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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15 CITY NOW

낙서가 아닙니다

  • 2015-11-30

거리의 예술 작품, 그라피티 아트는 베를린의 또 다른 볼거리다. 분단과 통일, 저항과 도시 슬럼화의 아이콘인 베를린의 대표적 그라피티 아트를 소개한다.

핀턴 매기는 베를린에 도착하자마자 촬영한 젊은 부부의 이미지를 모티브로 사용했다고 한다. 독일의 전통적 가족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라피티 아트의 성지로 통하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풍경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동베를린 방향의 광활한 회색벽이 얼굴을 드러냈다. 국가보안부(Stasi)의 삼엄한 단속 때문에 동쪽 벽은 서쪽과 달리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손길이 닿지 못했다. 1990년 통일 이후, 동쪽 장벽을 포함해 인근의 낙후한 건물은 세계 곳곳에서 모인 그라피티 아티스트의 거대한 캔버스가 되었다.
특히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는 그라피티 아트의 성지로 통한다. 크로이츠베르크와 프리드리히스하인의 중간에 있는 아름다운 오베르바움 다리(Oberbaumbrücke) 옆에 자리한 이곳을 방문하면, 1990년 초 21개국 118명의 예술가가 모여 완성한 1.3km의 그라피티 아트를 만날 수 있다. 그라피티 아트가 미술관에서 만나는 위대한 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고정관념 때문일까, 아니면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반항을 상징하는 그라피티 아트에 대한 반달리즘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은 훼손되기 시작했다. 씹다 버린 껌이나 본래 의도와는 다른 텍스트와 이미지로 뒤덮였다. 2000년 비영리단체가 복구 작업을 진행했으며, 2008년에는 시에서 거금을 들여 훼손 정도가 심각한 부분을 손봤다. 매년 2억 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독일의 분단과 통일, 그라피티 아트를 향한 세상의 애정과 푸대접이 묘하게 중첩하는 명소다.
크로이츠베르크 지구에 있는 쿠브리 폐허(Cuvry-Brache)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아티스트 블루(Blu)가 두 건물에 남긴 20m가 넘는 거대한 그라피티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였다. 현재 작품은 없어졌는데, 그 사연이 기구하다. 2014년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자 투자자 아르투어 쥐스킨트(Artur Süsskind)는 이곳에 사무용 건물, 고급 로프트, 호텔 등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불법 거주자를 내쫓았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모임이 나섰다. 2014년 12월, 작가의 허락을 받고 대형 리프트 두 대를 동원해 ‘당신의 도시를 되찾아라!(Reclaim Your City!)’라는 슬로건만 남긴 채 검은색으로 뒤엎은 것이다. 2015년에는 검은색 벽면에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든 반항적 이미지를 하얀 페인트로 그리기도 했는데, 이 메시지 역시 지워지고 남아 있지 않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그라피티 아트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여름, 베를린 라이니켄도르프(Reinickendorf)의 한 아파트 파사드를 장식한 42m 크기의 작품이 화제를 모았다. 주로 글로벌리즘과 난민 문제를 주제로 다뤄온 호주 작가 핀턴 매기(Fintan Magee)는 스트리트 아트 네트워크 단체 어번 네이션(Urban Nation)이 주최한 ‘평화의 여름(Summer of Peace)’ 시리즈의 초청을 받아 13일만에 대형 벽화를 완성했다. 아이를 안은 여성과 남성이 하늘을 보고, 폐허에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은 파괴 이후의 새 출발과 평화를 상징한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고 이렇게 말했다. “재건의 도시, 베를린에 완벽한 이미지라고 생각해요.”




이탈리아 작가 블루가 쿠브리 폐허의 한 건물에 완성한 이 작품은 베를린의 그라피티 아트
신을 상징하는 이미지였으나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Jung Mi Chai(독립 큐레이터, 디스쿠어스 베를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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