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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VIEW

  • 2019-05-08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논란과 첨예한 미래에 대한 단상.


아직도 음원 사재기를 한다고?
소싯적(?)에 음악깨나 들었지만, 지금은 트와이스와 모모랜드도 구분 못하는 옛날 사람이다. 유행에 민감한 스타일도 아니다. 그래도 너무하다 싶을 땐 차트를 본다. 뮤직 플랫폼에서 제공하는 ‘실시간 인기 100’ 차트가 나 같은 아저씨에겐 요즘을 읽는 지표다. 30~40대 남성 대부분이 나와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트는 온전히 현재 대중의 관심사를 담고 있을까? 최근 불거진 이슈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최근 ‘장덕철’, ‘우디’, ‘닐로’, ‘숀’ 등 몇몇 가수가 음원 사재기 논란에 휩싸였다. 인지도 낮은 신인, 소형 기획사 가수의 노래가 단기간에 차트에서 수직 상승한 것이 이유였다. 차트 순위와 체감하는 온도 차이가 심했다. 일각에선 돈으로 만드는 순위를 비난했고, 대중을 기만하는 장사 방식에 분노했다. 음원 사재기 시 순위가 갑자기 오르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서킷 브레이크 제도 도입이나 아예 차트를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사재기 논란은 음악 시장이 음반에서 음원으로 이전된 뒤 꾸준히 일었다. 2013년을 기점으로 일명 브로커까지 횡행했다. 이들은 해외에서 수만 개의 아이디를 생성해 특정 가수의 곡을 반복적으로 스트리밍하고 다운로드해 순위를 높였다.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이라는 고상한 말로 사재기를 포장했다. 공공연히 3억 혹은 5억이라는 디테일한 금액까지 거론됐다. 시사 프로그램과 뉴스의 보도로 이들의 실체가 공개됐다. SM이나 YG, JYP 같은 대형 기획사가 수사 기관에 조사를 요청했다. 여론이 기울자 사재기는 한동안 잠잠했다. 음원 사이트도 순위 산정 방식에 사재기가 개입할 수 없도록 복잡하고 체계적인 알고리즘을 도입했다.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번에도 사재기는 없었다. 담당 부처인 문체부는 이번 논란에 대해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그럼에도 논란은 좀체 식지 않고 있다.
기획사 대부분은 더 이상 음원 사재기를 하지 않는다. 너무 티 나고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 이유다. 여전히 사재기를 대행하는 업체가 있지만, 단가는 몇 년 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대신 SNS나 동영상 공유 플랫폼을 이용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활용해 음원 띄우기를 한다.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윤종신의 ‘좋니’와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멜로망스의 ‘선물’ 등이 대표적 사례다. 흔히 차트에서 사라졌다 재진입한 ‘차트 역주행’의 대표적 곡이다. 운이 없어(혹은 마케팅의 부재) 차트에서 사라졌다 노래가 좋아 입소문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는 분석은(물론 이런 사례도 있다) 너무 나이브하다. 지금의 바이럴 마케팅은 고도로 진화했다. 위 노래들은 SNS 같은 대형 콘텐츠 플랫폼에서 활동 중인 뮤직 바이럴 마케팅 페이지 ‘딩고’나 ‘노듣다(노래는 듣고 다니냐)’, ‘세소라(세상에서 가장 소름 돋는 라이브)’, ‘일소라(일반인의 소름 돋는 라이브)’ 등의 페이지에서 꾸준히 노출되며 입소문을 탔다. 이 밖에 방송국이 보유한 웹채널과 엔터테인먼트가 자체 운영하는 페이지 등도 바이럴 마케팅의 창구다. 대부분 팔로어 숫자가 수백만에 이르기 때문에 메가급 홍보가 가능하다. 인터넷 세상에서 이들의 힘은 세다.
이제 이러한 활동은 필수다. 신인이 아닌 대형 가수도 이러한 플랫폼을 활용한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형태만 다를 뿐 과거에도 이러한 활동은 다반사였다. 음반이 출시되면 강남과 종로, 신촌과 홍대의 로드 숍을 다니며 음료수와 함께 “틀어주세요” 하고 부탁하던 것과 본질은 같다. 많은 곳에서 자주 노출하면 대중은 관심을 보인다. 그렇다면 사재기와 바이럴 마케팅은 어떻게 다를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남는다. 기획사들은 여전히 자사 가수의 곡을 띄우기 위해 돈을 지급한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바이럴 마케팅은 대중이 음악을 듣고 구매하도록 유도한다. 자꾸 눈앞에 등장시키며 귀에 속삭인다. 직접적으로 줄 세우기에 가담하는 사재기와는 근본부터 다르다. 이 차이가 합법과 불법, 기만과 마케팅의 차이를 만든다. 현대사회의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마케팅이 생략된 사례는 없다. 물론 무언가로부터 조종당하는 것 같은 찝찝함을 떨칠 수 없지만,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정상까지 갈 수 없다. 어느 정도 힘은 받겠지만, 시대의 곡으로 남는 건 온전히 가수와 노래의 몫이다. 마케팅을 통해 수직 상승한 음원이 곧바로 차트에서 사라진 무수한 사례를 떠올려야 한다. 그러니까 차트란 이익과 의도, 어느 정도 대중의 관심도가 적절히 버무려진 꽤 복잡한 그래프인 셈이다. 적당히 믿고, 적당히 참고하는 참된 소비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_ 조재국




