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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9 FEATURE

밀도 있는 한 장

  • 2019-06-12

40년간 구자현 작가의 판화는 똑같은 것이 찍힌 적이 없었다.

구자현은 한국 예술계에서 판화 한 장르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첫 개인전은 1976년 홍익대 응용미술과 3학년 재학 중에 가졌다. 그때를 시작으로 보기에 너무 이르다면, 오로지 판화를 찾아 떠난 일본 유학 기간 이후는 어떨까. 중년의 이우환을 만나고 백남준을 만나 자기 세계를 구축해야겠다는 영감을 받은 청년이었다. 오사카 예술대나 교토 세이카 대학을 졸업한 때나 규슈의 산교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할 때부터 세어도 약 40년이다. 적어도 한국의 생존한 작가 중대형 판화만으로 개인전을 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순수 회화 초심자에게 구자현이 쓴 <판화>나 번역한 <현대판화의 기초지식> 등은 여전히 필독서로 읽힌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인터뷰를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판화가 말고 작가라고 해주세요. 평론가들은 이름 붙이는 걸 좋아하더라고.” 간결하나 힘 있는 그의 어조는 지금 열리는 개인전의 <판화(版畵)>라는 이름만큼, 성수동 DSK갤러리를 배경으로 묵직한 울림이 되어 돌아왔다.

얼마 만의 인터뷰인가요? 글쎄, 한 3년은 된 것 같은데요. 전시도 3년 만이고.

판화를 전문으로 하는 작가를 참 오랜만에 봅니다. 한국에 판화과가 생긴 게 불과 30년 남짓이에요. 1988년 홍익대와 추계예대 두 곳에 처음 생긴 걸로 기억해요. 그 정도 학교만 쳐도 지금까지 수천 명이 졸업했을 텐데, 기자도 석판화 개인전이라는 걸 들어본 적 없을 겁니다. 전공을 살려 돈 버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심각한 문제라고 봐요. 보통 판화에 대해 오해하는 게 있거든요. 인쇄나 다름없고, 여러 장 찍힌다고 일반 회화보다 쉽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판화야말로 전문성이 없으면 제작할 수 없어요. 특히 석판화 같은 경우 제작을 대행하는 공방과 기자재, 노하우가 존재하고 이것들이 받쳐줘야 제대로 만들 수 있는데, 국내는 정말 척박하죠. 제작을 못해요. 한심하기 짝이 없죠. 이 일로 한 푼도 못 번다는 건, 나도 하고 있는 예술 세계가 세상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죠. 많은 사람이 판화를 아주 마이너한 것이라 여겨요. 그래서 나서서 판화 관련 책을 쓰거나 번역도 해왔어요. 지금은 재료에 관한 책을 쓰고 있습니다. 판화 자체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죠. 지금 100호 이상의 크기면 ‘대형 판화’라고 구분하는데, 그 이름을 제가 정의했어요. 일본의 판화 예술지 편집장도 이 말에 동의하더군요. 그 양반 말로는, 세계에서 대형 판화는 가장 많이 제작한 것 같다고 해요.

젊은 날 거듭된 일본 유학도 그렇고, 쉼 없이 계속하셨잖아요. 배우고 싶은 게 많으신 거겠죠? 남달리 열심히 했죠. 판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는데요. 아직도 돈 들여 배운 것에 대한 빚을 갚고 있습니다. 지금 걸려 있는 저 너른 작품이 한 번 찍으면 6개월 정도 말려야 하는 거예요. 어렵죠. 돈이 안 된다고 안 하고 돈이 없어서 안 하고, 기술이 없어서 못하고 그런 건 맞지 않아요. 한국이 목판화는 가장 오래된 나라 중 하나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죠.

지금이야 유튜브라도 뒤지면 되는데 말이에요. 대학 도서관에서 일본 판화 책을 봤는데 아이고야,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 한국에서는 목판화나 고무 판화 정도를 실습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수업을 들으며 점차 스크린이나 석판화에 대해 질문이 생겼지만, 차마 교수님께 물을 수 없었지요. 당시에는 그런 행동이 무례한 것 같았어요. 내 기준에 유일하게 판화에 대해 답해줄 수 있는 선생님 집 옆으로 이사할 정도로 열심이었는데, 내겐 부족했어요. 1학년 때부터 일어 학원을 다니며 준비해 현대미술을 배우러 일본에 갔습니다. 내가 학생일 때는 동료들이 프랑스 파리에 많이 갔는데, 의아했어요.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미술 신이 뉴욕으로 옮겨간 지 오래인데, 왜 그럴까 싶었어요. 나는 그들과 다른 길을 갔죠. 친구들이 일본 유학을 만류할 때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어요. 일본 판화의 역사는 압도적으로 깁니다. 지금도 최고죠. 도자기, 사진, 전통 공예 중 칠, 염색도 그렇고 당시에도 발전한 영역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그런 전문가를 키워야 하는데, 다 어디로 갔을까요? 그 바탕을 지금이라도 만들어줘야 하는데. 다들 안 한다고 해요. 그럼 나는 반문해. 제대로 해보긴 했느냐고.




