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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SPECIAL

[Artist Collective] 컬렉티브, 경계 없는 예술을 이룰 수 있을까

  • 2019-03-12

1, 2, 3 작가 문해진과 기획자 윤여준이 함께 기획한 < 접-점-들 > 전시 전경.

예술 간의 경계
2018년 겨울, 동대문의 한 공간에서 열린 < 접-점-들 >전 오프닝에 참석했다. 여성 괴물을 아카이빙해온 문해진의 첫 개인전으로 작가와 기획자 윤여준이 공동 기획한 전시다. 여타 다른 오프닝처럼 ‘전시의 이런 점이 좋았다’, ‘작품 제작 방법이 독특하다’는 평이 오고 가는 와중에 불현듯 궁금해졌다. ‘왜 공동 기획이라는 형식으로 개인전을 준비했을까?’ 전시 기획에 있어 작가의 입김이 들어가는 건 당연하지만 작가와 기획자의 역할이 구분된 게 일반적이다. 한데 <접-점-들>의 기획자 명단에는 작가와 기획자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문해진 작가에게 물었다. “기획 명단에 기획자와 작가의 이름이 함께 있는 게 흥미로워요. 기획자와 공동 기획을 하니 어땠나요?” 그 안에서 역할 구분은 했는지, 아니면 함께 아이디어를 냈는지,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도 궁금했다. “대화를 나누다가 전시를 같이 해보면 흥미롭겠다 싶었죠. 전시 아이디어는 공동으로 낸 거라 어떤 특정한 것이 누구의 생각이라고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네요. 아마 처음에는 누군가의 입에서 아이디어가 나왔겠죠? 그런데 오랜 기간에 걸쳐 함께 대화를 나누고 발전하다 보니 둘의 생각이 뒤섞였고 예측 불가능한 결과가 나왔죠. 만족스러워요”라고 작가는 답했다. 문해진과 윤여준의 관계는 구성 인원이 몇 안 되며 활동의 지속성도 약한 관계로 컬렉티브라 말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둘의 관계를 어두에 둔 이유는 ‘둘의 생각이 뒤섞여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라는, 예술 내에서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컬렉티브의 의미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가 예술가를 고독한 존재로 그려내기에 혼자 고뇌하고 작품 창작에 매진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지만, 대다수 예술의 거대한 흐름은 공동 행동에서 탄생했다. 인상주의가 모네(Claude Monet)의 ‘해돋이’에서 파생됐지만 예술 학파 인상주의의 형성은 여러 인상주의 작가들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피카소(Pablo Picasso)와 브라크(Georges Braque)도 1910년대 초반 긴밀한 협업으로 큐비즘을 창시했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와 울라이(F. Ulay)도 1970년 둘이 함께 퍼포먼스 붐을 일으켰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예측 불가능한 결과로 새 장르 탄생을 이끌어냈다. 즉 작가들의 집단행동은 기존 예술을 해체하고 새로운 예술 흐름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4 보물섬 콜렉티브의 < 보물섬 > 전시 전경. 5 보물섬 콜렉티브, 니에트! 니에트!, 2018

다시 본래의 물음으로 돌아가자. 컬렉티브는 경계 없는 예술을 이룰 수 있을까? 여기서 ‘경계’를 예술 장르 내로 한정한다면 답변은 ‘그렇다’이다. 회화와 조소, 파인 아트와 디자인, 미술과 무용 등 큰 범위의 예술 안에서 보면 컬렉티브의 경계 무너뜨리기는 확실한 결과를 냈다. 김동찬, 민성홍, 송민규, 최진요, 하석준, 황경현이 결성한 ‘보물섬 콜렉티브’는 회화, 조각, 미디어 등 다양한 장르를 한데 섞어 미술 내의 장르 구분을 없앴으며, 아티스트 그룹 ‘콜렉티브 A’는 현대 무용가 차진엽을 필두로 현대미술 작가와 무용가가 협업해 전방위 예술 활동을 펼친다. 해외 사례로는 ‘락스 미디어 컬렉티브(Raqs Media Collective)’, ‘로스 카핀테로스(Los Carpinteros)’ 등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인물들이 모이는 만큼 결과물 또한 시각예술에 국한되지 않고 에세이, 영화, 음악, 참여형 프로젝트 등 여러 가지인 점도 특징. 즉 컬렉티브는 미술 영역이 모든 장르로 확장될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하며, 늘 새로운 이미지와 시각적 자극을 갈구하는 대중의 욕구도 채워준다. 사실 앞선 사례들처럼 예술가와 예술가의 협업은 그 수가 적지 않다. 특히 해외의 컬렉티브는 국내 예술가들에 비해 움직임이 활발하고, 터너상을 받는 등 하나의 예술가로도 인정받는 중이다. 이제 미술관에서 현대무용가와 회화 작가, 미디어 아티스트와 사운드 아티스트 등의 협업은 익숙한 풍경이 됐다. 그런고로 그 ‘경계’의 범위를 더 확장해보려 한다. 예술과 사회의 경계 그리고 예술 진입 장벽에 대한 경계로.







