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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9 ARTIST&PEOPLE

베를린 현대미술 역사의 두 사람

  • 2019-06-05

구드룬·베른트 부를리처 부부는 부를리처 컬렉션(Wurlitzer Collection) 오너다. 두 사람은 독일 통일 이전 서독의 쾰른과 뒤셀도르프를 기반으로 건축가와 갤러리스트로 활동하다 통일 이후 1990년대 독일 미술 신의 대대적 이동과 함께 베를린에 컬렉션 공간을 마련했다. 현재 아내 구드룬은 건축가로, 남편 베른트는 악기를 제작하는 가족 사업을 운영하면서도 예술을 향한 식을 줄 모르는 애정과 열정 그리고 무한한 관심을 기반으로 컬렉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독일의 지난 현대미술 역사 속에서 두 사람이 경험하고 목격한 변화와 현대미술 중심지로 부상한 베를린의 미술 환경 그리고 예술 작품을 수집하는 자세와 오늘날의 현대미술 경향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1 알루미늄을 주요 소재로 작업하는 독일 작가 위르겐 드레셔(Jurgen Drescher)의 ‘Untitled’.
2 인물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를 조각과 회화로 완성하는 미국 작가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The Crying Girl’.

구드룬·베른트 부를리처 부부의 자택 겸 컬렉션 건물은 독일 분단 역사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미테(Mitte) 지역의 모렌슈트라세(Mohrenstraße)에 자리하고 있었다. 우연인지, 근방엔 북한대사관 건물이 활짝 만개한 벚나무 뒤로 모습을 감춰, 인터뷰에 앞서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의 컬렉션 건물은 전형적인 사회주의 건축양식을 띠며 웅장함을 자아냈다. 초인종을 누르자 다소 무감각해 보이는 건물의 외관과는 달리 인상 좋은 부부가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었다. 짧은 길이의 계단을 오르자 매끈한 홀이 나왔다. 부부는 앞에 놓인 두 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1층 쇼룸부터 거주 공간인 3층까지 건물 곳곳에 있는 작품을 직접 설명해주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편안해졌고, 우리는 약간은 느슨하게 혹은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를린 현대미술 신의 변화를 몸소 경험한 베른트 부를리처와 구드룬 부를리처 부부.

이 건물의 첫인상이 강렬하더군요. 1930년대 동독 시절에 지었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직업이 건축가인 만큼 구드룬 씨의 배경 때문에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컬렉션을 위해 이 건물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구드룬 부를리처(이하 GW) 이 건물은 사실 중립적 공간이에요.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지 않고, 시대의 양식만 존재하죠. 1930년 나치 정권 시절에 지었고, 1950년 동독 시절엔 당시의 전형에 맞춰 내부 디자인만 새롭게 손본 겁니다. 스투코(stucco, 건축의 천장, 벽면 등을 덮어 칠한 화장도료)라든지 특정 장식이 없는 뉴트럴한 디자인과 높은 천장이 마음에 들어 이곳을 택했어요. 베를린에서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베른트 부를리처(이하 BW) 컬렉션으로서 이 공간은 두 가지 장점이 있어요. 하나는 실내에 활용할 수 있는 벽이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특별한 장식을 하지 않아도 벽이 깔끔하다는 거죠. 이런 특징은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작품에 집중하게 합니다.

현재 컬렉션 공간과 더불어 주거 공간으로도 사용 중입니다. 예술 작품으로 둘러싸인 일상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데, 어떤 느낌인가요? BW 예술 작품과 함께하는 삶은 일상을 풍요롭게 해요. 하지만 작품으로 둘러싸인 삶이라고 일반적 생활과 다를 것도 없죠. 사실 우리 부부는 처음 만날 때부터 늘 곁에 작품이 있었어요. 오히려 지금은 우리 딸이 곳곳에 작품이 들어찬 생활을 견딜 수 없다며 화를 내죠.(웃음)






3 기호학적 문양과 공예 형태가 결합한 작업을 선보이는 리사 라핀스키(Lisa Lapinski)의 ‘Camel’.
4 벽돌과 콘크리트, 합판 등 저렴하고 익숙한 재료로 오브제와 공간을 새롭게 가공하는 독일 작가 만프레드 페르니스(Manfred Pernice)의 ‘My Little Empire Wood’.