1 ‘Oriental Ink’, 2011.   2 ‘Oriental Ink’, 2011.   3 ‘UNTITLED’, 2012.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미 판화를 배웠다. 검은색 고무판을 조각칼로 파내거나 동판을 누르면서 물감을 바르던 기억. 판화는 순수 회화의 기초로 필요한 개념이 평면과 입체에 걸쳐 있는 장르다. 오히려 아이 때는 다섯 손가락 가득 물감을 묻히고 즐겁게 받아들였을 텐데, 어른이 되면 많은 일에 그렇듯 도통 그 재미를 잊는다. 이를테면, 똑같은 것을 따라 그리는 복제(reproduction)나 복사(copy)와 헷갈리는 것이다. 인쇄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무심히 보기도 한다. 이를 막기 위해 1964년 미국판화가협회가 진본 판화의 정의를 소개하기도 했다. 작가가 직접 원판을 그리고 작업하되 작가 자신이나 지시받은 사람이 프린트한 뒤 인정하는 증거를 남길 것을 권한다. 여느 회화처럼 작품마다 서명하거나 최소한의 에디션을 만들고 몇 장 중 몇 번인지 숫자를 남기는 것이 보통이다. 회화 장르 안에서 판화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전에는 천을 이용해 실크스크린이라 부르던 공판화의 경우 지금은 다양한 물성의 재료를 이용하기에 스크린으로 통용하고 있다.

서로 생각하는 ‘제대로’의 수위가 다른 게 아닐까요? 보시죠. 스크린하면 흑백의 단조로움이거든? 잉크가 빠져나온 흔적이에요. 멀리서 봐도 스크린이라는 걸 알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걸 누구든 나도 할수 있겠다 싶고 그냥 코팅하고 광택을 먹였다고 짐작하겠죠. 하지만 노하우가 없으면 제작하기 어려워요. 간단해 보이는 작품도 한 판에 네 가지 색이 가는데, 전문적으로 몰두하지 않으면 이 차이를 절대 잡아낼 수 없습니다. 제 작품은 물성을 살렸기에 단순한 그림인데도 밀도가 있어 보이는 거예요.

작가님의 전시를 관람할 때는 평면을 유심히 봐야겠군요. 여기 전시 포스터 같은 것도 보세요. 우선은 글씨만 보이겠죠? 포스터니까 값이 쌀 것이라는 건 고정관념이죠. 한지라 인쇄하기가 간단하지 않거든요. 이것이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게 교육일 텐데요, 이게 오리지널 아트 포스터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저기 아래 작가의 서명이 있잖아요? 전시 포스터 하나도 공산품이 아니라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줘야죠. 나는 저 구석에 걸린 이번 전시 포스터가 제일 좋아요. 내가 한 게 아닌데도. 이건 꼭 보면 좋겠어요.

일깨우는 사람은 작가와 관객 모두인가요? 어떻게 말해주면 좋을까요? 그림을 보는 관객, 우리 자신이 학습이 되어야 합니다. 작업을 꾸준히 하고 전시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나는 내 작업을 하는 거죠. 나의 그림을 판화로 표현하는 거예요. 인쇄하듯이 그림을 찍고 보여주는 거죠. 내가 판화를 사랑하고 좋아하니까 이걸 믿고 살아보는 거예요. 판화는 시와 같아요. 일반 회화는 소설 같은 겁니다.

짧은 단어에 긴 이야기를 하는 시와 내러티브가 있는 소설의 차이! 그래서 그동안 다른 일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지. 판화도 회화고 예술의 한 기법이니 관객보다는 갤러리와 비평가들이 여기에 쓰는 물성을 이해하면 좋을 텐데, 아쉬워요. 한국 시장만의 특징일까요. 이런 관점은 예술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에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작가 이름에만 주목하고, 누군가 비싸게 사니까 따라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전시를 통해 알리고 싶은 판화의 매력은 단 한 장만 걸어도 그 공간이 쉽게 바뀐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 장이 있기에 아무리 비싼 재료를 써도 컬렉터에게 바가지를 못 씌웁니다.(웃음)

작가 경력을 읽기 전, 오늘 걸린 작품 사진만 보고는 요즘 성수동에 어울리는 젊은 작가의 것인가 했어요. 저기 검은색 원과 틈새에 걸린 색이 예뻐서요. 작품이 멋있어야지, 예쁘면 안 되는데.(웃음) 그거 중요한 얘긴데요. 물성이 달라서 면이 쫀득쫀득해 보이지 않아요? 타원은 1979년에 세 가지 색으로 만든 스크린 작품에 있었어요. 형태가 잠재의식에 깔려 있었던 거겠죠.