마지막 승부

어떤 경기는 오직 마지막 순간으로 기억된다. 경기 내내 맥을 못 추다가도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너무 드라마틱해 전설로 남기엔 오히려 효과적이다. 문제는 역전승을 ‘당할’ 때다. 최근 방영 내내 인기를 끌던 드라마가 단지 엔딩 때문에 그 전의 영광은 까맣게 잊혀진 채 차갑게 뭇매 맞는 걸 보면서, 결국 드라마도 마지막 승부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식 결말엔 여러 유형이 있다.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처럼 한 배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억지로 극의 흐름을 전복시키거나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처럼 작가조차 수습할 수 없어 산으로 가는 결말이 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초 단위로 PPL을 뿌리는, 그야말로 광고주를 위해 존재하는 결말은 너무도 흔해서 놀랍지도 않다. 문제는, 시청자가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는 경우다. 최고 시청률 23.8%이라는 폭발적 시청률을 기록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대표적 예다. 몇 개월간 스카이캐슬 앓이를 하던 시청자들이 머릿속에 그린 완성본을 갈기갈기 찢는 듯 지나치게 착한 마지막 회가 방영되는 동안 SNS상에는 “20회 안 본 눈 산다”는 말이 쉼 없이 쏟아졌다. 일부 극단적 팬들은 <스카이캐슬> 마지막 회는 19화인 걸로 자체 마무리하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말은 과연 누구의 몫일까? 일련의 화제를 관망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개월간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는 드라마 특성상 보는 이의 기대를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해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그것이 창작자의 권리와 자유를 난도질하는 무시무시한 흉기는 아닐까. 시청자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수렴해야 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한 작품의 창작에 승선하는 사공이 너무도 많다. 과부하다. 작품의 인기가 뜨거울수록 배가 산으로 가기 십상인데, 거기다 산불까지 난 셈이다. 이쯤 되면 “자, 이제 원하는 결말에 투표하시오!” 시청자 게시판에 투표란을 만들고 그에 따라 대본을 수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최근 선보인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 : 밴더스내치>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영특하게 이용한 작품이다. 시청자에게 선택하도록 해 그에 따라 극이 전개되는 방식으로, 마치 게임과 영화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듯하다. 어떤 시리얼을 먹을 것인가 같은 사소한 선택이 잔잔한 날갯짓으로 거대한 나비 효과를 가져온다. 한번 선택해도 되돌릴 수 있기에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합쳐 전편을 감상하려면 5시간 12분 정도 걸린다. 선택을 원하지 않거나 선택이 늦어지면 작품은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이렇게 진행될 경우 작품의 러닝타임은 1시간 30분이다. 아주 짧게는 20분 만에 엔딩에 도달할 수도 있다. 관건은, 어떤 결론이 나든 시청자의 선택을 기반으로 하기에 선택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점이다.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선택하지 않으면 된다.
드라마가 이야기를 펼쳐가는 방식이라면 영화는 좁혀가는 방식에 가깝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결말을 미리 정해놓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은 생각보다 많다. 결말로 오랫동안 화제에 오른 이해영 감독의 영화 <독전>도 그중 하나다. 혹시 모를 만약에 대비해 여러 가지 결말 얼터 컷을 찍어두었다지만, 그가 애초부터 원한 건 모호한 채로 열린 결말이었다. 마치 어린 시절 마녀의 유리 구슬을 통해 자신의 종말을 미리 본 뒤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빅 피쉬> 속 주인공처럼, 결말을 염두에 두고 극을 풀어나갔다. 관객 입장에서는 결말이 매듭일지 모르지만, 창작자에게는 결말이 곧 시작이자 아주 중요한 첫 단추이기도 하다는 얘기다. 어떤 작품은 결말을 통해 완전무결해진다. 그렇기에 작품이 끝난 뒤에도 영속성과 생명력을 지닌다. 다수가 지금 당장 원하는 결말이 좋은 결말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야 의미를 알 수 있는 편지처럼, 다된 밥에 뿌려진 재가 MSG처럼 훗날 어떤 맛있는 화학작용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얘기다. _ 전희란

 

에디터 <노블레스 맨> 피처팀
일러스트 최익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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