언제부터 작품을 곁에 두었나요? 언제부터 어떻게 컬렉션을 시작했는지 궁금합니다. GW 어릴 때 부모님과 같은 동네에 독일의 유명 작가 고타르트 그라우프너(Gotthard Graubner)가 살았어요. 그가 17세 때 제 아버지가 그의 작품을 처음 구매하셨죠. 그 모습을 어릴 때부터 쭉 봐온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다수의 작품을 소장하셨지만,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올 때 모든 걸 두고 와야 했죠. 모든 것을 정부에 압수당했고 팔려나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이야기를 가족 누군가에게 처음 들었을 때부터 전 미술 작품과 이를 소장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처음 구매한 건 누구의 작품인가요? GW 1980년대 작가 친구들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의 베허 클래스에 있던 토마스 루프(Thomas Ruff), 칸디다 회퍼(Candida Hofer)가 가깝게 지냈어요. 그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칸디다 회퍼의 작업을 처음으로 구매한 일이 기억나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작품을 처음 산 사람 또한 우리라고 하더군요.

1980년대라면 베허 클래스를 주축으로 독일 사진이 새롭게 주목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부터 특별히 선호해온 미술 장르가 있나요? GW 한 장르만 꼽을 순 없습니다. 페인팅부터 조각, 사진 등 모든 장르에 관심이 있죠. 만약 누군가 제게 왜 예술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도 그것이 지닌 다양성과 매력에 끌린다고 답할 것 같아요. 특정 장르 혹은 주제만 다루는 컬렉팅은 제가 생각하는 컬렉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미니멀리즘 성격을 바탕으로 유머스러운 문구를 새겨 관객과의 소통을 실천하는 덴마크 작가 제페 헤인(Jeppe Hein)의 ‘This Artwork is Currently on Loan’.


작품을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GW 작가를 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봐요. 작가의 작업 윤리와 환경뿐 아니라 누구를 사사했는지, 또 작가의 캐릭터도 파악해야죠. 한번은 갤러리에서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구매했는데, 그가 돌연 활동을 중단한 적이 있어요. 그의 작업 활동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죠. 작업 활동을 못 하는 것과 활동을 그만두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베른트 씨는 전에 뒤셀도르프에서 갤러리스트로 활동한 것으로 압니다. 왜 그만두셨나요? BW 1980년대에 뒤셀도르프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독일 미술 시장의 침체 이후 악기를 판매하는 가족 사업으로 전선을 옮겼어요. 하지만 이후로도 작품 거래를 위한 어드바이저와 큐레이팅 등 예술 관련 일을 지속하며 많은 작가와 교류하고 있습니다.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해 독특한 콜라주 작업을 하는 독일 작가 그레고 힐데브란트(Gregor Hilderbrandt)의 ‘Cassette Tape on Canvas’.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컬렉팅하는지 궁금합니다. 두 분의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할 것 같지도 않거든요. ‘이거다’ 하고 작품을 고르는 기준 같은 게 있나요? GW 우리는 수십 년간 작품 구매부터 컬렉션 운영까지 모든 걸 함께 결정해왔어요. 딱 한 번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토마스 루프가 우리 두 사람을 각각 담은 대형 초상 사진이었습니다. 결혼기념일에 서로에게 선물했어요.

인터뷰에 앞서 소개해주신 작품 중엔 베를린 출신 혹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의 작업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을 선호하는 편인가요? GW/BW 전에 쾰른과 뒤셀도르프에서 지내며 그곳에 기반을 둔 작가들과 친분을 나눴듯이 베를린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에도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더욱이 베를린엔 흥미롭고 그간 경험하지 못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많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죠.

쾰른과 뒤셀도르프에서 꽤 오랜 기간 활동하셨습니다. 이 두 도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일 미술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요, 베를린으로 활동 기반을 옮긴 이유가 궁금합니다. GW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직업적 이유가 가장 컸어요. 서독과 동독이 통일한 직후 큰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베를린과 쾰른, 독일 남부 도시를 계속 오가기 힘들어 이곳에 정착했죠.






5 제한된 공간 속에서 발견한 개념적 요소로 재치 있는 변주를 만들어내는 티모 클로펠(Timo Kloeppel)의 ‘Druch das Beruhren Zerfallt es’.
6 지난 4월 26일부터 28일까지 열린 갤러리 위켄드 베를린 기간에 맞춰 베른트 부를리처와 구드룬 부를리처 부부의 컬렉션 공간에서 선보인 프라이빗 전시 전경.