검은 원 아래는 원색의 다른 면이 겹쳐 찍혀 있고, 약간씩 어긋난 지점에 색이 보입니다. 전에는 이 면과 면 사이에 더 긴장감이 돌았다고 들었습니다. 잘 표현될 수 있도록 종이도 많이 찾고 따져왔겠죠? 그럼요. 한국에서 나만큼 종이만 쓴 사람도 드물걸요. 항상 좋은 종이가 있다면 찾아가고 연구하고 모아둡니다. 특허까지 낼 만큼요. 종이 한장 한 장, 판 비와 제작비가 바로 나와요. 여기 걸린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7000장쯤 사서 해봐야 하거든요. 20만 원 곱하기 7000장만 해도 얼마예요. 단순하게 따져봐도 값이 대단하죠? 이번 전시를 위해 마음에 드는 종이를 찾는 데에만 영국, 일본 다 돌면서 6개월 정도 걸렸어요. 작가가 싸구려 물감쓰고 남한테 비싼 돈 받으면 안 되잖아?




4 작가 뒷편 스크린 작품은‘UNTITLED’, 2014    5 ‘UNTITLED’, 2012.

초기작부터 나열한 일본 아베 퍼블리싱의 <구자현 전판화> 책을 봤습니다. 매번 화풍이 새롭게 변하더군요. 이번 전시도 그렇습니다. 세 가지 판화 기법으로 나눠 4월부터 8월까지 연속으로 열고 있는데, 40년 전 작가님처럼 회화에 관심 있는 청년이 온다면 기술적으로도 배우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5월까지 열리는 스크린 주제와 6월 목판화(6월13일~7월 31일)에 이어 세 번째 주제로 리소그래프(8월 15일~9월 30일) 작품을 전시해요. 개인적으로는 이 파트가 중요하게 느껴져요. 일본에서 배울 때도 이 기법에서 가장 고생을 했거든요. 가장 고민하던 시절이고요. 그리고 작업 노하우를 묻는 거라면, 판화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 방법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판화는 작업량이 엄청 많아요. 이 일을 계속하려면 운동을 해야 돼요. 손에도 익어야 하고. 누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현장에 가서 살피고 자료를 찾고 재료 경험을 해야죠. 종이 만지고 파악하는건 필수고요. 책 하나도 종이가 반쯤 말을 하지요? 이 정도 전시면 누구든 싸울 각오를 해야 하지요. 작품 하나 찍는 데 여섯 사람이 필요합니다. 컬래버레이션한 작품이니 내 도록에는 그들 이름을 다 적어뒀어요. 또 작가가 스스로 가장 조심해야 할 게 매너리즘 아니겠어요? 자기주장만 하는 것도요. 그런 사람 치고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 없어요. 그림쟁이라 하면 독불장군으로 보기도 하잖아요. 작가는 인간적이어야 해요. 인간적이지 않으면 작품을 낼 수 없어요. 그럼 누가 감동을 하도록 하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곧, 타블로(평면 회화)와 재료에 관해 책을 낼 거예요. 그때 또 이야기 나눕시다.

언젠가 뉴욕 모마(MoMA) 전시장에 들렀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많은 사람처럼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를 찾아, 혹은 새로운 현대 작품의 기조를 볼 겸 찾은 전시였다. 그저 좋다고 거닐던 중, 너무나 익숙해 이제는 흔하게 느껴지는 피카소의 작품을 보고 머리를 한 방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교과서에서 익히 본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 나를 놀라게 한 것. 2m가 훌쩍 넘는 큰 작품과 구성이야 이미 아는 그림인데, 가까이에서 보니 여인들의 몸을 따라 그어 내린 선의 표면에 엄청난 밀도가 있었다. 옛 자료집 사진에서 본 머리 하얀 노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발표 당시 20대였을 청년 피카소의 힘을 느꼈다. 비행기표 값은 채 5mm 남짓한 간격에서 대가의 힘을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별것 없는 경험이지만, 구자현의 작품을 보길 권하는 이유다. 그의 오랜 경력과 고급스러운 도록만으로는 그가 주장하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있다. 그의 작품이 단순해 보일지라도, 실제로 목도하면 그 선이 한껏 예민하며 섬세하다. 검은색이 다 같은 검은색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거나 혹은 동의하지 않더라도 구자현과 그의 작품을 꼭 한번 봐주길 바란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장소 협찬 DSK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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