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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9 CITY NOW

익숙한 서울 의외의 미술

  • 2019-06-04

구색만 맞추는 공공 미술은 이제 종적을 감췄다. 서울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작품성 넘치는 공공 미술.

이대서울병원은 시민을 위해 친근감 있는 하이메 아욘의 ‘호프 버드’와 잉어스 이데의 ‘스노맨’을 설치했다.

도시 개발과 공공 미술
PC 게임 열풍이 불던 2000년대, 도시 개발 게임 ‘심시티’가 큰 인기를 끌었다. 빈 부지에 건물과 편의 시설이 들어설수록 거주민이 늘고 도시가 번창한다는 단순한 내용인데, 도시의 덩치가 커질수록 시민들은 “회색 도시가 싫다”라는 불만을 터뜨린다. 여기서 해결책은 단 하나, 멋진 공공 미술을 통해 랜드마크를 만드는 거다. 이처럼 간단한 게임도 도시 미관에서 공공 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각인시킨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현행 문화예술진흥법은 대형 건축물을 세울 때 의무적으로 건축비 일부를 미술품 설치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유는? 시민의 문화 예술 향유 기회를 늘리고 예술가의 창작을 지원하려는 취지다. 그리고 이는 한국 공공 미술 시스템의 근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취지는 좋지만, 그간 공공 미술을 향한 시민의 반응은 아쉽게도 긍정보다는 ‘부정’에 가까웠다. 공공 미술을 말할 때마다 한강의 ‘괴물’ 조각상이 이를 증명한다. 지금은 청계천의 랜드마크가 된 클라스 올든버그의 ‘스프링’도 2009년 설치 당시에는 “청계천이나 서울의 미감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뭇매를 맞았다. 게다가 ‘법’ 지키기에 급급한 구색 맞추기식의 알 수 없는 조각품 덕분에 국내 공공 미술은 상대적으로 작품 대우를 덜 받아왔다. 하지만 요즘 공공 미술은 ‘법’ 준수에서 ‘작품성’으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 그 모습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건 도시 개발이 한창인 강서구 마곡이다.






이대서울병원은 시민을 위해 친근감 있는 하이메 아욘의 ‘호프 버드’와 잉어스 이데의 ‘스노맨’을 설치했다.

마곡역 인근에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동명 작품을 시각적으로 비튼 김홍석의 ‘Love’ 그리고 상암동의 시그너처로 자리매김한 ‘미러맨’ 작가 유영호의 ‘Lover’가 있다. 작가의 유명세도 유명세지만, 작품 설치 방식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은빛 재질로 외관을 마감한 ‘Love’는 주변 고층 유리 건물의 미감과 통일성을 지님과 동시에 비교적 아담한 크기로 높낮이의 운율감을 준다. 반대로, 건물 못지않게 높이 솟은 유영호의 ‘Lover’는 건물이 덜 운집한 중정에 설치해 크기에서 오는 위압감을 덜어냈다. 빌딩 앞 입간판처럼 덩그러니 두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주변 건축을 고려하는 것이 새로운 공공 미술의 특징이다. 지난 3월, 같은 곳에 오픈한 이대서울병원도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의 ‘호프 버드’와 독일 공공 미술 작가 잉어스 이데의 ‘스노맨’을 입구에 설치했다. 세계적 아티스트를 데려올 정도면 공공 미술에 큰 의의를 둔 게 분명한데, 이들은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했을까? 이대서울병원 건축본부는 이렇게 말한다. “병원 내·외부에 총 9점의 공공 미술을 설치했다. 전문 컨설팅업체의 도움을 받았지만, 작품 선정 시 전문성을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로 구성된 위원회를 꾸려 자문을 구했다. 또 마곡이 신도시인 만큼 더 자유롭게 공공 미술을 택할 수 있었다. 병원이니 ‘치유’에 철학을 두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가볍고 위트 있는 작품 위주로 골랐다.”











경기도미술관은 2015년부터 파주, 평택, 동두천 등 경기도 전역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전에 없던 공공 미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공 미술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종로구에서 가장 오래된 육교 신영동 삼거리를 대상으로 한 ‘자하담’ 프로젝트는 신기술을 접목했다. 바닥 설치 작품 ‘자하담돌’, 증강현실을 활용한 ‘자하신화’ 그리고 QR 코드를 통해 지역 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자하교감’까지. 총 3점의 작품으로 구성한 프로젝트는 북악산, 북한산, 인왕산 풍경을 잇는 신영동 육교의 여러 특성을 담았다(구글 플레이 스토어 또는 앱 스토어에서 ‘자하담’ 앱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흔히 공공 미술 하면 ‘조각’을 떠올리는데, ‘자하담’은 그 영역을 확장했다고 볼 수 있다. 프로젝트 참여자로 장석준, 박제성 그리고 정소영이라는 신진 작가를 기용해 ‘작가의 창작을 지원한다’는 공공 미술 취지에도 부합한다.






경기도미술관은 2015년부터 파주, 평택, 동두천 등 경기도 전역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공 미술에서 ‘공공’에 초점을 맞춰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요즘 트렌드인데, 작가 최정화가 대표적이다. 이미 < 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 최정화-꽃, 숲 >전과 코엑스에서 시민 참여형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한 그는 지난 3월부터 8월 25일까지 열리는 아트스페이스 광교 개관전 <최정화: 잡화>에서 새로운 공공 미술을 선보였다. 그 결실은 ‘빛의 묵시록’으로 ‘너와 나의 작은 빛을 모아 세상을 밝힐 큰 빛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서울과 인근 수도권 지역의 공공 미술이 작품성을 입은 이유는 무엇일까? 성냥갑처럼 똑같은 건축 외형에 싫증 난 시민들이 예술적 건축물을 찾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디자인이 건축의 중요 요소로 떠오르자 공공 미술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덩달아 작품성이 올라간 것. 앞에서 예로 든 심시티의 시민처럼 문화 향유 수준이 높아진 서울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 도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경기도미술관은 2015년부터 파주, 평택, 동두천 등 경기도 전역에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의도 IFC몰 김병호의 ‘조용한 증식’, 마포에 자리한 MVRDV의 ‘버티컬 빌리지’, 명동에서 뉴욕을 느낄 수 있는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그리고 2020년 12월 30일까지 동아미디어센터를 여덟 가지 컬러 필름으로 뒤덮은 다니엘 뷔렌의 ‘한국의 색, 인 시튀 작업’까지. 사실 서울의 익숙한 장소 곳곳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대가의 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또 6월 23일까지, 경기도미술관에서 그간 미술관이 진행한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총망라한 < GMoMA 공공 미술 2015-2018: 함께 할래 >전을 개최하니 방문해봐도 좋겠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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