와 새로운 해석을 체감할 수 있는 전시 <바우하우스 이마기니스타(Bauhaus Imaginista)>도 오는 6월 10일까지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Welt)에서 진행한다.
100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바우하우스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우하우스의 정신이 혁신과 미래를 추구하는 21세기 가치와 공통된 지점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단순히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과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으로서 올해 ‘바우하우스 100주년’ 행사는 또 다른 바우하우스의 전성기를 이야기한다.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영균
이정훈(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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