비슷한 시기인 1990년대 서독에 자리하던 많은 갤러리가 베를린으로 옮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술계의 지각변동을 직접 목격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BW 1980년대 들어 미술 시장이 점차 활기를 잃었고, 전체적 분위기도 경직됐죠. 1960~1970년대처럼 예술과 관련한 일이 많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침체된 분위기에서 다들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했는데, 이를 위해 장소를 물리적으로 옮기는 걸 생각한 것 같아요. 통일 이후 동독과 서독의 문화가 중첩되며 매일 새로운 해프닝이 일어나는 베를린이 주목받았고, 이곳으로 무대를 옮겨 위기를 타파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갤러리와 작가들이 먼저 베를린으로 터전을 옮겼고, 이어 컬렉터들도 베를린으로 향했죠.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진 독일 서부의 쾰른과 뒤셀도르프 등의 도시가 작품 구매나 컬렉팅을 위한 경제적 환경과 인프라는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GW 독일 서부의 라인란트 지역엔 오래전부터 많은 컬렉터가 활동해왔고, 컬렉팅이라는 하나의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베를린은 아쉽게도 이런 전통은 없죠. 하지만 새롭고 다양한 문화에 늘 열려 있고, 그 가치가 자유롭게 유통되는 곳이에요. 베를린은 새로운 것이 가득하고, 수많은 변화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멜팅 포트(melting pot) 같은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알루미늄, 페인트, 전구를 사용한 공공 조각 작업을 선보이는 독일 작가 아나 파스하우어(Ana Fasshauer)의 ‘Untitled Light Sculpture’.


베를린처럼 전시가 끊이지 않고, 작가의 유입이 많은 곳이 있을까 싶습니다. 처음 베를린에 오셨을 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예상했는지 궁금합니다. GW 당시엔 지금처럼 베를린이 현대미술의 중심이 될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현재 베를린에선 2017년 쾰른 아트 페어와 협업해 개최한 아트 베를린 페어(Art Berlin Fair)가 눈에 띕니다. 한 인터뷰에서 베른트 씨가 드디어 베를린에도 아트 페어가 생겨 기쁘다는 말과 함께 기대감을 내비췄습니다. 재작년과 작년 두 차례 진행한 행사는 어떻게 보셨나요? GW/BW 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포함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그래도 베를린 미술 시장과 구조 확보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현재 구드룬 씨는 건축 사무소, 컬렉션과 더불어 아르티우스(Artious)라는 온라인 미술 플랫폼(https://artitious.com)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플랫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GW 2014년 9월에 아르티우스라는 이름의 온라인 플랫폼을 오픈했습니다. 작가와 그의 작품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죠. 우리 컬렉션에 포함된 작가뿐 아니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많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 소개하고, 대중은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 작업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네트워크 역할을 합니다. 젊은 작가에겐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발판이자 등용문이죠.






7 자택 겸 컬렉션 건물 입구 로비 공간에 놓인 그레고 힐데브란트의 조각 작품 ‘Pawn’(왼쪽)과 미니멀리즘 기반의 조각을 선보이는 슈테파니 슈타인 (Stephanie Stein)의 ‘Hysterical Delight’(오른쪽).
8 비디오와 조각 장르를 조합한 비디오 조각 (video sculpture)으로 현재 독일 동시대 미술 신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라파엘라 포겔의 조각 ‘Untitled’.

아시아 혹은 한국 출신 작가와 작품에도 관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GW 물론이죠.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세오(Seo)와 그녀의 작품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더불어 요즘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작가가 있다면요? GW/BW 독일 작가 라파엘라 포겔(Raphaela Vogel)과 오카 에스터 훙어뷜러(Okka-Esther Hungerbuhler) 그리고 알리샤 크바데(Alicja Kwade)의 작업에 관심이 많아요. 또 그레고 힐데브란트의 작업은 항상 주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술을 향한 애정과 열정이 가득한 부를리처 컬렉션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GW 앞서 언급한 플랫폼과 컬렉션 활동을 통해 신선함과 개성을 겸비한 작가와 그의 작품이 대중 앞에 드러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부를리처 컬렉션 홈페이지 http://wurlitzercollection.com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영균
이정훈(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최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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