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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9 LIFESTYLE

제주도에 살았다

  • 2019-05-09

1년 동안 제주도를 오갔다. 경이로운 풍경과 여백 그리고 도시의 삶을 바라보는 거리감을 얻었다.





다시 안경 렌즈를 닦는다. 몇 번을 반복해도 이 광경은 믿을 수 없다. 빌딩 틈으로 보이는 고작 몇 평의 하늘은 방금 차가 지나간 비포장도로처럼 부옇다. 마스크를 쓴 무표정한 사람들, 수십분을 걸어도 끝나지 않는 빌딩 숲, 쉼 없이 울리는 휴대폰은 여기서 살아가는 자들의 만성질환과 같다. 초 단위로 뉴스가 업데이트되고, 수시로 풍경이 바뀌는 도시의 속도감까지 겹치면 하루가 무겁다. 일상이 질린다. 하, 100세 시대라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일해야 하는 건가. 나는 무엇을(혹은 누구를) 위해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나. 개인차는 있겠지만, 몇 년을 주기로 그런 슬럼프가 찾아온다. 생전 없던 고민에 골똘하고(답이 없는 건 모두 같다) 타인의 삶을 엿본다. 내가 벌일 수 있는 가장 대범한 짓의 범위를 가늠한다. 정확히 5년 전 내 상태가 그랬다. 그땐 평소 자리에 들고 나는 것을 개의치 않던 편집장이 핀잔을 줄 정도로 담배를 많이 태웠다. 벤치에 드러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거나 노트에 인생 타임테이블 같은 걸 끄적거렸다. 그땐 누군가를 마주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가족이나 애인, 친구 같은 대인 관계가 어깨를 짓눌렀다. 단지 권태만은 아니었다. 좀 더 본질적 갈망이 원인이었다. ‘인생이 잘 가고 있는 것인가?’, ‘이대로 괜찮을까?’, ‘뭔가 더 필요한데, 그게 뭘까?’ 같은 뿌연 갈증이 있었다. 가장 무서웠던 질문은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였다. 그래서 탈출을 생각했다.
가방 속엔 항상 같은 책이 들어 있었다. ‘장 그르니에’의 <섬 : Les Iles>. 책은 못 알아먹는 말투성이였다. 그래도 당시 내 뿌연 고민은 책에 적힌 여러 문장에서 위안을 받았다. 장 그르니에는 케르겔렌 군도 챕터에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내가 원하는 바는 다름이 아니라 잡다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연 그대로 상태로 되돌아가는 일이었다”라고 적었다. 나 역시 나를 아는 사람 없는 낯선 공간으로 달아나고 싶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발가벗겨져 도시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싫었다.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과 설렘, 약간의 두려움이 필요했다. 거기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긍정이 나를 안도시켰다. 그 순간 제주도가 떠올랐다.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과의 인연은 수학여행과 출장차 찾은 몇 번이 전부였다. 그래서 더 끌렸다. 체감상 그리 멀지 않지만 낯선 곳. 제주도는 내가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과감한 거리였다. 그리고 파편적 기억 속의 그 섬은 아름답고 고즈넉했다.

