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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9 FEATURES

EDITOR'S TASTE

  • 2019-05-10

녹음이 시작되는 봄과 여름. 그 간극을 즐기는 우리의 자세.



이 봄 나 혼자
기를 쓰고 달려드는 음식 세 가지가 있다. 순대곱창볶음과 뼈해장국 그리고 하나가 바지락 칼국수다. 특히 바지락 칼국수는 어린 시절, 일 때문에 바쁜 부모님 대신 할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시던 음식 중 하나다. 그 기억 때문인지 어른이 되고 나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할머니의 그리운 손맛을 찾아 이리저리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다녔다. 돌이켜보면, 바지락은 봄이 찾아올 무렵이 제철인지라 바지락 칼국수를 찾을 때면 매서운 추위에 손끝까지 시려오는 겨울이 지나고 어느새 주변은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뜨끈한 한 그릇의 매력은 신선한 바지락으로 우려낸 시원한 국물과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칼로 썬 국수의 조합이다. 여기에 각자 취향에 맞게 단호박을 썰어 넣거나 청양고추를 넣어도 좋다. 맛깔스러운 김치 한 조각을 곁들이면,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 밀려온다. 분명 소확행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인생은 길고 먹을 것은 넘치지만, 바지락 칼국수는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음식이다. 따사로운 온기와 함께 녹음이 시작되는 봄과 여름의 간극에서 오늘도 난 할머니의 손맛을 찾아 떠날 예정이다. 에디터 현국선






신바람 나는 봄

내게 벚꽃의 꽃말은 야구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시즌이 열린다. 사실 겨울부터 몸이 달았다. FA 시즌 동향과 겨울 캠프 기사까지 챙기는 골수 팬들은 365일이 시즌이다. 이 시기엔 팬들마다 희망 회로를 가동한다. ‘A 선수를 영입했고 B가 군 제대로 가세했으니 이번 시즌은 우리 팀이 우승이다’ 같은 무한 긍정의 시나리오를 저마다 쓴다. 그래서 야구는 봄이 가장 뜨겁다. 승점 차이 없는 출발선 앞에선 모두가 우승 후보이기 때문. 33년 전 막내 삼촌을 따라 잠실 구장에 갔다. 유소년 클럽에 가입하고 점퍼와 티셔츠, 글러브를 받았다. 그게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이었다. 그 죄로 여전히 쌍둥이 경기를 응원한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0년과 1994년 꼴랑 두 번밖에 못했고, DTD(Down Team is Down)는 과학이라는 명언을 만든 팀이지만 이번 시즌엔 뭔가 다르다(나도 희망 회로를 돌리는 팬 중 한 명이다). 철벽이던 투수진은 용병 교체와 슈퍼 루키의 영입으로 더욱 단단해졌고, 타선은 쫀쫀해졌다. 여기에 프랜차이즈 단장 선임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이번 봄의 푸르름은 잠실 구장에서 바라보는 필드다. 거기엔 승리와 신바람이 있다. 에디터 조재국






덧없는 계절

마른 가지에 새잎이 돋아날 때의 계절과 순간을 좋아한다. 처음 본 제주의 봄에는 옅은 초록이 움트고 있었다. 아주 연하고 잔망스러운 이 녹색 기운은 내가 지난번 본 여름의 색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주에 사는 이들을 만나고 대화할 기회가 있을 때면 연거푸 이곳의 봄에 매료됐다고 고백했다. 내 이야기에 그들 역시 제주는 봄이 가장 예쁘다 화답하며, 창을 열거나 일터로 향하는 길이 즐겁다고 덧붙였다. 잠시 일로 머문 제주지만, 그 말의 의미를 눈과 마음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걷는 길과 버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에 번지는 초록이 마음을 다독여주었기 때문이다. 화원이나 식물원을 찾아야 볼 수 있을 법한 이름 모를 꽃과 나무, 풀 포기가 지천에 깔린 풍경은 정돈된 도시의 녹색과는 또 다른 자유로움이 담겨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니 제주의 봄이 자꾸 생각났다. 올해 다시 찾는다 해도 볼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일 터. 하지만 비로소 매해 봄 제주를 찾아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 조금은 위로가 된다. 내년에는 사랑하는 이에게도 내가 본 그 덧없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러 함께 떠나야겠다. 에디터 정유민






봄날의 차경

“거 모서리 가리라, 마.” 건축가 최욱은 1년 전 한 강연에서 한옥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젊은 시절 받은 스승의 가르침을 전했다. 사진 속 한옥의 가장자리와 모서리는 마당에 심은 나무에 가려진 채 포근히 은신해 있었다. 건축 사진이라기보다는 풍경 사진에 가까워 보이는, 박제된 장면 속 반짝 빛나는 계절. 한국 건축의 미학이란 그토록 묵묵하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청강 이후, 전에는 멋져 보이던 잘 정돈된 일본식 정원과 건축이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계절의 변화를 누리는 방법도 달라졌다. 절화나 이국의 식물로 채운 카페나 식물원에 가는 대신 자연을 소유하려 하지 않고 잠시 빌려 즐기던 선조의 시선으로 오래된 도시 서울을 걷는다. 사대문 근처 한옥과 한옥 사이에서 숱한 세월을 품었을 우직한 나무와 공기, 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 자연의 드라마다. 오는 5월에는 인왕산 자락의 운경고택에서 절정의 봄을 만끽해보려 한다. 평소에는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운경 이재형 선생의 집 운경고택이 <차경(借境), 운경고택을 즐기다> 전시로 5월 한 달 동안 문을 활짝 연다.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작품 세계를 시도하는 두 공예 디자이너, 텍스타일 디자이너 장응복과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의 공예 작품이 놓인 멋스러운 고택의 봄. 올봄이 부디 천천히 머물다 가기를 바라는 건 그 풍경이 벌써부터 그리워서다. 에디터 전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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