6 락스 미디어 컬렉티브, The Blood of Stars, 2017 7 락스 미디어 컬렉티브, Escapement, 2009

예술 외의 경계
미술이 현실과 동떨어진 고매한 학문이라는 오명을 벗어난 데는 컬렉티브의 공이 크다. 1985년 결성한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는 고릴라 가면을 쓰고 움직이는 익명의 페미니스트 집단이다. 1980년대 뉴욕 현대미술관의 여성 예술가 배제 사건을 계기로 뭉친 이들은 ‘여성이 메트로폴리탄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만 하나?(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 를 발표하며 예술계에 만연한 성차별을 논했다. 게릴라 걸스는 노골적인 언행, 게릴라 작전 등 급진적인 행보를 보였고, 미술관과 갤러리는 그들의 눈치를 보기에 이르렀다. 예술계에서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한 게릴라 걸스는 1990년에 접어들자 활동 영역을 ‘사회 이슈’로 확장했다. 특히 여성과 소수 인종을 대상으로 삼은 범죄, 폭력 그리고 전쟁에 초점을 두며 불공평하고 정당하지 못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언제든 게릴라 걸스의 표적으로 삼았다. 런던의 컬렉티브 ‘어셈블(Assemble)’도 집단 행동으로 사회를 변혁했다. 건축가, 디자이너, 파인 아티스트가 구성원인 어셈블은 2010년 영국의 버려진 주유소를 영화관으로 바꾸는 프로젝트 ‘시네롤리움(The Cineroleum)’을 계기로 모였다. 이들의 관심사는 지역사회 부흥. 2015년, 어셈블은 리버풀의 낙후된 공공 주택단지 ‘그랜비 포 스트리츠(Granby Four Streets)’를 예술로 부흥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랜비 포 스트리츠는 리버풀 노동자들의 오래된 생활 터전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람들이 떠나 슬럼화가 시작된 지역이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위험한 지역으로 낙인 찍히자 어셈블은 그 곳 거주민과 합심해 집을 고치고, 조경을 가꾸고, 문화시설을 세우며 마을을 하나하나 바로 세우기 시작했다. 예술과 지역사회를 연계해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한 어셈블은 같은 해 터너상을 받았다. 이는 터너상이 제정된 이래 최초의 집단 수상자였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선 새로운 방식의 도시 재건이다. 그들은 예술과 디자인, 건축의 컬렉티브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는 게 터너상 심사위원들이 밝힌 선정 이유다.







8 루앙루파, 세룸 그리고 그라피스 후루하라가 모여 만든 굿스쿨의 ‘콜렉티브는 학교다’ (2018년).

“우리는 늘 소수를 유지하지만 누구나 우리의 서포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될 수 있고 그 어디에서도 존재한다”라고 게릴라 걸스는 말한다. 어셈블의 멤버 조 홀리건(Joe Halligan)도 “예술가로 선언한 사람만이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예술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누구나 예술적인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때로는 과격하고 때로는 예술보다는 사회봉사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집단 지성이라 불리는 ‘컬렉티브 형태’와 ‘열린 태도’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사회를 바꾸고 예술가 혼자서 범사회적인 흐름을 바꾸기란 달걀로 바위 치기 격이다. 게릴라 걸스와 어셈블처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변화를 이루기 위해 뭉치고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컬렉티브는 예술과 사회를 잇는 중추적 역할을 해내고 있다.







9 락스 미디어 컬렉티브, Utsushimi, 2017 10 커먼 어카운츠, 강남의 성형 프로토콜, 2016

마지막으로 예술 진입으로의 경계를 논하려 한다. 사실 컬렉티브는 작업하기 힘든 척박한 상황에서 결성되곤 한다. 특히 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없는 나라일수록 더욱더. 대표적인 예가 인도네시아의 컬렉티브 ‘루앙루파(Ruangrupa)’다. 지금이야 족자카르타가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불리고 있지만, 루앙루파가 결성된 2000년대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회적·정치적 이유로 작가 혼자 작업을 지속하기 힘들었기에 6명의 젊은 작가는 자생하기 위해 컬렉티브를 결성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해외 펀딩을 받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결과 현재 작가, 기획자, 건축가, 인문학자 등 40여 명의 멤버로 규모를 키운 루앙루파. 한 인터뷰에서 “컬렉티브를 통해 예술가를 지탱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되길 바란다”고 말한 만큼 이들은 컬렉티브가 창출하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다시, < 접-점-들 >전 오프닝으로 돌아가보자. 당시 많은 젊은 예술가가 자리한 만큼, 그들에게 “젊은 작가로 작업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작가들은 서로를 가리키며 답했다. “저희 같이 작업해요. 혼자 했으면 아마 포기했을지도 몰라요.” 혼자서 묵묵히 작업하기엔 녹록지 않은 예술계다. 그리고 사회가 예술에 바라는 요구 사항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으며, 대중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기대한다. 이런 상황에 가장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 컬렉티브가 아닐까? 지금, 컬렉티브는 미술계의 여러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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