당시 제주도는 그렇게 핫한 곳은 아니었다. 시대의 아이콘이던 여가수가 정착하거나 구름 떼 같은 중국인 관광객이 섬을 찾기 전이었다. 때가 되면 유채꽃을 보거나 골프를 치고, 오름을 오르는 관광객 같은 뜨내기들이 제주도를 찾았다. 서울 촌놈인 나는 제주도를 제2의 고향쯤으로 정했다. 마침 소식을 들은 친구 두 명이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내게 “한 번에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위험하니 함께 집을 구해 1년 동안 오가며 결정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회사도 당장 정리하긴 어려웠다. 1년의 유예기간 동안 부족한 준비를 마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린 성산 해안가에 위치한 2층 단독주택을 연세로 빌렸다. 집 이름은 ‘성산하우스’. 말이 2층 단독주택이지 30평도 안 되는 낡은 집이었다. 2층은 천장이 낮아 잠자는 용도 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보일러가 자주 고장 나고 수압이 약했다. 방마다 외풍이 심했고, 바람이 센 날이면 창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상아색 페인트가 벗겨진 녹슨 철문은 여닫을 때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낡은 돌담은 곳곳에 금이 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육지 자식이 세상 떠난 부모의 집을 오래 방치하다 세놓은 집이었다. 그래도 좋은 것이 더 많았다. 얕은 옥상에 앉으면 우도 선착장이 보였고, 제주도의 일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드는 바다와 제주도 하늘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옷가지와 카메라가 든 배낭을 메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장거리 연애를 하듯 처음 몇 달은 애틋하게 제주와 주말을 보냈다. 가장 오래 머무른 건 그해 가을이었다. 주말과 휴가를 합친 17일 동안 제주도에 홀로 있었다. 제주도에서의 일상은 느슨했다. 긴 우기가 시작되려던 때고 동해 먼 바다에서 태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의 시작은 느지막이 일어나 집 근처 카페를 찾는 것이었다.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높은 파도를 바라보다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가 내키는 것을 주문해 먹었다. 우럭매운탕과 성게알 미역국, 전복죽과 뼈해장국 모두 육지에서 먹던 것이지만, 조리 방식이 조금 달랐다. 섬에선 좀처럼 먹지 않는 고추기름과 간장을 부탁하면 “육지에선 그렇게 먹지요?”라고 식당 주인이 되물었다. 우도 선착장 근처 카센터에서 작은 스쿠터를 빌려 타고 모슬포와 서귀포, 표선과 함덕 같은 해안 마을을 돌았다. 어떤 날은 등산화를 신고 제주시와 중문, 한라산 둘레길 같은 내륙 곳곳을 돌아다녔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툇마루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다. 동문시장에서 고등어를 사다 화덕에 조림을 하고 맨밥에 젓갈을 얹어 밥을 먹었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자 동네 사람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느냐”, “장가는 갔느냐”, “왜 이곳에 왔느냐” 같은 질문. 그들은 육지에서 온 나를 경계하면서도 궁금해했다. 겨울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하우스 밀감 재배에 동원되기도 했다. 방파제에서 빈 바늘로 낚시를 하고 있으면 사람을 태운 트럭이 멈추고는 나를 불렀다. 며칠 동안 농장에서 귤을 따면 귤이 가득 담긴 큼지막한 봉지와 몇만 원이 담긴 봉투를 받았다. 제주도에서의 일상은 그렇게 흘러갔다.

제주도에서 보낸 시간이 마냥 아름다웠던 건 아니다. 태풍이 심한 밤엔 몸이 아플 정도로 외로웠다. 섬사람들은 곁을 내주지 않았다. 인터넷은 수시로 끊겼고, 뭐 하나 사려 해도 시내까지 나가야 했다. 무엇보다 점점 지루함을 느꼈다. 아무리 오고 가는 뜨내기 생활이라지만 1년 가까이 이어지다 보니 신기한 것도, 낯선 것도 점차 사라졌다. 도시에서 자란 젊은 사람이 살기에 제주도는 너무 적막했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여기서도 내 삶은 비슷하게 이어지는구나’싶었다. 그래도 제주도에서 얻은 것이 많다. 첫째,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 제주도는 고양이의 섬이다. 마을 곳곳 돌담이나 해안가, 바이크 시트 위, 가게 툇마루 위로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고양이가 널려 있다. 처음엔 섬 짓놀랐지만 자주 맞닥뜨리다 보니 머리를 쓰다듬을 정도가 됐다. 둘째, 꼭 필요한 걸 구분해낼 능력이 생겼다. 도시는 무엇이든 과잉으로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거기에서 삶이 빽빽하게 채워 넣는 것이라면, 제주도는 필요한 것만 단출하게 갖추는 곳이다. 제주살이 이후론 삶이 조금 단순해졌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변화. 바로 서울에서의 삶을 객관화할 수 있는 거리감을 얻은 것이다. 엉망진창 같던 30대 중반의 인생이 멀리서 바라보니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부족한 것과 잘할 수 있는 게 명확히 구분됐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이런 삶을 다시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성산하우스가 철거되며 제주도 생활도 끝났지만, 이제 조급함은 없다. 먼 훗날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네팔 마을 길목에서 막걸리 집을 열고 싶은 막연한 꿈이 새로 생겼다. 제주도에서 잠시 지냈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묻는다. “좋았어요?” 물론, 좋았다. 여전히 눈 덮인 사려니숲 깊은 곳에 쏟아지던 햇살과 에메랄드빛으로 물든 월정리 해안이 그립다. 성산하우스 옥상에서 몸을 달달 떨며 태운 담배 맛과 키 큰 갈대가 바람에 쓸려 넘어가는 소리도 그립다. 하지만 제주도는 막연한 솔루션도, 탈출구도 아니다. 속세로 부터 숨을 수 있는 곳도 아니다(실제로 1년 동안 아는 사람을 세 차례나 마주쳤다). 그곳에도 시간이 흐르고 삶이 이어진다. 제주도는 조용히 경이로운 풍경과 여백을 보여준다. 거기서 위안을 얻고 다시 움직일 힘을 내는 건 각자의 몫이다. 이제 다소 열기가 식었지만, 제주도는 여전히 많은 걸 품고 있다. 반도엔 제주도가 있다. 이건 우리에게 꽤나 큰 축복이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이미지제공 삼성미술관 Le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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