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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19 SPECIAL

집단의 역사

  • 2019-03-08

한국 아티스트 컬렉티브의 태동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 디자이너, 포토그래퍼, 아티스트로 구성된 낫이너프타임이 DDP에서 선보인 오픈 큐레이팅 전시 < NEO+ > 전경.
2 리슨투더시티가 ‘2019 인디 다큐 페스티벌’에 출품한 필름 ‘Endless Letters’(2017년)의 스틸 컷.

미술 신에서 시대를 불문하고 유일무이한 작가의 예술품이나 천재의 독창성은 크게 주목받았다. 물론 듀오와 그룹, 커뮤니티 등 다양한 창작 단체의 성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베니스 비엔날레나 휘트니 비엔날레 같은 국제 행사에서도 2인 이상의 아티스트가 모인 컬렉티브의 참여율이 전체의 10% 중·후반대를 차지하는 만큼, 아트 신에서 아티스트 컬렉티브의 비중과 중요도는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이는 비단 최근 유행도 아니다. 예술가 집단은 역사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과거 서양의 유려한 건축물은 건축가, 화가, 조각가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가 힘을 모아 완성했다. 중세에 유행한 길드와 워크숍 또한 예술가와 공예가가 함께 작업하는 형태. 쉽게 말해 당시의 집단은 하나의 작품을 완벽하게 완성하고자 모인 조합에 가까운 것으로, 굳이 말하면 ‘타의적 협동’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동시대 아트 신에서 볼 수 있는 창작 집단이나 단체는 자의적으로 결성돼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가고 있다. 예술가들이 한데 뭉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함께 단체전을 개최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동 혹은 개인이 작품을 만들거나 경제적 이유로 홍보·전시 비용을 분담하거나 장비 또는 공간을 공유하고,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는 서로 전문화된 분야를 담당해 분업하면서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유 등에서다. 작가뿐 아니라 작가와 이론가가 한데 모이거나, 비평가나 기획자만으로 구성된 컬렉티브도 찾아볼 수 있다. 한데 질문 하나. 한국엔 이와 같은 아티스트 컬렉티브가 어떻게 뿌리내리게 되었을까? 국내의 아티스트 컬렉티브는 이데올로기·미학·정치적 견해나 신념이 일치하거나, 특정 세력이나 사회를 향한 공통된 소견 또는 목표를 지닌 단체가 생겨나면서 태동했다고 할 수 있다. 국내의 아트 컬렉티브 형태는 1900년대 초반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10년까지 조선의 관립 미술 기관이던 ‘도화서’를 시작으로, 1918년 전국구로 서화가를 모은 최초의 종합 미술 단체 ‘서화협회’가 있다. 이당 김은호의 문하생을 주축으로 1936년 발족한 동양화 그룹 ‘후소회’엔 김기창과 장우성도 포함됐다. 1947년 해방 후 최초로 등장한 추상주의적 서양화가 모임 ‘신사실파’에 이어, 1950년대의 ‘현대미술가협회’엔 김창열과 박서보가 이름을 올렸고, 비슷한 시기 구상미술 작가들이 모인 ‘목우회’가 생겼다. 당시 국권을 잃은 전후의 암담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근대 화가들은 작가정신을 바탕으로 뭉쳐 시대와 사회를 함께 극복해나갔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는 ‘집단’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요소이자 단위 역할을 했다. 당시 공동체 개념은 새로운 변화를 향한 모델이자 대안적 삶의 방식이면서 평화와 해방을 위한 상징이었다. 1970년엔 국내 실험 미술을 선구한 단체로 한국 예술 집단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그룹 ‘AG’가 등장했다. 김구림을 포함한 서양화가, 조각가, 미술 평론가가 모인 AG는 전위를 표방하며 전시를 열고 잡지를 출간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다가 1975년에 해체했다. 단체를 이끈 김구림 작가는 “어느 날 다방에서 김차섭, 곽훈, 최붕현 작가를 만나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시작점을 밝히기도 했다. 또 AG에서 파생한 단체가 ‘제4집단’이다. 이들은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 매체를 확장했으며 “인간을 본연으로 해방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활동을 펼쳤다. 또 1980년대 초엔 윤범모와 최민 등이 참여한 ‘현실과 발언’을 주축으로 민중미술 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국내 아트 컬렉티브의 역사는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펴낸 〈한국미술단체 100년〉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책을 펴낸 김달진 관장은 “국내 미술 단체의 활동은 시대와 문화의 중요한 단면을 형성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단, 이제껏 나열한 많은 아티스트 컬렉티브의 활동은 엄밀히 말해 ‘뜻을 함께하는 멤버가 모인 예술 단체’에 가깝다. 당시 예술 단체의 구성원들은 정치·사회적 행동은 함께해도 창작 활동은 개별적으로 펼쳤으니 말이다.





3 믹스라이스의 ‘덩굴연대기’(2016년)의 국립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4 파트타임스위트의 ‘초 다음 초’(2017년)는 서울시립미술관 커미션 작품이다.

하지만 현대적 개념의 아티스트 컬렉티브는 이들과 결을 달리한다. 이들은 공동으로 작업하고 적극적으로 함께 예술을 실천한다. 2000년대에 이르러 개인으로서 창작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컬렉티브나 팀으로 전혀 다른 작업을 선보이는 아티스트 컬렉티브가 생겨났다. 특히 2000년대 말에 결성된 다양한 컬렉티브가 동시대 예술을 선도하며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09년 결성된 ‘리슨투더시티’는 예술, 디자인, 도시, 건축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는 컬렉티브. 도시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와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작업을 선보였는데 그간 다양한 멤버가 거쳐갔다. 현재 멤버는 박은선, 윤충근, 백철훈, 장현욱으로 독립 잡지 〈어반드로잉스〉를 출판하는 동시에 독립 공간 ‘스페이스 모래’를 운영한다. 아티스트 컬렉티브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옥인 콜렉티브’도 같은 해에 모였다. 또 이미연과 박재영으로 이루어진 아티스트 컬렉티브 ‘파트타임스위트’도 이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 역시 각자 개별 작업으로 이름을 떨치면서도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주제로 공동 작업을 선보인다. 이 외에도 영화감독 박찬욱과 예술가 박찬경이 결성한 파킹찬스, 2016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한 믹스라이스(조지은·양철모)와 로와정, 뮌, 방앤리, 산업예비군, 에브리웨어, 정재일+장민승, 하이브, 낫이너프타임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따로 또 같이’ 활동하며 국내 아티스트 컬렉티브의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간 다양한 아티스트 컬렉티브가 예술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변화하고 발전해왔듯, 현시점에서 새로운 형태의 아티스트 컬렉티브가 등장하길 기대해본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백아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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